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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제 4 장.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 3 (21/82)



〈 21화 〉제 4 장.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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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은 좋게 표현하면 상당히 개방적인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구소의 메인 로비 한쪽 구석에 간이 칸막이  개를 세워놓고 만들어진 조촐한 장소였다.

“다들 회의를 싫어해서 말입니다.”

협소한 회의실의 모습에 황자가 당황하자 알레온이 농담처럼 얘기했다. 공녀는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륙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여 있는   하나인 이곳은 마탑만큼이나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괴짜들이 많았다.
즉 클레어가 이곳 표준이라는 소리였다.

오죽했으면 알레온이 제일 말을 잘하고 외부인의 접대에 능하다는 이유로 대표자 자리에 올랐겠는가.

마도공학소에 큰일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그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일은 없으니 회의실이 따로 있을  만무했다. 이들이 마탑의 마법사들과 다른 점은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공녀는 뒤에서 왔다갔다 거리는 연구원들이 신경 쓰인 나머지 최대한 안쪽 자리로 들어갔다.
마침 그 자리에 앉아있던 클레어는 화색을 띠며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늘은 의뢰하실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황자전하께서 직접 오실 정도면 긴밀한 이야기이거나, 황실의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겠군요.”

알레온의 말에 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해당하는 이야기요. 혹시 내가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대답해주시오.”

알레온과 클레어가 살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황자는 품에서 수첩과 종이  장을 꺼냈다. 낙서처럼 선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있는 종이들을 펼치고 각도를 조금씩 엇나가게 겹친 황자는 빛을 내는마법을 외웠다.

[라이트]

희미한 빛의 구체가 떠오르고, 겹쳐진 종이 위로 정교한 갑옷의 설계도가 드러났다.

알레온이 안경을 고쳐 쓰고는 설계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건…… 드워프제 갑옷이군요. 이걸 만들라는 말씀은 아니실 테고, 이곳 팔다리와  쪽에 있는 홈에 끼워질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겠군요.”

황자는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장님이시군. 자세한 것은 얼마 뒤에 공표될 예정이지만, 드워프제 갑옷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일들이 벌어질 거요. 그리고  홈에는 현재 기사단의 갑옷에 새겨지는 마법 술식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 들어가야 하오.”

“흠. 마법을 새겨 마력을 불어넣으면 활성화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부족한 겁니까?”

“그렇소. 마법적인 문구가 적혀있지 않으면서 성능은 비슷하거나 최소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능하겠소?”

파멸의 앞에서는 모든 마법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가정을 한다면 장비에새겨진 마법문구조자 무력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공녀가 마력을 움직이고 속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마법을 쓰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기존의 마법을 새긴 장비와 비슷한 스펙의 장비도 만드는 것이 가능할 듯싶었다.

알레온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마석을 이용하여 마법을 발동시키는 연구를 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마법은 원래 누가 쓰던 동일한 마법은 동일한 위력이나 성능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지.”

공녀도 육체강화계 마법에 대한 이론은 잘 알고 있었는데, 마력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 쓰는 마법과 적게 보유한 사람이 쓰는 마법의 강화 효과는 동일했다. 그래서 양성소의 교관들은 생도들의 마력이 일정 수치 이상이면 마력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육체의 기본 스펙에 따라 효과가 커져 딱 필요한 마력만 쌓고 육체단련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테르한도 마찬가지였고.

이는 마법이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최대의 효율을 찾아 개선시켜나간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의 마력이 들어가면 그것의 반작용을 무마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마력 또한 커져 2~3배의 마력을 들여 간신히 마법을 성공시킨다고 해도 위력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차라리 그 시간과 마력으로 마법을 2~3번 쓰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알레온이 품에서 보라색 빛의 엄지손톱만한 마석을 꺼내들었다.

“요즘 플라잉 보드를 본격적으로 상용화하고 있어서 마법을 못 쓰는 분들을 위한 마석을 별도로 제작했습니다. 만들어본 김에 이것저것 실험도 해봤는데, 조금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알레온이 마석을 손에 들고 마법을 외웠다.

[라이트]

황자가 아까 만들어낸 빛과 동일한 밝기를 지닌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알레온은  구체를 움직여 마석에 접근시켰다.

“어?”

마력에 민감한 공녀가 먼저 의문을 표했다. 마석에 접근한 빛의 구체는 조금 커져있었다.
라이트 마법은 정해진 마력 이상의 마력을불어넣고 마법을 외우면 크기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깜빡거리는 점멸 현상이 생긴다.
하지만 마석을 통과한 빛의 구체는 크기가 커져있었다. 공녀가 알레온을 돌아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미세한 차이라서 저희도 여러 번 실험해봤습니다만, 저희가 플라잉 보드 용으로 만든 이 마석은 ‘빛 속성 마력의 위력을 3% 강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황자는감탄을 참지 않았다.

