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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제 4 장.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 2 (20/82)



〈 20화 〉제 4 장.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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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가  마차는 제도의 외곽을 향해 나아갔다. 몇 년 전 정비한 가도는 매우 넓어서 마차가 몇 대나 다녀도 길이 혼잡하지 않았다.

종종 셰일로아가 갖고 있던 원반 비슷한 물체를 타고 다니는 이들도 보였는데, 대부분이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이 일정하게 흘려 넣는 마력의 양을 가늠해본 공녀는 자신도 저 원반을 하나 마련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마차는 몸이 편하긴 하지만 직접 운용하기에는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이 많이 필요해보였다.

어느새 같은 방향을 향하던 마차들이 하나 둘 다른 길로 빠졌고, 원반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종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보였는데, 마력의 공급은 원반에 부착되어있는 마석에서 하는 것 같았다.

공녀가 정신을 집중해서 마력의 흐름을 읽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방금까지 보였던 원반들을 타고 사람들이 오가는 이곳은 ‘마도공학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공녀 안의 테르한이 발작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젠……장.”

공녀는 조그마한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내리치다 뒤늦게 체내의 마력을 움직였다. 간신히 호흡을 시작한 공녀는 고통으로 인해 맺혔던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어쩐지 거리가 눈에 익었다 싶었는데 설마하니 목적지가 이곳이었을 줄은 몰랐다.
오늘의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은 황자를 원망하며 공녀는 양손으로 의자를 짚고 심호흡을 했다.

‘2년만인가.’

이곳은 테르한의 육체를 개조하여 살려낸 연금술사들의 공방이었다.
마도공학은 최신식 연금술로 현재 떠오르는 최신 기술들의 집합체라 할만 했다. 방금까지 봤던 타고 다니는 원반도 마도공학의 산물이었다.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실험을 자행한 그들은 원망을 하기도 안하기도 애매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도망친 이후에는 최대한 잊으려고 했었다.

마차는 속절없이 나아갔다.
창문을 살짝 열자 근처에 황자가 수행원들과 함께 서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 공녀가 아주  아는 얼굴이 있었다.

‘알레온.  자식 아직도 여기 있었군.’

회색 머리의 중년 남성이 황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이곳의 총 책임자이자 테르한에 대한 실험을 했던 장본인이었다. 공녀는 이를  깨물었다.
그러다가 그의 뒤에 서있는 졸린 눈을  소녀를 보자 공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클레어?’

알레온의 딸인 클레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도공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 어렸을 때부터 마도공학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테르한이 이곳에서 붙잡혀있을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말상대를 해주던 아이였다.

클레어를 본 공녀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살며시 문을 연 공녀는 자신을 향해 시선을 던진 황자에게 목례를 하고 그의 뒤쪽 수행원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공녀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수행원들의 틈바구니에서 서있었지만, 눈치를 보던 수행원들이 한발 뒤로 물러나자 공녀는 황자의 바로 뒤쪽에 서게 되었다.

황자와 얘기하던 알레온이 공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전하. 이분이그?”

“그렇소. 어제 기사단 양성소에서 난리를 일으킨 장본인이지.”

황자는 공녀의 팔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졸지에 황자와 알레온 사이에 선 공녀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리에 제즈릭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담당자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공녀님. 알레온 피셔라고 합니다. 소문의 공녀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상한 소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하하. 소문대로 만만찮은 분이시군요.”

공녀는 알레온에게 악감정이 남아있기에 무표정하게 고개만 살짝 까딱이고는 획 돌아섰다.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공녀는 다시 황자와 자리를 바꿨다.

황자의 뒤쪽에 서있자니 클레어가 공녀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싶어 하는듯했다.
공녀가 클레어에게 눈인사를 건네자 클레어는 눈을 빛냈다.
예전부터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다.

“그럼,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좋은 구경을 하겠군. 잘 부탁하오.”

