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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제 7 장. 태동 - 2 (43/82)



〈 43화 〉제 7 장. 태동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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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공녀는 분열과 함께 도플갱어의 성역으로 향했다.

벨로나와 키레아가 따라오려고 했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외부인의 출입은 곤란하다며 그들을 막아섰다.
공녀 역시 외부인이었지만 이미 마을에서 도플갱어의 구원자 비슷한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에 성역의 입장을 허락받았다. 공녀는 벨로나에게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성역에 진입했다.

길안내를 맡은 마을사람 몇 명과 함께 성역의 제일 깊은 곳으로 들어온 공녀와 분열은 어제까지만 해도 바닥에 굴러다니던 알껍데기들이 말끔히 치워져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녀는 일부 난생 동물이 자신이 깨고 나온 알의 껍데기를 먹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어제 성역의 곳곳에 있던 알들이 대부분 없어져있었다.
분열은 연못 앞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이리 오거라, 아이들아.]

사람인기척에 연못 등지에 숨었던 새끼 도플갱어들이 이야기꾼의 기운을 느끼고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대부분 검은 슬라임을 닮았는데, 중간 중간 독특한 색깔을 띠는 녀석들이 있었다.

[저 푸른 아이는?]

공녀가 선명한 푸른색을 띠는 도플갱어를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고대어를 하자 마을사람들이 잠시 놀라더니 순순히 대답했다.

[강한 영혼을 받을 수 있는 아이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자신의 역량에 알맞은 이로 화(化)하는 것이 우리 도플갱어인데, 푸른색이 짙을수록 그 역량이 높아집니다. 저 정도면 이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인간으로 치면 제국 기사단원 정도까지는 가능할 정도입니다.]

[와. 그 정도예요?]

테르한이었던 시절과 공녀의 몸으로 지내는 수년까지 합치면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제국 기사단 양성소의 생도들과 함께 해오면서 그 존재가 다소 흔해 보이긴 했지만, 사실 제국 기사단은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세상의 중심인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에서 검으로 먹고 사는 직업 중 일반인이 오를  있는 제일 높은 직업이었다.
재능, 노력, 행운이 전부 따라야 양성소 입소라도 가능한 것이 제국 기사단이었다.

공녀는 어쩐지 반가운 마음에 파란 도플갱어에게 팔을 벌렸다.
분열이 머물렀던 몸이어서 그런지 아무런 경계 없이 공녀의 품에 안겨오는 파란 도플갱어를 잠시 안고 있던 공녀는 분열에게 도플갱어를 건네주었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강한 영혼이 깃들 수 있대. 그런데 애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  거야?”

파란 도플갱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잠시 생각하던 분열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지. 어제 이것저것 알아본 바로는,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만큼 영혼을 나누어줄 수 있다더군.”

분열의 지식욕은 왕성했지만 마왕인 만큼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얼마나 알까 공녀는 살짝 의문이 들었다. 공녀는 분열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목을 가다듬던 분열이 노래하듯 읊조렸다.

[그것은 마신의 편린인 마지막 마왕의 사명. 타락한 세상의 원죄를…….]

“야, 잠깐. 레이아. 잠깐 멈춰봐.”

몇  전 어디선가 들었던 익숙한 도입부에 공녀가 기겁하며 분열을 저지했다.
한창 자랄 아이들에게 마신과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괜히 악영향이 갈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질서정연하게 정렬해있던 도플갱어들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개중에는 겁을 먹고 연못으로 되돌아가려는 아이도 있었다.

 모습을 본 분열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제일 강한 녀석들이 나오는 이야기인데.”

수 년 간을 함께 해왔지만 근본적인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공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군이라도 키울 일 있어?”

공녀의 말에 마을사람들이 뜨끔했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분열은 잠시 고민하더니 공녀를 보았다. 똑같이 생긴 붉은 눈동자들이 시선을 주고받았고, 분열은 다른 이야기를 골랐다.

“어쩔 수 없네. 그래. 마왕보다  강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분열이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방금은 농담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품에 있던 음량 확대 마석까지 꺼내든 분열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을 교란시키던 두 번째 마왕이사라지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성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겨났다. 성검을 처음 발견한 이는 당시 조그마한 왕국에서 살던 용기 있는 소년…….]

