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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제 2 장. 마력각성 - 3 (9/82)



〈 9화 〉제 2 장. 마력각성 - 3

9-

똑똑

“공, 공녀님! 손님이, 1황자전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소년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밀레가 다급히 공녀를 찾았다.
노크를  뒤 대답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온 시밀레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이고선 침대 위에 앉아있던 공녀를 번쩍 들어 방 한편에 마련되어있는 드레스 룸으로 데려갔다.

“1황자전하? 갑자기 왜?”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지금은 옷부터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잠옷에 가까운 실내용의 편안한 원피스를 입고 있던 공녀는 순식간에 속옷차림이 되었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공녀의 옷을 갈아입히던 시밀레는  밖에 들려온 노크 소리에 손이 더욱 다급해졌다.

“공녀님? 손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앗, 황자전하?”

하녀가 공녀의 상태를 묻는 도중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다행히 드레스 룸은 방문을 열어도 안쪽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지만 시밀레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평소에 1황자의 기행에 대한 소문을 자주 들었지만 레이디의 방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올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하필 그런 사람이 공녀님을 찾아오다니!

“아, 옷 갈아입는 중이었네? 미안.”

드레스 룸에서 분주한 기척이 들리자 방문이 다시 닫혔다. 시밀레는 한숨을 내쉬었고 공녀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황궁의 기인(奇人)이 왜 찾아온 거지?’

황궁의 기인, 리베리안 체노스트라.

제1황자는황후의 첫 번째 자식이었으며 정통성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체노스트라 제국의 황태자가 되었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머리와 비상한 재주, 모난 데 없는 성품 등으로 차기황제에 걸맞은 인물이라 여겨졌지만, 테르한이 생도였던 시절 모종의 사건을계기로 황태자의 직위는 그의 동생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테르한이나 아리에는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다만 제일 뛰어난 사람이 후계자가 되는 일반 귀족들과는 달리, 황가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아리에의 기억 한 구석에 존재하고 있었다.

황태자로 책봉되지 않은 1황자는겨우  살 남짓한 나이부터 황궁 내외에서 각종 기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딱히 누군가에게 큰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었지만 자칫하면 황가의 위신이 실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들은 계산한 듯 일정 선을 넘지는 않았고 황제는 1황자의 기행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항상 방에 틀어박혀있던 아리에에게까지 황궁의 기인에 대한 소문이 들렸던 것을 보면 참 별난 일들을 저지르고 다닌 모양이었다.

당장 테르한과도 연관된 일이 있었는데, 몇 년 전 한밤중에 테르한이 머물던 기사단 양성소의 마구간에서 새끼 망아지들을 몇 마리 끌고 가 황궁의 분수에서 물을 먹였다고 한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때문에 하필 당시 불침번을 서던 테르한은 얼차려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이면 억울하지나 않았지, 숙소건물에서 떨어져있는 마구간에서 일어난 일을 건물 내 불침번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건 또 무어란 말인가.

그러한 이유로 테르한은 1황자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리에라고 옷을 갈아입는 도중에 허락 없이 방에 들어온 1황자에게 호감을 가질 이유는 없어 1황자에 대한 태도는 다소 적대적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럴 터였는데,

“하하! 아리에도  내가 왔다고 예쁘게 꾸몄구나?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1황자의 스스럼없는 태도에 공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리에의 기억 속 1황자는 처음 황궁에 들어왔을 때 황제 옆에 서있던 그와 대화 한 번 없이 스쳤던 것이 전부였다. 아까 밖에 서있던 1황자의 얼굴을 보았는데도 누군지 바로 떠올리지 못하지 않았는가.

“죄송합니다, 리베리안 체노스트라 황자전하. 실례지만 우리 사이라 하심은?”

“뭐, 우리 집에서 사니까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사는 사이? 지붕은 다르지만 말이야.”

황궁의 기인답게 표현 또한 남달랐다. 이제 막 1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싶은, 황후와 제법 닮은 수려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까칠하게 굴고자 했던 공녀는 황자의 머리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냥 친절하게 대해주기로 했다.

협소한 응접실에 마주앉은 공녀와 1황자 사이에 다과가 놓였다.
1황자는 스스럼없이 다과를 먹기 시작했고 자신의 간식이 하나  사라지는 것을  공녀 역시 그에게 질세라 다과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공녀님!”

공녀 뒤에 시립해있던 시밀레가 낮게 속삭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공녀는 집었던 과자를 살며시 접시 위로 내려놓았다. 이미 입에는 과자가 한가득 이었다.

“푸훗.”

공녀의 모습에 경박한 웃음을 흘린 1황자는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아리에는 참 재밌는 아이였구나.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대로네.”

‘황후마마앗!’

이 인간이 갑자기 찾아온 것은 황후마마 때문이었나.
속으로 비명을 꽥 지른 공녀는 과자를 삼킨 뒤 목을 가다듬고 질문했다.

“리베리안 체노스트라 황자전하. 실례합니다만, 저를 찾아오신 연유를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우아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과자를 집어먹던 황자의 손이 멎었다. 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턱에 손을 가져다댔다.

“음, 아니야.”

“네?”

“아리에가 나를 부르는 방식, 너무 딱딱하지 않아?”

“아. 그럼, 1황자전하?”

