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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제 6 장. 분열 - 8 (41/82)



〈 41화 〉제 6 장. 분열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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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공녀는 벨로나, 키레아와 함께 주변의 식당을 찾아갔다.

어제 공녀가 방에서 분열과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벨로나와 키레아가 알아본 바로는 마을 내 비축되어있는 식량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애초에 매번 겨울을 불안하게 날 정도였으면 마을은 진즉 사라졌을 것이다.

다만 그것들도 전부 돈이기에 급하게 마을을 떠나느라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챙기지 못한 다크엘프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내가 대금을 지불하면 시트리아 일행이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겠네.”

“그렇습니다, 공녀님.”

키레아의 말에 공녀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내일 모레 도착할 식량이 있지만 이 추위에 굶고 있을 다크엘프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식량을 전달해주어야 한다. 테르한이나 아리에나 며칠 굶어본 적이 있었기에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제국 차원에서 지원을 한 번 했기 때문에  이상은 개인적인 영역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용마연의 자금 일부를 가져다  수 있는 공녀에게는 돈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녀는 황자에게 빚을 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기에 그 자금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다.

도플갱어의 마석은 희귀마석이라 가격이 비쌌는데 그만큼 물량이 적을 것이라 판단해 돈을 많이 가져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영혼 없는 세대가 두 번이나 진행되어서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마석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것들을 전부 구입하는 것도 빠듯했다.

“일단 외상으로…….”

“저희도 외지인인데다 이제  여기를 떠날 텐데 외상을 쉽게 해줄까요?”

공녀는 품속에서 마석주머니를 꺼내 생활에서  만한 마석을 한주먹 집어 들었다.

“그럼 이걸 팔아서…….”

벨로나가 고개를 저었다.

“허가되지 않은 마석의 유출은 제국의 보안법에 저촉됩니다. 특히 아가씨가 갖고 계신 거는 대부분 시중에 유통되지도 않은 것들이잖아요.”

벨로나의 말에 공녀는 억울하다는 듯 구시렁거렸다.

“딱 몇 개 파는 거 갖고 그래.”

“안됩니다.”

단호한 벨로나의 말에 공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얇고 딱딱한, 명함 비슷한 물건을 꺼내들었다. 곳곳에 박혀있는 마석이 사용자의 신분  자산상태와 동기화 되어있는 물건이었다.
공녀는 눈물을 머금고 그것을 키레아에게 건넸다.

“12개월 할부로 식량들을 준비해주세요.”

시트리아는 갑작스레 찾아온 공녀 일행을 맞이하며 무척이나 죄송스러워했다.
손님이 오면 응당 무언가를 대접해야하건만 외려 공녀가 식량을 추가로 가져다주었고, 그녀가 주었던 스프나 보존식을 도로 내오는 것도 우스운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크엘프 여러분들은 당분간 저 마을에서 머무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공녀의 말에 시트리아가 조심스레 반문했다.

[마을에서 저희를 받아줄까요?]

며칠 전에 찾아갔을 때도 정중한 태도로 출입을 거절당했기에 시트리아는 아무리 공녀가 외국의 공주님이라지만 자신들을 마을에 들일 수는 없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지금 협상중이에요.]

[아, 다른 일행 분이 계신가보네요.]

[네. 가장 믿음직한 친구죠.]

엘프어를 다소 알아듣는 키레아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행이나 친구라는 단어가 들렸는데 자신들을 얘기하는 게 아닌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현재 촌장집에서는 어제 논의하던 이야기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 분위기는 어때?

- 나쁘지 않아. 네가 마을에서 돈을 많이 쓴데다가 추가 지원이 온다니까 어제 조금 반대하던 사람들도 납득했어. 아, 지금 막 다크엘프들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끝났어.

- 알았어.

잠시 먼 곳을 바라보던 공녀가 웃으며 ‘마을로 가죠.’라고 말하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가씨, 마을이랑 협상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괜찮아. 이야기는  끝내뒀어. [시트리아님도 다크엘프 여러분들과 마을에 갈 준비를 해주세요.]”

[네? 아, 준비하겠습니다.]

시트리아가 뒤에 서있던 다크엘프에게 명령을 내리자 식량을 나눠받은 다크엘프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들 겉으로 보기에는 20대를 넘어보이지는 않았다.