황자와 알레온은 제법 죽이 맞는지 아까부터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쩐지 황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불쾌하다 싶었는데 알레온과 비슷한 부류여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남자들이 앞서가자 자연스레 클레어가 공녀의 옆에 서게 되었다. 클레어는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 공녀님. 난 클레어 피셔. 잘 부탁해.”

항상 졸린 눈을 하고 있는 클레어는 말조차 느릿하고 의욕이 없어보였다.
테르한은 그녀가 자신과 말하던 도중 깜빡 조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봐왔다. 그런 클레어가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이니 공녀가 굉장히 마음에  모양이었다.

그녀는 흥미 있는 대상에게는 잘 보이고픈 욕망이 강한 편이었다. 공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인사를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아리에 제즈릭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클레어님은 이곳에서 일하고 계시나보네요.”

대충 걸친 흰 가운과 주머니에 들어있는 각종 공구, 머리에 걸친 보안경 등을 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클레어는 어설프게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응. 맞아. 어떻게?”

아마 어떻게 알았냐는 뜻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연구실에서 틀어박혀 일만한 클레어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서툴렀다. 그나마 테르한과는 이야기를 조금씩 했는데, 그를 골렘으로 여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옷보고 알았어요.”

클레어는 납득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공녀는 기분이 좋지 않아 얼굴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클레어는 우물쭈물하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얌전히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마도공학소의 내부는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져있었다.

테르한이 여기 있던 시절에는 평범했던 벽면에는 빛나는 글자들이 빼곡히 써져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연구 개발에 관한 내용이었다.
 앞에 서있던 한 사람이 손가락을 벽면에 살짝 갖다 대자 글자들이 흐려지더니 빛의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는 잠시  새로운 문자들이 벽면에 새겨졌다.

그 모습을 본 공녀가 입을 벌리며 놀라자 클레어가 조용히 웃었다.

“궁금해? 알려줄까?”

“네에. 부탁드려요.”

방금까지 그녀를 무시했던 공녀는 머쓱했지만 궁금증을 참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클레어의 설명이 시작됐다.

“저 벽면은 내가개발한 마력감응패널을 보다  화면으로 설치하려다보니 부피가 지나치게 커져서 아예 벽 전체를 패널로 교체  거야. 아, 마력감응패널부터 설명해야하나? 마력감응패널은 사용자가 마력을 이용해서 글이나 글자를 마음대로 새겼다가 지웠다가 할  있는 일종의 칠판 같은 건데, 한  새겨놓은 것은 자신의 마력정보망에 업데이트하면 언제든지 불러올 수 있어. 마력정보망은 여기 최심부에 있는 거대한 마력정보 보관소인데 공학소 내에서는…….”

아차. 공녀는 클레어의 성격을 깜빡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한해서는 입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데, 테르한은 지금까지  한 번밖에 들어보지 못해서 방금까지 그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

나름 신기하고 유용한 정보가 많아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했지만 설명의 반의반도 이해를 할  없었다.

한참 클레어가 마력정보망의 제도 내 연결망 확충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앞서가던 황자와 알레온이 큰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뒤따라가던 공녀와 클레어도 자연스레 멈췄는데 알레온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클레어. 기분 좋은가보구나.”

클레어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은 알레온은 황자와 공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마도공학소는 자율형골렘을 기반으로 약 이백여 년 전에 연금술사 계파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선배들의 노력 덕분에 이제 골렘은 거의 자율형골렘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죠. 그리고  년 전, 저희는 마도공학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무언가를 손에 넣었습니다.”

알레온이 문에 손을 대자 육중한 잠금장치가 스스로 돌아갔다. 용병시절 던전에서 가끔 보던 고대의 잠금장치를 떠올리던 공녀는 갑작스레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 이건…….

- 그래. 이 앞에 있다.

공녀와 분열은 직감했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거대한 문 너머의 방은 공녀가 머무는 귀빈관 건물만큼 넓었다.
방 안에는 정체불명의 푸른 액체가 담긴 거대한 유리관들이 늘어서있었고, 그 안에 각종 생물들이 담겨 박물관처럼 전시되어있었다.
 모든 것이 공녀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공녀의 시선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 배는 커 보이는 유리관 안에는 눈을 감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

인간이라기 보단 골렘이라고 불러야 할 그것을 본 순간 공녀는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나올 지경이었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테르한의 몸이 그곳에 있었다.