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황가에 지금 황자는 나뿐이지? 내 동생은 황태자고.”

“황자전하.”

“그것도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이야. 나도 아리에를 이름으로 부르니까, 아리에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때?”

황자의 제안에 공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그래도 될까? 하긴 본인이 부르라고 했으니까 불경죄를 묻지는 않겠지.

“리베리안 님.”

“우리 사이에 ‘님’자를 붙일 필요가 있나?”

“리, 리베리안.”

슬슬 황자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이 인간은  번이나 봤다고 자꾸 우리 사이라고 표현을 할까?
황자의 뒤에 서있던 호위 기사의 표정이 다소 묘해진 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이름만 불리는 것은 왠지 아버님 말고는 불려 본 적이 없구나. 나랑 친한 사람들은  애칭을 부르지. ‘리안’이라고.”

공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기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순순히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리안.”

“오, 좋아.어때? 친해진 느낌이지, 리에?”

황자가 자신을 애칭으로 부르자 온몸에 닭살이 돋은 공녀는 문뜩 마력을 가득 담은 주먹으로 황자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리에가 너무 버릇없는 것처럼 보이려나?”

황자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척 하다가 눈을 크게 뜨고 손뼉을 쳤다.

“리안 오빠라고 부르면 되겠네!”

공녀는 주먹에 마력을 모으고 말았다.


당장 일어나서 황자를 후려칠 뻔 했지만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한 분열이 손에 모인 마력을 흐트러뜨렸다.

- 침착하게나.

- 후우, 알고 있어. 나 참, 어린애 장난에 넘어가다니.

냉정을 되찾은 공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황자를 쏘아보았다.

“황자전하. 그래서 용건은 무엇이신지요.”

“왜 다시 호칭이 그거로 돌아가는 건데?”

방금까지 마력 담긴 주먹에 맞을 뻔했다는 것도 모른 채 황자는 툴툴거렸다. 하지만 공녀의 태도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리에가 너무 방 안에만 있었으니, 몸이 어느 정도나았으면 황궁을 안내해주려고.”

“황자전하가 직접 안내를 해주신다고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사용인이 하는 일 아닌가.

“뭐, 사실 내가 리에랑 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렇지. 심심하기도 하고.”

황자의 철부지 같은 대답에 공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황자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서 레이디, 지금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소?”

말을 마친 황자는 쿡쿡 웃었다.

“지금이요?”

“그래. 지금 당장.”

황자의 마지막 말에는 무게가 담겨있었다. 마치 명령하듯 말을 내뱉은 황자는 몸을 다시뒤로 빼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차를 음미하는 황자를 보며 공녀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 무슨 의도일까. 정말 단순히 황궁을 안내하려고 지금 당장 따라오라고 하는 걸까?

- 글쎄. 나는 인간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다만, 조심하는 게 좋겠지.

공녀는 어쩔 수 없이 긍정의 뜻을 내비췄다.
황자는 신이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갈 채비를 갖추라 했고, 공녀는 시녀와 하녀들에게 붙들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건물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니 황자가 마차에 탄  손짓을 하고 있었다. 시밀레가 문을 열어주자 황자는공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마차 위로 끌어올렸다.

“꺗!"

상상 이상의 힘으로 인해 몸이  뜨자 자기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른 공녀는 그런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황자는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맞은편에 공녀를 앉혔다.

“실례했군.”

방금까지만 해도 경박했던 말투가 갑자기 점잖아졌다.
밖이라서 꾸며낸 겉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아까의 태도가 꾸며낸 것일 수도 있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마시오.”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오는 시밀레에게 황자는 안심시키는 말을 건넨 뒤 마차를 출발시켰다.


“저기가 내가 사는 곳이야.  맞은편이 황태자궁이고.”

마차는 천천히 나아갔다.
황자는 창문 밖에 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간단히 설명을 했다. 생각보다 설명도 무난했고 이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아 공녀는 긴장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큰 건물이 아버님이 주로 계시는 중앙궁이야. 그 왼쪽이 근위기사단이고, 오른쪽이…….”

근위기사단을 공녀는 한때 자신이 저기서 일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조금 답답해졌다.
공녀가 멍하니 있자 황자가 말을 건넸다.

“리에?”

“네, 네?”

“괜찮아? 돌아갈까?”

근위기사단 건물을 보고 감상에 젖어있었다고 말  수는 없었기에 공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순간적으로 황자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지 못한 공녀는 순진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안내했네.  건물 빼고.”

공녀가 머무는건물에서 제일 먼 곳에 위치한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황자는 뜸을 들였다.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인가요?”

황자는 말이 없었다.
불안해진 공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황자는살짝 웃으며 말했다.

“리에는, 용사나 마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공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제일좋아하는…….”

“……좋아하는 이야기는 초대 마왕 ‘파멸’과 광대의 이야기.”

“!?”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다섯 번째 마왕 ‘타락’과 그의 인간시절 연인이었던 세 번째 용사의 이야기.”

“전하?”

“맞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분열조차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지?

아리에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 마왕의 진명(眞名)을?

위험한 기색을 느낀 공녀는 마차의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느다란 팔은 황자의 날쌘 손아귀에잡아 채이고 말았다.

“같이 가실까요, 레이디?”

황자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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