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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125화 (125/127)

# 125

정말로 가능할까? 가능하다. 불가능하면 죽음밖에 답이 없다.

필사적으로 신성한 기운을 아픈 부위에 집중했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고 잘린 발목이 생겨나는 상상을 했다. 내 의지를 통해 발현된 내력이 꿀렁거리면서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내 상상처럼 내 몸을 완전히 회복시켰다.

역시 가능한 거였어!

신성한 기운의 사용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가능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진짜 되니 새삼 얼떨떨하고 놀랍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돌파구가 열린 것 같아서 걱정을 덜었다. 앞으로 손이 잘리고 발이 잘리고 몸이 잘려도 회복을 하면 된다. 죽을 일은 없다.

어··· 가만··· 그러고 보니 목이 잘려나가면 어떻게 하지? 답은 금세 나왔다. 육체는 버려지고 목 밑으로 새로운 신체가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럼 머리는 어떻게 할까? 진짜 문제는 머리다. 상상을 할 머리가 남아있지 않다면 회복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머리나 목은 조심해야겠어.

“해볼 만하네. 퉤.”

나는 피가 섞인 침을 퉤 뱉고 녀석에게 달려갔다. 오러를 내 주먹이 버틸 수 있는 한도 끝까지 끌어올려서 녀석에게 날렸다. 오러로 뒤덮여서 백색으로 빛나는 내 주먹이 녀석의 얼굴을 강타했다.

퍽.

황제가 뒷걸음질 치며 휘청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또 때렸다.

퍽퍽.

때리고 때렸다. 계속 때렸다. 하염없이.

퍽퍽.

연속해서 때렸다.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내가 머리가 약점이라면 놈도 머리가 약점일 것이다.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놈의 머리와 얼굴을 집중적으로 두들겼다.

핏기가 없어서 조선백자처럼 회색빛이던 녀석의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기 시작했다. 내심 도자기가 깨지듯 녀석의 머리가 깨지리라 빌었는데 그건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이 생겼다. 녀석도 결국 멍이 생기거나 상처를 입고 피를 토하는 나와 같은 불완전한 생명체인 것이다.

나는 때리길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하기로 했다. 오러를 칼처럼 날카롭게 만들었다. 오러를 씌운 곳에 또 씌우고 그걸 반복해서 수십 차례 압축했다. 희미한 빛이던 오러가 점점 짙어져서 나중엔 완전한 백색(白色)이 되었다. 장갑의 손등에 칼날이 길게 나와 있는 클로처럼 내 오른손에 오러로 만들어진 검이 길게 나와 있었다.

나는 황제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고 보이지 않는 타입2의 탄지공을 왼손으로 날렸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황제는 내 검을 막지 않고 피했다. 다만 등을 노린 탄지공은 피하지 못했다.

기회다!

황제가 주춤하자 기회라고 판단한 내가 검을 다시 휘두르는 순간 황제가 반격을 했다. 탄지공에 맞은 후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사선방향을 향해 움직였는데 나는 그것이 불길해서 마력의 파장에 집중했고 녀석이 반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정수리 위에서 마력의 변화가 감지되었는데 피하고 보니 내가 서 있던 땅이 검에 맞은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나는 녀석의 공격방식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내력을 사출하는 방식의 공격이 아니야.

황제는 공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느 곳에서든 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달리 내력을 유형화시켜서 휘두르거나 날리는 게 아니라 공격하는 즉시 내력을 유형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무협지에서나 보던 심검이나 자연검의 경지인듯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 왼발을 잘랐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그래도 해볼 만해.

나는 나 자신을 다독였다. 녀석이 나보다 한 수 높은 방식으로 내력을 운용한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지금처럼 녀석이 마음먹은 곳에 공격을 한다 해도 마력의 파장을 읽어서 미리 피하면 된다. 몰랐을 때나 당하지, 알고 있을 때는 결코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황제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의 안광이 새하얗게 번뜩이는 순간 사방에서 마력의 파장이 감지됐다. 머리 위, 발아래, 양 옆구리, 사선으로 이뤄진 전 방향에서.

“씨발.”

오러로 만들어진 수류탄 수백 개가 사방에서 터진 것 같았다. 이러면 피할 길이 없다. 누군가가 고기방패를 해주지 않는 한.

피할 길이 없으면? 간단하다. 막으면 된다.

나는 다급히 오러를 여러 차례 압축해서 방어막을 만들었다. 다섯 차례쯤 압축했을 때 곳곳에서 생겨난 오러의 조각들이 방어막을 때렸다.

수천 개의 파공음이 나고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나는 방어막에 계속 내력을 덧대면서 생각했다. 어느 정도 덧대고 나면 방어막이 녀석의 공격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반격에 나서면 된다. 그때 반격하면 녀석은 결코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착각이었다.

이 가정은 처음부터 조건을 성립시키지 못했다. 내 방어막은 녀석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고, 내가 내력을 덧대어서 방어막을 강화하는 것보다 녀석이 내 방어막을 깨뜨리는 시간이 더 빨랐다.

숨을 한 번 내뱉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나자 순간 내 머릿속에서 고통의 폭풍이 일었다. 곳곳에서 생겨난 오러의 칼날이 내 몸을 훑었다. 수천 개의 검 조각이 내 몸을 종잇장처럼 갈갈이 찢으니 미칠 것 같았다. 아프다. 이 한 마디로는 부족하다. 존나 아프다. 아파서 돌아버릴 것 같다. 고통에 절여져서 내 모든 것들이 고통이 된 것 같다.

