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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제 3 장. 용사, 그리고 용사 - 4 (16/82)



〈 16화 〉제 3 장. 용사, 그리고 용사 - 4


- 16 -

체노스트라 제국 기사단 양성소.

10세 전후의 전도유망한 아이들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모집하여 제국기사단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요람이다.
3번의 승단 시험  기사단 임관시험을 통과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기사단에 입단할  있다.

보통은 20세 전후에 임관시험을 치루며, 입소자가 무사히 졸업하여 임관하는 비율은  2할 전후. 10명을 모집하면 2명만이 제국기사단의 직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스승님은 17살에 임관시험을 치렀는데, 동기 중에서 제일 빨랐다고 했어요.”

아펠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자 공녀는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펠의 검술 실력 향상을 위한 동기 부여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테르한이 자기 자랑을 열렬하게 늘어놓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와, 와아. 엄청 강하셨나보네요.”

“그럼요! 저희 일행은 스승님을 빼면 다들 근접 전투를 못하니까 싸울 때면 항상 제일 앞에서 싸웠는걸요. 그런데 다른 일행이 공격도 하기 전에 수십 명의 적들을 금방 제압해버리곤 하셨죠.”

“오. 정말 용맹한 전사로군. 그런데 상태가 좀 안 좋다면서?”

황자의 말에 아펠은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네. 사실 마왕과 싸울 때 크게 당해서, 그……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이 되어서…….”

공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테르한의 육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저기. 엘레나 성직자님께선 스승님의 상태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요?”

영혼에 대한 감각이라면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엘레나가 테르한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아펠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엘레나 언니도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스승님은 원래 영혼이 조금 복잡한 상태여서…… 뭐더라. 아, 호문클로스?”

“아!”

갑자기 탄성을 지른 황자 쪽으로 소녀들이 고개를 돌리자 황자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기억나.  년 전 사고를 당해서 죽을 뻔한 기사단 생도가 골렘과 호문클로스 이식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는 얘기. 그가 설마 아펠의 스승이었나?”

“네. 맞는 거 같아요. 스승님 말고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하니…….”

“그것 참. 어쩐지 인간의 몸으로 하기 힘든 일을 하고 다닌다는 보고가 들려온다더니만. 설마 그 검사가 그였을 줄은.”

황자의 말에 의미심장함을 느낀 공녀는 그에게 물었다.

“그 검사 분이 꽤 유명했나 봐요?”

“물론이지. 연금술의 정수인 골렘과 호문클로스를 인체와 융합하는 기술은 파멸을 상대하는 데 중요하게 쓰일 수 있으니 우리 연구소에서도 주시하고 있었지. 연구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용사의 일행이 되었을 줄은.”

황자의 말을 들은 공녀는 잠시 침묵했다.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제국에 환멸을 느끼기에는 앞으로 상대할 적이 너무 강대했다.
마음을 다잡은 공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펠에게 질문했다.

“골렘이랑 호문클로스가 섞인 사람이라. 그 분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아펠은 공녀의 질문에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승을 떠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보다 자상하고 인간적인 분이에요.”

공녀는 제자의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혹시, 아빠가 있었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 했어요.”

아펠의 이어지는 말에 밀려오던 감동이 그대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해봤는데 아빠라니.

공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마차가 양성소에 도착했다


“일동, 기립!”

수백 명의 생도가 강당에 도열해있었다. 그들은 대표의 구령에 맞춰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례!”



한 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 경례에 황자는 만족스런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쉬어!”

대표가 외치자 모두들 일치되는 동작으로 자리에 착석했다.
물론 일부 나이 어린 아이들은 살짝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황자는 너그러운 미소로 그들을 독려했다.

‘우와. 저러면 압박감 엄청날 텐데.’

황자의 뒤편에 앉아있던 공녀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는 괜히 높은 분이 온다고 해서 며칠이나 제식 동작을 반복했던 일이 오버랩 되었다.
공녀는 황자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어졌다.

황자가 인사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황자의 방문이 언제부터 예정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은 정말 잘 하고 있었다. 적어도 테르한의 기준에서는 합격이었다.

공녀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펠이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공녀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덩치가 큰 졸업반 생도들은 테르한의 직속 후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중간 중간 있어야 할 얼굴들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임관시험에 합격했거나 승단 시험에서 계속 떨어져서 기사의 길을 포기했으리라.

개중에는 테르한에게 일어난 사고를 보고 포기한 경우가 있을지도 몰랐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얼굴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자니, 자신을 향한 열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의 주인공인 소녀 생도는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벨로나?’

- 호오. 저 소녀는 특이하군. 그대‘들’의 기억에 동시에 존재하는 인물이라. 흔치 않은걸.

벨로나 크로이체.

제즈릭 공작가를 대대로 섬겨온 기사가문의 장녀로 어렸을 때부터 공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놀아주는 역할을 해왔었다.
그리고 테르한이 기억하는 나이 어린 후배 중에  사람이었다.

- 벨로나가 그 벨로나였다니.

아리에의 기억과 테르한의 기억이 합쳐지는 감각은 익숙한  낯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길었던 황자의 인사가 끝나고 모두들 박수를 쳤다.
황자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공녀는 무의식적으로 박수를 쳤다.

“자, 그럼 방금 소개했던 분을 모셔보도록 하겠소. 아리에 제즈릭 공녀, 앞으로.”

