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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제 6 장. 분열 - 1 (34/82)



〈 34화 〉제 6 장. 분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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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날카로운 신호음에 기사와 기병들은 긴장한 채 말의 기수를 정면으로돌렸다.
마테스는 오른쪽 팔과 갑옷에 단단하게 고정된 랜스를 세운  기병들과 함께 트롯으로 행진하였다.

제국 기사단의 기본 무기는 검이지만, 양성소에서 기마술과 랜스, 요즘 들어서는 총까지 필수적으로 익혔기에 무기를 다루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마도공학소에서 생산한 마석들은 갑옷과 무기를 들어도 피곤하지 않도록 스트렝스와 비슷한 효과를 지속적으로 발생시켜주었고 마구(馬具)에는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마석과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마석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요즘 전장에서는 마석이 필수였다.

타락한 리자드맨, 늪지의 마족들로 이루어진 마왕군이 봉기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초반에는 제국군이 무리 없이 그들을 진압하는  했으나 늪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그들을 전부 진압하기는 힘들었고, 지루한 힘겨루기 끝에 전장에 변화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전장에 기분 나쁜 기운이 퍼지더니, 마법을 일절 사용할  없게 된 것이었다.
마법을 담은 총알은 그저 보통 탄환이 되어 리자드맨들의 비늘을 쉽게 뚫지 못했다.
마법의 지원을 받지 못한 제국군들이 점점 죽어나갔다.

그때를 노린 듯 마도공학소에서 전 병력에게 지급한 마석은 놀랍게도 마테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제즈릭 공녀의 작품이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보호막을 형성하는  마석 덕분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하였다.

 이후로도 차례차례 유용한 마석들이 전장에 배포되었다.
마력을 쓸 수 없는 자들도 사용할 수 있고, 마력을 채워 넣으면 재사용도 가능했기에 전장에서 무기력해졌던 마법사들은 요즘 마석에 마력을 채워 넣느라 전보다 더 바빠질 지경이었다.

5년 전 양성소 졸업반이던 마테스는 어느덧 기사단의 중추를 맡아 기병대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저 멀리 선봉에 선 장창병들이 창을 앞으로 세웠다. 견고한 창의 숲을 향해 일반적인 리자드맨보다 덩치가 배는  늪지의 마족들이 달려들었다.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진 장창이 비산했고 온몸에 창을 꽂은  달려들던 마족들이 총탄세례를 맞고 추욱 늘어졌다. 뒤쪽에서 몰려오던 마족들은 부러진 창의 틈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삐익-삑!

돌격의 신호가 떨어졌다.
곳곳에 기사를 선두로 한 쐐기형태의 기병들이 포진해있었다. 그 중에서도 중앙 최선두에 서게 된 마테스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몇 번이나 전장에 참가했지만 이때만큼 긴장되는 순간은 없었다.

자신들이 늦게 도착하면 아군이 죽어나간다. 벌써부터 보호막이 곳곳에서 전개되는 것이 보였다.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목숨의 위기 앞에서 저걸 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적군의 허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기척을 감추는 마석을 전개했던 기병들은 이제 거리낄 것 없이 속도를 캔터까지 끌어올렸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둔중한 진동에 마족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기병대의  끝에서 총을 몇 개씩이나 든 경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중기병의 앞쪽으로 치고 나왔다.
마석의 힘으로 파괴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총들을  뒤 미리 장전된 다른 총들을 번갈아 쏘는 방식으로 그들은  뿔이 달린 마수들로 기병을 막아보려던 리자드맨들의 의도를 무력화시켰다.
총탄에 관통당한 마수들이 픽픽 쓰러졌고 당황한 마족들이 내지른 창을 멀찍이 피하며 총기병대가 옆으로 빠지자 마테스는 함성을 질렀다.

“돌격!”

기병들의 랜스가 일제히 내려갔다.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쐐기가 되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마테스의 랜스에 오러가 일렁이더니 이내 불의 속성을 띠었다. 붉게 달아오른 랜스가 긴 잔상을남기며 선두의 덩치큰 마족을 꿰뚫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황자는 전장 후방의 천막 안에서 성검을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 전 어엿한 성인이 된 그는 성인식을 전장에서 치러야 했다. 용사의 운명을 타고난 이상 각오한 일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없었다.

멋모르고자기 잘난 맛에 살던 어렸을 때는 가족과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었지만 소중한줄 몰랐다. 황자는최근에서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사촌동생 아펠. 그 밖의 동료와 친구들.
그리고 리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고 믿으며 황자는 쓸쓸한 상념을 떨쳐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테이블 위를 더듬어 보랏빛을  검은 마석을 손에 쥐었다. 한참이나 마력을 쏟아 붓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보라색의 은은한 광채가 천막 안을 비추었다.

