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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제 7 장. 태동 - 5 (46/82)



〈 46화 〉제 7 장. 태동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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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대륙을 지배하는 국가답게 무서운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한 드워프들에게 각종 자원을 퍼주며 만들어낸 마석과 마력을 사용하는 갑옷은 어느새 5번의 개량을 거쳐 기존의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부착하는 간편한 형태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에게서 공수해온 특수한 액세서리를 가공하여착용자를 순간적으로 마력각성자와 비슷하게 만들어 짧은 시간 동안 마력을 펑펑 사용하게 만드는 물품까지 개발되어 있었다.

갈란드의 기차역에서 내린 사십 명의 젊은 기사들은 제국과 연합종족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장비를 착용하고 도열했다.그들의 앞에는 리베리안 제국 제1황자와 아리에 제즈릭 공녀가 서있었다.

전자는 황궁이나 전장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가끔가다 보는 정도였고 정말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후자는 양성소 시절부터 자주 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양성소 명예 교관의 직위를 갖고 있는 공녀를 본 기사들은 반가워했다.

공녀는 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서 착용했다. 어느새 교관모드가 된 그녀를 보고 몇몇 기사들이 몸을 움찔했다.

“자, 시간이 없습니다. 인근의 요새에 벌써 마의 기운이 퍼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오늘 내로 적들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유격전을 벌여서 녀석들을 제압해야 돼요. 인원을 둘로 나눕시다. 대인 호위에 능한 분들은 저를 따라오시고 전선 방어에 능한 분들은 황자전하를 따라가세요.”

말을 마친 공녀가 박수를 한  치자 기사들이 잠시 논의를 하더니 반으로 쪼개졌다.
스무 명의 기사를 거느린 공녀는 황자에게 경례를 했다.

“기사단 명예단원 아리에 제즈릭, 갈란드 인근 요새 3곳에 대한 순찰 및 유격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양성소 교관들은 전부 기사단원 이었으므로 명예교관인 공녀는 자연스럽게 기사단 명예단원이 되었다.
황자는 공녀에게 마주 경례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말만순찰이고, 전장에 나가는 거잖아.”

“별  있나요. 어차피 나중에는 마왕도 잡아야하는데. 제 성격상 여기서 적들이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해요.”

“후우. 알았어. 다치지만 마.”

“걱정 마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여러 대의 마차에 올라탄 공녀와 기사단은 예비군 주둔지에 들러 가려 뽑은 스무 명의 정예 총사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기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원이 딱 맞아떨어져서 공녀는 총사 두 명과 기사 두 명을 하나의 팀으로 10개의 팀을 꾸렸다.
기사들과 수를 맞춘 이유는 1대 1 개인 전담 호위의 목적도 있었지만 일단 총이 스무 자루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목격한 병사들과 장교들의 이야기를들어보면 날아다니는 늪지의 마족들은 대략 100마리 남짓이었다. 이 인원으로 날개를  기사단원 100명을 동시에 상대하라고 하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각개격파라는 좋은 전술과 농성전이라는 좋은 전략이 있었다.

갈란드 남쪽의 군 주둔지에서 루테스와 잠시 만나 안부 인사를 하던 공녀를 향해 사방에서 감사의 인사가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전날 공녀가 야전병원에서 치료의 마력을 펑펑 쓰면서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공녀는 환하게 웃으며 병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테르한의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행동은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

“아가씨!”

마테스와 함께 주둔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벨로나가 자연스럽게 공녀의 호위로 붙었다. 공녀는 자신의 기사이자 검인 벨로나를 믿고 있었기에 주 무기인 바스타드소드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마테스는 오른쪽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왼손으로 경례를 했다. 그는 황자를 구하면서  마리가 넘는 마족을 베었다고 한다.

“교관님. 적들은 상당히 강하지만, 원거리에서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신체를 마력으로 잔뜩 강화하여 덤비는 놈들이니 최대한 멀리서 요격을 해야 합니다. 근접하는 경우에는 오러를 쓰는 기사들만이 상대가 가능할 겁니다.”

“정보 고맙습니다. 마테스 경. 자, 이야기 들으셨죠? 방어막 마석 무겁다고 한 개씩만 들고 다니지 말고 최대한 많이 챙기세요. 기사단 여러분들도요.”

공녀의 명에 따라 총사들과 기사들이 창고에서 마석들을 반출해갔다. 공녀는 창고를 담당하는 병사에게 질문했다.

“혹시 이곳으로 제 덧갑옷이 오지 않았나요?”

드워프 장인들이 만들어낸 덧갑옷은 기존의 옷이나 갑옷 위에 씌우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양 팔, 가슴, 양 다리까지 총 다섯 개의 파츠가 한 세트였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착용 부위가 견갑이나 수갑, 대퇴갑이나 정강이받이 등 온갖 부위에 착용할 수 있는데다가 장착할 수 있는 마석의 종류도 제한이 없어 그야말로 자신만의 갑옷을 만들어낼  있었다.