[다크엘프 여러분들은 겉으로 보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드네요.]

[인간 여러분은 나이에 따라 외형이 바뀌니까요. 저희가 보기에는 그게 더 신기하지만 인간 분들이 보기에는 그렇겠네요.]

조그마한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동물 가죽 몇 개를 챙긴 시트리아가 대답했다.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의 연령은 다양한 편인가요?]

[사실 다들 어린 편이에요.]

그 중에서 제일 어려보이는 시트리아의 말에 공녀는 절로 나올 뻔한 미소를  참았다.
그러고 보니 시트리아는 나이에 관계없이 다른 다크엘프들에게 정중히 대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모든 대화를 그녀가 주도하는 것을 보면 분열의 짐작대로 시트리아가 그들의 대표인  같았다.

[시트리아님은 이들을 이끌고 계시죠?]

[네. 부족한 몸이지만 족장인 오라버니가 이상한 기운에 잠식되는 바람에…….]

시트리아의 정체를 알게 된 공녀는 분열과 정보를 공유하였다.

- 시트리아는 다크엘프 족장의 여동생이었어.

- 그러면 응당 내가 직접 맞이해야겠지.

- 아직 네가 전면에 나서기는 조금 그렇지 않아?

- 아니. 애초에 이곳은 도플갱어들이 세운 마을인데다 이곳의 인간들 역시 도플갱어와 혈연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나는 더 이상 마왕이라 부르기 힘들지만, 도플갱어들을 이끄는 왕으로 인정받았어. 내가 사실상 마을 대표인 셈이지.

- 으음. 나랑 얼굴이 너무 똑같아서 문제가 생길  같은데.

어제 동굴에 같이 갔던 도플갱어들은 분열이 공녀를 본떠서 의태를 한 것을 보았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마을사람들에게도 납득할만한 설명은 가능했다.
도플갱어가 남의 외형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면에서나 심리적인 면에서나 다소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분열은 일반적인 도플갱어가 아니었고 공녀와 수년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

도플갱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부인인 벨로나와 키레아, 다크엘프들이 분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였다.
벨로나나 키레아를 회의에서 굳이 배제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한데다 시트리아는 인간이 나이에 따라 외형이 변하는 것이 티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열과 공녀의 생김새가 지나치게 유사한 것에 의문을 표할 것이 분명했다.

- 괜찮아. 대책을 마련했으니까.

- 으음. 그렇다면 믿고 간다?

- 그래. 지원 대책이나 잘 정리해둬.

분열의 대답을 들은 공녀는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다크엘프들을 지버트 마을로 안내했다.


촌장의 집 옆에 있는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건물.
시트리아와 부관 다크엘프 한명, 공녀와 일행 두 명, 촌장과 마을 유지를 비롯한 분열……로 보이는 누군가까지 제법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입만 살짝 드러난 가면을 쓴 분열의 모습에 공녀는 무심코 딴죽을 걸 뻔했다.

- 대책 마련했다며?

- 멋진 가면이지?  마을 전통 공예품이야.

공녀와 머릿속으로 대화하면서 분열은 태연하게 다크엘프의 언어로 말을 꺼냈다.

[어서 오시게나. 멀리서 온 손님들을 맞아 기쁘다네. 나는  마을의 수장인 레이아라고 한다네.]

[따뜻한 환대 감사드립니다, 레이아님.]

시트리아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꾸벅 절을 했고, 분열의 말에 공녀는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 레이아는 또 뭐야?

- 네 이름을 분해해서 다시 조합했지.

- 내 이름의 애너그램?

- 그래.

공녀의 복잡 미묘한 심경을 모른 체하며 분열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네. 마침  마을에는 비어있는 집들이 제법 있지. 불편하지 않다면 그대들의 마을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이곳에서 살지 않겠나?]

분열의말에 시트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크엘프의 언어를 잘 모르는 벨로나와 키레아가 움찔했지만 이내 시트리아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을 보고 그녀들은 안도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분열이 조용히 촌장에게 뭐라고 하자 촌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엘프 여러분들이 약 150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우리 마을의 인구가 줄어서  집이 30여 채가 있으니  채에 5명 정도 사는 게 불편하지 않으면 충분히 수용 가능합니다.”

