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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126화 (126/127)

# 126

처음엔 멀지 않은, 바로 앞쪽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넓은 나무가 있었다. 그 뒤로는 바위 뒤. 그 뒤로는 수풀 근처. 몇 차례의 순간이동으로 나는 감각을 익혔다. 속성으로 익힌 기술인 만큼 몸에 체득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당황했을 때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이동을 몇 차례 반복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나는 황제의 코앞까지 근접했다. 오러를 칼날로 몇 차례 압축하고 곧바로 휘둘렀다.

꽈드득.

절삭음 대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막았어?

황제는 피하지도 않고 내 공격을 막았다. 방어막? 아니, 방어막은 보이지 않았다. 맨몸으로 내 오러를 받았는데 몸에 내력을 덧댄 것 같았다. 생각 이상으로 녀석의 몸은 단단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고,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지도 않았다. 한참 얻어터지고 나자 비로소 죽었던 긴장감이 깨어났다.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았고 그걸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머리가 파악하기 전, 왼손에 내력을 끌어올려서 탄지공부터 날렸다. 빛의 줄기들이 수십 발 날아가 황제의 몸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퍼버버버버벅.

폭발음이 나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어서 왼손에도 클로 장갑처럼 오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런 와중에도 오른손으로 오러를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참 왼손에 몇 차례 오러를 검의 형태로 압축한 나는 쌍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황제를 향해 오러를 휘둘렀다.

한 겹의 오러가 안 되면 두 겹으로, 두 겹이 안 되면 세 겹으로, 세 겹이 안 되면, 네 겹··· 네겹이 안 되면 다섯 겹, 그렇게 여섯 겹, 일곱 겹··· 휘두를 때마다 오러를 덧대어서 날카로움을 계속 더하니 녀석의 몸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나는 내력과 속도를 더 올려서 녀석이 반격하지 못하게 번개처럼 공격했다.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휘두르자 오러가 채찍처럼 공기를 찢으며 녀석의 몸을 찢었다. 녀석이 고통을 느낀다면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휘두르는데 순간 마력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황제가 몸을 움직였다. 정확히는 녀석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나는 어렵지 않게 진의를 알아챌 수 있었다.

순간이동을 했군.

마력의 파장을 읽고 있던 나는 녀석의 행보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뒤따라가서 순간이동을 하고 다시 오러 블레이드로 공격을 재개했다.

휘익.

내 오러가 녀석의 목을 향해 공기를 갈랐다.

그 순간 갑자기 뒷골이 섬찟했다.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공격을 거두고 손을 뒤로 내뺐다. 녀석의 오러가 사선방향에서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야비한 새끼. 잔머리 굴리기는.

그것은 함정이었다. 황제는 내가 이동해올 장소를 미리 예측한 뒤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녀석의 오러를 피해서 두 걸음 정도 물러난 후 대치했다.

황제는 나처럼 오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게 무식할 정도로 커서 커다란 대검처럼 보였다. 크기가 컸지만 색이 짙었고 품새가 정교했다. 그걸 보고 내가 이죽거렸다.

“원거리형인 줄 알았더니 근접기술도 익혔나?”

황제는 대답 대신 오러 검을 휘둘렀다. 우리 둘 사이에는 거리가 꽤 있는 상태였는데 녀석의 검에서 사람보다 큰 강기 다발이 튀어나와 투창처럼 날아왔다. 더럽게 크네. 게다가 빠르다. 나는 상체를 비껴서 간단히 피하려다가 마력의 파장을 읽고 즉시 순간이동을 했다. 녀석이 예의 그 야비한 기술인 수류탄 같은 오러를 사방 곳곳에 소환했기 때문이다.

“얍삽한 새끼.”

나는 의도치 않게 황제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생각하는데 그게 녀석에게는 기회였던 모양이다. 녀석이 다시 합장을 했다. 손바닥이 맞부딪히는 순간 나는 하늘과 땅을 확인했다. 저번 기술과 같다면 둘 중 한 곳에서 공격이 몰아칠 것이다.

내 예상은 틀렸다. 이번에는 두 곳 모두에서 공격이 몰아쳤다. 구름이 걷힌 하늘에선 부처님 손 같은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져 내렸고 갈라진 땅에선 뱀 머리 같은 덩굴들이 나를 향해 엄습해왔다.

나는 녀석과 마찬가지로 오러 다발을 흩날려서 덩굴을 베고 순간이동을 통해 부처님 손바닥을 피했다. 적당히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순간이동을 했는데 그 순간 녀석의 오러가 투창처럼 내 몸을 엄습했다. 긴장을 하고 있었기에 제대로 맞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어깨가 살짝 베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순간이동 경로를 읽었어.

천외천인에게 사람의 생각을 읽는 기술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드버는 나와 신체를 접촉한 후 내 생각을 읽었었다. 하지만 황제는 나와 신체를 접촉하지 않았다. 황제라서 원격으로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게 가능한 걸까?

그 순간 또 다시 오러 검이 투창처럼 날아왔다. 이번에는 단발이 아니라 연속으로. 마치 대공포를 기관총처럼 연발로 쏘는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녀석은 내 생각을 읽는 게 아니다. 나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뭘까? 어떻게 예측을 한 걸까?

