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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제 1 장. 황궁의 불편한 손님 - 2 (3/82)



〈 3화 〉제 1 장. 황궁의 불편한 손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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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차려주었던 시녀가 돌아가고, 홀로 남게 된 공녀는 침대 옆에 있는 조그마한 서랍에서 수첩과 필기구를 찾아냈다. 원래 공녀가 쓰던 물건이었으니 사용하는 데 거리낌은 없었다.

딱히 무엇을 배우거나 사람들과 교류를 할 일이 없던 공녀는 수첩을 쓸 일이 없었다. 완벽한 백지 상태의 수첩에 현재의 상황을 기록하기로  공녀는 혹여 다른 사람이 수첩을 봐도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을만한내용만 쓰기로 했다.

우선 자신이 속하게  귀족사회에 대하여, 황족과 귀족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적어나갔다.
귀족사회는 생각보다 험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공작가에서 버림받은 공녀 따윈 눈에 띄는 즉시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때 제국 기사단의 촉망받는 후보생이었으며, 제국 귀족의 정점인 제즈릭 공작가의 딸로써의 상승효과로 자존심만은 묘하게 높아져있는 공녀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참기 힘든 일이었다.

기사단 생도였던 테르한과 공작가 영애인 아리에가 갖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현 황실의 인물들의 이름을 중앙에 적고 그려나간 관계도는 제법 그럴싸했다.

‘그런데 황태자가 누구였더라…….’

생각해보면 중산층으로 살다가 부모님을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테르한은 귀족 사회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고, 어려서부터 방치되었던 아리에 역시 자연스럽게 귀족사회에서 낙오된 상태였다.

그나마 황제의 옆에 나란히  황후와 그녀의 가문인 블란테 변경백에 대한 것은 테르한이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의 기사라면 누구나 건국 영웅인 아서 블란테 경을 동경하기 마련이었고, 그가 초대 변경백이 된 뒤 무를 숭상하는 블란테 변경백령에는 제국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 모여들었다.

블란테 변경백의 후손인 현 황후는 무가의 여식답게 제국 제1기사단 출신이었다. 테르한도 OG로써 기사단 행사를 도와주던 그녀를 두어 번  적이있었다. 소문으로는 무인다운 호탕한 성격과  실력으로 황제를 반하게 했다나.

그러한 호인이었기에 버림받은 아리에 공녀를 내버려둘 수 없었으리라. 그 동안 아리에 공녀가 황후에게 받아온 은혜는 제법 무거웠다.

‘일단 몸이 건강해지면 황후마마부터 찾아뵙자.’

귀족사회에서 내쳐지기 일보직전인 공녀의 행보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황후가 직접 챙겨주었다는 사실은 공녀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 전에 몸이 건강해져야  텐데.’

현재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었다. 허리를 제외하면 크게 아픈 부위도 없었고, 방금 먹은 아침식사의 양이 제법 많아 속이 답답했지만 공녀의 기억처럼 밀어 넣은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서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녀의 몸을 망치던 마력탈진증은 사라졌지만, 공녀의 몸은 여전히 기아에 시달리는 빈민층 아이나 다름없었다.

공녀의 기억에 의하면 그동안 생명력 유지의 마법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덕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마력탈진증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공녀의 기억에 남아있는 온몸을 옥죄는 압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적어도 수일은 지났을 허리의 통증이 낫지 않는 것도 회복력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도 건장한 몸이었지만 신체개조 후 고통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거의 지치지도 않는 몸으로 몇 년 동안 써왔던 테르한에게 공녀의 몸은 너무 연약하고 답답했다.

공녀는 수첩에 현재 몸 상태를 ‘1’이라고 적었다. 과거 전성기 시절 자신의 몸 상태를 100으로 두고 천천히 몸을 만들어갈 생각이었다. 당장 오늘부터 재활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시녀가 오면 날짜를 물어보기로 했다.

똑똑

점심 즈음이 되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공녀는 평소 잠들어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노크 후 대답이 없으면 그냥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리에의 시녀 시밀레와 그녀가 불러온 의사는 방에 들어오다 침대에서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공녀와 맞닥뜨렸다. 온몸을 비틀어가며 스트레칭을 하다가 갑작스런 노크소리에 굳어버렸던 공녀는 천천히 자세를 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들을 맞이했다.

“공녀님. 의사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여느 때와 다르게 약간 밝은 표정의 공녀를 보며 의사는 얼굴에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녀의 맥을 짚은 채 마력을 조심스레 흘려보냈다. 잠시 마력으로 공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던 의사는 공녀의 얇은 옷 안쪽으로 청진기를 몇 번 대보더니 놀라워했다.

“허어. 제가 출장을 가있던 며칠 사이에 공녀님의 몸 상태가 크게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마력탈진증에 관련된 증상이 모두 사라졌군요. 생명유지의 술식도 풀렸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몸에 좋은 술식은 아니라서. 아, 그리고…….”

의사가 조심스레 시밀레를 돌아보았다. 시밀레는 곧장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마력을 각성하셨군요.”

“마력 각성이요? 마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요?”

