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106화 (106/127)

# 106

“뭐지?”

“뭐가?”

점주가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왜 멀쩡하지?”

“멀쩡하면 안 되나?”

“하르곤. 저 놈 음식에 약을 안 넣었나?”

점주가 도마뱀 여자를 보고 말하자 하르곤이라 불린 도마뱀 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넣었어요.”

“얼마나?”

“인간은 약이 배출되는데 오래 걸린다면서요···.”

“그래서 얼마나 넣었냐고?”

“두 스푼 정도···.”

점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럼 왜 멀쩡하지? 제대로 넣은 거 맞나?”

“여자는 약에 취했잖아요.”

“그렇군.”

잠자코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음식에 약을 넣었나?”

“그래.”

조심스러울 줄 알았는데 순순히 말한다.

“이거 미친놈들 아냐.”

“미친놈은 너야.”

“왜 내가 미친놈이야?”

“열등한 놈이 뭘 믿고 이런 가게에 들어와?”

“무슨 소리야?”

점주가 가게 카운터에 위치한 메뉴간판을 가리켰다.

“여긴 식문화 거리야. 그것도 내 가게는 생육식당이지.”

간판에는 예의 그 성인 남자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생육식당?”

“너 같은 약한 놈들을 바로 도축해서 신선한 상태로 구워주는 곳이다.”

나는 황당해서 이마를 매만졌다.

“문화가 다르니 식습관도 다를 수 있지만···. 정말 돌아이 같은 곳이군. 같은 지적 생명체를 먹어?”

“문화가 다르다고?”

“그래.”

“이거 천외천에 온 지 얼마 안 된 놈이었군. 그래서 이곳에 겁 없이 들어온 건가?”

그는 내 인식표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사전에 비공개로 해놔서 내 전투력을 알 수는 없다.

“구슬 대신 구슬복용자들을 잡아먹는 것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야.”

“약한 놈은 생존권이 없나?”

“강한 자의 힘이 되고 살이 된다면 그걸로 가치가 있다.”

이거 진짜 돌아이였군.

“아니, 이곳 자체가 돌아이들 집합소인가?”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부분이 드물다. 군부처럼 정권을 두고 다른 행성을 파괴하는 것만 봐도 정상인의 기준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뭘 중얼거리나? 슬슬 약이 드는 건가?”

“아니.”

나는 테이블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알처럼 튀어나가서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파충류의 피부는 각질로 덮여져 있어서 까칠할 줄 알았는데 연두부처럼 부드럽다. 수인 족은 뭔가 다른 건가? 1초 정도가 지나서야 나는 녀석이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능력이다.”

하늘하늘한 천 같은 게 놈의 얼굴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상한 기술이군. 환경에 따라 피부색이 바뀌는 도마뱀의 능력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건가?”

“약이 아주 안 먹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도마뱀 인간이 양손을 허리에 두고 의기양양한 자세를 취했다. 꼭 때려보라고 도발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천외지에서 봤던 원숭이와 생선 대가리처럼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시덥잖은 능력이네.”

본래 약하게 때려서 위협만 주려고 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장기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내구성이 강하다면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줄 필요가 있다. 나는 물렁한 과일을 집어드는 것처럼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놈의 복부를 향해서 주먹을 뻗었다.

스르륵.

예의 그 하늘하늘한 천 같은 게 놈의 복부를 감쌌다. 방어마법처럼 온몸에 제한 없이 두를 수 있는 모양이다.

“깨져라.”

내 외침과 함께 내 주먹이 놈의 복부를 가격했다. 유리가 깨진 것처럼 하늘하늘한 천이 균열을 일으키고 깨졌다.

“어, 어, 어···!”

녀석이 침을 질질 흘리고 떠듬떠듬 놀랐다. 약 먹었냐? 왜 침을 질질 흘려? 내 주먹은 그대로 뚫고 들어가 녀석의 갈비뼈를 부쉈다.

뻑.

놈이 탱탱볼처럼 튕겨져서 테이블에 부딪혔다.

“이제야 제대로 때린 기분이 드네.”

