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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118화 (118/127)

# 118

“그럼 나한테는 사용할 수 있고?”

“결함을 가르쳐줬잖나. 그 결함을 스스로 봉인하면 되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내력을 불어넣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지?”

“그렇네. 내력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건 괜찮네.”

나쁘지 않다.

“좋아. 시작하자고. 덩치가 남산만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좋은 연습상대가 되겠군.”

* * * * * *

우리는 바위틈을 나와서 공터에 도착했다. 공동 안에서 전투를 벌이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밖에서 대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몸을 풀고 있는데 하드버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설치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게 뭘 하는 건지 궁금해서 물었다.

“저건 뭘 하고 있는지?”

칼리고가 하드버를 쳐다보고 대답했다.

“역장을 설치하고 있는 거야.”

“역장?”

“일종의 위장망이지. 역장 안에서는 제아무리 기운을 쏟아부어도 천외천의 감지 시스템에 발각되지 않아.”

“오. 그거 좋은데.”

과연 하드버가 설치를 끝냈는지 손을 탈탈 털자 하늘에 반구 모양의 투명한 장막이 생겨났다. 꽤 넓게 설치했는지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작하지.”

“좋아.”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준비자세를 갖췄다. 칼리고가 천외장기를 소환했고 탑승을 완료하자 대전을 시작했다.

일단 내구성을 볼까?

내가 탄지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천외장기를 탄 칼리고가 다가왔다.

“대전을 요청한 걸 후회하게 해주지.”

녀석은 철갑처럼 매끈한 주먹으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손을 들어서 녀석의 주먹을 막고 탄지공으로 반격했다.

뚜둑.

내력을 적당히 실어서 그런지 천외장기의 표면에 흠집도 안 났다. 과학기술의 집약체라더니 외갑이 꽤 단단한 모양이다.

“개발비를 헛들인 건 아닌가 보네.”

땅을 박차고 공격에 나서려는데 녀석의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상체를 숙여서 피했다. 공기를 밟고 접근해서 녀석의 뒤를 잡은 뒤 주먹에 내력을 실어서 강하게 내리쳤다.

퍼억!

어느 정도 내력을 실어서 외갑이 찌그러질 줄 알았는데 멀쩡했다. 정말로 표면이 단단한 모양이다.

“얕잡아보면 안 되겠군.”

“내가 할 말이네.”

몸 안의 신성한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 천외장기의 육중한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주먹에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걸로 봐선 표면에 오러를 씌운 것 같았다.

나는 내력을 이끌어서 방어막을 만들고 녀석의 주먹을 막았다. 녀석은 권투자세를 취하면서 원투원투잽 하듯이 무차별적으로 방어막을 두들겼다.

“그 정도 공격으로는 방어막에 흠집도 안 나.”

“좋아.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군.”

뭘 하나 싶어서 쳐다보자 녀석의 손등에서 광선검이 뿜어져 나왔다.

지이잉.

한쪽 손도 아닌 양쪽 손등 모두에서. 우와! 쌍검이라니, 짱이잖아?

“이것도 막을 수 있는지 궁금하군.”

녀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광선검을 휘둘렀다. 광선검이 무차별적으로 방어막을 때렸다.

끼기긱! 끼긱!

갈라지는 소리 대신 듣기 싫은 마찰음이 났다. 내 방어막은 균열 하나 없이 여전히 쌩쌩했다. 나는 웃었다.

“별거 아니네.”

그 순간 광선검의 오라가 2배는 커졌다. 커진 오러는 삽시간에 광선검의 끝에 맺혀서 점으로 응축됐다. 넓은 면을 자를 수 없다면 공격 범위를 점으로 한정해서 방어막을 단번에 깨뜨릴 속셈인 것이다.

나는 방어막에 내력을 더 싣는 대신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천외장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칼리고가 내 상대가 될 리는 없다. 일종의 셀프 페널티라고 할까? 수련을 해야 하니 적당히 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셈이다.

쩌적!

광선검이 방어막을 뚫고 들어왔다. 칼리고가 뭣 모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리 알고 있던 나는 목을 노리고 오는 광선검을 머리를 젖히는 것으로 피했다. 손날에 내력을 실어서 광선검을 부술 수 있지만 피하기 위주로 움직이는 것이 전투연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휘익! 휘익!

광선검이 내 몸을 노리고 독사처럼 엄습해왔다. 나는 스스로가 느끼는 감각에서 절반 정도 느리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광선검이 너무 느리게 보였다. 애초에 천외장기는 내 식후땡 상대도 되지 않는 걸까?

“이거 파일럿 문제구만.”

“무슨 소리냐?”

대전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샌드백으로 이용하는 게 낫다. 그편이 전투연습에 더 도움된다. 살아있는 생체 샌드백.

칼리고가 착각해서 말했다.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해선 이길 수 없네.”

“···응?”

“예언의 존재치고는 상당히 약하군. 천외장기를 썼을 뿐인데 나와 비슷하다니.”

“······.”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아니, 천외장기의 기술력이 뛰어난 건가?”

“좋아. 좀 더 강하게 상대해줄게.”

녀석은 쓰나미처럼 거대한 내 전투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장의 얇은 파도만 봤다. 천외천 기술에 대한 자만심 때문일까? 내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부심이 대단하구만.

나는 오른손, 왼손 손가락 열 개에 탄지공을 모았다. 적당히 내력을 싣고 점프를 했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서 탄지공 세 개를 녀석의 뒤쪽으로 발사했다.

“먹어라!”

펑펑펑.

등 쪽을 얻어맞자 천외장기의 상체가 크게 젖혔다. 그러자 예상대로 틈이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도 먹어라.”