아리에의 기억에 의하면 이 의사는 마법사를 겸하는 의사로써 마력과 관련된 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데에는 제국 제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마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성을 했다고 하니 자신의 궁금증 중 하나가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하하. 마력을 아직 다뤄보신 적이 없어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마력을 몸 안에 쌓아두고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마법사나 신체 강화를 위해 마력을 사용하는 경우지요. 공녀님은 그동안 신체와 영혼에 맞지 않은 방대한 마력 때문에 육체에 영향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로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의 전공이라 그런지 흥분하며 설명하기 시작한 그를 굳이 막지는 않았다. 이 몸의 상태를 파악하려면 알아두어야 하기도 하고.

“육체와 영혼은 그릇에, 마력은 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마법사나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이들은 그 그릇에 물을 담아두고 사용하는 것이죠. 그릇이 클수록, 육체와 영혼이 강할수록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커지고 사용할  있는 마법이나 술식, 진의 종류가 늘어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공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의 경우는 지금까지 작은 그릇을 물이 쏟아지는 폭포 밑에 둔 상태였다고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마력이 넘쳐나 보이지만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까지 폭포수에 휩쓸려 내려가 버리고 있었죠. 생명 유지의 마법 덕분에 그릇이 수압을  이기고 깨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요.”

환자 본인 앞에서 하기는 조금 과격한 비유였지만 지금만큼은 의사보다 마법사에 가까운 그는 그것을 고려할 만큼 섬세하지는 못했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갑자기 공녀님의 그릇이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 보통의 마법을 쓰는 자들은 그릇에 마력을 담고 쓴다고 설명했는데, 진짜 역사에 길이 남아있는 마법사라고 부를  있는 사람들은 호수에 잠겨있는 그릇과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호수에 잠겨있는 그릇이라고요?”

“네. 아까 공녀님의 그릇으로 떨어지던 폭포수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세상에 퍼져있는 마력으로 환원되는 것이지요. 뭐, 폭포수 자체도 세상의 마력이 집중되어 들어온 것입니다만, 어쨌든 마력을 각성한 사람은 세상에 퍼져있는 마력과 완전히 동화되어버립니다. 자신의 몸에서 마력을 소모하지 않고, 세상에 퍼져있는 마력을 통해 마법을 구현할 뿐이죠.”

그 동안 대마법사로 불리던 이들은 그렇게 치사한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인가. 살짝 동심이 깨진 공녀는 곧 의사가  말의 의도를 깨달았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미래의 대마법사님.”

검의 길을 걷던 테르한에게 마법은 쓸  있긴 하지만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었고, 선배들로부터 항상 마법사들은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온 만큼 마법사는 두려움과 신비의 대상이었다. 하물며 대마법사라니!

테르한은 문득 자신이 공녀의 몸에 들어온 것은 이 고귀하고 불쌍한 소녀를 살리기 위한 모종의 계략이 아닐까 생각했다.
육체와 영혼이 마력탈진증으로 죽어가던 공녀에게 자신의 영혼이 덧씌워지자 마치 망가진 기계에 알맞은 부품을 넣은 듯 병이고쳐지고 마력을 각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봤자  길은 없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을 생각할 뿐.

“마력을 각성하면서 몸이 많이 건강해지셨습니다.  드시고 푹 쉬시면 며칠 안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돌아다니실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실 겁니다.”

공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의사가 하는 말이니 믿어야겠지.

“진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허리가…… 어?”

깨어났을 때부터 아프던 허리에 대해 말하려던 공녀는 어느 순간부터 아프지 않게 된 허리에 놀라 손으로 배와 허리를 더듬었다.
저번 진료까지만 해도 공녀의 가라앉은 눈과 처연한 태도만 보아왔던 의사는 영락없이 제 나이 때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까 마력으로 진찰했을 때 허리의 마력 통로가 막혀있어 뚫어두었습니다. 마력이 통하면서 자연스레 치유된 모양이군요.”

공녀는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의사는 언제든지 부르라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밀레가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공녀님. 몸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공녀는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건물에 남은 유일한 시녀인 시밀레와 자신의 관계를 떠올린 공녀는 평소의 말버릇을 골라 그녀에게 대답했다.

“응. 이제 아플 일은 없을 거라 하셨어.”

공녀는 자신을 걱정해줄 얼마 안 되는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시밀레는 그녀의 말에 울컥하며 눈물이 차올랐다.

“흑. 죄, 죄송합니다. 공녀님의 병이 나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어쩔  없이 공녀의 시녀가 되긴 했지만 이래저래 그녀도 공녀를 아끼고 있었다. 모셔야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여동생을 대하는 느낌이었지만.

“시밀레. 배가 고픈데 식당에 데려가줄  있어?”

당장이라도 침대를 박차고 나올 기세의 공녀를 본 시밀레가 기겁하며 그녀를 말렸다.

“제가 가져올게요. 공녀님은 며칠 더 쉬셔야 해요.”

“열심히 움직여야빨리 낫지.”

공녀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살짝 뛰어내렸다. 발이 땅에 닿자 연약한 다리근육 때문인지 살짝 휘청거린 공녀는 시밀레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넘어지는 꼴을 면했다.

“아직 밖으로 나가시는 건 무리 같아요. 그냥 방에 계세요. 점심은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응.”

공녀는 수긍이 빨랐다. 다시 침대로 기어 올라간 공녀는 재활훈련은 일단 몸이 회복되고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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