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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111화 (111/127)

# 111

“이상한 곳에 돈 쓰는 취미는 없을 텐데···.”

호기심이 확 솟구친다. 길드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별거 아니겠지.”

군인들과 작별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 플로어를 들어가기 전 입구가 있었는데 공항 검색대보다 더 삼엄했다. 사람도 없고, 별다른 제재 사항도 없어서 그냥 검색대로 들어가는데 경비병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경비병은 50대의 나이지긋한 아저씨였는데 그는 나를 몰라봤다. 5년이나 지났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건가?

“전 실버스타의 길드 마스터 주은성입니다.”

당장 헌터증이나 신분을 증명할만한 게 없다. 얼굴을 보여주는 수밖에.

“흐음?”

경비병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전 길드 마스터는 여행을 떠난 지 한참 지났소. 당신 얼굴은 내가 처음 보는데···.”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그건 왜? 4년 정도 됐소.”

내 얼굴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거, 그리고 내가 알기로 전 길드 마스터는 당신처럼 피부색이 검지 않아. 적어도 한국인이란 말이지.”

게다가 내 피부색을 보고 오해한 것 같다.

“저도 한국인이에요.”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한다고 한국인이 되는 건 아니지. 거, 피부색이 시꺼먼 게 어디 제3국에서 온 것 같은데 불법체류자나 그런 건 아니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게 생겼다. 귀찮게 됐군. 나는 즉시 판단을 내렸다.

“휴지.”

“왜 그러냐, 주인?”

“꽉 잡아.”

나는 휴지를 안고 총알처럼 입구를 지나쳤다. 귀찮은 건 무시하고 오해는 나중에 풀면 된다.

“어, 어! 침입자다!”

엘리베이터를 지나쳐서 비상구 쪽 계단을 타고 곧바로 올라갔다. 뒤에서 경비병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길드장 집무실이 어디지?”

비상구 층계에 그려져 있는 약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한 나는 금세 길드장 집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똑똑 두드리니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익숙한 목소리다.

“잘 지냈니?”

“으응?”

문을 열자 주아랑이 길드장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빠?”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 * * * * * *

부모님도 만나고 다른 사람들도 만났다. 오랜만에 회포도 풀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대충 둘러댔다. 사라진 5년은 세계 각국을 여행했다고 말했고, 검게 변한 피부색은 괌 같은 관광지에 놀러 가서 피부를 태웠다고 말했다.

“태워도 너무 태우셨어요. 아니, 태운 수준이 아니라 검은색 페인트로 칠 한 것 같으세요.”

“진짜 오빠 피부 맞아? 너무 이상한데.”

박은애와 주아랑이 의심의 눈빛을 보냈지만 무시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역시 집이 편하고 좋아.’

나는 말년 휴가를 보내는 병장처럼 초연한 태도로 지냈다. 길드에 가입을 하고 헌터증을 만들고 신원도 복구했지만 길드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아직 천외천으로 돌아가서 처리할 일이 남았다. 당분간은 길드를 그대로 맡기고 싶었다.

“검은 피부도 잘 어울리세요.”

콜라 캔을 들이켜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박은애가 다가왔다.

“5년 동안 뭘 하고 오신 거예요? 오빠?”

“궁금해?”

“네.”

나는 웃었다.

“비밀이야.”

“비밀이 많으시군요.”

“남자는 비밀이 많을수록 매력적이지.”

“······.”

개소리를 하고 반응을 보는데 박은애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개 같은 일을 많이 겪었나? 그래서 개소리에 면역이 됐나?

“주인. 배고프다. 뷔페에 가고 싶다.”

그때 자고 있던 휴지가 부스스한 얼굴로 다가왔다.

“피로는 좀 풀렸니?”

“아직···.”

“3일 정도 내리 잤는데 피로가 안 풀렸다고?”

“드래곤의 몸은 사람과 다르다, 주인. 더 자고 싶다.”

내가 지적했다.

“하프 드래곤이잖아.”

“하프 드래곤도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아니라 겨울잠을 자는 곰탱이 같구만.

“그럼 더 자.”

“하지만 배가 고픈 걸···.”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은애야. 얘 밥 먹이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나는 휴지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내 방은 길드건물의 접객실에 마련돼 있었다. 복도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주아랑이 다가왔다.

“오빠. 또 어디가?”

그녀는 내게 관심이 많았다. 내가 돌아온 이후부터.

“밥 먹으러 가려고.”

“또 어디 갑자기 사라지려는 거 아니지?”

“아니야.”

주아랑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마침 나도 밥 먹어야 해. 같이 가.”

“그러든가.”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들이닥쳤다. 우람한 체격에 산적처럼 생긴 남자라서 하마터면 놀랄 뻔했다.

“길드장님!”

차돌파가 말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주아랑이 반응했다. 지금 현 길드 마스터는 주아랑으로 당연히 나를 부르는 게 아니었다.

“큰일 났습니다. 기어코 중국 쪽에서 전면으로 나설 생각인가 봅니다.”

“네? 중국이요?”

“협정을 깨고 우리 쪽 마을을 먼저 공격했습니다. 그 새끼들 말로는 우리 쪽에서 먼저 협정을 위반했다는데 뻔한 거짓말입니다. 개새끼들···.”

주아랑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바람 잘 날이 없네. 피해는요?”

“헌터 3명이 죽고 민간인 11명이 죽었습니다. 마을 하나는 완전히 전소됐고요.”

“민간인이 죽었다고요?”

“예.”

“하, 이런 미친 새끼들이 진짜···.”

이마를 감싸는 주아랑을 보고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중국 문제야.”

“중국 문제?”

