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제 5 장. 전조 - 7 (32/82)



〈 32화 〉제 5 장. 전조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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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펠은 평소에는 품에 안고 다니던 성검을 허리에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이 거추장스러운 갑옷이 거슬렸지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입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럭저럭 참아줄만 했다.

“나가실 시간입니다, 용사님.”

납도식을 도와주는 사람의 말에 길게 심호흡을 한 아펠은 간이 천막을 나섰다.
현재 위치는 제도의 남문 밖. 납도식은 개선행사와 동일하게 제도의 남문에서 출발한다.
저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도를 경유하는 퍼레이드용 마차 같은 것 없이, 그저 걸어서 제도 북측의 황궁까지 직진한다는 것이었다.

검과 갑옷을 패용하고 걸어서 1시간 반 가량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야 했으나 아펠은  나이대의 소녀보다 월등한 체력을 갖고 있었다.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두운 천막 안에서 밝은 곳으로 나가자 햇빛에 눈이 부셨다. 경거망동해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차양을 만드는 대신 미간을 한껏 찌푸린 아펠은 철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진했다.

의외로 사람이 없구나 싶었지만 그것은 용사를 배려해 주변100미터 이내의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천막의 코너를 돌자마자 남문까지 이어지는 사람의 길이 보였다. 길 양쪽에 한  씩도 아니고, 용사가 지나가는 길을 제외하면 모든 곳에 사람이 가득했다.

아펠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웅성이더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펠은 벌써부터 질렸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곧 무표정으로 되돌아갔다.
테르한 가로되, 용사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아펠은 또 다른 스승을 찾았다. 근처에 있던 일행이 아펠이 나온 것을 보고그녀의 뒤쪽에 섰다. 아펠은 계속 전진했다.

초대 용사의 조각이 있는 분수대 앞.
공녀는 오랜만에 드레스 차림으로 근처 건물 앞 낮은 화단가에 앉아있었다. 그 동안 편한 운동화만 신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발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공녀의 주변에는 양성소 생도들 중 이곳에 올 수 있을 정도인 고위 귀족의 자제들이 서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공녀는 이미 스승이나 교관과 동급 취급받고 있었다.
그래서 공녀의다소 품위 없는 행동조차 저절로 전사의 기상이나 호연지기로 치환되곤 하였다.

공녀야 내숭떨 필요가 없으니 편하고 좋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멀찍이서 바라보던 제즈릭 공작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는 옆에 있던 루스카에게 말했다.

“이제 보니 저들은 다 기사단 후보생들 아니냐? 어쩐지 아리에가 야생동물 같아졌나 싶더니 저런 이들과 어울려서 그런 것이로군.”

공작의 말을 들은 루스카는 피식 웃었다.

‘야생동물이라.’

지난번 만났던 아리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지만 어디까지나 셀리아가 용기를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 공작이 셀리아의 가문인 드바리아 백작가와 큰 거래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는 것도 수월했다.

 모든 것이 조금만 어긋났더라면.
루스카는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이어지는 공작의 말을 들어주었다.

“아리에에게 무리해서라도 예절 교육을 시킬걸 그랬다. 이제 누가 저 아이를 데려갈꼬.”

“아직 열한 살 아닙니까. 한창 뛰어놀 때지요. 아리에는 머리가 좋으니 예절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습니다.”

루스카는 지난번 일로 아리에에게 심적인 빚을 졌기에 부정적인 말을 하기 힘들었다.
공작이 조금 화난 표정으로 루스카를 보았다.

“열 살 하고 열 달이다.”

“아. 그렇지요. 다다음달이 생일이니.”

루스카는 대답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팔불출이 지금까지 어떻게 딸에게 냉정하고 모질게 대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황자전하 아닌가요?”

공작의 둘째 아들이자 루스카의 동생 루테스의 말에 다른 둘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평소에도 멍하고 남들과는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한 둘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되짚어보던 공작은 곧 열불이  표정으로 그에게 꿀밤을 먹였다.

“이놈! 누가  자식……. 그놈……. 크흠. 그 사람한테 귀한 딸을 내어준단 말이냐?”

루테스는 억울한 표정으로 공작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저번에 신문에서 봤는걸요. 우리 동생이 전하와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을. 형님도 직접 보고 잘 어울린다 하지 않았습니까.”

“야, 그걸 말하면!”

동생의 말에 당황한 루스카가 루테스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루테스는 날쌔게 자리를 벗어났다.
루스카는 곧 지엄한 아버지의 분노를 받게 되었다.

아펠은 계속 걸었다. 남문에서 황궁까지의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펠은 굳이 성검의 폼멜에 손을 얹어 그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문득 주위의 환호성이 전장의 함성처럼 느껴졌다.

