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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제 9 장. 남부전선 이상 없다 - 5 (58/82)



〈 58화 〉제 9 장. 남부전선 이상 없다 - 5

58 -

기사들이 전부 검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 각지에서 온 실력자들이 모여 있는 만큼 다양하고 많은 무기들을 볼  있었다.

그 중에서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은 편이었다. 검, 창, 둔기에 이어 많은 수의 생도들이 도끼를 사용했다.
하지만 오러를 쓰는 단계에서 직선적인 무기보다 오러의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기에 무기를 바꾸거나 기사 임관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벌목꾼 아버지와 드워프 어머니를  레무르트는 양성소 입소 당시 벌써 도끼질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양성소 내의 다른 도끼사용자들을 오러를 쓰지 않는 결투에서 모조리 이겼으며, 도끼를 그대로 사용하며 기사로 임관하였다.

이미 호흡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도끼질과 공녀에게서 배운 불안정하지만 오히려 파괴적인 오러로 메르실라의 단도를 쳐냈다.
그는 가벼운 메르실라가 자신의 힘에 몸이 뒤로 붕 뜨자 때를 놓치지 않고 크게 한 발을 내딛었다.

후웅

대기를 가르는 육중한 울림과 함께 어지간한 기사들의 검보다도 빠른 도끼가 메르실라를 양단할 기세로 휘둘러졌다.
피하기 까다롭게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도끼질을 그냥 두고 봤다가는 다리나 골반이 파괴될 것 같아 메르실라는 공중에서 꼬리를 휘둘러 균형을 회복했다.

메르실라는 곧장 바닥을 한 번 차고 몸을 뒤집어 레무르트의 도끼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가벼운 메르실라였지만 온몸의 무게에 검은 기운이 실리자 그의 도끼는 거의 땅에 처박힐 지경이 되었다.

레무르트는 곧장 도끼를 회수한 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속도로 자신에게 맞서는 메르실라를 향해 순수한 감탄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고 강했다. 레무르트는 도끼자루를 짧게 잡았다.

으레 도끼를 쓴다고 하면 느린 속도와 강한 파괴력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레무르트의 도끼는 조금 달랐다.
무기장인인 외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그의 도끼는 보기보다 가볍고 단단했다. 그리고 레무르트의 근력과 부술(斧術)이 합쳐져 경이적인 속도와 파괴력을 갖추게 되었다.

메르실라가 도발하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저쪽에서 한 번 왔으니 이쪽에서도   갈 차례였다. 레무르트는 대퇴갑 쪽의 덧갑옷에 있는 땅의 마석을 활성화시켰다.

보통 헤이스트 마법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 하반신 쪽에는 바람의 마석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레무르트는 무겁고 키가 작았으며 압도적인 근육이 있었다.
바람의 마석에 의해 몸이 가벼워지는 효과보다 근력을 더욱 끌어내는 편이 그에게 더 맞는 스타일이었다.

쿠웅

레무르트가 크게 내딛은 발에 땅이 울렸다.
무시무시한 풍압과 함께 대각선으로 파고드는 도끼를 메르실라가몸을 살짝 기울여 피한  레무르트의 목을 향해 단도를 내질렀다.

레무르트의 목에 단도가 거의 닿기 직전, 메르실라는 검은 기운을 끌어내 팔에 집중했다.  방에 목을 꿰뚫어버릴 셈이었다. 메르실라는 그 찰나의 시간에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퍼억

갑자기 메르실라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손에 걸리는 살을 꿰뚫는 감촉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려던 그녀는 뇌가 흔들리는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자신의 시선이 어느새 하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르실라는 본능적으로 검은 기운을 이끌어내 지면을 박차고 뒤로 뛰었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가 크게 베이는 것은 막지 못했다.

“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왼쪽 다리를 축으로   몇 걸음이나 물러선 메르실라는 그제야 자신의 턱이 쪼개질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흔들리는 시야를 정면으로 향하자 벌써 자세를 잡은 레무르트가 도끼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메르실라는 땅을 울리는 그 발걸음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잘 싸우네, 역시.”

“오러를 뺀 순수한 무기술로는 기사단 내에서도 한손에 꼽히는 선배니까요.”

공녀는 단도가 목 앞까지 들어왔는데도 눈 깜짝 안하고 도끼자루 끝으로 메르실라의 턱을 쳐올리는 레무르트의 도끼술을 보며 감탄했다.
용인의속도를 따라잡기 힘드니 자신을 공격하는 타이밍을 노린 것이었다.

레무르트의 연격이 이어졌고, 다리를 질질 끌며 힘겹게 막아내던 메르실라는 검은 기운을 이끌어냈다. 그리고는 크게 한 발을 내딛어 레무르트의 도끼를 거의 몸에 붙을 정도의 차이로 피한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워버렸다.

도끼에 서린불의 오러가 자신의 몸을 태우려는 것을 검은 기운으로 막아내며 메르실라는 왼손의 단도를 내질렀다.

