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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71화 (71/127)

# 71

띠리리리릭!

스크린의 전투력이 6천을 넘어서 7천을 돌파했다. 그 직후 7천 중반 수준에서 멈춰 섰다.

“미쳤네.”

나는 여성의 전투력을 확인하고 차분해지려고 애썼다. 벌써부터 나보다 강한 녀석이 나타났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도망가야하나?

지금까지의 관찰대로라면 전투력 1천 차이는 꽤 컸다. 운과 실력, 경험으로 뒷받침 한다고 해도 내가 질 확률이 높다.

한 번의 패배는 곧 죽음이다. 자존심을 버리는 길이 지키는 길이다. 생명의 무게가 자존심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우니까.

판단을 결정하고 있는데 천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살았다. 관리장님이 오셨어.”

나는 인상을 구겼다.

관리장?

한낱 시험장을 관리하는 관리장의 전투력이 7천대라고?

“천외천은 생각보다 더 괴물 같은 곳이군.”

내 중얼거림에 천사가 이죽거렸다.

“넌 이제 죽었어.”

“죽어? 내가?”

“관리장님은 천외지에서 가장 강해. 네가 아무리 강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천사의 눈망울에서 비웃음 섞인 일면이 엿보였다. 나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그녀를 살려두지 않았다.

어차피 들을 건 다 들었어.

나는 그녀의 목을 붙잡고 한쪽으로 비틀었다.

뿌득!

천사가 피를 토하고 고꾸라져 죽었다. 나는 정보 분석기를 조작해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했다. 어디로 도망가야할지 미리 결정해놔야 한다.

그 순간 새하얀 빛의 창이 독사처럼 내게 엄습했다.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피했다. 시선을 돌리자 예의 그 여성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동양인의 모습이었다.

“소름끼치네.”

그 모습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그리운 느낌을 느꼈다.

같은 한국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거지?

생각하고 있는데 빛의 창이 다시 몰아쳤다.

콰과과광!

땅이 패이고 흙먼지가 일었다. 시야가 먼지구름에 먹혀 잠겼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냐.”

나는 몰아치는 섬광을 피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번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등줄기 위로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감각이 전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여성은 내게 접근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는데 내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파지지직!

다음순간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처음엔 단순히 기상이 변한 거라고 착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의 마법인 것 같았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내 머리 위에 몰렸다. 번개가 몰아쳤는데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푸른빛은 공간을 찢어발기고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저기에 맞았다간 통구이가 될 거야.

나는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천마비행술로 급히 피했다. 커다란 바위에 착지했는데 이번에는 칼바람이 채찍처럼 날아왔다.

휘이익!

눈에 보일 정도로 압축된 강렬한 기류였다. 내가 몸을 비틀어 재빨리 피하자 서 있던 바위가 내 대신 맞았다. 커다란 바위는 칼에 잘린 진흙처럼 예리하게 두 동강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연이어 엄습하는 칼바람을 피하고 생각했다. 피하다가 실수로 왼뺨을 내줬는데 길게 상처가 났다. 따끔따끔한 자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하자. 머리를 써야 해. 안 그럼 죽어!

여성은 마법이 주력인 듯했다.

그렇다면 육탄전으로 승부를 봐볼까?

찰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체력능력치가 1천이 넘는다. 순간적으로 근육을 쥐어짜면 그녀의 반응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다. 탄지공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접근한 후 근접전으로 승부를 본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위력의 마법이라면 마력소모도 심할 테지.”

마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 사실이 싸우자는 쪽으로 영향을 끼쳤다.

내가 마력이 부족해서 휴지를 소환하지 못 하는 것처럼 눈앞의 여성도 마력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 할 거다. 그게 가공할 위력의 마법에 대한 대가다.

그 순간을 노리면 내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하늘에서 운석세례가 빗발쳤다. 지상전역을 초토화하려는지 엄청난 범위의 운석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나는 눈을 치켜뜨고 피할 곳을 물색했다. 운석 한두 개쯤은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하늘을 수놓을 정도로 빽빽하게 몰아친다면 곤란하다.

공격을 허용해주는 순간 먹이를 발견한 불개미처럼 사방에서 불덩이가 작렬할 거다. 포문이 열리면 군중들이 몰아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천마비행술로 훌훌 날아서 피하자 운석이 의지가 있는 것처럼 내 행적을 따라붙었다.

우와! 유도 기능까지 있었어!

놀라면서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기묘한 광경이 내 동공에 식별됐다.

“어!”

가만 보니 여성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피해서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땅을 검게 그을리는 운석들은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엔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우연일까?

“아냐, 우연이 아냐.”

천사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는데 관리장은 다른 건가.

하나의 추측이지만 주저할 틈이 없었다. 나는 하늘을 날아서 곧장 사람들의 대열 속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우박처럼 날아오던 운석들이 뚝 끊겼다.

역시 사람들의 목숨을 신경 쓰고 있구나.

