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제 10 장. 짧은 휴식 - 3 (63/82)



〈 63화 〉제 10 장. 짧은 휴식 - 3

- 63 -


점심식사 후 공녀는 양성소를 나왔다.
5년 사이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플라잉 보드를 타고 마도공학소로 향한 공녀는 연구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새삼스레 넓은 마도공학소를 전체적으로 돌아보았다.

5년 사이에 마도공학소는 제도의 성벽을 일부 확장시켜야할 정도로 커졌다.
그때보다  배는 넘게 늘어난 인원, 십여 개가 넘어가는 개발부서가 제국의 기술력을 가파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넘쳐나는 자본과 자원, 기술력이 집약되어있는 그곳에서 중책을 맡아 활약해온 공녀는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 원인은 연구소 지하의 한 구석에 있는 존재 때문이리라.

알레온의 생물마도공학 연구실은 부지가 넓은 제도 밖의 광활한 벌판으로 옮겨갔고, 현재는 다량의 에너지와 마석으로 꾸준히 유지를 해주어야하는 몇몇 개체만이 마도공학소의 지하에 남아있었다.

예를 들어 전 용사의 동료였던 남자라든지.

공녀는 마도공학소 지하실의 출입권한을 갖고 있어서 아펠을 데리고 종종 이곳에 와서 테르한의 육신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클레어와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몇 가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곧장 지하실에 들른 공녀는 분열이 말한 ‘무슨 일’이 생긴 조짐을 찾고 있었다.

자신의 예전 몸이 담겨있는 푸른색의 빛나는 액체의 유리관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공기방울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왔다.
테르한의 갈색 머리는 액체 속에서 해초마냥 풀어져있었다. 저곳에 갇혀있어도 머리카락이 자라는지 거의 등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있었다.
수염도 덥수룩해서 덩치 큰 산적 같은 꼴이었다. 공녀는피식 웃으며 몸에 변화가 없는지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분열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지, 생긴다고 말하지는 않았지. 분열이 생각했던 게 틀린 건가?’

저번에 블랙드래곤 세트라무스가 한 말도 물어볼  분열에게 연락을 시도하려고 하는 순간, 공녀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어?”

테르한의 머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붙어있었다.


- 분열!!!!

공녀의 외침이 분열에게 닿았다. 공녀가 전쟁과 전후처리로 바쁜 몇 개월 동안 연락이 뜸했지만 분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리에. 무슨 일이야? 갑자기 소리를 다 지르고.

공녀가 소리를 질러서 놀랐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벌인 일에 친구가 놀라서 화내는 것을 놀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물론 그것은 공녀의 억하심정이 만들어낸 편파적인 감상이었고, 분열은 평소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 내, 내 몸이……!!

그제야 공녀가 소리를 지른 이유를 알았다는  분열이 말했다.

- 아, 그래. 어떻게 됐어? 내가 예상하기엔  전체에 멋진 문신이…….

- 뿔!

- 뿔?

- 뿔이 났잖아!! 어떻게 된 거야?

공녀가 씩씩대며 말하자 분열은 말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제법 시간이 지난 후 공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푸흡. 뿔이, 큽, 났다고?

- ……웃어?

- 아, 잠깐만.

분열과의 연결이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당황한 공녀가 열심히 분열을 불렀으나 대답은 없었다.

한편 지버트 마을에서는 마을 수장인 레이아님께서 갑자기 한참동안 웃다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분열이 다시 공녀와 대화를 시작한 것은 거의 1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공녀는 답답한 마음에 위로 올라가 냉수도 한 잔 마시고 그래도 화가 식지 않아 클레어의 냉장고에서 디저트를 꺼내 아귀아귀 먹어치운 뒤 다시 지하실로 내려왔다.

- 아리에. 들려?

- 그래. 들린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거야?

어느새 테르한의 말투로 돌아온 공녀가 쏘아붙이듯 물어보자 분열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 예전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어?

- 영혼이 없는 상태잖아?

- 아니, 영혼을 제외하고. 나와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를 떠올려봐.

공녀는 테르한의 몸의 최후를 떠올렸다.

아펠에게 달려드는 분열의 육탄돌격을 온몸으로 막아낸 뒤 정신을 잃었었다.
 이후 분열의 영혼에게 몸을 침식당했지만 테르한의 영혼의 그릇이 워낙 커서 분열을 가두어버렸고, 테르한의 몸은 정화의 진에 의해 영혼이 아리에의 몸으로 이전되었다.

- 그렇지. 그러면 그때 나, 분열의 육체는 어떻게 됐을까?

음. 아펠이 성검으로 분해시켜버렸다고 하던데.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성검의 정체는 ‘기만’이었고, 어떤 방식인지는 몰라도 마왕들을 흡수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힘을 발휘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했다.
분열은 영혼과 육신이 이름 그대로 분열하는 마왕이었기에 기만에게 흡수당하는 대신 아리에의 몸으로 영혼이 전이되었던 것이다.

- 어, 그렇다면 육체 자체는 기만이 흡수한 것인가?

- 그건 아니야. 내 육체는 영혼과 분열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큰 피해를 입으면 저절로 육체와 영혼이 합쳐져서 재생을 시작하도록 되어있었거든. 문제가 있다면 그때 내 영혼이 있던 곳이…….

- 나, 테르한의 몸.

공녀는 슬슬 테르한의 몸에 뿔이 돋아난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 네 육체는 뿔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지. 그건 그냥 투구 아니었어?

- 아니. 뿔이 달려있어서 구멍 뚫린 투구를 쓰게 되었지. 그건 내 뿔이었어.

