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제 8 장. 마왕, 그리고 마왕 - 5 (52/82)



〈 52화 〉제 8 장. 마왕, 그리고 마왕 - 5


52 -


공녀는 다루와 눈인사를 나눈 뒤 그녀가 띄운 조망도를 보았다.
마족들을 물리치며 열차까지  공녀는 중간에 보았던 지룡들이 차례대로 늘어서있는 곳이 공격의 시작점이라고 판단했다.
늦어도 2분 안에는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클레어. 대비는 해놨어?”

탑승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속도도 그대로였기에 공녀는 무언가 대비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클레어는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4,5량에 대포들이 실려 있어. 저번에 병기창하고 같이 제작한, 총을 크게 만든 물건이야. 열차에 사용하는 마석을 가루내서 폭발시키면 거대한 총알, 포탄을 발사할 수 있어. 한 량에 20대씩 들어있고, 한 번에 10대 정도 발사하면 지룡을 쓰러트리거나 멈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지룡은 10마리 있었어.”

공녀의 말에 클레어는 고민에 빠졌다. 자율형골렘을 동원해서 동시 발사가 가능하도록 세팅을 해놨는데 10발당 1마리씩 쓰러트려도 6마리가 남는다.

“장전은 바로 돼?”

총이랑 비슷하다면 장전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이다.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1대당1분 정도 마력을 주입해야 돼. 포탄은 자율형골렘이 바로바로 장전하니까 마력만 해결되면…….”

클레어는 공녀를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마력 충전기 역할이 가능한 공녀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 속도를 낮춰. 중간에  마리라도 열차에 들이받으면 전복될지도 몰라.”

“알았어.”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던 기관사가 속도를 낮췄고, 열차는 이제 날개 달린 마족이 나란히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려졌다. 허공을 배회하던 마족들이 열차를 노리고 접근해왔다.
그래도 빨리 가다가 지룡에게 받혀서 전복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첫 번째 지룡이 5량까지 오면 4, 5량의 대포를 바로 앞에 있는 지룡에게 쏴. 녀석들은 아마 끝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밀 테니까 그 전까지 공격받지는 않을 거야.”

“알았어.”

“그리고 바로 다음 사격으로 두 마리를 더 잡아. 중간의 두 마리는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고, 장전  남은 네 마리를 잡아내는 거야.”

“알았어.”

클레어는 공녀의 작전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통신장비를 통해 열차 내부에 작전을 설명한 클레어는 7량에 있는 비밀병기도 준비시켰다.
공녀는 이제 지척으로 다가온 지룡들을 보며 지붕으로 향했다. 클레어가 당황해서 외쳤다.

“아리에, 어디로?”

공녀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두 마리는 내가 잡는다고 했잖아. 열차 안에서 잡기에는 내 검이 짧아서. 걱정 마. 대포의 마력 충전도 지붕에서 하지 뭐.”

공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제 푸른색을 띠기 시작한 하늘에는 날개 달린 마족들이 가득했다. 최초로 습격 받았을 때는  마리  마리가 기사단 같았다고 했지만, 공녀가 직접 싸워봤을 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어쩌면 최초의 습격에 동원된 놈들이 정예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지룡에 집중해야한다. 거대한 지룡들이 선로에 주르륵 늘어서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움직이는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모습에 위축될 법도 하지만 공녀는 오히려 호승심이 차올랐다.

2량의 지붕에 올라선 공녀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자신의 애병인 기다란 바스타드소드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 마력구체를 띄운 공녀는 익숙한 솜씨로 마력구체에 다섯 가지 속성을 때려 박았다.

빛의 속성을 베이스로 4대 원소 속성을 띤 구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똑같은 구체를 3개  만들어낸 공녀의 앞으로 첫 번째 지룡이 스쳐지나갔다.
날개달린 마족들은 열차가 쓰러지면 공격하려는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몇 초 뒤, 옆면이 위로 올라간 4량과 5량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작렬했다.