나는 사람들의 대열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기회를 노렸다. 사람들은 내게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보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는데 마법을 난발하는 여성보다 나를 더 겁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 시험이 처음인 것 같았는데 시험내용도 알고 있는 눈치였어. 천사가 왔을 땐 놀라더니 관리장이 왔을 때 놀라지도 않았고. 설마 관리장과 구면인 걸까.

추측을 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관리장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날벌레를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스슥.

그녀가 바람을 타고 지면으로 내려왔다. 나와 스무 걸음쯤의 거리를 두고 그녀가 말했다.

“너 제법 하는 구나.”

나는 숨을 죽였다. 가끔 지루한 일상을 지내다보면 특이한 상황에 호기심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상황은 역전됐지만 내가 지금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녀의 공격을 모조리 피했는데 그 행동이 그녀의 호기심을 산 듯했다.

여성이 물었다.

“너 누구야?”

“너는 누군데?”

내가 반문했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나는 조금 안심했다. 여성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그 자신감이 대화의 여지를 만들었다.

“이건 정당방위야.”

내가 천사들의 시체를 가리키고 말했다. 변명은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 먼저 꺼내는 게 낫다.

“그건 신경 안 써.”

여성은 대범하게 넘어갔다.

부하들이 아니었나?

그녀는 오히려 사람들 쪽을 신경 썼다.

“다행히 아직 많이 살아있구나.”

그녀는 사람들의 목숨을 가장 먼저 신경 쓰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경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대열 속에서 여왕님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관리장이 이 사람들의 여왕이었어!

그래서 사람들의 목숨을 신경 쓰고 있었구나.

“까면 깔수록 양파처럼 깔 게 더 생기는 이상한 곳이야.”

문득 천외지에 대해서 좀 더 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여왕이 말했다.

“다시 물어볼게. 넌 누구지? 어디에서 왔어? 어째서 갑자기 시험장에 행패를 부리는 거지?”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지구에서 왔어.”

천외천을 정벌하기 위해 왔다는 뒷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것처럼 비웃음을 살 것 같아서였다.

“지구!”

여성이 놀랐다.

“지구를 알고 있나?”

내가 반색하고 물었다.

막연한 그리움의 정체는 같은 지구 사람이였기 때문일까.

“들어는 봤어.”

“들어는 봤다고?”

“내 먼 조상이 지구인이었거든.”

그녀는 꿈을 꾸듯이 몽롱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게 내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먼 조상?”

“그래.”

“그럼 네 조상도 다른 세계에서 천외천으로 온 지구인이야?”

타지에서 같은 인종을 만나면 반갑다던데 나는 다른 의미로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잘하면 지금의 이 문제들을 갈등 없이 해결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내 조상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로 돌아갔어. 그가 떠나고 나서 우리만 천외천으로 오게 된 거지.”

“그렇군.”

김이 팍 샜다.

내가 호흡을 가다듬고 긴장하는데 여성이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곧 다시 주먹을 풀었다. 마치 뭔가를 생각하다가 결심한 듯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쨌든 네가 지구인이라니까 싸우고 싶진 않네.”

그녀가 거친 숨을 훅 몰아쉬고 말했다. 나는 티내지 않고 안도했다.

“얘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내가 널 모셔도 될까?”

“날 모시고 싶다고?”

“그래.”

나는 숨을 골랐다. 갑작스런 존대가 부담스럽다.

“그러면 나야 고맙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얼음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약자의 입장에 서서 제의를 받아보는 게 얼마만일까. 아주 오랜만인데.

갑자기 뒤통수를 쳐서 공격하진 않겠지?

나는 번민하다가 그녀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시험장의 일을 물었는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천사가 죽고 개판이 났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재량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리장의 권한이 생각보다 높은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통성명을 나누고 이름을 들었는데 주리스라는 다소 괴상한 이름이었다. 직후에 내 이름인 주은성을 말해주자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는데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끝내 읽어내지 못 했다.

* * *

나는 그녀로부터 천외지의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천사가 했던 말처럼 차원을 잃은 여러 종족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단지 천사의 말과 달리 지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지옥이라는 말에 시체가 들끓고 지옥불이 불타는 흉악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아니었다.

황무지가 많고 땅이 척박했지만 사람들이 있었고 저마다 마을을 구성하면서 살고 있었다.

나중에 천외지의 전체 지도를 받아서 알아봤을 땐 중간중간 서로의 구역을 나누면서 살다보니 무법지대 같은 곳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규칙과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는 각 종족마다 관습과 규칙이 다르다보니 오해를 사서 불화가 자주 발생 하는 것 같았다.

주리스가 다스리는 지역은 크고 넓었는데 천외지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천외지에는 크고 작은 종족파벌을 제외하고 동서남북 네 곳의 국가가 있었다. 그녀는 괴상한 몬스터들 탓에 동쪽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휴지를 떠올리고 혹시 마력을 증폭시켜줄 장치가 있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일단 내가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녀가 예상 외로 호의적이라서 기뻤는데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설마 검은 속내가 있어서 내게 호의적인 건 아니겠지?

그녀를 따라서 왕궁 건물의 아래쪽에 있는 초라한 동굴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늙은 드워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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