아리에의 몸으로 읽었던 용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이야기와도 같지 않았다.
동화책, 역사서, 각종 기록, 연구소의 기밀들까지 용사와 마왕에 관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던 공녀의 지식이 분열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어 새로운, 어쩌면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새끼 도플갱어들은 분열의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주위의 마력이 안정되는 것은  수 있었다. 분열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에 공녀는 왠지 모르게 뿌듯한 심정이 되었다.

성역 밖으로 나오는 길. 동굴 안쪽에 있어서 그런지 시간 감각이 조금 이상했지만 배가 고픈 것을 보니 슬슬 점심시간이 될 무렵인 것 같았다.

공녀는 지친 분열을 안아든 채 밖을 향하고 있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그냥 말을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하여 영혼의 양식을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분열은 거기에 더해 마력 또한 정제하여 도플갱어들의 몸에 주입해주고 있어서 잠깐의 시간동안에도 금방 지쳐버리곤 하였다.

여덟  남짓의 외형을 한 분열은  팔로 안기에 다소 몸집이 컸다.
하지만 공녀는 무게에 한해서는 건장한 성인 남성도 쉬이 들지 못하는 것을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였고, 분열의 균형감각 역시 탁월하여 자연스럽게 공녀의 팔에 앉은  목에 매달려있을 수 있었다.

“이야기꾼은 얼마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거야?”

걷다보니 조금씩 아래로 쳐지는 분열을 추스르며 공녀가 질문했다. 분열은 어제 촌장에게 들었던 기존의 이야기꾼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사흘에 한 번 정도 꼴로 한 달 정도면 된대. 지금은 아이들이 굶주렸으니 며칠간은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지.”

공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기는 힘들었지만 굶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다크엘프들을 위한 식량 지원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지금은 공녀가 사비로 마을에서 구입한 식량으로 버티고 있으니 하루라도 늦어지면 공녀의 돈이 추가로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할 일도 딱히 없는데 아래쪽 마을까지 가볼까.’

혹시 이곳의 다크엘프들을 쫓아 숲의 마족들이  지도 모르고, 식량을 급히 구하느라 호위대가 부실할지도 몰랐다. 켄스웰 왕국의 치안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란 것이 있었다.

공녀가 성역을 나오자 벨로나와 키레아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 옆에는 처음 보는 중년 남성이 서있었다.
키레아는 긴장한 목소리로 그를 공녀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공녀님. 이쪽은 맥도우, 저의 정보부 켄스웰 지부장님입니다.”

맥도우는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공녀에게 인사했다.

“제즈릭 공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보부에서 일하고 있는 맥도우라고 합니다.”

공녀는 분열을 내려놓고 마주 인사한 뒤 잠시 그를 살펴보았다. 정보부 요원답게 그냥 길거리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과도 같은 복장과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그의 마력패턴을 기억하며 공녀가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여기까진 어떤 일로 오셨지요?”

공녀의 다리 뒤쪽으로 몸을 숨기는 분열을 유심히 지켜보던 맥도우는 별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공녀님께서 정보부 쪽에 대량의 식량을 요청하셨기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찾아와봤습니다. 헌데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있더군요.”

그는 시선을 돌려 저 멀리서 걸어가고 있는 다크엘프를 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던 공녀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공녀의 표정을 본 맥도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들이 마족이라고 알려진 것이 오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말이죠.”

그제야 공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은 과거의 여타 왕국과는 다르게 인외종족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제일의 우방이 수인족이기도 했으니 다크엘프가 마족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의 인식은 둘째 치고 제국이나 제후국의 행정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배척당할 일은 없었다.

“음. 솔직히 말하면 용사마왕연구소에서 다크엘프와 관련된 문건을  적이 없어서요. 저도 이번에야 다크엘프들이 전부 마족은 아니라는  알게 되었어요.”

