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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제 7 장. 태동 - 1 (42/82)



〈 42화 〉제 7 장. 태동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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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에, 빨리 회의실로 와줘.

갑작스런 분열의 호출에 다크엘프들과 함께 그들이 살 집을 둘러보려던 공녀는 시트리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키레아가 따라오려 했지만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촌장 쪽과 식량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여 떨어뜨려놓았다.

“부, 레이아?”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저도 모르게 분열이라 말할 뻔 해 고쳐 말하던 공녀의 눈에, 벨로나에게 결박당한 분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벨로나는 의자에 앉아 분열을 자신의 무릎위에 앉혀놓고 꼭 끌어안은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벨로나? 레이아님은 왜…….”

말하던 도중 분열의 가면이 벗겨져있는 것을 알아차린 공녀는 체온이  도 정도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식은땀  방울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공녀는 변명거리를  가지 생각해냈다.

“아가씨의 어린시절과 판박이네요. 참 신기하죠?”

벨로나는 인형놀이를 하듯 분열의 손을 조물거리며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작 각하께서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실 분도 아니고요. 몸이 약하신 마님의 아이일 리도 없으니,  분과 아가씨는 혈연관계가 없는 남남이겠죠.”

벨로나는 어딘가 분석하는 듯한 눈동자로 분열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분열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공녀에게 계속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빨리 벨로나를떼어놓아줘! 앗, 그런 곳을 만지면!

조금만 참아. 벨로나가 널 위협하려는 건 아닌  같으니까.

분열이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왔지만 공녀는 애써 무시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변명거리가 생겨났으나 벨로나가 워낙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주어 조금만  지켜보기로 했다.

“저는 아가씨의 비밀경호를 맡은 뒤로 용사마왕연구소에서 제법 많은 양의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아가씨의 목적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있지요.”

벨로나의 눈빛이 신기한 것을 보는 그것으로 바뀌었다.

“레이아님은 아가씨를 흉내 낸 ‘도플갱어’로군요. 아, 발음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공녀는 한숨을 쉬고는 변명거리를 두어 개로 간추린 뒤 대답했다.

“맞아. 그 아이는 도플갱어고, 나를 흉내 내어 의태했지.”

“굉장하네요. 저는 아가씨가 어려진줄 알았어요. 머리카락의 색깔은 다르지만, 마력각성자의 특징까지 고스란히 빼다 박았네요.”

“어, 마력각성자라는 것은 어떻게 안 거야?”

분열의 비밀이 허무하게 밝혀져 공녀가 놀라는 와중에 벨로나는 구속하고 있었던 분열을 풀어주었다.
양손으로분열의 겨드랑이쪽을 받쳐 올린 벨로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공녀에게 양도했다.
공녀는 자연스럽게분열을 안아들었다.

“아가씨도 아시듯, 제 삶의 대부분은 아가씨를 위해 쓰여 왔습니다. 마력각성자와 일반인의 특징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훤히 꿰고 있어요. 레이아님은 거의 아가씨 수준의 마력각성자네요. 마력이 신체를 쉽게 통과하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마력 사인을 남기고 있으니.”

벨로나의 설명에 공녀는 분열과 마주보았다. 분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공녀는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이 아이에 대한 걸 상부에 보고할 거야?”

마력각성자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공녀가 이렇게 호위와 감시를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 제일로 손꼽히는 것은 마력각성자라는 점이었다.
새로운 마력각성자가 등장했으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제국의 어느 기관에든 보고하는 것이 제국민의 의무였다.

자신의 의무를 행할 것이냐는 공녀의 질문에 벨로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마력각성자를 찾는 이유는 마왕의 낙인을 찾기 위해서잖아요? 하지만 레이아님은 아가씨를 따라 의태하여서 마력각성자가 되었으니 마왕의 낙인이 있을 리 없죠. 그리고 아가씨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니까 레이아님을 자신과 똑같이 의태시키신 것이겠고. 저는 제국의 기사이긴 하지만 아가씨의 뜻을 우선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공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은 공녀는 벨로나가 했던 것처럼 분열을 무릎에 앉혀놓았다.

“불량 기사님이네.”