보통은  부위에 1~2개의 마석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마력각성자인 공녀는 한 부위당 3개가 넘는 마석을 사용하곤 하였다. 심지어 이번에 특수 주문한 덧갑옷은 무려 부위 당 5개의 마석을 장착할 수 있었다.

마석을 많이 단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마석의 성능이 서로 상쇄되는 일도 있었고 위력을 증가시키는 마석은 개수가 많아질수록 소모하는 마력이 커지는 등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공녀에게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반발력을 줄이는 마석만 잔뜩 때려 박은 덧갑옷을 받아든 공녀는 자신의 가죽옷 위에 그것을 부착했다.

드워프제답게 움직이는데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았다.점검을 마친 공녀는 마차에 오르기 전 기사와 병사들을 소집하고 테이블에 지도를 펼쳐서 작전을 전달했다.

“갈란드 시 인근의 요새는 두 군데입니다. 현재 늪지방면 사령관이신 레노아 장군께서 병력을 배치해두셨을 텐데요. 일단 더 큰 요새인 이곳, 갈란드 제1요새는 성벽이나 탑이 튼튼하고 발리스타도 잔뜩 있습니다. 적들은 마력으로 건물을 직접 파괴하지는 않는 듯하니 이곳을 쉽사리 공격하지는 않겠죠.”

공녀는 손가락을 옮겨 갈란드 제1요새보다 남쪽을 가리켰다.

“작은 요새인 갈란드 제2요새는 얼마 전에 완공해서 현재는 구색만 겨우 갖춘 곳입니다. 우리는 여기로 적들을 끌어들여 해치울 것입니다.”

기사 중  명이 공녀에게 질문했다.

“교관님. 만약 적들이 제2요새로 오지 않고 바로 갈란드 시로 향하면 어떻게 하죠?”

“저와 벨로나 경이 적들을 끌어들입니다.”

전투 경험이 있는 병사들이 경악했다. 아무리 공녀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전투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전장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작전이 지나치게 무모해보였다.

“공녀님. 전쟁은 장난이…….”

“잘 알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더.”

공녀에게 충고를 하던 베테랑 병사는 공녀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전장이 익숙한 전사의 눈빛이었다. 전장을 앞에 두고 어느새 공녀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테르한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도 대부분 실전 경험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공녀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전을 수긍했다. 기사들이 수긍하자 병사들도 마지못해 작전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그들은 요새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갈란드 제2요새에 도착한 공녀는 미리 주둔해있던 병사 및 장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작전회의를 했다.
해가 완전히 지자 마의 기운이 요새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몇 안 되는 마법 물품들이 작동을 멈췄다. 그래도 요즘은 마석으로 움직이는 물품들이 대체를 많이 해서  문제는 없었다.

최초의 습격이나 얼마 전 총공격을 보았을  적들은 한밤중에 공격하는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공녀에게는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기를 바라며 공녀는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쉬던 공녀와 부하들은 정찰을 하던 병사가 멀리서 다가오는 마족을 발견하고 울린 경보음을 듣자마자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선봉대를 제압하기 위해 총사 전원이 화염회오리탄을 장전하고 성벽 바로 앞에 절반이, 그 뒤에 절반이 정렬했다. 기사들은 그들의 주위를 빈틈없이 호위했다.

공녀는 마력으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바람이 가져다주는 소리,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적들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지축?’

날아다니는 적들이 지축을 울릴 일이있을까. 혹시 일반 늪지의 마족들까지 온 것일까 생각했었지만 공녀의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울림은 다수의 발울림이 아니었다.

그때 거대한 무언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공녀는 욕설을 뱉은 뒤 재빨리 외쳤다.

“가장 실력 좋은 기사 다섯! 나를 따라와요! 나머지는 여기를 사수하면서 날아다니는 놈들을 없애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긴장하고 있던 기사들 사이에서 잠시 동요가 있었다.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던 그들 중 다섯 명의 기사가 공녀의 뒤를 따랐다. 성벽 아래로 내려간 공녀는 요새 밖으로 뛰어나갔다.

공녀는 빛을 내는 마석에 마력을 잔뜩 주입한  앞으로 던졌다. 바람의 마력으로 마석을 높은 허공에 띄운 공녀의 눈앞에 수십 마리의 날아다니는 늪의 마족들과 족히 이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도마뱀이 보였다.
그 모습을  기사  한 사람이 외쳤다.

“저건 지룡(地龍)입니다!”

수백 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용의 재등장이었다.



날아다니는 마족들은 대부분 공녀와 기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요새로 향했다. 열 마리가 넘는 마족들이 요새에 접근하자 곳곳에서 불의 폭풍이 몰아쳤다.

“키에엑-!”

마족들이 날개를 잃고 바닥에 추락하자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화살을 날리고 돌을 굴려 놈들을 끝장냈다. 화염회오리를 피해 접근하던 놈들은 기사들과 몇  부딪히다가 몇 마리를 잃고 물러났다가 용암탄에 몸을 관통 당했다.