좌측에 탄지공 네 개, 우측에 남은 탄지공 세 개를 발사하고 녀석의 어깨에 착지했다. 양 옆구리를 겨냥하고 날린 탄지공이 정확하게 피탄지를 폭격했다.

펑펑펑펑펑펑펑.

천외장기가 울부짖듯 몸을 떨자 나는 즉시 녀석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내력을 과하지 않게 적당히 실어서.

때릴수록 속도와 힘이 더 해졌다. 주먹에 머금은 내력도 더 해졌다. 천외장기가 한참을 휘청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녀석이 반격을 위해 광선검을 뻗어올 때는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쉐엑.

나는 광선검이 엄습해오기 직전 천외장기의 머리를 정권 찌르듯이 찔렀다.

쾅!

일격에 천외장기의 머리에 구멍이 났다. 천외장기는 앞으로 고꾸라져서 일어서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내력을 과하게 실은 것에 대해 무안해서 한마디 했다.

“천외천 과학기술의 집약체도 별거 없구만. 되게 약하네.”

칼리고가 뭐라고 대꾸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다.

“······.”

나는 덜컥 걱정이 됐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치킨 머리의 목숨 따위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협력관계라는 점에서 거슬렸다. 동맹이 죽으면 내가 얻을 이익도 줄어드는 셈이니까.

하드버 영감이 싫어하겠군.

진짜로? 아니다. 생각해보면 하드버는 처음부터 치킨 머리를 죽이려고 했었다. 녀석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칼리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제어 장치가 고장이 났어? 이게 뭐야?”

목소리에 놀라움이 가득하다.

“안 죽었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무슨 소리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더니 헛소리를 하네. 무슨 소리야?”

“천외장기가 고장이 났어.”

“고장났다고?”

기술빨 자랑하더니 진짜 별거 아니네.

“천외장기에는 자가수복 기능이 있어. 단순히 머리에 구멍이 뚫린 거라면 자가수복으로 곧바로 회복이 가능해. 이렇게 고장이 날 수는 없다고.”

그런 기능도 있었구나.

칼리고가 조종석에서 나와서 천외장기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건 데미지로 인해서 전투불능이 된 게 아냐. 한 번에 너무 많은 내력을 먹었어. 전원을 관리하는 코어에 과부하가 걸렸단 말일세.”

“과부하?”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칼리고가 계속 말했다.

“천외장기는 사용자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일세. 사용자가 마력을 공급하면 코어에서 흡수한 후 허용범위에 맞게 마력을 사용하는 형식이지.”

“그래서?”

“그런데 그 코어에 한번에 너무 많은 마력이 들어왔어. 그러니까···.”

칼리고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그는 내 주먹을 보고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돌았군. 진짜 예언의 존재란 건 규격 외 구만.”

나는 그의 말뜻을 알아챘다. 방금 전 내가 섣불리 주먹에 실은 과도한 내력이 천외장기의 코어에 과부하를 준 것이다.

110V-220V의 전자제품에 1000V이상의 전압이 훅 들어간 것처럼. 허용범위를 넘어선 마력을 입력받은 것이다. 그래서 천외장기가 고장난 듯싶었다. 일단은 천외장기도 기계니까.

“으흠. 지금까지 자네의 실력에 대해서 의심을 해서 미안하군. 이건 그러니까···.”

칼리고는 겸연쩍은 듯 이어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서 내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이런 문제가 있었군.’

대전을 해보니 문제를 알겠다. 구슬을 많이 먹어서 힘이 늘어날수록 나는 그 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내 의도를 벗어나서 과한 내력을 주먹에 실은 게 단순한 기우일까?

‘아냐.’

아니다. 이건 명백한 실력의 부족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장기전 경험이 적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전투력이 워낙 강해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른 적이 없었다. 아니, 드물었다. 목숨을 걸만한 상대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르카디아에서 아주 오래전, 정말로 힘이 없어서 고생을 했을 때 뿐이다. 밟히고 치이고 죽을 고생 다하고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살았을 때뿐이다.

마왕을 죽이고 지구로 돌아오고부터는 그런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체력이나 내력을 관리하는 기술을 자연적으로 잊어버린 것이다.

‘이건 확실히 문제야.’

내가 가진 내력이 퍼도 퍼도 계속 솟아나는 마법의 우물처럼 무한하다면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내력은 무한하지 않다. 끝을 모를 정도로 광대(廣大)하다고 해도 끝은 있다. 황제와의 싸움에서 내력이 바닥난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칼리고가 말했다.

“아쉽게도 전투실습은 더 이상 안 되겠군. 이제 보니까 천외장기도 자네의 상대로는 안 맞는 것 같고···.”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천외장기가 몇 대나 더 있지?”

“으응?”

시제품 타입으로 만들었다고 했으니 분명 한 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러는 거지?”

“한 번에 여러 대와 싸움을 해야겠어.”

“크흠···. 아직 열대쯤 남긴 남았는데···.”

반응이 시원찮다.

“혼자서 한번에 몇 대까지 조종할 수 있지?”

“조종은 원격으로 해도 되니까 별 문제가 안 되네. 헌데··· 설마 여러 대를 이용해서 전투실습을 할 생각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점을 알게 된 만큼 해결해야지.”

황제가 얼마나 강할지 알 수 없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한다.

“단점이라고?”

칼리고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무시했다.

* * * * * *

그날부터 구슬을 흡수하고 전투실습을 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전투는 천외장기 여러 대를 상대로 최대한 장기전으로 시간을 끌면서 했다. 나는 내력의 컨트롤을 중점적으로 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기술들을 모두 사용했다.

그렇게 기술들을 모두 사용하고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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