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제 5 장. 전조 - 3 (28/82)



〈 28화 〉제 5 장. 전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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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는 제도 내의 발 빠른 치안활동과 정확한 마법수사, 놀라운 행정 처리 속도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수혜를 받아왔던 만큼 반대의 입장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나를 부른 이유가 뭐라고 하였소, 제즈릭 공녀?”

하지만 유치장에 갇혀 황자에게 비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서늘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황자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공녀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잘못했다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조아리길 몇 분, 황자는 폭소를 터트리며 공녀를 유치장에서 빼내주었다.

 한 시간 전, 공녀가 공녀임을 믿지 못했던 제도 북부 치안 담당관은 그녀에게 마력 차단 수갑을 씌우고 주소를 물어보았다.
마도공학소에서 일어난 일련의 소동에 대해 마법 수사관이 소녀를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믿기 힘든 일인지라 보호자를 추궁해볼 생각이었다.

아무  없던 공녀가대뜸 황자를 불러달라고 하자 그는 어린 아이가 마력이 폭주해서 정신이 나갔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자 신문 2면에 소녀의 얼굴이 떡하니 찍혀있는 것을 본 그는 기겁하고 황궁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황자가 직접 유치장으로 찾아왔고, 치안소는 발칵 뒤집혔다.
황자가 몇 가지 지시를 내리자 그를 따라온 수행원들이 모종의 작업을 했고, 공녀는 이름에 빨간 줄이 그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마차 안.

공녀는 플라잉 보드를 품에 안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황자가 오는 내내 계속 웃어댔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웃음을 멈춘 황자가 공녀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어보았다. 공녀가 대략적인 설명을 마치자 황자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만들어낸 그것이 제도 상층부에 있는 마력 보호막에 금이 갈 정도로 셌단말이지?”

공녀는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아, 그거 보호막이랑 부딪혀서 폭발한 거였구나.”

제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은 과거 제국이 세워지기도 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던 것이었다. 사실 인과관계를 따지면 보호막 내부에 제도를 세웠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 유서 깊은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사건은 많지 않았기에 황궁에 사건이 전해진 다음 용마연(용사마왕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 갔다.

잔존 마왕군의 테러, 혹은 파멸의 마왕군이 벌써 활동을 시작했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었지만 사건 발생지가 마도공학소이며 용의자가 잡혔다는 것이 전해지면서 황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급하게 온 것이었다.

“그래. 그 보호막 보수에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투입될지 모르겠어.”

황자는 공녀에게 슬며시 눈치를 줬다. 황자가 마탑과 껄끄러운 사이라는 것을 잘 아는 공녀는 그가 마탑에 숙이고 들어가는 일에 대해 생색을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제가 복구 한다면…….”

“저 보호막의 원리는 알고? 리에의 마력을 다루는 솜씨는 보호막을 보수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안 보이는데.”

공녀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황자가 마탑에 대한 지원을 줄이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무리없이 넘어갈 일 아닌가.
공녀의 머릿속에 적반하장의 상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즈음 마차가 멈춰 섰다.

아까부터 보이던 창밖의 풍경이 매우 낯이 익다 했는데, 마차는 황궁이 아닌 기사단 양성소가 목적지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일을 맡길 거야. 이 일을 잘 해내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줄게.”

황자의 의미심장한 제안에 공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는 만족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양성소에 들어선 둘을 맞이한 건 이곳의 책임자 길단 경이었다. 그는 기사답게 황자와 공녀에게 경례를 했고 공녀는 저도 모르게 답례로 경례를 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문제가 있다고 들었소.”

“예, 전하. 저번에 공녀님이 다녀가신  생도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들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연병장으로 향했다. 곳곳에서 묵묵히 체력을 단련하던 생도들은 황자와 공녀를 보고 슬슬 눈치를 보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길단의 안내에 따라 그들을 지나쳐 더 안쪽으로 향하자 한쪽에 마련된 장소에서 속성을 띤 오러를 연습하던 생도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공녀를 보고 반색했다.

“제즈릭 공녀님이시다.”

“공녀님이 왔어.”

“공녀님! 오러에 속성을 부여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수십 명의 생도들이 한 마디씩 하자 주변이 시끄러워졌고 길단은 그들을 자제시켰다. 간신히 조용해진 좌중을 둘러보며 황자가 공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생도들이 능숙하게 속성 오러를 익히고 실전에  수 있을 만큼의 가르침을 준다면 오늘 일어난 일은 불문에 부쳐줄게.”

사실상 양성소의 교관 노릇을 하라는 소리였다. 의외로 공녀에게는 썩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이 선배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테르한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길만한 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원하는 답을 주기가 조금 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녀는 일단 생도들의 문제를 파악하기로 했다.

“자, 우선 여기 있는 분들은 전부 오러의 사용이 가능한 분들이죠?”

“네!”