“요즘 문제가 많아. 탑의 시간이 멈추고 나서부터.”

중국? 나는 기억을 곰곰이 되새겼다.

“중국은 망하지 않았나?”

내 기억으로 중국은 바벨의 탑이 생긴 이후 완전히 죽은 땅이 됐다. 언데드 종류의 몬스터들 천지에 생명체라곤 없다. 완전 잿빛으로 죽은 곳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어.”

“살아남은 사람들?”

“응. 우리도 중국 지역에 사람들이 살아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더라고. 게다가 단순히 살아남은 것도 아니야. 생존을 담보로 악착같이 살아남았는지 우리들 보다 전력이 강해.”

흥미가 확 솟구친다.

“강하다고? 얼마나?”

“우리 헌터 수준의 평균이 A랭크면 그쪽은 S랭크야. 한 단계 이상 차이나.”

과연 발등에 뭐가 떨어지냐에 따라 성장의 차이가 있다. 불이 떨어지면 참을 수도 있지만, 도끼가 떨어지면 죽자고 피한다. 그게 사람이다.

“중국이랑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건데?”

“자원 때문이야.”

“자원?”

“응. 오빠도 알겠지만 몬스터의 사체, 던전의 아이템들은 돈이 많이 돼. 국가 경쟁력과도 결부돼 있어. 요즘은 헌터가 전략무기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탑의 시간이 멈추고부터 몬스터의 위협이 약해졌어. 이제 내부의 위협은 별 문제가 안 돼. 던전이 갑자기 생겨나지도 않고 몬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오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숨을 돌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을 돌린 거야.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중국과 자원 싸움 중이라는 거야?”

“응. 넋 놓고 있으면 안 돼. 던전은 한정돼 있으니까.”

“국가 단위의 일 아냐?”

“정부는 실질적으로 힘이 없어. 5년 전 오빠가 사회유지법을 없앤 이후로···.”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부패된 정계인사들을 다 없애고 새로운 사람을 자리에 앉혔었다. 헌터에 의해서 감투를 썼으니 헌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주아랑은 말을 마치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중국 쪽에서 민간인을 죽일 줄은 몰랐어. 정도라는 게 있는데··· 선을 넘을 줄이야.”

“어디야?”

“응?”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 위치가 어딘데?”

내 물음에 주아랑이 기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백두산 근처야.”

* * * * * *

처음 지구에 도착하고 마력의 파장을 읽었을 때 몬스터를 제외하고도 기묘한 마력들을 읽긴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운들이 중국 헌터들의 기운이었던 모양이다.

“기운 자체가 일반 헌터들과 많이 달랐는데···.”

설마하니 내공심법을 극성으로 익혔나.

“주인. 언제 도착해?”

“거의 다 왔어.”

“빨리 처리하고 또 밥 먹으러 가자.”

나는 휴지를 데리고 백두산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 내력을 끌어올려서 속도를 한계까지 올리니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백두산에 도착했다.

“장관이군.”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온천수를 보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력의 파장을 읽었다. 오래지 않아 주변 생명체들의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이건 몬스터, 이건 민간인 같고, 이건 한국인 헌터······, 이게 중국인 헌터구나.

마력의 파악이 끝나는 즉시 천마비행술로 하늘을 날았다. 그들의 근거지로 날아갔다. 1초쯤 지나자 목책과 콘크리트 벽으로 이뤄진 마을이 보였다.

“저기군. 규모가 생각보다 크네.”

나는 사뿐히 목책에 내려앉았다.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중국인 헌터가 뭐라고 소리쳤다.

“침입자다!”

“으음?”

중국말을 배운 적이 없는데 내용이 이해가 됐다. 뭐지? 무의식이 중국말을 배웠나?

아무래도 시조 드래곤을 통해서 흡수한 기운 때문인듯했다.

“무슨 일이지?”

“하늘에서 침입자가 내려왔다.”

“보통 놈이 아냐. 전투기보다 빨랐어.”

중국인들이 금세 모여들고 나를 포위했다. 새삼 그들의 행동력에 감탄이 나왔다.

“오. 눈치가 빠른데.”

지금까지 이렇게 눈치 빠르게 대응하는 놈들은 처음 봤다. 목숨을 걸고 살아남다 보니 생존력이 극한으로 발달했구나.

“당신은 누구요?”

그때 인파가 홍해처럼 갈라지고 수염을 명치까지 기른 노인이 나타났다. 중국인들의 시선이 노인에게 모여지는 걸로 봐선 이 노인이 이곳의 대표자인 듯했다.

“그럼 당신은 누군데?”

“본인은 서경춘이라고 하오. 이곳 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소.”

“나는 주은성이야.”

“주은성. 왜 우리를 찾아온 거요?”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왜 그렇게 목소리를 떨지?”

“당신의 정체가 범상치 않아서 그렇소. 대단한 기운이군. 정체가 뭐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들은 무공을 배운 이들이다. 상대방의 내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설혹 그것이 거대한 석상의 발톱 끝부분이라고 해도.

“내 무공 수준을 읽었군.”

“이건 본인이 천성적으로 가진 잔재주요. 겉핥기로 핥았지만 당신은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안 보이는군. 도저히 사람으로 안 보이는 내력 수준······. 혹시 전설 속에 나오는 영물이요?”

순간 나는 심통이 났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반말을 하지?”

노인이 할 말을 잃었다.

“······.”

“반말하지마. 알겠냐?”

“······.”

나는 말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일전에 너희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 때문이야.”

“죗값이라니?”

“내가 비호하고 있는 한국인 마을을 공격했더군.”

노인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그것 때문에 온 것이오?”

“말투.”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일이 쉽게 풀리겠군. 나는 씩 웃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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