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제 6 장. 분열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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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대장은 눈앞의 인물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는 소녀는 누가 봐도 귀족적이었고, 위조가불가능한 신분증에는 그녀의 얼굴과 믿기 힘든 직함들이 주르륵 나열되어있었다.
그곳에 써져있는 직함들은 공녀라는 직위만으로 얻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그녀의 능력이 무척이나 다방면으로 특출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단순히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서툴게 대했다가는 마을에 어떤 피해가 갈지 몰랐다. 일단 마을의 책임자인 촌장에게 연락을 보냈으니 그가 직접 오거나 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시간을 끌어야 했다.
공녀가 마석을 찾아서 왔다는 말을 했기에 그는 다소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희귀한 마석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겨날 리는 없었고, 무엇보다 그를 비롯한 ‘동족’들이 가진 비밀에 가까웠기에 자연스레 공녀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공녀뿐만 아니라 희귀한 마석을 찾아왔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는 필수였다.
그들이 언급하는 마석은 동족의 성역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 성역을 지키는 것이 경비대장의 진짜 역할이었기에 그는 공녀가 마석을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마을에 마침 남는 마석이 있기만을 바랐다.
여차하면 무력이라도 동원해서 막아야했지만, 공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목격자가 많았다.
경비대장은 그것이 육체적인 능력이라기 보단 마법을 이용한 이동방법이라 짐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허리에 찬 단검과 겉옷 안쪽에 받쳐 입은 가죽옷을 보면 무장은 레인저나 검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직함에 새겨져있는 마탑 2종 자격증이 그의 눈에 걸렸다. 2종 자격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탑 출입증이 있는 것 자체가 뛰어난 마법사임을 입증했다.
마탑에 드나들 수 있는 실력의 마법사를 상대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없었다. 동족 중에서 뛰어난 젊은이들은 저번 전쟁에서 죽어나갔다.
그로 인하여 종족 전체의 운명이 기운 것을 생각하다보니 경비대장은 다소 울적해졌다.
“대장님?”
“아, 네! 죄송합니다. 요새 정신이 없어서…….”
정신을 차린 경비대장이 주변을 둘러보자 그와 공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게 차를 가져다준 병사는 이미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저는 사실 마석보다 이야기를 모으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공녀의 뒷말에 경비대장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버린 그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동족의 언어를? 어떻게? 이야기를 모으는 자라면, 육성하는 자를 말하는 건가?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지?’
경비대장의 등에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면 공녀는 도플갱어들이 성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고대의 언어를 사용했다.
온갖 종족으로 변하는 도플갱어들은 어렸을 때는 고대어를 쓰다가 성장하기 위한 영혼을 받으면 그 안에 새겨진 언어를 저절로 습득한다.
참고로 이 근방의 동족들은 거의 인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영혼을 나눠 받기도 전에 인간의 언어를 익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그걸 어떻게?”
“[인간의 말이 더 편하신가요?]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게요.”
공녀는 나름 순진한 미소를 지었지만 경비대장의 눈에는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빛 같이 보였다.
“마을에 사는 도플갱어 분들은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동굴로 안내해주시겠어요?”
- 내가 넌지시 물어보라 하지 않았는가?
분열이 그것도 못하냐는 투로 말하자 공녀는 살짝 입술을 삐죽였다.
- 하지만 이제 곧 벨로나랑 정보부 요원이 올 거 같단 말이야. 그 전에 이야기를 끝내 둬야해.
- 흐음.
분열이 납득한 듯하자 공녀는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
공녀의 말을 들은 경비대장은 매우 경계를 하다가 공녀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촌장에게 그녀를 데려가고 있었다.
분열의 희미한 기억에 경비대장은 없었지만 촌장에 대한 기억은 다소 남아있는 편이었다. 그는 도플갱어들의 대장 같은 존재였다.
어느덧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큰 마을을 책임지는 촌장의 집답게 2층으로 되어있는 제법좋은 집이었다. 공녀의 귀빈관과 크기가 비슷할 것 같았다.
