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122화 (122/127)

# 122

“태웠어.”

“태웠다고? 그건 피부를 태운 정도가 아닌데?”

기쉬네가 내 피부를 가리키며 지적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나는 주변을 눈짓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헌터들이 여전히 많다. 탐욕스러운 시선이 번들거리는 걸로 봐선 대장이 죽었는데도 계속 덤빌 것 같았다.

진짜로? 아니다.

아무래도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아니면 겁을 상실했거나.

“이걸 다 처리하고 말하자.”

나는 번개처럼 주변을 휩쓸어서 헌터들을 처리했다. 쓸 필요성이 있는 한 명을 남기고 모두 처리하는데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기쉬네. 진심으로 말할게. 오랜만이야.”

기쉬네가 뻗은 내 손을 잡았다.

“돌아올 줄 알았어. 주은성. 보고 싶었어.”

우리는 만남의 회포를 뒤로 하고 뒷수습부터 했다. 살려둔 헌터 한 명을 포박하고 붙잡혔던 엘프들을 풀어줬다. 그리고 건물의 숨겨진 뒷문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나와 함께 이곳에 왔던 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왕이 다가왔고 기쉬네가 그녀에게 보고를 하고 사건이 일단락됐다. 기쉬네가 포박된 헌터를 보며 말했다.

“이 녀석은 왜 살려둔 거야?”

“배후를 찾으려고.”

이런 일은 배후가 있다. 단독으로 저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겉 가지만 쳐내고 뿌리를 살려두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살아남은 헌터가 말했다.

“하! 내가 순순히 말해줄 것 같으냐?”

기쉬네가 말했다.

“어차피 이 사람은 필요 없어. 붙잡혔던 엘프들이 있어. 그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면 돼.”

그녀의 말에 헌터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정보제공의 대가로 목숨을 요구할 속셈이었나보다.

“납치되어있던 사람들을 또 피곤하게 할 순 없지.”

“귀찮게 심문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아냐. 다른 방법이 있어.”

나는 여왕과 함께 이곳으로 순간이동 해오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첫째로 순간이동도 차원이동과 마찬가지로 이상 없이 사용이 된다는 것. 당연한 일이다.

둘째로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여왕이 위치를 설명해줄 때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고 그녀가 설명하는 위치를 머릿속 정보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신성한 기운의 힘이 다른 쪽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나는 살려둔 헌터를 무릎 꿇리고 그의 정수리를 잡았다.

“너 이름이 뭐지?”

“······.”

“좋아. 누가 시켰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보를 읽을 수 있었다.

“좋아. 됐어. 금방 처리하고 올게.”

나는 기쉬네에게 인사를 한 후 그를 데리고 순간이동을 했다.

* * * * * *

헌터관리부 소속 지남철 차관은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불렀다.

“흐흐흥.”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호텔의 VVIP룸에서 샤워를 끝내고 몸치장을 하고 있었다.

“회춘하는 기분이군.”

엘프를 품에 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불끈불끈하다. 입가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짜식들이 협약은 무슨 협약이야? 인권단체는 그래서 문제야. 불필요한 협약으로 사람의 꿈을 박살낸단 말이지.”

그간 고생이 많았다. 밑으로는 찌라시를 뿌려서 눈을 가리고, 위로는 엘프 연구의 필요성을 꾸준히 대두했다.

헌터관리부는 최근 몬스터를 해부하고 기질을 연구하는데 한창이었다. 고블린, 오크, 트롤, 오거··· 등등···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습관을 지녔고 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은 인지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부터 유전자 단위의 생물학 연구까지 몬스터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지남철 차관은 엘프의 해부와 기질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인간과 비슷한 고등사고의 생물이면서 수명이 인간보다 10배, 20배는 많은 이유를 알아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끊임없이 말한 것이다.

다행히 상부에서는 지남철의 의견을 수용했고 암암리에 비밀연구를 묵인하기로 했다. 엘프의 납치를 허락한 셈이다.

“기대되는군.”

지남철이 음흉한 웃음을 거두지 않고 손바닥을 비볐다.

감투가 높아지고 나서 유흥접대를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성욕의 역치값이 달라졌다. 일반적인 유흥으로는 이제 흥분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됐다. 정신은 한창인데 몸은 여든살 노인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엘프를 보고 희망이 생겼다. 꿈이 생겼다. 늙은이의 오줌발처럼 죽었던 성욕이 스멀스멀 다시 살아났다.

“그나저나 왜 이리 연락이 없어? 이제 슬슬 보고가 올 때 안 됐나?”

지남철이 연락 없는 휴대폰을 보고 혀를 찼다.

쯧.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다. 시간대 별로 보고를 해야지. 상급자를 다룰 줄 너무 모른다. 즉각 보고가 생명인데.

“나 때는 상사가 좋아할 만한 거 있으면 분단위로 보고 했는데. 짜식들이.”

지남철은 침대맡에 걸터앉으며 생각을 고쳤다. 그래,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라는 말도 있지. 모르고 있다가 깜짝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보자, ···놓치는 건 없을 테고. 입막음도 확실히 했고. 들킬 일은 없겠지?”

지남철은 생각했다. 엘프를 납치하기 위해 꿍꿍이를 계획하면서 입막음을 한다고 살인을 좀 저질렀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좆같은 세상이다. 당장 몬스터 탓에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다. 자신의 일탈 정도야 이런 좆같은 세상에서 보자면 아주 작은 악행에 지나지 않는다. 먼지만큼 작은 악행인 것이다.

