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제 2 장. 마력각성 - 1
제 2 장. 마력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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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 되자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고급스러운 식사가 나왔다. 본격적으로 황후의 지원이 시작된 것이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신가요?”
“응. 맛있어.”
부드러운 빵 사이에 얇게 저민 가공육, 갓 딴 채소 등을 넣어 만든 고급스러운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문 공녀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시밀레는 공녀가 갑자기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어 탈이 날까봐 안절부절 못했지만 공녀의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있었다.
공녀와 시밀레 근처에는 황후궁에서 크실라 편으로 딸려 보낸 하녀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녀들은 음식을 분주하게 나르면서 공녀를 조금씩 곁눈질했다.
혼자 식사를 할 때면 기사 시절마냥 호방하게 식사를 하는 황후를 보며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하던 하녀들은 공녀의 식사 방식을 보며 최고위급 귀족의 식사는 사실 저런 것이 아닐까 하며 동료들과 눈으로 대화를 했다.
황태자와 동갑이라고 하지만 두 살은 어려보이는 공녀는 그 가느다란 몸을 전부 음식으로 채울 기세로 식사를 했다. 공녀에게 예절 선생이 있었다면 아마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광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 위에 차려진 2인분은 될법한 식사를 거의 다 먹어치운 공녀는 가득 찬 배에 손을 대고 잠시 숨을 돌렸다.
- 그런데 진짜 그런 게 가능해?
- 물론. 그대가 원한다면 이 황궁 내의 음식을 전부 먹어치울 수도 있지.
- 아니, 그 정도로눈에 띄고 싶지는 않아.
사실 공녀는 별로 푸드 파이팅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식당으로 향하던 중 마왕의 말을 듣고 시작한 ‘수행’의 일부분이었다.
- 체내에 마력을 쌓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력을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신체의 단련을 게을리 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게 되지. 지금 그대의 몸은 신체 강화 마법을 쓰는 순간 뼈가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 그래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잖아.
- 흠. 그 정도로 파멸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물론 아니지. 그래서 방법이 뭐야?
- ……그대는 날 도대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백과사전? 아니면 길잡이 요정?
실제로 분열은 길잡이 요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테르한의 기억 속 길잡이 요정은 용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성검의 사용법, 마왕군의 동향 같은 유용한 정보들을 나불거렸고, 실제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마왕성 돌입 직전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마력을 전부 써서 성검을 강화하고 장렬히 산화했지만,제법 괜찮은 동료였다. 참고로 용사는 그때 엄청 울었었다.
- 에휴. 이런 인간과 영혼이 섞이다니. 어쨌든 몇 가지 방법들을 알려줄 것이다. 그것들을 꾸준히 실행해야 파멸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니, 불만 없이 따라오도록.
- 알았어.
마왕과 한 번 싸워봤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하며 공녀는 자신감을 충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열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 일단 잔뜩 먹어라. 그대가 다시 검사의 육체가 된 것처럼 먹어라. 먹기 싫다면 식사시간 때라도 나와 몸의 주도권을 바꿔서라도 먹어야한다.
- ……왜죠?
- 마침 오늘 식사는 화려하군. 일단 가볍게 3인분 정도만 먹어라. 소화는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직접체내의 에너지로 바꿀 테니 일단 먹어라. 배가 다 차면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리하여 공녀의 푸드 파이팅이 시작되었다.
몸집은 작지만 평소에도 과식하는 버릇이 있는 공녀는 2인분 어치의 음식을 뱃속에 욱여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목구멍을 넘어 내용물이 역류할 것만 같은 느낌에 울상을 지었다.
공녀가 과식을 하는 것을 보고 이미 하녀들을 식당 밖으로 내보낸 시밀레는 한숨을 쉬며 공녀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볼록 나와 있던 공녀의 배는 식당에 들어오기 전처럼 푹 꺼져있었다.
심지어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공녀님?”
마치 처음부터 식사는 한 적이 없다는 듯 굶주린 배와 반대로 기운이 넘치는 몸에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생도시절 처음으로 마력을 몸에 둘러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했을 때 느꼈던 감각.
신체강화 마법보다는 미약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강화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쯤 되니 분열이 의도한 바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 신체는 식사를 하면 강해진다.
- 이 방법은 육체의 단련을 도와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 육체를 직접 강화하는 데에는 한계는 있으니 별도의 단련도 필요하다네.