공녀의 질문에 생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곳에 있는 생도들은 대략 30명 정도였는데, 벨로나와 마테스, 카르나타 같은 생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속성 오러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생도들은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제일 많은 분들이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생도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견을 모았다. 개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테르한도 잘 아는 후배 한 명이 대표로 나섰다.

“일단 오러에 속성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생도가 대부분입니다.  다음은 속성 부여까지는 되는데 유지 시간이 일반 오러보다 너무 짧은 것이 문제라는 생도들이많습니다.”

공녀는 자신이 마력에 속성을 부여하는 것을 어디서 배웠는지 생각해보았다.
테르한의 기억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으니 아리에의 몸속으로 들어와 분열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마력에 속성을 부여하는 것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분열의 지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덕에 공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에 속성을 부여할  있었다.
하지만 분열의 지식은 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지식이 아닌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실전적으로 마력을 다루고 속성을활용하는…….

‘아.’

그때 공녀의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사단 생도들이 마력을 잘 다루기 위한 교육과 마탑의 재정 문제를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공녀는 황자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공녀가 돌아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실력으로 생도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것은 힘들겠네요.”

황자는 의외라는  말했다.

“흐음.그래? 그러면 아까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얘기야?”

“어찌 보면요?”

황자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공녀의 대답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재미없고 어른들 같았다.
실망한 황자가 한 마디 하려는 순간, 공녀가 말을 이어갔다.

“일단 마탑에서 삭감된 재정이 어느 수준인지 알 있을까요?”

“그거 뭐하러……. 아니다.”

황자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가 대략적인 감축 예정 금액을 적어주자 공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호, 혹시 국가 재정을 잘못 적으신 건…….”

공녀의 말에 황자는 피식 웃었다.

“리에는 경제관념을 좀 잡는 게 좋겠어. 여기 적혀있는 금액은 1년  제국에서 마탑에 지원하는 금액의 12% 수준이야.  이상 손대는 것은 황실의 권한 밖이야. 그리고 마탑에 들어가는 금액은 제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미미한 수준이지. 제국은 작지 않다고.”

공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국 내 마법사들의 중심 세력인 마탑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에 비해 자신의 계획은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하지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기에 내던지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면 마탑 지원금에서 깎인 금액 중 혹시 기사단 양성소나 우리 연구소 이름으로 유용할 수 있는 금액이 있을까요?”

황자는 공녀의의도를 대충 파악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긴 하지만 글쎄. 그 금액을 돌려준다고 마탑에서 협조적으로 나올까? 마탑은 기사단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데 기사단 좋으라고 무언가 할 것 같지는 않은데.”

황자의 말에서 공녀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조용히 미소를 띤 공녀는 아까부터 생각하던 것을말했다.

“황자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가능할지 들어보세요.”

“응? 아,그래.”

“마탑에서 감액한 재정  양성소에 들어온 금액 중 일부를 유용해서 익명으로 마탑에 강의 개설을 제안합니다.”

“음.”

황자는 계속 해보라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공녀는 말을 이어갔다.

“강의의 주제는 속성의 기본 원리와 마력의 양을 늘리는 수업이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면 감액한 돈을 상환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물론 강의자에게는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요.”

“나쁘지 않은데. 마탑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지. 하지만 그들이 돈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야.”

실제로 1년에  번은 마법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나 관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강사의 명예나 민간교류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큰돈이 오가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마탑의 높은 분들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고 입지를 다져나가야 하는 젊은 마법사들에게는 돈이 제법 좋은 명분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신문 1면에도 재정 긴축에 항의를 했다고 하니그 돈 중 일부만 찾아올 수 있으면…….”

공녀는 말끝을 흐렸다. 신문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에서 잊고 있었다는  공녀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신문 봤냐?”

“2면에 공녀님이…….”

“춤꾼…….”

생도들이 소곤대자 공녀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 누구들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황자를 설득하고 있는데! 하며 속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공녀가 노려보자 생도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예요. 마탑의 젊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찾아 ‘강의를 하면 긴축된 재정의 일부를 돌려주겠다’고 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열고 돈을 돌려받고, ‘일반인’인 우리 양성소 생도들이 강의를 듣고 속성 오러를 깨우쳐 윈-윈하는 전략이에요.”

황자는 공녀의 제안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아직 재정 집행 전이라 유용할 금액은 충분했다.
성공 가능성도 충분해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그래서,추천해줄 사람이 있어?”

황자는 공녀가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 확신했다. 젊은 마법사들은 꽤 많지만 그들은 대부분 성과를 내기 위해 혼자 연구실에 틀어박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젊고, 성과도 어느 정도 있어서 자리는 잡았지만 더욱 자신의마탑 내에서의 입지를 올리고 싶어 하고, 마력을  다루며, 돈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네. 아펠의 일행인 마법사 셰일로아 실마이아님을 추천합니다.”

공녀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며칠 뒤, 반신반의하며 마탑에 통보를 넣었던 황자는 셰일로아가 진행하는 강의가 개설되었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그는 공녀의 안쪽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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