그는 지금 마석을 통해 전장을 조망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구현하기도 힘든 공간의 속성을 담은 마석은 아리에가 긴 여행을 떠나기 직전, 곧 전장으로 향하는 황자에게 준 선물이었다.
늪지의 마족들이 험난한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곳곳에서 펼치는 바람에 애를 먹던 제국군은 이 마석 덕분에 효율적으로 싸워나갈  있었다.

이미 전투는 종료되어 부상자들은 후방으로 옮겨지고 있었고 바닥에 널브러진 적들에 대한 확인사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소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지만 마족을 상대할 때는 어떠한 경우에도 방심하면  된다.

오늘의 대승도 마석을 통해 조망한 지형을 고려해 마족들이 상륙하기 좋은 위치만 남겨둔 뒤 그들을 천천히 몰아넣은 결과였다.
미끼이자 모루로 선택된 제국 5 보병단의 피해가 다소 있었지만 꽤나 많은 마족들을 물리쳤다. 4년간의 전투에 끝이 보였다.

이제 곧 저들의 대장이 나올 차례였다.

오늘 물리친 마족들은 그들의 원래 모습인 리자드맨보다 월등히 덩치가 크고 제국군을 흉내 내어 장창병 역할을 하는 마수까지 동원한 정예병이었다.
전투용 마석이 병사들에게 지급되면서 지금까지 늪지의 마족을 일방적으로 제압해왔던 제국군은 정예 마족들이 등장한 후 다소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오늘의 승리로 대부분의 정예병을 몰살시켰으니 저들을 이끄는 대장이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마족군을 이끄는 자를 사천왕 등의 시답잖은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적의 위명을 높여줄이유가 없었기에 지금은 대장이나 적장 정도로 부른다.

5년  늪지의 마족이 군세를 일으킨 후 아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장은 아직도 그 정체가 모호하다. 전장을 조망하는 마석으로도 찾지 못했으니 저 넓은 늪지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겁쟁이라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황자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묘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병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날개 달린 늪지의 마족’에 대한 소문이 마음에 걸렸다.
그저 뜬소문이기를 바라며 황자는 천막을 나섰다.

“와아-!”

젊은 기사  명이 병사들의 환호를 받고 있었다. 기병의 최선두에서 쐐기의 첨단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용맹한 기사의 활약에 감탄하던 황자는 그의 얼굴이 다소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보니 옛날에 공녀와처음 양성소에 갔을 때 봤던 자였다. 황자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황자전하를 뵙습니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챈 기사가 경례를했다. 뒤에 있던 병사들도 자세를 바로잡고 경례를 했고, 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소. 오늘 그대들의 전공은 내가 똑똑히 보았소. 내 실력이 미천하여 같이 전장에 서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군.”

마테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황자전하께서도 성검을 통해 저희와 같이 싸우셨습니다.”

황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애초에 성검의 힘이 아니었으면 마족의 정예병들은 지금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간단하게 논공행상의 절차를 부관에게 일러준 황자는 전투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우리는 과거에 만난 적이 있지.”

마테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네. 제즈릭 공녀님과 함께 양성소에 오셨었죠.”

마테스에겐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만 황자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그래. 그대는 공녀와 단 둘이 이야기하던 생도였지.”

그제야 마테스는 황자가 어떻게 수년  딱 한 번 만난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알아차렸다.
황자의 공녀에 대한 다소 병적인 집착은 무예를 제외한 일에 관심이 별로 없는 마테스조차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마테스는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전에 선수를 쳤다.

“예. 공녀님 덕분에 제가 추구하던 검의 실마리를 잡을  있었습니다. 역시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마테스는 황자는 자신에 대한 칭찬보다 공녀에 대한 칭찬에 더 약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말에 황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리에가 대단하긴 하지.”

딸 자랑하는 아버지를 보는 듯한 느낌에 마테스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는 병사들에게 간단한 공치사를 한  자리를 떴다.

한 차례 폭풍을 맞았던 기사와 병사들은 주변을 마저 정리하고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곧 보초를 서는 병사들을 제외한 모두가 오랜만에 즐거운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어둠 속, 제국군의 본영을 바라보던 날카로운 세로동공이 닫혔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보초가 그쪽을 향해 빛나는 마석이 박힌랜턴을 비추어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하얗고 커다란 깃털 하나만이 그곳에 날개 달린 무언가가 있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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