- 알았어. 일단 마저 먹을게.
한때 기사의 길을 걸었던 몸이지만 이렇게 쉽게 강해지는 방법이 있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약한몸을 어떻게 단련하나 고민하던 공녀는 일단 분열이 요구한 3인분의 식사를 끝내기로 했다.
“시밀레. 식사 1인분만 더 가져와줘.”
“하지만…….”
“시밀레.”
공녀는 시밀레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걱정과 혼란스러움에 무던히도 흔들리고 있었다. 공녀는 자신의 유일한 아군에게 진실의 일부를 보여 신뢰를 심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실컷 도움을 받을 것이기에.
“나는 지금, 마력을 각성한 상태야.”
“네?”
마력 각성은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마법사들이나 겪는다는 현상이었다.
명칭 자체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유명하지만 대부분 자세히는 모르는 현상으로, 마력 각성을 한 위대한 대마법사들은 하나같이 그것에 대한 언급을 꺼려 자서전에서조차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자세한 증상은 일부 마법의학 전문서적에서나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공녀가 평소에 마법에 둘러싸여 살아왔을 뿐 직접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시밀레는 공녀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공녀님이 마법도 쓸 줄 아셨어요?”
“내가 앓던 증상 있지? 마력 탈진증. 그게 나으면서 마력을 각성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
시밀레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래서마력을 각성하신 것이랑 식사를 한 번에 3인분씩 드시는 것이 어떤 관련이 있나요?”
“어…….”
분열이 열심히 음식물을 에너지로 전환해주고 있었기에 직접적인 관련이라기 보단 간접적인 관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순간 말문이 막힌 공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밀레를 보다 못한 분열이 머릿속을 두드렸다.
-빨리 아무 대답이나 하게. 그대는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은가?
정신을 차린 공녀는 나름 설명이 가능한 선에서 말을 지어냈다.
“마력을 각성해서 몸의 효율이 안 좋아졌어. 요새 계속 배가 고팠던 것도 다 그것때문인 것 같아. 방금 뱃속에서 소리 나는 것 들었지?”
그 소리는 자신도 확실히 들었기에 시밀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는가. 과식으로 공녀가 건강을 해칠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실제로 공녀가 배고파하니 음식을 내어줄 수밖에.
밖에서 대기하던 하녀들을 시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추가로 들여온 시밀레는 걱정스럽게 공녀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공녀는 시밀레의 눈길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묵묵히 식사를 계속하여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공녀는 천천히 식당을 나섰다. 밖에서 시립해있던 하녀들은 프로답게 아무런 내색 없이 공녀의 뒤를 따랐다.
그저 오늘의 설거지를담당한 하녀만이 몰래 울상을 지었다.
공녀의 아침식사 소식을 들었는지 점심이 되기도 전에 크실라가 식재료를 잔뜩 가지고 왔다.
“공녀님이 한창 크실 때라고 황후님이 특별히 신경써주셨답니다.”
공녀는 아침의일이 황후에게까지 알려졌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면서도 경계했다.
단순히 하녀들의 잡담을 통해 전해졌는지, 황후가 은연중에자신을 감시하는 것인지는 아직 몰랐지만 시밀레가 아닌 사용인들 앞에서는 말투나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만간 공녀님을 모실 시녀와 하녀들을 뽑기로 했습니다. 시밀레, 너도 이제 윗사람이 되는 거란다.”
“네, 네!”
크실라의 말에 시밀레는 다소 긴장했다. 황궁에 들어온 지 겨우 1년여 만에 한 건물의 담당자가 되었고 이제는 후임까지 생겨 책임이 막중해졌다.
시밀레는 자신이 모시는 공녀를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공녀는 크실라가 가져온 음식 꾸러미에서 보존식을 몰래 빼먹다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듯 애교 섞인 눈웃음을 지었다. 시밀레는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공녀님이 훌륭한 귀족이 되실 때까지 일할 수 있을까?’
공녀가 지금 상태로 황제와 만나기라도 한다면 시밀레는 당장 황궁에서 내쫒길 판이었다.
모시는 사람이 모실만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또한사용인의 역할이었기에공녀의 현재 상태에 그녀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몸이 아프셔서 너무 오냐오냐 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시밀레는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면 공녀에게 다소 엄격해지기로 결심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공녀는 비스킷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왠지 모를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