“네? 저요?”

놀란 공녀가 조용히 되물었고, 황자는 공녀를 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가 곧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방금 소개했잖아? ‘마력을 순수하게 움직이는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라고.”

“아, 그러셨죠. 네.”

괜히 황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추궁당하기 전에 공녀는 잽싸게 연단에 올랐다.
뒤에서 황자의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공녀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수백의, 어쩌면 천에 달할 수도 있는 수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호흡이 불안해졌다. 입을 여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한편 생도들은 연단 위에 머리만 빼꼼 내민 공녀를 보며 긴장했다.
황자는 방금 ‘특수한 목적의 기사’를 양성하기 위해 마법을 배제한 커리큘럼을 언급했고, 훈련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뒤쪽에 앉아있던 인형 같은 소녀를 소개한 참이었다.

생도들 사이에서는 공녀는 제법 유명했다.

귀족들의 소식을 누구보다 잘 파악해야한다는 제국기사단의 방침에 따라 수업 커리큘럼에 제국 주요 귀족들의 소식을 알아보는 시간까지 따로 있을 정도였는데, 최근 화제가 되는 인물들은 단연 공녀와 용사였다.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았는데 새로운 커리큘럼의 힌트까지 준다니. 과연 마력각성자는 다르다고 생도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아가씨이이이!!!!’

벨로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공녀를 지켜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공녀를 데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공녀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을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벨로나는 공녀가 옆으로 쓰러질 기미가 보이면 지체 없이 달려가기 위해 다리에 마력을 모았다.
모종의 트라우마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그녀는 남아도는 마력을 쓸데없이 놀리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에 적응시켜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방법은 마법보다 효율이 무척이나 떨어져 자신보다 마력의 양이 한참 떨어지는 동기들과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동기들 사이에서 높은 전투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벨로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공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리에 제즈릭이라고 합니다. 우선, 미래의 기사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단 생도들이 기분 좋아질 말을 꺼낸 공녀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혹시 여기서 마법이 서툴거나 못 쓰시는 분이 계시나요?”

꽤나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이었지만 눈치를 보던 생도들이 하나 둘 손을 들었다. 특히 벨로나는 자신을 봐달라는 듯 손들 번쩍 들었다.

공녀는 그녀를 보는 듯싶더니 고개를  돌렸다.
공녀가 자신을 고의로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자 벨로나는 울고 싶어졌다.

손을 든 것은 벨로나를 제외하면 거의 다 나이가 어린 생도들이었다.
마법을 익히지 못하면 승단시험 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가 찰수록 기사의 꿈을 접기 마련이었다.

“사실 저도 마법을 쓰지 못한답니다.”

마력각성자가 마법을 못 쓴다는 고백이 제법 인상적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마법을 쓰지 않고도, 이렇게.”

공녀의 전신에 바람속성의 마력이 깃들었다. 땅을 박차고 가볍게 뛰어오른 공녀는 정체되어있는 강당 안의 마력에 바람의 속성을 부여해 십여 미터가 넘는 거리를 우아하게 비행한 뒤 착지했다.
그곳은 벨로나의 코앞이었다.

누가 봐도 비행이나 도약의 마법은 아니었다. 눈썰미가 좋은 생도들은 그것이 마법이 아닌 원초적인 마력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원초적이면서 세련된 마력의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다만 눈앞에 공녀가 내려오자 벨로나는 기절할 뻔했다.

‘아가씨 위험하니까 막 날아다니시면 안돼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공녀의 다음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가벼운 점프도 할  있어요.”

누가 봐도 가볍지 않았기에 좌중은 침묵했다.
황자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공녀가 자신의 마법을 튕겨낸 것을 보고 실력을 지레짐작했었지만 공녀의 마력 운용법은 그의 예상보다 더 뛰어났다.

“그리고 두 번째 승단을 마쳤는데 오러를 쓰는 것이 서투른 분들 있나요?”

아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생도가 손을 들었다. 사실 세 번째 승단까지 마치고서도 오러를 못 쓰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임관 시험을 칠 수 없었다.

“오러는 마법을 쓰지 않고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  가장 정교하고 발달한 방법 중 하나에요. 마법처럼 정해진 문장과 제어법이 아닌 자신만의 마력 운용법을 익히게 된다면 오러 발현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생도들 사이에서 의심과 절박함, 작은 깨달음이 오갔다.
한동안 그들을 지켜보던 공녀는 몸을 홱 돌려 벨로나와 마주섰다.

“오랜만이야, 벨로나.”

“아가씨이이…….”

벨로나는 말끝을 늘어뜨리며 코를 훌쩍였다.

언제나 활기차고 당당하던 벨로나가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에 동기들은 놀라워했다.
하지만 항상 공작가를 모시는 가문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녔던 그녀였기에 다들 금세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제가 아는 최고의 생도와 함께 간단한 마력 운용법을 익혀볼까 해요. 다들 연병장으로!”

어느새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에 맛이 들린 공녀가 힘차게 외쳤고, 생도들은 앞 다투어 강당을 빠져나갔다.

텅  강당에서 황자는 고개를 저었다.

“리에가 저런 재주가 있었을 줄은. 웃긴 모습 보려다가 멋진 모습만 보고 가게 생겼네.”

옆자리의 아펠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눈을 마주친 뒤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강당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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