장난기 섞인 공녀의 말에 벨로나는 미소를 지었다. 표현과는 달리 벨로나에 대한 신뢰가 담긴 말이었다.

공녀는 혹시 몰라 테이블 위의 가면을 들어 분열에게 씌워주었다. 아가씨가 두  있는 느낌을 받던 벨로나는 조금 아쉬워했고, 그런 벨로나를 보며 분열은 공녀에게 착 달라붙었다.

- 나 벨로나가 조금 무서워졌어.

사실 아까 벨로나가 분열의  상태를 점검할 때 이곳저곳을 만져댄 것은 보다 꼼꼼한 점검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벨로나의 사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평생을 아가씨만을 모시고 살아온 그녀에게 공녀와 똑 닮은 조그마한 아이는 참기 힘든 귀애(貴愛)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 실례 많았습니다, 레이아님.”

한참이나 늦은 벨로나의 사과에 분열은 입술을 삐죽였다.

“참 빨리도 말하는구나. 아리에의 체면을 보아 이번은 넘어가주겠지만, 다음부터는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거라.”

벨로나가 억장 무너지는표정을 지었지만 분열은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몸에 따라 성격도 어린아이처럼 변한 걸까 생각하며 공녀는 벨로나에게 말했다.

“레이아는 보기보다 정신연령이 높아. 마냥 어린아이처럼 대하지는 마.”

“아…….”

벨로나는 크게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짝 훔쳐보던 분열은 한숨을 쉬고 벨로나를 다독였다.

“어쩔  없지. 나를 아리에처럼 대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설마 아가씨의 몸을 함부로 만져대지는 않겠지?”

분열의 말에 벨로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네. 물론입니다, 작은 아가씨.”

“작은…….”

분열이 얼빠진 소리를 내자 공녀는 고개를 돌리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공녀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분열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그냥 아가씨라 불러도 된다.”

벨로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게 아가씨는 한 분이십니다.”

졸지에 공녀의 동생취급 받게  분열은 살짝 삐져서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

- 그나저나 아가씨라는 호칭은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네? 나는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닭살이 돋았는데.

 안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니까. 게다가 나는 애초에 여성체에 가까웠으니 크게 이상한 기분도 안 들어.

뭐? 너 여성체였어? 처음 듣는 얘긴데.

- 원래 마왕에 성별은 따로 없지만, 내 역할은 다른 마왕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이 돌아올 곳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이었거든. 어떤 징그러운 놈이 나를 표현하기를 ‘모든 마왕의 어머니이자 반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분열은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어머니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경애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뒤쪽에 굳이 반려를 붙인 것에서 녀석의 소유욕이 드러났다.

- 그 징그러운 놈은 누구야?

- 파멸.

분열의 말에 공녀의 기분도 덩달아 안 좋아졌다.
마치 오랜 숙적이 자신의 가족을 다소 변태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분열을 안고 있던 손에 힘을  공녀는 회의장으로 시트리아가 불쑥 들어오자 황급히 분열을 내려놓았다.

[레이아님. 공주님. 저희 이사가 전부 끝나서…… 어머나.]

분열이 공녀의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것을  모양이었다. 시트리아는 살짝 미소를 짓다가 분열의 가면 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려 공녀를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레이아님도 고귀하신 분이시네요.아니, 공주님이 갖고 계시던 왕의 기운이…….]

거기까지 말하던 시트리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에 공녀와 분열의 관계를 알아챈 시트리아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벨로나에게조차 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공녀에게 속삭였다.

[저 분이 진정한 ‘고귀하신 분’이시군요. 공주님은 저 분을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고.]

[상황 파악이 빠르시네요. 그나저나 다크엘프 분들은 다들 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가요?]

[아뇨. 저는 세계수를 모시는 신녀의 후예인지라 그런 종류의 기운에 민감하답니다.]

아까 벨로나에게 둘러댔던 분열 주술사 설의 실제 사례가 눈앞에 있었다. 시트리아의 입단속만 하면 공녀와 분열의 관계가 이 이상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저와 레이아는 다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사이에요. 주로 현재 세계 곳곳을 잠식하고 있는 마의 기운의 주인을 몰아내기 위한 동맹 같은 것이죠.]