“그쪽은 용사나 마왕, 성검에 관한 문건이 주로 있을 테니까요. 애초에  비밀도 아니라서 낮은 보안등급의 문서에서는 찾아보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공녀는 지금까지 분열의 지식욕을 채우기 위해 높은 등급의 문서들 위주로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몇 년에 걸쳐 보안등급 1~6등급의 문서나 서적은 전부 보았지만 공사다망한 공녀에겐 그 이하의 자료들까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이외의 맹점이었다.

- 그러고 보니 너도 몰랐던 거야?

-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잠들어 있던 중에 벌어진 일은 잘 몰라. 내가 깨어난 때가 대충 ‘현혹’이 정령족을 원소의 마족으로 타락시킨 즈음이었나.

- 다크엘프들이 숲의 마족이 된 것은 훨씬 전이라서 몰랐나보네.

공녀는 분열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맥도우를 보았다. 그는 분열을 보고 손을 살짝 올려 흔들어주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분열은 여전히 공녀의 다리 뒤쪽에 숨어있었다.

“그러면 다크엘프들이 이곳에 살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애초에 이곳은 편의상 켄스웰 왕국의 영토이긴 하지만 거의 치외 법권에 가까운 곳입니다. 산맥 넘어서는 제국의 영토이고 에팔레니아 산맥은 거의 중립지대에 가까워서 누가 살던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군말 없이 넘어가죠. 그리고 그 행정적 절차를 위해서 제가 온 겁니다.”

지버트 마을을 비롯한 근방의 마을은 도플갱어 때문이라도 인구수 파악 등에 어려움이 컸다.
덕분에 인구나 주택에 관한 행정절차가 매우 느슨했고, 다크엘프 150명 정도가 들어와서 산다고 해도 제국의 입김으로 조용히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다.

“감사해요. 사실 다크엘프들이 쫓겨날까봐 조금 걱정했어요.”

“하하. 다크엘프 분들에 관한 걱정은 마십시오, 공녀님. 그것보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문제요?”

공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맥도우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들었다.
주고 받는 주소가 없는 것으로 보아 통신마법으로 보내진 전보를 필사해서 적어온 듯했다.

“대륙을 가로질러 남쪽 끝자락에서 온 전보입니다. 오늘 아침 공녀님께 전해드리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남쪽이면 늪의 마족 전장인가…….”

편지를 열어보고 발신인이 리베리안 체노스트라라는 것을 확인한 공녀는 미간을 한층  찌푸렸다. 황자가 가끔 실없는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었기에 그런 종류의 편지인가 싶어 내용을 대강 훑던 공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아가씨.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합니까?”

벨로나의 질문에 공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남쪽 전장으로 가야겠어. 아니, 그 전에 제도에 들러서 필요한 것도 좀 챙기고…….”

“네? 갑자기 전장이라뇨. 지금 제국군이 한창 밀어붙이고 있을 텐데…….”

공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벨로나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편지를 본 벨로나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날개가 달린 늪의 마족들이 어젯밤 본영을 급습했어. 저들은 이제 늪의 마족이라 부르기도 힘들어. 하나하나가 오러를 쓰는 기사로 간신히 상대할  있는 수준이야. 그리고 그 수가 수백이 넘어. 이곳에 머물던 제국 보병단과 기병대를 비롯한 병사들은현재 늪지를 한참 벗어나 요새로 향하고 있어. 앞으로 전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제도로 돌아가 줘.」

점심을 먹을 새도 없이 공녀와 벨로나, 키레아는 지버트 마을 입구로 향했다.

“다들  챙겼지?”

“네. 아가씨.”

“다 챙겼습니다, 공녀님.”

마지막을 자신의 짐을 확인한 뒤 공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녀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공녀는  중 우선 맥도우에게 시선을 향했다.

“다크엘프 분들을  부탁드려요.”

공녀의 부탁에 맥도우는 고개를 숙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내일이면 지원품이 도착할 테고, 배분과 행정절차가 끝나면 저도 바로 업무에 복귀할 예정입니다.”

공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뒤이어 시트리아,분열과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분열과는 언제든지 머릿속으로 대화할 수 있었으니 자세한 설명은 내려가면서  생각이었다.

그렇게 공녀 일행은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지버트 마을을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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