크오오오

선로에서 십여 미터 떨어져있던 지룡들이 온몸에 포탄을 맞고 몸부림쳤다. 지룡은 거대했지만 공성전을 상정하고 만든 대포들이 불을 뿜자 멈칫하며 물러나다가 머리에 포탄을 맞고 쓰러졌다.

차례대로  마리의 지룡이 전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공녀는 띄워놓았던 속성 구체 4개를 동시에 역회전시켰다.
구체간의 간격은 약 5미터씩이었는데, 그 이상 붙여놓으면 서로 빨아들이는 마력 때문에 상쇄되어버린다.

맨 앞에 있던 지룡들이 쓰러지자 남은 지룡들이 선로까지 걸어오기 시작했다. 날개달린 마족들이 옆면이 열린 4, 5량에 접근했지만 숙련된 레인저들이 총과 활로 녀석들을 물러나게 했다.

다섯 번째 지룡이 괴성을 지르며 열차에 접근하자 공녀는 놈을 향해 구체를 날렸다. 머리로 날아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낀 지룡이 머리를 크게 털었고 공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올랐다.

족히 수십 미터는 뛰어오른 공녀는 옆으로 젖혀진 지룡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검에 깃든 오러가 흉흉한 기세로 지룡의 목을 잘라 들어갔다.
목을 당한 지룡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옆으로 넘어지기 시작했고, 지룡의 목을 박차고 뒤로 날아오른 공녀는 상처부위를 향해 구체 하나를 더 던졌다.

쿠궁

폭발이일어나자 두께가 수 미터는 되는 지룡의 목이 반쯤 잘려나갔다.
공녀는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얼음의 마력을 허공에 집중시켰다.
새벽녘의 습기가 얼음의 마력과 만나 허공에 얼음 발판을 만들어내자 그것을 박차고 높게 뛰어오른 공녀는 여섯 번째 지룡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크오오-

지룡은 몸을 크게움직이며 공녀의 공격을 회피했다. 지룡의 목을 노렸지만 어깨에 착지하게 된 공녀는 달라붙는 날개달린 마족들을 단칼에 쳐내며 지룡의 몸을 밟고 오르기 시작했다.

공녀의 검에 깃든 오러는 아무런 속성을 띠고 있지 않았다. 기사단 양성소에서 속성 오러를 전파했던 그녀답지 않았지만, 공녀정도 되는 경지에 오르면 속성에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순수한 마력을 검에 담아 내려치기만 해도 충분했다.

크아아아-

목을 뒤에서 관통당한 지룡이 몸부림쳤다. 서비스로 남아있는 구체 두 개를 넣어준 공녀는 지룡의 몸을 박차고 열차까지 가볍게 날아올랐다.
곧 이어진 폭발에 지룡은 경추가 박살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순식간에 지룡  마리를 해치운 공녀는 열차의 지붕에 올라섰다. 마족들이 간간히 덤벼들긴 했지만 레인저와 병사들이  막아내고 있었다.

나머지 지룡들은 아직 저 앞에 있었다. 사실 열차를 전복시키려면 지룡 두세 마리만 있어도 충분했을 것이었다. 저 녀석들은 예비로 남겨둔 놈들이었다.

공녀는 4량과 5량의 중간에 서서 열차를 향해 마력을 뿌렸다. 충전 방법은  몰랐으니 되는대로 근처에 있는 마력을 죄다 모아 아래로 보냈다.

“발사 준비 완료!”

자율형골렘이 네 개씩 달린 팔을 바쁘게 움직이며 이미 포탄을 장전해놨고 병사들 여러 명이 숙달된 솜씨로 마석가루를 채워 넣었기에 마력이 충전되자 대포의 발사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일이 항상 수월하게 풀리지는 않는 법이었다.

“기관사님! 스톱! 스톱!”