공녀가 촌장의 언어를 다크엘프 언어로 번역해주자 시트리아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분열과 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크엘프들을 살게 해주는 대신 제국 차원에서  마을에 지원을  거예요. 직접적으로 내일이나 모레 즈음 식량들을 무상으로 지원해서 다크엘프들의 정착을 도울 것이고, 마을에서 보유중인 마석을 기존의 가격 그대로 전량 매입할예정이에요. 마을에서는 다크엘프들을 노동력으로 쓰면서 차차 식량을 쌓거나 기반시설을 다질 수 있게 되겠지요.”

분열은 차치하고 촌장이나 마을 유지들도 그럭저럭 납득했다.
도플갱어 마석은 희귀하긴 했지만 영혼 없는 세대가 두 세대나 진행되면서 마을창고에 쌓여있을 정도로 많았다. 마석은 희귀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기존의 가격대로 매입을 한다면 마을의 재정 상황이 매우 좋아질 것이었다.

당장 지금도 계속해서 마석이 나올 뻔한 상황이었지만 이제 이야기꾼인 분열이 생겼다.
어젯밤 분열이 한 번의 이야기로 어린 도플갱어들의 영혼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영혼 없는 세대의 문제도 해결되었고, 그들의 구심점인 왕이 생겼으며, 지원까지 받으면서 노동인구까지 늘어난 지버트 마을 사람들은 상당히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시트리아와 다크엘프들도 굶으면서 떠돌다가  마을에 정착할  있었고 식량 지원까지 받아  이상 굶주릴 필요가 없게 되어 안심하고 있었다.

다만 벨로나와 키레아는 너무 이야기가 빨리 끝났고 다크엘프의 언어로 주로 대화가 오갔기에 상황파악이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촌장을 제치고 제일 상석에 앉은, 어린이라고 하기도 힘든 꼬마를 보고 벨로나는 의문이 들어 공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가씨. 마을 대표는 저 촌장님이 아닙니까?”

“아니. 저기 앉아있는 아이가  마을의 대표야. 봐봐. 제일 상석에 앉아 있잖아.”

벨로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럴듯한 추론을 했다.

“혹시 무슨 귀족 같은 사람인 건가요? 이 근방을 다스리는 영주라든지?”

“음. 맞아. 비슷한 거야. 여기는 외국인데다 산  마을이라 뭐랄까. 주술? 민간신앙? 그런 게 좀 강하거든.”

에둘러 말하는 공녀의 말에 벨로나는 납득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을 주술사 같은 분이군요.”

확실히 붉은 머리에 붉은 옷을 로브처럼 걸치고 하얀 베이스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가면을 쓴 분열, 레이아는 주술사라고 소개하면 누구나 믿을 수 있을법한 외형이었다.
벨로나와 키레아는 공녀가 노린 바에 따라 훌륭히 착각해나갔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나이가 찰수록 마력의 보유량이 늘어나 어린 나이에 뛰어난 역량을 지닌 마법사는 찾기 힘들었다. 그와는 달리 주술은 나이에 상관이 없는지라 어린아이가 마을의 대표 주술사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대화는 끝난 겐가?”

“물론……이죠, 레이아님.”

버릇처럼 반말을 했다가 황급히 말을 돌리는 공녀를 본 분열은쿡쿡거리며 작게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분열은 회의의 종료를 선언했다. 분열을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공녀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 혹시 키  컸어?

- 응. 식사를 하면 할수록 성장하는 것도 너랑 비슷하더라고. 나는 마력이 쌓이는 대신 몸이 성장했지만.

분열은 어느새 여덟  정도 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가면을 벗고 머리를 정돈하면 처음 아리에의 몸으로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후, 답답하다.”

공녀 일행이 다크엘프와 자세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사이 분열은 갑갑했던 가면을 벗었다.
큼직한 눈망울의 귀여운 얼굴을 드러낸 분열은 나른한 눈으로 회의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촌장과 마을사람들도 자리를 비우고 혼자가 된 분열은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어린 도플갱어의 몸은 금방 지치곤 하였다.

끼익

그래서 회의실로 누군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녀가 두르고 있던 숄을 두고 가는 바람에 그것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벨로나는 혹시나 싶어 회의실에 들어왔고, 그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람에게 저절로 시선이 가게 되었다.

“어?”

회의실 상석에는 어린 공녀와 판박이인 소녀가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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