“오, 마치 고대의 유물과 같지 않소. 아니지, 오히려 고대의 유물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  수 있겠군.”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를위해 고대의 유물들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요새 공학소를 증축하느라 예산이 거의 없더군요. 하하.”

알레온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살짝 황자를 떠보았다. 황자는 주위를 둘러보는 척을 하며 은근히 속삭였다.

“예산 걱정은 할 필요 없소. 올해부터 마도공학소에는 마탑에 버금가는 재정적 지원이  것이오. 물론 물건들을 납품해서 받는 금액은 별도로 계산될것이고.”

알레온은 마탑에 버금가는 재정이라는 말에 크게 기꺼워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다는 마탑과 비슷한 지원을 받게 되면 당장 머릿속에 있는 수십 가지의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만들어낼  있었다.

“감사드립니다, 전하. 자, 클레어 너도”

알레온은 클레어의 머리를 누르며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클레어가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공녀는 살짝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지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사람을 보내겠소. 일단 이 갑옷에 들어가는 것은 마석으로 결정된거라보면 되겠소?”

“네. 일단 개량을 거쳐봐야겠지만 현재 저희가 만들어낸 마석결정구조를 조합하면 ‘바람, 물, 불, 빛’ 속성의 위력을 늘려주는 마석의 제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석의 크기가 커질수록 사용할  있는 기간이 늘어납니다. 세기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알레온의 설명에 공녀는 호기심이 동했다.
마석은 원래 마력이 깃들기 쉽고 저장이 가능한 각종 광석들로 자신의 마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돌멩이였다.

최근에는 그것들을 조합하고 개조해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력만 불어넣으면 특정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테르한을 몸을 구성하던 골렘에도 그런 식으로 개조한 마석들이 일종의 동력기관으로 작용했다.

어떠한 원리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테르한은 자신의 마력을 전부 동력기관에 박힌 마석의 충전에 사용해야했고, 덕분에 골렘 비슷한 몸으로 웬만한 마법을  기사보다도 날쌔게 움직일 수 있었다.

특정 속성의 위력을 증가시켜주는 마석이라. 공녀는 알레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장님. 마석 한 번 만져볼 수 있을까요?”

대량생산이 가능해서 그다지 귀한 마석도 아니었기에 알레온은 순순히 공녀에게 마석을 넘겼다. 마석을 받아든 공녀는  안에 마력을 살짝 흘려 넣었다.

마력을 머금은 마석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석에 깃든 마력을 이리저리 굴려보던 공녀는 본능적으로 마석이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빛속성과 땅속성이 느껴지네요. 땅속성 마법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아직 연구를  하셨나요?”

알레온과 클레어가 놀란 눈으로 공녀를 쳐다보았다. 황자는 그럴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리에가 또 한 건 하는 건가?”

공녀는 조용히 하라는 듯 황자를 째려본 뒤 마석에 흘려 넣은 마력을 땅의 속성으로 바꾸었다.

“마력의 움직임이 느려진 건가? 아니, 안정되었다는 느낌이네요.”

알레온은 심각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다른 마석을 꺼내들었다.

“공녀님. 이 마석도 봐주시겠습니까?”

옅은 녹색의 마석을 건네받은 공녀는 그것에도 마력을 주입한  속성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이건 불속성과 바람속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르겠는데. 아, 희미하게 물속성이 있네요. 불의 속성을 부여하니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바람속성은 뭔가 움직임이 끈적거리는 느낌인데……. 물속성은 아무 영향이 없는  같아요.”

알레온과 클레어는 입을  벌린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별안간 클레어가 양손으로 공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대단해. 공녀님. 마석 연구, 힘내자?”

“네? 힘내요?”

공녀가 말을 이해하지 못해 반문하자, 클레어는 살짝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눈동자로 공녀를 쳐다보았다.

“마석 연구…….”

“하하. 마석 연구는 거의 클레어가 담당하고 있는데, 공녀님이 연구를 도와주시면 속도가 빨라질 거 같아서 그런 겁니다. 저도 부디 부탁드리고 싶군요.”

공녀는 고민이 깊어졌다. 자신에게는 좋은 추억이 별로 없는 이곳에, 이번에는 연구를 하는 쪽이 되라고 하니 기분이 오묘하기도 했다.

- 그대의 몸이 잘 있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할 필요도 있네.

그래. 게다가 마석은 파멸을 상대할  핵심적인 역할을 할 거 같아. 마법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서도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쓸 수 있다면…….

망설임은 짧았다. 공녀는 황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괜찮을까요?”

“나야 당연히 환영이지. 리에가 여러모로 활약해주는 것도 좋고, 마석의 개발을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

“제 활약이요?”

황자는 눈에 뻔히 보이는 놀란 표정을 취했다.

“아차. 말실수. 그런 게 있어.”

공녀는 미심쩍은 눈으로 황자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클레어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같이 해봐요. 마석 연구.”

클레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응.”

그렇게 공녀는 ‘마석 개발 연구소 고문’이라는 직위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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