지붕에서 다음 지룡들을 지켜보던 공녀가 지붕에서 뛰어내려 열려있는 4량의 옆면으로 들어오며 외쳤고, 기관사도 무엇을 봤는지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어어-”

물건과 사람들이 열차의 앞면을 향해 쏠리자 공녀는 발을 열차 바닥에 강하게 디뎠다. 동시에 열차 전체로 퍼져나간 땅의 마력이 흔들림을 억제했고 열차는 서서히 멈추었다.

“옆면 닫아요! 빨리!”

공녀가 외치며 밖으로 튀어나가자 병사들이 재빨리 열려있는 옆쪽 벽을 내렸다. 느려진 열차를 향해 달려들던 마족들은 벽에 한  부딪히고는 미련 없이 물러났다.
공녀의 시선이 열차의 정면으로 향했다.

지룡 네 마리가 선로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열차가 뒤로 갈 수는 없으니 앞에 생긴 장애물들을 치워야 한다.

아무리 공녀라도 작정하고 덤벼드는 지룡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긴 힘들었다. 하다못해 옆쪽에서 덤벼들었다면 대포를 이용할 수 있었을 테지만 놈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정면에서 열차를 막아섰다.
열차로 놈들을 치고 지나갈 수도 없었다. 지룡  마리가 열차의 두 량을 합친 것만큼 커다랬으니 부딪혀봤자 열차가 찌그러질 판이었다.

마족들은 공녀 때문인지 덤빌 생각을 않고 있고 지룡들도 아직 멀찍이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열차 옆에 서서 잠시 생각하던 공녀를 향해 클레어가 손짓했다. 공녀는 2량의 창문 아래까지 달려갔다.

“아리에. 이거.”

클레어가 건넨 물건을 받아든 공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게 벌써 완성됐어?”

클레어가 엄지를 척 올렸고 공녀 역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씨익 웃었다.

등에 다는 덧갑옷의 일종으로, 제품명 ‘빛의 날개’.
공녀가 제도를 떠나올 때는 기본적인 틀과 원리만 잡혀있던 제품이었다.
그 시제품이 공녀의 손에서  가동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기사들과 합류하여 마족들을 피해  돌아서 1구역까지 도달한 벨로나는 엄청난 수의 마족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초조해하던 그녀의 눈에 선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지룡들이 고개를 흔들며 날아다니는 무언가를 상대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기사가 가져온 예비마를 타고 있던 벨로나는 말을 몰아 단숨에 열차에 다가갔다.
열차 너머로 쓰러진 지룡  마리와 많은 수의 마족들이 보였고 열차의 앞쪽 선로 위에는 지룡 두 마리의 시체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상처가 가득한 지룡 두 마리가 서있었다.

벨로나의 눈에 날아다니는 공녀가 보였다.

등에서 뻗어 나온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제 몸처럼 움직이며 날아다니던 공녀는 덮쳐오는 지룡의 아가리를 아래쪽으로 한 바퀴 빙글 돌아 피한 뒤 검으로 지룡의 턱을 꿰뚫어버렸다.

그 사이 날아든 마족을 향해 발차기를 먹인 공녀는 오러의 크기를 키워 지룡의 턱을 세로로 쪼개며 검을 뽑았다.
지룡이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옆에서 공격준비를 하던 다른 지룡과 부딪혔다.
마치 도미노 쓰러지듯 넘어진 지룡들을 향해 공녀가 회전하며 쏘아져 내려갔다. 빛의 날개가 화려한 나선을 그려냈고, 지룡들은사이좋게 목을 꿰뚫려 시체가 되었다.

지룡들이 전멸하자 마족들이 물러났다. 뒤늦게 합류한 기사들은 지룡들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벨로나의 예상대로 검을  공녀는 지룡 여섯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웠다. 날개를 접고 땅으로 내려온 공녀는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

“저거 언제 다 치우지?”

태연한 공녀의 말에 기사들이 한 번 더 뒤집어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