레무르트는 당황하지 않고 도끼와 메르실라를 그대로 땅에 처박으려 했으나 메르실라는 단도를 내지르던 손으로 도끼자루를 붙잡으며 몸을 붕 띄워 다리로 레무르트의 관자놀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도끼자루에서 손을 놓고 몸을 옆으로 빙글 돌리며 꼬리로 같은 곳을 재차 가격했다.

레무르트의 투구가 약간 찌그러지며 그의 목이 옆으로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떨어져 내리는 도끼는 막을 수 없었다. 레무르트는 중간에 도끼를 옆으로 눕혀 메르실라를 등부터땅에 처박았다.
강대한 하얀 기운이 메르실라를 압박했고, 그녀는 한 차례 각혈을 했다.

메르실라는 도끼를 옆으로 치우고 몸을 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기운이 많이 줄어들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입가를 슥 훔치고 단도를 빼들었다.
투구가 찌그러질 정도의 유효타를 먹였으니 뇌진탕에 빠져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상대방은 멀쩡했다.

마치 몸을 풀듯 가볍게 목을 돌리던 레무르트는 도끼를 한 두 차례 휘둘러보더니 메르실라 쪽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입을 헤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메르실라는 어느새 상처가 거의  아문 오른쪽 다리를 몇  움직여보았다.

메르실라는 단도를 집어넣고 다른 무기를 꺼내들었다. 팔에 끼우는 검의 일종이었는데, 멸망하기 전 사막왕국에서 주로 쓰던 무기였다.
메르실라가 무기를 착용하는 것을 지켜보던 레무르트는 도끼를 들어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메르실라가 도약하는 동시에 레무르트도 달려나갔다.
무대의 한 가운데서 두 전사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공녀는 레무르트와 메르실라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면서도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자신이 기만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짐작 가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분열. 레이아. 어이~

레무르트와 메르실라의 공방이 이어졌다. 누가 우세하다 할 수 없었고 일방적인 공격도 방어도 없었다. 한 합이 지날 때마다 공격자와 방어자가 바뀌어갔다.

- 분열. 분열?

공녀가 계속 분열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자 공녀의 머릿속에 분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리에. 무슨 일이야.

- 자고 있었어? 미안. 내가 기만의 기운을 받아야  일이 생겼는데 황자가 광범위로 뿌리는 기운 말고는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혹시 네 영혼이 내 안에 있어서 그런가 싶어서.

- 아, 아까 느껴졌던 기만의 기운 말인가. 일단은 협력관계라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그 힘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라니…….

- 용인들이 나와서.

공녀의 말에 분열이 되물었다.

- 용인? 드라고뉴트?

- 응.

분열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 파멸 녀석, 생각보다 빨리 등장할 수도 있겠군.

- 어, 그래?

- 녀석들이 궁지에 몰렸다는 증거니까. 어쨌든, 기만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싶어?

분열의 말에 공녀는 잠시 생각했다. 상대방와의 전력차이는 엇비슷하거나 이쪽이 살짝 위. 대장전을 상정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강해지지 않으면 상대하기 힘드니까. 아무래도.

공녀의 말에 분열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의 동지인 아리에가 기만 같은 녀석의 힘을 빌리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나는 솔직히 네가 녀석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 그렇지. 그러니까, 대신.

순간 공녀의 심장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정열이 불타오른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그대로 공녀의 몸에 체화하고 있었다.

 힘을, 우리 도플갱어들의 죄업을 너에게 빌려줄게.

- 크윽. 이거 굉장하네.

공녀의 몸 위로 붉은색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옆에 있던 벨로나가 놀라서 공녀를쳐다보았고, 클레어는 품에서 안경을 꺼내들어 공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멀다보니 길게는 유지하기 힘들  같아. 지금 당장 필요해?

- 아니. 이따가 신호를 주면 그때 부탁해.

- 알겠어. 이겨버려, ‘테르한’.

- ……물론이지.

분열은 평소에 공녀를 아리에로 칭하곤 했다.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공녀는 테르한의 감각을 가지고 그의 기억과 그의 사고방식으로 싸우곤 했다.
영혼에 대한 기감이 남다른 분열은 그 차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공녀는 지금 테르한의 영혼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수비에 치중하기 위해 들었던 쌍단검 중 하나는 부러졌고, 지금 들고 있는 무기는 주무기인 바스타드소드.
날개달린 놈의 스피드를 보건데 속도에서 뒤쳐질 가능성도 있었다.

공녀는 과감하게 바스타드소드를 집어넣고 쌍권총을 빼들었다.
은색과 검은색의 쌍둥이 총. 저번 전투에서 써보고 마음에 들어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참고로 이름은 ‘분열’, ‘조화’라고 지었다.

공녀는 총알을 한아름 챙겨서 총에 장전했다. 탄창 여러 개를 홀스터에 착용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남은 탄창 하나를 가슴 쪽 덧갑옷 사이에 껴두었다.