경비병들이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문 앞에는 촌장이 나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흰 수염을 목 아래까지 기른 노인이었지만 무골의 기질이 엿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즈릭 공녀님.”
덩치만큼이나 큰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공녀 역시 목례로 답했다.
“안녕하신가요, 촌장님.”
공녀의 예의바른 인사에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촌장은 그녀를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띠더니 집 안으로 들어오기를 권유했다.
촌장의 집에 들어서니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노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공녀를 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어머나. 귀여운 아가씨께서 손님으로 오시는 경우는 드문데. 차를 대접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노부인이 주방으로 간 뒤공녀는 잠시 집 안을 둘러보았다. 평범하게 잘 사는 가정집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에는 노부부의 젊은 모습과 세 아이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 분열. 촌장이랑 부인은?
- 둘 다 도플갱어다.
- 도플갱어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는 도플갱어야?
- 아니. 도플갱어가 한 종족의 형태를 취하면 그 종족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저 아이들은 인간이야.
- 호오. 조금 놀랍네.
- 그것이 도플갱어, 분열의 백성이다.
분열의 말에 자부심이 잔뜩 느껴졌다.
어느새 공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던촌장이 놀란 눈으로 공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왕이시여.”
분열과 이야기하던 도중에 그의 기운이 밖으로 새어나왔던 것일까. 하고 당황하던 공녀는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머리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이마에 손을 가져가려던 공녀는 아무런 움직임을 취할 수 없었다는 것에 한 번 더 당황했다.
- 분열?
- 잠시만 빌리겠다.
분열이 몸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지난 5년여 동안 분열이 몸의 주도권을 가져간 적이 없었기에 신기한 감각과 함께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대는 바로 알아보는군.]
공녀의 입이 움직여 고대어를 늘어놓았다.
마치 예전에 분열의 기억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었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 가능했기에 공녀는 조금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마침 차를 끓여가지고 나오던 촌장의 부인은 무릎을꿇은 촌장과 공녀에게서 나오는 왕의 기운에 놀라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촌장의 옆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되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앉아서 하도록하지.]
[알겠습니다.]
촌장이 일어나 맞은편에 다시 앉았고, 부인은 침착하게 차를 따랐다.
[저번 전쟁이 끝난 다음, 마을에 살던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이 마을에 살던 이들 중 일부만 전쟁에 참여해서 다소 피해는 있었지만 아주 큰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촌장의 표정이 고통과 슬픔으로 어그러졌다.
[영혼 없는 세대가 벌써 두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다른 마을의 이야기꾼들이 전쟁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손을 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공녀의 얼굴 또한 촌장과 비슷한 표정으로 변하였다.
[이 마을의 이야기꾼은 없는가?]
[그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신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번 이야기꾼이 탄생해야할 때였지만 전쟁이 벌어져서…….]
거기까지 말하던 촌장은 부인이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아차하며공녀의 눈치를 살폈다.
마왕 분열에게 책임을 묻는 꼴이었지만 분열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어갔다.
[그래서 악순환이 지속되었군. 이야기꾼이 탄생하지 않으니 자칫하면 도플갱어들의 후대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겠지.]
[예. 아시겠지만 이야기꾼의 자질은 날 때부터 정해져있는지라 영혼을 주는 선임 이야기꾼이 없는 지금 저희들이 어떻게 할 방도가없습니다.]
도플갱어들의 영혼을 키워주는 이야기꾼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였다.
영혼이 성장하지 못한 채 몸만 성장한 도플갱어들은 다른 종족이 되지 못하고 그저 동굴에서만 살다가 자라지 못하고 짧은 삶을 마감한다.
성역에서 도플갱어가 계속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도플갱어들은 사람이 아니라 동굴에 사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가보겠다.]
분열의 선언에 촌장부부는 감격하여 책상에 머리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조아렸다.
다시 몸의 주도권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공녀는 상황을 정리했다.