요새의 상황이 작전대로 돌아가자 공녀는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거대한 크기의 지룡은 높이가 거의 요새 성벽에 다다를 정도였고, 길이는 짐작조차 힘들었다.
테르한이 숲의 거대 마족과 맨손으로 붙었을 때는 그래도 덩치라도 비슷했지만 이것은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벨로나는 나를 따라와. 다른 기사 분들은 날아다니는 놈들을 견제해주세요.”

지룡 주위를 호위하듯 날아다니던 마족들이 공녀 일행의 접근을 눈치 채고 덤벼들었다. 온갖 속성 오러를 두른 기사들이 정교한 검술로 그들을 쳐냈다.

공녀는 속성 역행의 마력구체를 던져 접근하는 마족들을 견제했다.
늪지의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연구한 얼음과 바람의 마력을 띤 구체는 명중한 순간 얼음 꽃이생기며 폭발했고, 태생이 냉혈동물인 리자드맨이었던 그들은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사들이 마족들의 머리를 베어냈다.

기사들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낸 공녀는 전투 현장을 벗어나 지룡의 코앞에 도달했다.
지룡이 둔중한 발걸음을 멈추고 공녀를 노려보았다. 공녀도 지룡을 마주 노려보며 장전되어있던 쌍총을 꺼내들었다.

크아아아-

울부짖는 지룡을 향해 공녀가 얼음폭발의 탄환을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날아오는 꼬리를 가볍게 피한 공녀는 탄환에 맞고도 잠시 움찔한 뒤 곧장 움직이는 지룡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역시 저 정도 덩치면 총알이 먹히지 않는 모양이네.”

“머리를 노려보죠.”

자신의 레이피어를 꺼내든 벨로나는  끝까지 이어진 마력선에 번개의 마력을 가득 담아 연한 보랏빛의 오러를 피워냈다.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이는 통나무 같은 앞다리를 피한 벨로나가 오러를 ‘쏘아냈다.’
세검을 주 무기로, 번개의 오러를 주력으로 쓰는 벨로나만이  수 있는 기술이었다.

파지직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며 검에서 방출된 번개가 어둠을 가르고 지룡의 머리에 명중했다.
한 순간의 쇼크로 지룡이 비틀거리다가 앞다리로 땅을 세게 짚었다.

쿠웅

공녀는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는 지축을 박차고 지룡이 내딛은 앞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발에 잔뜩 머금은 바람의 마력으로 인해 거의 두 걸음 만에 지룡의 머리 부근에 도착한 공녀는 혹시 몰라서 가져온 단검을 꺼내들었다.

지룡의 어깨 부근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은 공녀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잠시 허공을 유영하던 공녀는 팔에 불의 마력을 집중하고, 단검에는 얼음의 오러를 띤 채 주변에 바람의 마력지대를 조성했다.
그 광경을 본 벨로나가 자신의 감각을 의심할 정도로 정교한 마력 조작이었다.

공녀를 둘러싼 바람의마력지대가 조그마한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예전에 홀에서 황자와 춤을 출 때처럼, 공녀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밑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타이밍에 맞춰 벨로나가 한 번  번개의 오러를 쏘아내 지룡을 경직시켰고,공녀는 그대로 지룡의머리에 단검을 쑤셔놓았다.

크오오오-

원래단검의 길이는 지룡의 머리 가죽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회전과 오러로 인하여 지룡의 머리가 절개되어 두개골이 드러나게 되었다.

공녀는 찌그러진 단검을 갈무리하고, 드러난두개골을 향해 총탄을 난사했다.

불꽃, 얼음, 번개 등 여러 가지 속성을  탄환이 두개골을 강타했고, 족히 20센티미터는 되는 두개골이 심각하게 손상되며 마침내 덩치에 비해 조그마한 뇌가 드러났다.

사실 지룡은 드래곤이라고 보기에는 급이 많이 떨어졌다. 와이번이나 서펜트와 동급에 가까웠으나 덩치만큼은 드래곤에 못지않았기에 그들이 모습을 감추기 전, 사람들은 지룡을 종종 드래곤이라 여기고 말을 하거나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출처는 분열의 지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봤던 책.

지룡의 뇌를 확인한 공녀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커다란 속성구체를 만들어냈다.

빛의 속성을 띤 구체에 차례대로 4대 원소를 담은 공녀는 그것을 반대방향으로 회전시켰다.
잠시 회전하던 구체가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해지자 공녀는 지체 없이 그것을 지룡의 머리 안쪽으로 던진 뒤 옆으로 몸을 날렸다.

드드드득

두개골 파편이 갈리는 섬뜩한 소리가   작은 폭발이 지룡의 머릿속에서 발생했다.
공녀가 땅에 착지한 뒤 지룡이 무너져 내렸다.

지룡이 쓰러지는 것을 본 마족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힘이 남아있던 공녀는 도망치는 마족 몇 마리를 얼음폭발탄으로 경직시켰고, 벨로나가 그들의 목숨을 취했다.

공녀를 따라온 기사들  둘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그들을 치유의 마력으로 응급조치를   요새로 복귀한 공녀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공녀가 드래곤 슬레이어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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