공포를 잊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족들을, 그들 사이에 섞여있던 인간들을 상대로 창을 내지르던 제국 군단의 모습은 잊으려야 잊을  없었다.
테르한이 최대한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가 아펠의  눈을 항상 가리고 다닐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견고한 방진에 둘러싸인 후열의 마총사들은 기껏해야 활과 창, 검으로 무장한 마족들을 말 그대로 산산 조각냈다.
마법사들의 기량도 차이가 심했다. 마족의 마법사들이 두  이상의머릿수로 마법을 쏟아 붓자 마탑에서 파견 나온 높은 경지의 마법사 단  명이 배리어의 마법으로 아군 전체를 지켜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총기병의 돌격에 마족 마법사들이 죽어나갔다.

아펠은 제국군의 일방적인 승리를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저들도 타락하지 않았으면 같은 사람이었을 텐데.
아펠은 더 이상 마왕과 마족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다.
어느덧 황궁의 정문이 가까워졌다. 황궁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의 복식이 좋아졌다.
아펠은 그들을 지나치며 황궁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향해 나아갔다.

“용사님이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황자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난 며칠간 성검과 이야기하느라 방에만 처박혀있었더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리에의 얼굴을 못 본 지도 오래 되었고.’

들려오는 말로는 나름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느라 공녀도 무척 바쁜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연구소의 최고 보안등급 문서를 열람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저 멀리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환호성은 파도와 같이 점점 가까워졌다.
황자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심박과 전율에 손을 그러쥐었다.

잠시  아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번의 개선행사와 비슷할 정도로 지쳐보였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그녀는 황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생도 무리의 맨 앞에 공녀가 서있었다. 둘이 가볍게 눈인사를 했고 아펠은 계속 전진했다.

마침내 용사 아페르오네는 초대 용사의 조각이 세워져있는 분수대 앞에서 성검을 뽑았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성검을 들고 아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환호성, 미소, 안도감. 긍정의 기운이 아펠을 북돋았다. 준비되어있는 임시 계단을 올라 자신의 조상님인 초대 용사의 조각상 허리춤에서 성검을 높게 들었다.

“와아!”

군중의 외침에 아펠은 잠시 넋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미리 연습한 것처럼 검을 조각상의 검집에 넣고 그대로 내려오기만 하면 되었다.

스윽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검집이었지만 마치 퍼즐의 한 조각을 끼워 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검이 들어갔다. 이제 성검은 빛을 꺼트리고 다음 번 마왕군이 준동하기 시작할 때 다시 빛을 낼 것이다.

아펠이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펠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불길한 붉은 빛을 발하는 성검이 있었다.
아펠이 놀람을 표시하기도 전에 그녀의 어깨를 짚은 누군가가 그녀를 살짝 밀어내고 계단을 올랐다.

제국의 1황자 리베리안 체노스트라가 계단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웅성거리다가 황자가 계단에 오르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공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아펠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오라비 루스카가 어느새 그녀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의 행동에서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가 벌어질 것이란  깨달은 공녀는 어쩔 수 없이 잠자코 황자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황자는 성검 위에 손을 올렸다.
성검은 불길한 붉은 빛을 꺼트리더니 아펠이 손에 들었을 때처럼 밝은 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계단 아래에는 아펠과 제즈릭 공작이 나란히 서있었다. 황자는 좌중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제국의 1황자로써 하는 말이 아닙니다.”

황자가 황제나 황후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존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그를 아는 이들은 조금 놀랐다. 황자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리베리안 체노스트라. 제국의 황자이기 전에 제국의 시민이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황자는 성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용사입니다.”

성검이 자연스레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아펠이 밀어 넣었을 때처럼 거침없이 뽑혀 나온 성검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도 침묵이 이어졌다.

“전대 용사는 마왕을 훌륭하게 물리쳤습니다. 용사 아페르오네 체노스트라. 수고하셨습니다.”

아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의 성씨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공녀는 어느 정도 짐작하던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벌써부터 새로운 마왕군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제즈릭 공작님?”

공녀의 아버지, 제즈릭 공작은 목을 가다듬었다. 울림이 좋은 그의 목소리가 좌중을 향해 퍼져나갔다.

“제국의 영광스러운 공작위를 맡고 있는 델루인 제즈릭이라 합니다. 얼마 전 제즈릭 공작령 남쪽 끝자락의 늪지대에서 일련의 소요사태가 벌어졌는데, 항상 있어왔던 리자드맨들의 부족 싸움인 것 같아 중재의 사신을 보냈었습니다.”

공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리자드맨들 중 마족으로 타락한 부족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더군요.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심상치 않은 리자드맨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공작령 남쪽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도망쳐온 리자드맨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공작령의 방위군을 동원해서 늪지의 마족들을 막고 있긴 하지만 제국군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끝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새로운 마왕군이라니.
공작은 황자 쪽으로 돌아선 다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성검을 들어올렸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안 좋은 소식들을 들려줄 생각입니다.”

웅성임이 커졌다.
황자는 입가에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애매한 웃음을 걸쳤다.

“마신의 영혼이 20개로 갈라져 마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요?”

유명한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물리친 마왕이  스무 번째 마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마왕은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미 마왕군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라 사람들은 침묵했다. 황자는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마왕이 지상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용사와 마왕을 연구하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가 쌓아온 마왕에 대한 지식을 익혔죠.”