이야기꾼은 아침에 분열과 나누었던 대화 중 영혼을 키워주는 이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현재 전멸한 상태. 이야기꾼이 영혼을 키워주지 않으면 도플갱어는 동물과 같은 상태로 동굴 속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다.
인간으로 따지면 아이는 어디선가 계속 생기는데 그들을 키워주는 부모가 없는 것과 같았다. 공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일행이 조금 있다가 마을에 올 거예요. 그들은 도플갱어나 저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니,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동굴…… 성역에 다녀와야 해요.”
촌장은 공녀의 인격이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공녀님. 성역은 마을에서 조금만나가면있으니 갔다 오신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공녀는 수긍하고 밖으로 향하던 중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보았다.
“아참. 혹시 마을에 150명 정도가 살 공간이 있을까요?”
사실 공녀는 지나치게 빠르게 마을에 도착했었다.
시트리아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지쳐있었던 벨로나와 키레아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마을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정찰의 마석으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놓았던 공녀는 이미 동굴에 도착해있었다. 알리바이는 이미 만들어놓았으니 약속한대로 경비대 쪽에서 시간을 조금만 끌어주면 된다.
도플갱어의 성역은 딱 봐도 자연동굴은 아니었다. 사실 동굴이라기 보단 굴을 파서 만든 인공 구조물 같은 모습으로, 부조가 새겨져있는 오래된 기둥이 입구를 받치고 있었다. 공녀는 촌장을 비롯한 도플갱어들과 함께 동굴에 진입했다.
동굴은 사방에 빛을 내는 마석이 일정 간격으로 박혀있어 따로 횃불이나 램프가 필요 없었다. 평소에도 잘 관리가 되는 듯 마석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했다.
길 안내를 맡은 청년을 따라 갈림길을 세 번 정도 지나자, 탁 트인 공동이 나왔다. 공동의 한쪽에는 가느다란 폭포와 연못이 마석의 빛을 받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공녀가 연못으로 다가가자, 그곳에는 사람 머리만한 회색의 알들이 깨어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짙은 보라색의 마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마석은…….”
공녀는 마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촌장과 함께 따라온 사람들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이 마을에서 나는 희귀한 마석입니다. 사실, 영혼을 받지 못한 도플갱어들이 마석으로 변한 것이지요. 저희로써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물건입니다.”
말을 마친 촌장은 마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마석을 보던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벌써 세 번째 영혼 없는 세대가 시작되었군요. 이대로 가다간 저희가 늙어서 죽은 뒤에 도플갱어라는 종족은 사실상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공녀의 마음도 답답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공녀의 눈에 알을 깨고 나오는 조그마한 도플갱어가 보였다.
슬라임이라는 마수를 아는가.슬라임은 걸쭉한 젤리 같은 촉감을 가진 동글동글한 몸체의 부정형 생물이다. 갓 태어난 도플갱어는 슬라임을 쏙 빼닮았다.
어린아이 머리만한 붉은색의 도플갱어를 손에 받아든 공녀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품으로 파고드는 도플갱어를 꼭 안아주었다.
“붉은 아이, 이야기꾼입니다!”
촌장이 공녀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이야기꾼의 운명을 타고난 도플갱어는 몇 세대 만에 나타날까 말까하는 귀한 아이였다. 이야기꾼 한 명이 수십 년간 활동하며도플갱어들을 키워내기 때문에 약 2년 주기인 한 세대에 이야기꾼이 많이 태어날 필요는 없었다.
저저번의 영혼 없는 세대에 태어난 이야기꾼은 동굴에서 죽었으니 앞으로 최소 몇 년 간은 이야기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촌장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야기꾼을 받아들고 공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분열이 말을 걸었다.
- 그대여. 지금부터 다소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 일방적인 이야기? 갑자기 무슨…….
순간 공녀는 아까와 같은 감각을 느꼈다. 온몸에서 감각이 멀어져가는 느낌과 함께 분열의 의식이 전면에 나섰다.