지남철은 자신의 뒤를 밟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줬고, 회유와 협박도 했다. 선의를 거절한 건 그들이었다. 지남철은 그들이 욕심이 많아서 자신의 선의를 거절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게 분수를 알아야지. 적당히 처먹고 입을 닫을 것이지. 욕심만 많아서.”

흐흠. 이런 생각이 떠오르니 또 화가 솟구친다. 지남철은 생각을 고쳐서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해야지. 후후. 늦어도 내일쯤이면 엘프를 안게 된단 말이지.

똑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오. 콜걸이 벌써 도착했나?”

지남철이 가운을 걸치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매번 이용하는 태국식 안마 마사지를 부른 참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밖에는 예상 밖의 사람이 서 있었다.

“어, 어, 어, 뭐야! 당신 누구요?”

의문의 남자가 자신의 몸을 밀쳤다.

“으악!”

살짝 밀었을 뿐인데 지남철은 몇 바퀴나 구르면서 벽에 부딪혔다. 지남철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너 뭐야! 검둥이!”

* * * * * *

내 피부를 보고 흑인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별 짓네.”

내뱉고 보니 맞는 말이다.

“아, 그래.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별 짓는 건 당연한 거지.”

놈이 소리쳤다.

“경호원! 정실장! 어디 갔어!”

그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애타게 경호원들을 불렀다. 나는 웃었다. 경호원들이 올 리가 없다. 올라오면서 모두 처리하고 왔으니까.

“어, 어, 어··· 뭐야. 이거 꿈인가?”

지남철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화, 환각은 아닐 텐데? 아니, 아직 약을 안 먹었는데···?”

그는 품에서 약 봉투를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마약도 하냐?”

“이거 분명 환각은 아닌데···.”

“이 새끼 완전 구제불능이네.”

아주 예전 정부부처를 갈아치우면서 헌터쪽 처부도 손볼 걸 그랬다. 갈등이 없어서 가만히 놔뒀더니 윗물이 아예 썩었다.

지남철이 말했다.

“누, 누군지 모르겠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꺼져. 내가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봐준다.”

그는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상황은 제대로 파악했는데 인지부조화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말하는 목소리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잔뜩 떨리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걸 죽일까? 살릴까?

나는 현관문을 잠그고 그에게 다가갔다. 지남철이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다.

“누가 보낸 거지?”

“무슨 소리야?”

“황건보 차관이 보냈나? 아, 아니면 김팔국 처장이 보냈나? 아, 아냐, 아냐··· 그럴 깜냥이 없는 놈들인데···. 그러면 재난대응관리부에서 보낸 건가? 어··· 하지만 그건은 이미 이야기가 끝났는데···.”

그는 머리를 잡고 혼란스러워했다. 이 녀석 적이 엄청 많네.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무슨 뜻이냐?”

그리고 말했다.

“신이 보냈어.”

“신?”

그가 되물었다.

“그래.”

“······.”

그의 얼굴표정이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파리하게 질렸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내력을 손끝에 모아서 그를 향해 날렸다.

픽픽픽.

내력을 염력처럼 사용해서 그의 복부를 때리고 어깨를 때리고 두 뺨을 때렸다. 직접 타격하면 대번에 죽을 것 같아서 불가피하게 행한 처사였다.

“끄아아악!”

그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토하는 피의 양이 생각보다 많다. 되게 허약하네. 위력을 조금 더 줄여야겠어.

벌써부터 죽으면 곤란하다.

지남철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쓰러진 의자를 지팡이 삼아서 겨우 버티고 일어섰다.

“허억, 헉, 헉···.”

그리고 악인들의 전매특허 대사를 날린다.

“너,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응.”

나는 가볍게 대꾸해주고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침대가 부서지고 TV가 부서졌다. 탄지공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인데, 무형의 내력을 탄지공처럼 발사한 것이다. 지남철이 자신을 가리키며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내, 내가 누군 줄 알아!”

“알고 있는데.”

“헌터관리부 지남철 차관이야!”

“알고 있대도.”

내가 동요 없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내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그가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겁을 엄청 먹었네.

이제 이야기를 나누기가 한결 편해졌을까?

그렇게 판단하고 염력으로 의자를 움직이는데 돌연 지남철이 무언가를 눌렀다. 어느새 그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져 있었는데 어디론가 긴급 연락을 한 모양이다.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살 궁리를 모색하고 있었군.

나는 손가락을 튕겨서 무형의 탄지공을 발사했다.

펑.

그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연기를 내면서 폭발했다.

“재밌는 수작을 부리네.”

뇌 구조가 일반 사람과 많이 다른 모양이다. 보통은 이 정도까지 보여주면 대화를 나누기가 편해지는데 이놈은 아니었다. 좀 더 겁을 주고 대화를 나눠야 할 듯했다.

그때 돌연 복도에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뭐지?

그와 동시에 폭발음이 나면서 현관문이 부서졌다.

콰과광.

모두 처리한 줄 알았던 헌터들이 다시 등장했다. 마력의 파장을 읽어보니 그제야 알겠다. 복도 끝에 포탈이 있어서 비상탈출용 포탈인줄 알았는데 반대였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남철의 연락을 받고 긴급 투입된 인력 같았다.

와. 통신 대기 쩌는데.

처음 지구로 돌아왔을 때 봤던 광경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감탄을 했다. 그땐 레이드형 던전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임에도 헌터들이 안 왔는데···. 덕분에 내가 고생을 했고, 내가 아니었으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새끼 처리해!”

그가 소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