녀석이 다시 합장을 했다. 부처님 손과 뱀 머리가 몰아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녀석의 몸 주변부에서 별 무리 같은 오러가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가 생겨났다. 나는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생각했다. 녀석과 나의 기운은 본질적으로 같다. 기술도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녀석의 기술을 나도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황제와 똑같이 주변에 별 무리 같은 오러를 만들었다.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계속 만들었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불가능하지 않았다. 내 능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황제가 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나도 공격을 개시했다. 날아간 오러의 자탄들이 빗발치며 하늘을 수놓았다. 나는 두 주먹에 오러 검을 머금고 황제를 향해 격돌했다. 내 쌍검과 녀석의 대검이 맞부딪혔다.

까강.

마찰 소리가 나면서 섬광이 터졌다.

그걸 신호로 난전이 시작됐다. 내 쌍검과 녀석의 대검이 여러 차례 맞부딪혔다. 무차별적으로 오러 검을 휘두를 수는 없었지만 내 쪽이 더 기민했다. 나는 검술을 사용하듯 오러 검을 휘둘렀고 내가 오러를 휘두를 때마다 녀석의 오러 대검이 철벽처럼 막아섰다. 무의미한 공방전이 한동안 계속됐다.

변화를 줘야 해.

나는 공격을 할수록 조바심이 났다. 삶은 계란이 목에 턱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내 공격은 녀석에게 먹히지 않는 걸까. 시체처럼 표정 없는 녀석을 보니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티라도 좀 내지, 도자기 같은 놈. 녀석은 무슨 생각을, 어떤 궁리를 하고 있는 걸까?

그 순간 녀석이 나와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다는 것을 재차 복기했다. 녀석과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기운을 가졌다. 그래서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도 나처럼 내 기운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내 기운을 읽음으로써 공격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이 가정은 놀라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녀석은 왜 지금 상황에서 부처님 손과 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오러 수류탄을 왜 사용하지 않는 걸까? 하물며 왜 오러를 자탄처럼 사용하지 않는 걸까?

기술력이 딸려서?

그건 아닐 것이다. 녀석은 기술을 한 번에 여러 개 사용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네 기술 모두 원거리형 기술이라는 것.

그 순간 깨달았다. 녀석이 내 순간이동 경로를 읽은 수법을. 녀석은 자신과 똑같은 내 기운을 토대로 내 순간이동 경로를 읽었고, 마찬가지로 내 기운을 토대로 원거리 형 기술들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근접전이 시작되면 단 한 번도 원거리 기술을 응용하지 않았다. 기운을 읽어서 공격하는 만큼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당할 수 있기에.

적어도 이 가정은 정론처럼 보였다. 근접전으로 맞붙는 지금, 녀석은 여전히 기술을 응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녀석도 약점이 있었어.

완전해 보이는 녀석에게도 불완전한 면이 있었다. 그 사실이 내게 희망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황제가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내게 멀어질 때마다 나는 더욱 힘이 났다. 나는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순간이동을 사용해 그대로 따라붙었고 끝까지 근접전으로 물고 늘어졌다. 검에 오러를 덧대고 수차례 휘둘렀다. 팽팽하게 맞서던 힘의 수평이 기울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내 동공이 한껏 치켜 떠졌다. 녀석의 오른팔이 절삭음과 함께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팔을 잃은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희열을 감추고 재차 공격에 나섰다. 지금이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기 전에 총공세를 퍼부어야 한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황제의 오른쪽 어깨를 감쌌다. 빛이 잠들자 녀석의 오른팔이 완벽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녀석도 나와 같았다. 그래,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씨발···.

이후로 우리는 계속 싸웠다. 하루, 이틀, 삼일, 나흘, 닷새, 엿새······, 얼마나 싸웠는지 모르겠다. 시간의 감각을 완전히 잊을 만큼 무아지경으로 싸웠다.

나는 눈에 띄게 지쳤다. 녀석도 상당히 지친 것 같았다. 다만 녀석은 지친 티를 내지 않았다. 잿빛의 얼굴은 여전히 시체 같은 무표정이었다.

그게 내 조바심을 건드렸다. 내 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면서 생각했다. 오러를 휘두르고 덧씌우고 사출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 황제를 쓰러뜨릴 방법이 있을 것이다.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버텼다. 나는 견뎠다. 예언이 사실이라면 내가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희망을 의식의 발밑에 묻어두고 이를 악물고 계속 싸웠다. 녀석이 언젠가 쓰러지리라 간절히 바라면서.

툭.

내 팔이 잘려져 나갔다. 나는 회복을 하면서 괴상한 상상을 했다. 녀석의 오러를 버틸 수 있을 만큼 내 팔이 단단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오러에게 공격을 안 당하는 팔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애초에 녀석의 오러를 흡수해버리는 몸이면 얼마나 좋을까···.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신체는 기를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기를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 아니다. 그래서 단전을 통해서 내공을 축적하다가 어느 순간 환골탈태해서 기를 담기에 최적인 몸으로 바꾼다. 인간의 입장에서 환골탈태한 몸은 분명 기를 담기에 ‘최적인 몸’이다.

하지만 마법의 생물이라는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나, 마력 그 자체를 머금는 마나석과 비교하자면 사람의 몸은 마력을 담기에 최적이 아니다. 더 나은 수단이 존재 한다.

나는 간절히 바랬다. 제발. 바라고 또 바랬다. 그렇게 더 없이 원하면서 팔을 재생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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