내력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피부가 잘려져 나갔다. 천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가 온몸 곳곳에서 났다. 녹슨 수도관이 터지는 것처럼 온몸의 피부가 찢기고 핏물이 분수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몸부림쳤다. 처절한 비명을 고통과 함께 삼키고 냉정해지려고 애썼다.

씨발, 머리···, 머리를 지켜야 해.

피를 토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나는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방어막의 공간을 줄여서 머리를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발이 잘리고 하반신이 사라지고 상체가 잘려서 내장과 장기가 쏟아져 내려도 머리, 두뇌를 사수했다. 머리만 있으면 회복할 수 있다. 회복만 하면 다시 반격할 수 있다. 그러니 머리를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

피 분수가 사방에서 솟구치고 내 피부와 살이 육편(肉片)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피가 새어 나오는 고통을 이를 악물고 견뎠다. 개새끼, 씨발 새끼, 죽여버릴 테다.

분노가 차올라서 고통의 감각을 잠재울 줄 알았다. 황제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언젠가 끝날 줄 알았다. 녀석도 나와 같다면 내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고 공격을 곧 거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참고 기다렸다.

황제는 공격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쉼 없이 빗발치는 오러의 칼날들이 더 강해지고 더 커졌다.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어졌다. 나는 급한 대로 머리를 보호하면서 몸을 재생했다. 하체는 버리고 상체를 위주로 재생해서 방어에 힘썼다. 그럴수록 고통만 더 커졌다. 이대로라면 내 내력이 녀석의 내력보다 더 빨리 바닥을 보일 것이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오러의 칼날들을 견디며 차올랐던 분노의 감정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분노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절망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서 메웠다. 절망은 내 전의를 갉아먹었고 내 의지를 찌부러뜨렸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죽음은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인데 실루엣이 보이는 듯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어? 내가? 이 내가 죽는다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놀라울 만큼 어처구니없는 웃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그 상황에서 벗어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걸 초월하면서 나오는 웃음이기도 했다. 해탈을 한 사람처럼. 그 순간 나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괴력을 발휘한다. 괴력과 별개로 기묘한 번뜩임을 영감처럼 깨달을 수도 있다. 나는 몸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서야 하드버로부터 배웠던 순간이동의 개념이 떠올랐고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공터였지만 수풀 속의 공터였다. 군데군데 바위나 돌무더기가 많았고 조금만 나가면 바로 울창한 나무들이 있었다. 지형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둘째로 쳐도, 일단 숨을 돌리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엄습하는 고통에 대항해서 나를 속이고 내 몸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나를 속이지 않으면 고통을 견디며 순간이동을 할 수 없었다.

해답이 보인 순간 고통에 잠식됐던 정신은 놀라운 행동력을 보였다. 내력을 끌어올려서 집중하고 다른 곳에 출구를 열고 바로 순간이동했다. 비로소 고통이 잦아들고 평안이 찾아왔다. 성공했다. 녀석의 오러 세례에서 벗어난 것이다.

‘씨발, 씨발, 씨발···.’

그제야 나는 황제가 얼마나 강한 놈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 중 단연코 최강, 완전히 규격을 벗어난 상대였다. 이렇게 미칠 정도로 강한 놈과 싸운 적은 처음이다. 아르카디아에서 마왕과 일전을 벌였을 때도 이런 생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몸을 재생하면서 숨을 돌렸다. 옷이 다 찢어져서 등에서 거친 질감이 느껴졌고 딱딱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야 내가 바위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모색한 다음 순간이동을 했기에 내가 어디로 순간이동을 했는지 그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몸의 재생이 완료됐을 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황제가 또 다시 공격해왔다. 날카로운 오러의 기운이 내가 있던 곳을 때렸고 내가 피한 곳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몸을 피한 직후 정신을 차리고 마력의 파장을 읽었다. 황제가 또 같은 방식의 공격을 하려고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섬뜩한 오러가 내 목을 노리고 있었다.

같은 수법에 또 당하겠냐?

“치사한 새끼. 한 기술 먹히니까 그것만 쓰네. 야비하게시리···.”

나는 순간이동으로 녀석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새삼 우스웠다. 처음부터 순간이동을 사용했다면 굳이 처맞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에서 공격을 해와도 가볍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이동을 배운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투에 응용하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정말 단순한 건데 그 단순함이 생사를 결정 짓는다. 나는 항상 압도적으로 싸워왔고 그래서 전투 응용력이 부족했다. 칼리고와 피나는 수련을 했지만 근본적인 내 전투습관은 고쳐지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더 말랑말랑하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칼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문제를 파악하기만 해도 해답의 절반은 나온 셈이다.

그렇게 본질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했고 나는 곧 깨달았다. 아주 단순하게.

불을 이기는 방법은 불보다 더 뜨거워지면 된다. 얼음을 이기는 방법은 얼음보다 더 차가워지면 된다. 바위를 이기는 방법은 바위보다 더 단단해지면 되고 칼처럼 날카로운 것을 이기려면 그것보다 더 날카로워지면 된다.

녀석의 공격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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