황자는 성검을 내려 한 곳을 가리켰다. 지목당한 공녀는 입술을 살짝 깨문 뒤 앞으로 나섰다.

“아리에 제즈릭 공녀. 그대는 얼마 전 연구소에서 문건을 보았다고 했지. 어떤 것을 보았는지 말해  수 있겠소?”

- 마왕의 목적? 그건 안 봤는데.

- 쯧. 내가  하는 대로 읊어라.

“마왕은 마신이 뒤집어썼던 원죄를 지상에 돌려놓고 다시 마신으로 합쳐지기 위해 차례대로 나와 지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마왕들이 전부 지상에  번씩 나왔으니 이제 마신으로 합쳐질 차례죠.”

공녀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놀랐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마왕들은 대부분 용사에 의해 토벌당해 마신이 될 ‘자격’을 잃었죠. 원죄를 털어내지 못했으니. 그리고 유일하게 활동 기간을 전부 마치고 돌아간 것이…….”

“초대 마왕!”

누군가의 외침에 좌중이 술렁였다. 땅과 하늘을 갈랐다고 전해지는 초대 마왕의 이름은 꺼내기조차 두려운 법이었다.
황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다음 번 마왕군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힘겨운 초대 마왕의 군대입니다. 다른 마왕들이 못 다한 것을  번에 지상에 풀어놓을 생각을 품고 이곳에 강림하겠죠. 늦어도  년 안에 말입니다.”

술렁임은 이제 걷잡을  없이 커져갔다. 중간중간에 배치되었던 경비병들이 사람들을 말렸으나 사람들의 불안감만 커져갈 뿐이었다.

“마왕을 빨리 물리치면 다음번 마왕이 빨리 강림한다더군.”

안경을 걸친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그를 한 번 봤다가 황자와 아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들이 저번 마왕을 빨리 물리쳐서 초대마왕이 빨리 강림하는  아닙니까?”

그의말에 황자는 비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식이나 그 자식에게 마왕을 떠넘기겠다는 거요?”

“아니 내 말은…….”

황자는 듣기 싫다는 듯 성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계단이 휘청거렸지만 황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꼿꼿이 서있었다.

“용사 아페르오네!”

“넷!”

갑자기 호명된 아펠이 병사처럼 대답했다.

“그대가 용사로써 성검을 썼을 때,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아펠은 잠시 생각하더니 황자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녀는 말을 신중히 고른  대답했다.

“제가 동료로 인정하는, 저를 포함한 다섯 명에게 신성한 보호막과굴하지 않는 정신력, 마를 물리치는 힘을   있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대가 동료로 인정하기 힘든 마탑의 늙은 마법사나 무서운 기사단장은 용사 일행이 될 수 없었지.”

황자의 농담 같은 말에 아펠은 얼굴이 발그레해져 고개를 숙였다.
실제로 아펠은 자신과 파장이 맞는 테르한, 셰일로아, 엘레나, 하빈이 아닌 누구에게도 성검의 힘을 제대로 나눠줄 수 없었다.
용사 일행이 그 다섯 명이었던 이유다.

“또 다른 용사 일행의 예를 살펴보겠소. 전전대 용사는 자신과 짝을 이루는 단  사람을 용사와 동일한 힘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었지.  유명한 용사 커플 말이오.”

어느새 황자의 말투가 되돌아왔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초대 마왕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성검과 용사 이야기로 빠진 그의 말에 모두들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정령들을 원소의 마족으로 타락시킨 마왕을 물리친 용사는 오직 자신만이 강해지는 자였소. 홀로 마왕을 물리치고 힘이 다해서그 자리에서 절명했지.”

황자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섬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아펠이 했을 때보다 배는 눈부신 빛이 황궁 전체를 비출 기세로 번쩍였다. 황자는 최대한 목소리를 끌어올려 외쳤다.

“나는 내가 ‘사람’으로 인정한 모든 이들에게 성검의 힘을 나눠줄 수 있소! 나와 같은 인간은 물론, 숲에서 조용히 사는 엘프도! 땅굴에서 광석을 캐는 드워프도! 늪지대의 주민인 리자드맨! 우리의 우방 수인족!  밖의 마족을 제외한 소수종족들 모두에게 이 힘을!”

사람들의 몸에서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던 늙은 신사는 저도 모르게 지팡이를 놓은 채 수십  만에 허리를 꼿꼿이 세웠고, 요통에 항상 얼굴을 찡그리던 이가 얼굴을 폈고 심지어 제도 한 구석에서 열병에 시달리던 아기가 조용히 잠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 불렀다.

황자는 많이지친 듯 성검을 힘없이 내렸다. 잠시 심호흡하던 그는 말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에서, 나와 여러분들이 직접 나서서 끝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자식들이, 후손들이 ‘파멸’을 겪게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용사들 중에서 제일 강한 제가 보장합니다.”

황자는 다시 성검을 땅에 짚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제국력 874년도 4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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