“내가 하던 ‘연구’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내가 몸을 포기하면 그대의 원래 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다가, 마땅한 몸을 새로 찾기도 어려웠지. 하지만 이제 새 몸은 찾은 것 같군.”
-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이 아이는 영혼이 부족해서 이대로 두면 죽는다. 왕인 내가 마땅히 책임지고 그 영혼이 되어주어야겠지.”
분열은 공녀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그려냈다. 분열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나무 같은 테르한의 영혼 아래 훌륭하게 성장한 아리에의 영혼이 있었다.
그 사이에 뿌리내렸던 자신의 영혼을 들어낸다. 테르한과 아리에의 영혼이 보다 가까워졌고, 자신의 영혼은 자연스레 그곳에서 밀려났다.
분열은 아리에의 영혼이 충분히 자란 뒤 테르한의 영혼의 중심을 잡아주던 자신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분열은 섞여있는 영혼을 분리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어 공녀의 몸에서 빠져나갈 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영혼이 있는 애먼 몸을 빼앗기는 힘들었다. 테르한의 원래 몸에 들어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영혼이 개조당한 그 몸체는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랐다.
무엇보다 외형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분열은 정신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고 웃음을 짓다니.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지난 수년 동안 아리에와 테르한에게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었다.
분열은 그들에게 지식을 주었고, 그들은 분열에게 감정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과 헤어져야 할 때였다.
“안녕. 무사히, 다시 만날 날까지.”
분열의 영혼이떨어져 나와 품 안의 도플갱어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공녀는 몸의 감각을 되찾았다.
“분열!”
품 안에서 도플갱어가 바동거렸다.
공녀는 그것을 꼭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주었다.
영혼의 상실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자신을 지탱하던 한쪽 기둥이 사라진 것을 느끼며 아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마”
“응?”
아래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공녀가 시선을 돌려보니, 조그마한 도플갱어가 의태를 시도하고 있었다.
“울지 마, 아리에.”
제대로 된 발성기관 부터 만들어낸 그것이 처음 한 말이었다. 이미 눈물이 쏙 들어간 공녀는 신기한 눈으로 도플갱어의 의태를 지켜보았다.
진흙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바닥에 넓게 퍼져있던 붉은색의 슬라임에서 조그마한 머리가 쑤욱 올라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떠올려보니 아리에의 어렸을 적 기억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윽고 힘겹게 몸체를 일으킨 분열은 온몸이 붉은색으로 되어있는 5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손 한 번만 잡아줘.”
“으, 응.”
헤어짐을 안타까워한지 1분도 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낸 분열의 모습에 공녀는 당황했다. 이럴 거면 왜 다시는 만나지 못할 분위기를 연출한 걸까.
공녀의 손을 잡은 분열이 눈을 감더니 이내 인간 어린아이 같은 피부색을 띠기 시작했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카락, 붉은 눈을 가진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에게 공녀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둘러주었다.
“나도 사실 반신반의했어. 영혼을 분리하는 것까지는 되었는데 몸에 정착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
“됐어. 말해줘도 이젠 몰라.”
공녀에게 영혼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동안은 분열이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이미지를 그려주었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했으니 앞으로도 영혼에 대한 것은 알기 힘들 것이었다.
공녀의 말에 분열은 어린애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이래도?
- 아, 깜짝이야.
평소와 같이 머릿속으로 말을 건 분열에게 깜짝 놀란 공녀는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 내 영혼의 조각을 남겨두었어. 통신용 마석과 비슷한 역할을 할 거야.
- 오호. 거리는 어느 정도?
- 누가 연구자 아니랄까봐……. 대륙 내에 있으면 어디서든 연락이 가능해. 대신 예전처럼 생각이 공유되는 건 아니니까 나를 떠올리며 말을 걸어야해.
- 알았어. 그래도 마음이 훨씬 편해지네.
공녀와 분열은 마주보며 웃었다.
분열이 들어간 도플갱어가 갑작스레 성장하는 것을 놀란 눈으로 보던 마을사람들을뒤로한 채 공녀는 분열을 안아들고 동굴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