[마의 기운의 주인……. 그 정체를 알고 계신가요?]

시트리아는 투지가 담긴 눈으로 공녀를 보았다. 그녀가 원래 살던 마을이 마의 기운에 침식당했기에 그 주인은 시트리아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초대 마왕.]

분열이 담담하게 내뱉은 단어에 시트리아의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공녀는 시트리아의 손을 잡았다. 눈물 맺힌 눈동자로 공녀 쪽으로 시선을 향한 시트리아에게 공녀가 말했다.

[초대 마왕은 절망적일 정도로 강해요. 앞으로 5년 내에 지상에 강림할 예정이죠. 그때를 대비해서 종족을 초월해서 모두의 힘을 모으고 있어요.]

잠시 숨을 고른 공녀는 분열을 살짝 돌아보았다. 분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크엘프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주세요. 파멸이 강림하면 세상 어디도 안전하지 못해요. 그러니 이곳을, 레이아를 지켜주세요.]

시트리아는 눈을 슥 훔치고는 결의를 다진 눈을 하였다.

[저희 마을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파멸을 물리친다면. 반드시.]

시트리아와 공녀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벨로나는 무언가 뜨거운 전우애가 오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공녀와 시트리아가 전우애를 다지던 그때, 대륙을 가로질러 저 남쪽에서 황자는 다소 당황스러운 보고를 받았다.

“병사들이 실종되고 있다고?”

패전 뒤 실종이면 탈영했거니 하겠지만 승전 중에서도 대승을 거둔 뒤 병사들이 실종된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예. 한밤중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사라졌습니다. 그저께와 어제, 모두 세 명의 병사가 실종되었습니다.”

어제 왜 바로 보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부관을 다그치려던 황자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애초에 사상자와 부상자들이 혼재되어있고 낙오된 자들도 돌아오고 있는 지금은 재빠른 인원파악이 어려웠다. 쓸데없는 다그침은 사기의 저하를 가져올 뿐이었다.

“단서는 있나?”

“예. 결정적인 단서가 있습니다.”

보고를 올리던 부관이 뒤에 손짓을 하자 뒤에 서있던 병사 중 한명이 황자의 앞에 있는 탁자에 무언가를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이건…….”

족히 두 뼘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하얀색 깃털이었다. 깃털을 집어든 황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미미하게 느껴지는 마력과 억세 보이는 이음부위, 부드러운 바깥깃과 힘을 주어도 구부러지기만 할 뿐인 유연한 깃가지.
황자는 이 깃털을 가진 무언가가 거대하고 마력을 지녔으며 소리 없이 먹이를 낚아채는 종류의 새가 아닐까 추측하였다.

“리자드맨들을 먹이로삼을 정도로 거대한 새가 있을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도 이 정도로 거대한 새는 알지 못한다더군요.”

제국군이 머무는 본영에는 안내를 위해 자진해서 따라온 리자드맨들이 몇  있었다. 그들마저 모른다는 것은 이 사건이 이곳에 사는 생물의 정상적인 먹이활동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날개를 지닌 늪의 마족…….”

황자는 얼마 전에 떠돌던 소문을 기억해냈다. 한밤중에 거대한 날개를 가진 늪의 마족을 보았다는 몇몇 병사들의 말에 잠시 소란이 있었으나 이내 헛소문이라고 판별이 났었다.
하지만 소문이 괜히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자는 부관과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불침번은 다섯 명씩 뭉쳐서 선다. 기존의 무장에 그물을 추가해라. 그물이 없으면 인근 어촌에서 수배해. 장군께선 병사들이 밤에 쓸데없이 막사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황자전하.”

사령관과 부관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막사를 나서자, 황자는 성검에 손을 대었다. 하지만 그것을 뽑지는 않았다.

‘늪의 마족의 대장이 드디어나선 모양이군.’

황자는 잠시 무표정하게 있다가 입가를 살짝 올렸다.

‘전쟁을 끝낼 때다.’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전쟁을 끝내고 리에와 조용한 곳으로 놀러갈 계획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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