수인 족도 결국 도마뱀인 모양이다. 파충류의 피부처럼 감촉이 까슬까슬했다.

“헉헉··· 어떻게 하위 계층의 놈이···.”

놈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사람처럼 헥헥거렸다.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이지.”

그때 하르곤이라고 불린 여자 도마뱀이 두 눈을 치켜뜨고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다. 상대가 되지 않으리란 걸 깨닫고 도주를 결정한 모양이다.

“어딜.”

나는 손가락에 마력을 끌어 모아서 탄지공을 준비했다. 이곳에도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다. 만약에라도 소란을 피워서 문제가 커지면 곤란하다.

적당히 탄지공을 쏘려고 손가락으로 겨냥하는데 뒷문이 열리고 험상궂은 도마뱀 수인족들이 몰려왔다. 도망치는 줄 알았는데 동료들을 부른 모양이다. 그들은 오자마자 점주의 안위부터 살피더니 내게 삼지창을 날렸다.

말보다 칼이 먼저인 놈들이네.

“느려.”

나는 소의 뿔처럼 위협적인 삼지창을 잡아서 던진 놈들에게 되돌려줬다. 유난히 머리가 큰 도마뱀 하나가 허벅지를 꿰뚫리고 세상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누구냐? 왜 남의 가게에서 행패야?”

그제야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손님이야.”

“손님? 손님이면 밥이나 먹을 것이지. 왜 행패를 부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놈들의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 많기도 많네. 이거 완전 전문적으로 하는 놈들이네.”

“지금 뭘 하는···.”

그리고 번개처럼 튀어가서 놈들을 아작냈다. 모두 처리하는데 6초가 걸리지 않았다. 한 명당 1초도 안 걸렸다.

손을 탈탈 털고 쓰러진 놈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눈치 빠른 점주가 손바닥을 비볐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줘?”

“예.”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점주가 뒤늦게 들어온 도마뱀 수인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단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만 했단 말이지?”

“예.”

웃긴 소리를 하네.

낌새를 보니 거짓말이 분명하다.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데 녀석이 눈알 굴리는 게 거슬린다. 놈은 내 눈치를 살피는 척 하면서 내 뒤에 있는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뒤에 뭐가 있나?”

내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놈이 소리쳤다.

“죽여!”

그 순간 뒤에 있는 문이 열리고 다른 도마뱀들이 또 몰려왔다. 이번에는 숫자가 더 많다.

“와. 진짜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네.”

나는 고민했다. 죽이는 건 별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귀찮은 일이 발생할지 여부다.

“너네들 이거 불법 맞지?”

내가 물었다.

“죽여! 빨리 죽이라고!”

놈이 내 물음을 무시하고 악을 썼다. 그러자 뒤에 있던 도마뱀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내 목을 노리고 엄습해오는 칼을 피하고 허리를 찔러오는 창을 피했다. 그리고 맨주먹으로 놈들에게 반격했는데 이번에는 손속을 두지 않았다.

펑. 펑.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나고 두 놈의 머리가 수박 으깨지듯 으깨졌다.

“헉!”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그들을 모두 처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마뱀도 학습능력이 나쁜 편인가.

“어, 어떻게···.”

나는 얼어붙은 점주의 목을 잡고 비틀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여자 도마뱀을 쳐다봤다.

이름이 하르곤이라고 했던가.

“이봐.”

“네?··· 네, 네···!”

목소리에 긴장이 역력하다.

“나는 없던 사람이야.”

“그게 무슨?”

“얘네들 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 죽은 거라고.”

내가 시체들을 가리키자 하르곤이 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예, 예!”

“그리고···.”

나는 내 인식표를 꺼내서 그녀에게 보여줬다. 복수를 하겠다는 시덥잖은 생각은 미리 지워주는 게 좋다.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네, 네!”

아르헨의 말대로 효과가 좋다. 처음부터 이걸 보여줄 걸 그랬나. 내가 자리를 뜨지 않고 휴지를 응시한 채 가만히 있자 하르곤이 안절부절했다.