결론은 분열의 몸과 테르한의 몸이 합쳐지는 바람에 뿔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왜 분열이 독립한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발현되었는지는 둘째 치고, 공녀는 당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 그러고 보니 네 예전 육신도 도플갱어였지? 덩치는 나보다 더 컸고. 도대체 무슨 종족으로 의태를 한 거야?

분열은 잠시 멈칫하더니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마왕종.

- 마왕종? 처음 듣는데.

- 그럴 거야. 내가 만든 임의의 종족이거든. 너도 다른 마왕들 봤지? 인간과 닮았던 것은 파멸뿐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개성 있는 모습이었잖아. 그들 모두가 ‘마왕종’이야. 정해진 모습은 따로 없어.

흐릿한 실루엣으로만 보였던 마왕들은 확실히 어느 종족과도 닮아있지 않았었다.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것에 갇혀있는 불타오르는 해골의 모습을 한 ‘복수’, 나무에 사지가 구속당한 아름다운 요정의 모습을 했지만 본체는 등 뒤의  나무였던 ‘현혹’ 등 분열의 기억을 일부분 가지고 있는 공녀가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마신의 육신과 영혼을 분리한 뒤 그들에게 모습을 만들어주었지. 어째서인지 첫째인 파멸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둘째인 기만부터는 일부러 지상에 없는 종족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 그리고 네 모습도 그렇단 이야기네.

맞아. 그렇게 덩치가 크고 뿔이 달려있는 종족은 없지. 그리고 나는 도플갱어였기에 다른 종족에 현신해서 그 종족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던 다른 마왕과는 달리 본모습으로 활동하게  것이고.

- 그래서, 그 결과 네 몸과 합쳐진 나, 테르한의 몸에서

- 뿔이 나게 되었다.

- …….

한동안 공녀와 분열은 침묵했다. 긴 한숨을 내쉰 공녀는 분열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그래서 왜 지금 와서 뿔이 나기 시작한 건데?

- 내가 새로운 육체를 얻으면서  예전 육체는 죽어버렸거든. 네 육체의 내부에서 스스로 분해되면서  특징이 조금 드러나게 된 거지. 개인적으로는 주술의 힘을 빌려 온몸에 새긴 문신이 떠오르지 않을까 했는데, 뿔이 났다니. 큭큭. 너 예전 몸으로 돌아가면 뿔 관리하느라 힘들겠네.

분열의 놀림에 공녀가 한껏 볼을 부풀렸다.
어차피 골렘과 호문클로스가 섞여있는 마당에  좀 달린다고 크게 달리질 것은 없었지만 더욱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어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삐쳐있었던 공녀는 갑자기 생각난  세트라무스가 했던 말을 언급했다.

- 남부 늪지 전쟁이 끝난 것은 들었지?

그래. 네 활약도 잘 전해 들었어. 바쁠까봐 연락은 안했지만.

- 그런데 막판에 그쪽 대장이랑 만났거든. 블랙드래곤 세트라무스라고 하던데.

오, 그 치는 아직 살아있었나 보네?

응. 너를 잘 아는 모양이더라고.

흐음. 그렇긴 하지. 파멸의 밑으로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과거에는 여러 번 만났었다. 다른 마왕들과도 친했었거든. 내가 깨어난 뒤 녀석이 세상에대해서 약간 가르쳐준 적도 있었고.

분열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공녀는 이때다 싶어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 그 세트라무스가, 너와 내 영혼이 섞인  정화의 진을 맞고 이 아리에의 몸으로 들어온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

- 음.

- 그가 말하길, ‘파멸’은 절대 이 몸에 들어올 리가 없다고 했어.

- 으음.

- 그리고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 으으음.

- 분열? 듣고 있어?

- 미안하군. 내가 바로 대답해주기 힘든 문제야.

공녀는 입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분열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 파멸에 대비해왔던 공녀는 분열과 모든 사항에 대해 공유하고 싶어 했다.
공녀와 분열 사이에 속임수나 비밀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 절대로 속이려는 건 아니야. 나도 뚜렷한 답을 내놓기 힘들거든. 가정할 수 있는 것들은 몇 개 있지만 확신할  있는 단계는 아니라서.

- 어쩔 수 없지. 파멸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문제도 아니니까.

글쎄? 파멸을 막는  중요한 것일지는 두고 볼 일이지.

-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그냥 혼잣말이야. 어디 보자……. 아리에. 혹시  달 정도 뒤에 바쁠까?

갑자기 말을 돌리는 분열이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공녀는 순순히 스케줄을 읊어주었다.

- 아니. 그때면 기사단 양성소 여름특훈 끝나고 뒷정리할 때라서 크게 바쁘지는 않을 거야. 마탑이야 얼굴만 가끔 비추면 되고, 마도공학소는 이제 나 없이도 알아서 잘 돌아가니까.

- 그럼, 내가 전에 말했던 ‘평화로운 죗값 치르기’를 알아볼 겸, 나와 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아, 그거? 좋아. 나도 그게 진짜 가능한지 궁금한 참이었거든.

- 그럼 특훈 끝나고 연락 줘. 여기도 슬슬 아이들의 육성이 끝나가서 말이야. 한 1년 정도는 이야기꾼이 할 일이 없어졌어. 당분간 자유시간이라는 말이지.

- 알았어.

공녀와 분열은 간단한 작별인사를 나누고 통신을 끝냈다.
공녀는 눈앞에 있는 테르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세히, 또 한참 지켜보지 않으면 달려있는지 아닌지 알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뿔이 덥수룩한 머리카락 속에서 드러났다가 파묻혔다가를 반복했다.

공녀는 긴 한숨을 내쉰  테르한의 유리관에 달려있던 천막을 쳤다. 누군가가 뿔 달린 테르한을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부디 자신만큼 테르한을 관찰하는 이가 없기만을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