“이 사람은…….”

황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테르한이 담긴 유리관 앞으로 다가갔다. 앞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읽은 황자는 눈을 찌푸렸다.

“용사의 일행인 검사 아닌가. 몸이  좋다고 들었는데, 이런 곳에 있었군. 이 자는 괜찮은 거요?”

알레온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는가보군요. 예. 몸은 멀쩡합니다. 다만, 영혼에 이상이 생긴 것 같더군요. 일단 체내에 남아있는 영혼을 안정화시키고 외부의 마력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유리관을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황자는 턱을 쓸어내렸다. 용사 아펠과  동료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구는 그였지만 테르한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니 이런 상태인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근 몇 년 간은 테르한  덕분에 마도공학계가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과 골렘, 호문클로스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영혼의 그릇을 크게 늘리는 금단의 마법도 과학적인 측면에서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연구하면 공녀님처럼 마력탈진증에 걸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자신이 지목되자 공녀는 화들짝 놀랐다.
저 인간이 설마 내가 테르한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있나 싶어 시선을 살짝 피했다.
황자는 알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법이 안전하다는 것이 증명되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소.”

“마력탈진증은 희귀한 질병 아닙니까?”

“그렇소. 그들의 마력탈진증이 고쳐지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었소.”

마력각성자들이 많아질수록 파멸에 대한 대비가 수월해진다. 황자는 자세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았다.

공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 살그머니 테르한의 유리관 쪽으로 다가갔다.
방금 마주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힐 뻔 했지만 알레온이 그를 살리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하니 약간은 차분해졌다.
일단 정확한 내막을 알 필요가 있었다.

- 분열. 가능하겠어?

- 글쎄. 저 액체가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리관에 손을 대라.

공녀가 조심스레 유리관에 손을 댔다. 알레온과 클레어가 그 모습을 봤지만 제지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분열의 영혼이 손끝에 머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쌍두사처럼, 분열의 영혼은 공녀의 영혼에 묶여있었지만 영혼의 길이를 늘려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유리관에 닿은 손에서 미약한 파동이 발생했다. 분열이 뻗은 마력의 줄이 천천히 테르한의 육신에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느낄 때 즈음, 마침내 줄이 테르한에게 닿았다.

공녀의 머릿속에 분열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검사 영혼 없음. 인공 영혼, 골렘  존재. 공허. 공허.

마력을 차단하는 액체라고 한 것은 사실이었는지 분열의 말이 짧아졌다. 공녀는 허탈하게 웃으며 유리관에서 손을 뗐다.

분열은 재빨리 마력의 줄을 수습하고 공녀의 영혼 한 구석에 만들어놓은 자신의 영역에 다시 들어갔다.

“리에, 무언가 느껴져?”

황자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공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혀.”

테르한의 육신이 안에는 그의 영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영혼의 용량을 늘리는 재료로 쓰인 호문클로스의 인공영혼과 골렘의 핵이 빈 그릇의 껍데기를 간신히 유지시키고 있을 뿐.

공녀는 되레 상쾌한 기분으로 뒤돌아섰다.

“용사님의 일행분이 이렇게 되셔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공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알레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분이 이렇게라도 살아있을 수 있게  주셔서 감사드려요.”

뜬금없이 감사인사를 받은 알레온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허리를 숙였다.

“그게 제 일입니다. 테르한 경에게는 신세를 많이 졌으니, 그가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네. 그거면 됐어요.”

공녀가 자신이  말을  뺏어버리자 황자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이곳에 온 목적인 파멸을 상대하기 위한 비밀병기들의 개발을 의뢰하기 위해 회의실로 안내를 부탁했다.

공녀는 황자와 알레온, 클레어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조그맣게 테르한이 담겨있는 유리관이 보였다.

공녀는 간절히 바랐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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