“저어, 혹시 더 남은 용무라도 있으신지···?”

역시 이 도마뱀도 정상은 아니다. 동료들이 죽었는데 눈도 꿈쩍 안 하는 군.

나는 손바닥을 펴고 말했다.

“해독제 내놔.”

* * * * * *

하드버는 도시의 경비대장을 만났다. 평소와 같이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던 경비대장은 공관의 대장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놀라서 달려왔다.

“헉헉, 공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경비대장이 묻자 하드버가 그의 입가를 가리켰다.

“침이나 좀 닦고 말하게.”

“아, 예예···. 이건 그··· 죄송합니다.”

하드버는 경비대장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외천에 눌러 앉은 자들은 대개 두 부류 중 하나였다. 끊임없는 성장의 궤도에 몸을 싣고 정점을 향해서 달려가거나, 도중에 포기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서 시간을 축내거나.

경비대장은 두 부류 중 후자였다. 하드버가 아쉬운 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선택지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자네. 이름이 뭐지?”

“할웬입니다.”

“좋아, 할웬. 내가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어.”

진급 욕심이 있다면 눈을 반짝이고 의욕을 보일 텐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네 경비대장 직급을 받은 게 횟수로 몇 년 차지?”

“15년 정도 됐습니다.”

“좋아··· 그럼 이곳 도시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할웬의 낯 위에 미약하게나마 자부심이 떠올랐다. 하드버는 그나마 속으로 안심했다.

“인간을 찾고 있어.”

“인간이요? 어떤 인간을 말씀이십니까?”

“아주 약삭빠르고 쥐새끼 같은 인간이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여주는 게 빠르다. 하드버는 분석장치를 통해서 출력한 영상을 눈앞에 스크린으로 띄웠다.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조작하자 출력된 영상이 확대되어 인물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찾는 인간이 이 인간입니까?”

“그래. 지금쯤 도시 안에 있을 거야. 아직 벗어나지 못 했겠지.”

“혹시 찾으시는 이유는···?”

하드버가 고개를 흔들었다.

“보고할 사항은 아니네. 그냥 노예가 도망쳤을 뿐이니···.”

“그렇군요. 애초에 예의상 물어봤습니다. 하하하··· 근거를 남겨야해서···. 적당한 이유를 달아두겠습니다.”

하드버는 비밀을 품은 사람처럼 정색하고 물었다.

“찾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요즘은 통신망이 잘 구축돼 있어서 반나절이면 될 겁니다.”

“좋아. 기다리겠네.”

* * * * * *

식량 따위를 구매하고 마력이 이끄는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시 밖을 나서기 위해 성문 쪽으로 걷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쪽 거리는 사람이 없다, 주인.”

“되게 조용하네. 방향은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글쎄.”

경비병들에게 신분을 검사받기 위해 성문 쪽으로 걷는데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사령으로부터 기안이 왔어.”

“이따 확인해.”

“긴급 공문인데?”

“이따 확인해. 귀찮아.”

지적 생명체들이 사는 곳은 나름 공통점이 있는 모양이다. 녹봉을 먹으면 대개 게을러지나.

“어이쿠. 방문자가 왔네.”

오크 경비병이 나와 휴지를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사람이 없어서 따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쪽에 뭐가 있는지 알고 오는 거요?”

그가 말했다.

“뭐가 있습니까?”

“여긴 미개척지 방향이요. 길드들의 사유지도 있지만··· 뭐, 그게 많은 건 아니니까.”

그는 나와 휴지를 엄마 잃은 다섯 살 아이처럼 취급했다. 그나마 말투는 싹싹했는데 이곳에도 민원이 있는 모양이다.

“이쪽으로 가는 길이 맞아요.”

내가 그의 뒤를 가리키고 손등을 보이자 오크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난 경고했수다. 복장을 보니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분들 같은데. 그쪽 세계에서 윗공기 좀 마셨다고 해서 여기서도 그런 취급이 통용되는 건 아니오.”

그리고 내 인식표를 쳐다보더니 입을 벌리고 놀랐다.

“어어···. 당신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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