공녀는 시선을 다시 무대로 던졌다. 어느새 레무르트와 메르실라의 전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오른쪽 팔과 뺨에 생긴 긴 자상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레무르트, 양쪽 다리와 옆구리가 너덜너덜한 메르실라.
승부는 이미 정해졌다. 메르실라의 검은 기운은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메르실라를 향해, 레무르트가 사형집행인처럼 도끼를 쥔 채 걸어갔다.

“그만.”

메르실라와 레무르트 사이에 꼬리가 달린 남성체가 끼어들었다. 레무르트는 인상을 팍 썼지만 도끼를 거두고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메르실라가 졌다. 훌륭하군, 인간 전사.”

“하프드워프다.”

“어쨌든. 뭐, 메르실라를 이겼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라.”

“준비운동 거리도 아니었다.”

“뭐라고? 이 자식……!”

레무르트의 말에 메르실라가 광분하여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뿔 달린 여성체가 제압하여 뒤쪽으로 끌고 갔다.

그 모습을  용인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허리에서 긴 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검에 정순한 오러가 깃들었다.

“내 이름은 머스크. 오러도 못 쓰는 어린애랑 비교하지 마라.”

레무르트가 도끼를 들어올렸다. 멀리서 공녀가 몰래 치유의 마력을 쏴주어서 오른쪽 팔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레무르트다. 잔말 말고 덤벼라.”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기를 내질렀다. 붉게 타오르는 오러의 도끼와 하얀 오러의 검이 부딪히며  번째 결투가 시작되었다.

“허억. 허억.”

레무르트의 무릎이 꺾였다. 도무지 공격을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수백 번 넘게 휘두른 도끼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적의 피로 무기가 무거워졌다면 전사로서 퍽이나 자랑스러웠겠지만 그의 무기에 묻은 적의 피는 적었다.

머스크는 질릴 정도로 끈질기게 레무르트를 몰아붙였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레무르트는 그 강인한 체력을 전부 써버린  지치고 힘이 빠져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탈진상태가 제법 심각해서 그를 후방으로 옮기고 클레어가 임시조치를 취했다.

레무르트가 실려나오고 두 번째 주자인 카디엄이 나섰다.
그가 입은 마석이 3개씩 박혀있는 덧갑옷은 그의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남을 나타냈다.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카디엄이 검을 뽑는 사이 그의 덧갑옷에 박혀있는 마석들이 줄줄이 활성화되었다. 보조마법으로 도배를 하던 예전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신성한 하얀 기운에 사이 적응했는지온몸에 고르게 기운을 분배한 카디엄의 모습은 흡사 전설에 나오는 성전사의 모습 같았다.

카디엄과 머스크는 말없이 대치하다가 천천히 서로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검풍이 주위에 퍼져나갔다.
오러와 오러가 맞부딪히는 곳에서 빛으로 된 스파크가 튀었다.
백중지세로 이어지던 결투의 결과는 의외로 방법으로 금방 나버렸다.

카디엄의 검이 머스크의 검을 산산조각 내며 머스크의 몸통을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길게 그었다.
머스크의 온몸을 감싸던 검은 기운이 그 검격 한 방에 거의 다 날아가 버렸다. 남은 기운이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몸속으로 들어갔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머스크를 뿔 달린 여성체가 뒤로 던져버렸다.

[못 봐주겠네. 크탄, 메르실라. 머스크 녀석 안 죽게 잘 보고 있어.]

[네가 방금 던져서 얘 상태가 더  좋아졌어.]

메르실라의 말에 뿔 달린 여성체는 혀를 찼다.

[그 정도로 죽을 거면 그냥 죽으라고 해.]

뒤를 향해 외친 뿔 달린 여성체는 앞에 있는 카디엄에게 시선을 주었다. 검을 들고 준비를 하는 그를 향해 그녀는 가슴 위쪽을 받치고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부족의 전사와의 결투에서 승리한 그대에게 경의를. 에틸라라고 해요.”

예의바른 에틸라의 태도에 카디엄이 살짝 누그러져 말했다.

“제국 기사 카디엄입니다. 당신은 무슨 무기를 쓰죠?”

“어머나. 숙녀에게 처음 하는 질문 치고는 너무 살벌하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에틸라는 등에서 봉 세 개를 꺼내들었다. 자세히 보니 봉들은 사슬로 연결되어있었고, 양쪽 끝에는 기다란 창촉이 달려있었다.

“자, 춤춰보죠.”

“사양 않겠습니다.”

허리춤에서 커다란 금속 토시를 꺼내든 카디엄이 왼팔에 그것을 착용했다. 은색 마석이 박혀있는 토시에 마력을 불어넣자 양쪽에서 금속이 튀어나오더니 조그마한 방패가 전개되었다.

 모습에 잠시 놀란 눈이 되었던 에틸라는 창을 조립하여 그를 향해 겨누었다. 잠시 대치하던 그들은  결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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