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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제 12 장. 전초전 - 5 (79/82)



〈 79화 〉제 12 장. 전초전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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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을잡았다는 황당한 소리를 들은 공녀는 분열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별일 없었다면서?

- 아리에가 걱정할까봐 그랬지. 비룡 빼고는 진짜 별일 없었어.

- 하아. 분열. 점점 너를 못 믿겠어. 꼼짝 말고 기다려.

공녀가 속도를 올리자 일행 역시 따라서 속도를 올렸다. 한참을 달렸지만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지버트 마을에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길이 잘 닦여있고 곳곳에 희미한 빛을 뿌리는 마석이 부착되어있어 별 어려움 없이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을 때가 한참 지나서야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공녀의 얼굴을 기억하는 경비병들 덕분에 바로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분열이 마중 나와 있었다.

“레이아!”

공녀가 한걸음에 달려가서 분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정말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공녀의 오러도 잘 듣지 않던 비룡을 어떻게 잡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비룡은 어디 있어?”

“저기.”

분열은 마을 중앙 광장을 가리켰고, 공녀는 그곳에서 목이동강난 채 쓰러져있는 비룡을 보았다.

“…….”

공녀와 기사들은 그 사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깔끔한 절단면은 얼어붙었다 녹은 흔적이 있었다. 얼음의 오러를 두른 검으로 단숨에 목을 친 것이었다.

공녀는 고개를 돌려 분열을 바라보았다. 분열은 아무런 무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레이아. 이거 누가 잡은 거야?”

“마침 소개해주려고 했어.”

분열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큰 키의 누군가를 소개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푸른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 사람은 곱상한 청년 같기도, 약간 드센 인상의 여장부 같기도 했다.

“내 호위인 엘로나야.”

“……벨로나 도플갱어는 아니지?”

“아니야! 이름은 조금 따라서 지었지만.”

하긴 벨로나는 저렇게 남녀 구분  가도록 생기지는 않았고 누가 봐도 예쁜 아가씨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었다.
엘로나는 공녀에게 과하다싶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레이아 님의 영혼의 자매이신 아리에 님을 뵙습니다.”

엘로나의 인사말에 궁금증이 담긴 시선을 보내오는 기사들을 무시하며 공녀는 엘로나에게 다가갔다.

“엘로나 경. 반가워요. 앞으로도 레이아를 잘 지켜주세요.”

“네. 물론입니다.”

목소리를 들어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공녀는 머릿속으로 몰래 분열에게 질문했다.

분열. 엘로나는 남자야 여자야?

- 응? 하하. 엘로나는 여성체야.

- 그렇구나.

공녀는 새삼스레엘로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말을 듣고 보니 그냥 무뚝뚝해 보이는 아가씨 같았다.

- 그리고 네가 저번에 안아주었던 파란 도플갱어고.

- 아! 그…….

어쩐지 무척이나 강하다 싶었더니 제국 기사단 급은 될 거라는 파란 도플갱어가 벌써 저 정도로 자란 모양이었다.

- 너보다 빨리 크네.

분열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 내 육성방법이 좋아서 빨리  거야.

- 그래. 그런 걸로 하자.

가만히 있던 공녀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웃자 엘로나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으로 의태하기 전에 공녀를 만났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분열의 명에 의해 엘로나는 공녀를 자신의주인인 레이아와 동급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분간 이 마을에서 머물면서 마족들의 동향을 지켜볼 거예요. 이어렌 마을이 완전히 풍비박산 나서 외부와의 연락이나 지원 요청이 한참 걸릴 테니 우리 기사단 일원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게예요.”

공녀의 말에 촌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렌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곳을 초토화시킬 정도의 마족이 몰려온다면 지버트 또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었다.

지버트 마을은 산속에 있는 마을 치고는 크기가 정말 컸다.
성벽은 튼튼했고 병사들도 제법 많았지만 비룡이 대량으로 몰려오기라도 한다면대책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플갱어들의 성소를 버려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 기사단의 도움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았다.
게다가 그들의 수장인 레이아를 데려다주기도 했고 그녀에게 무한에 가까운 호의를 보여주는 공녀는 켄스웰의 왕국군보다도 믿을만했다.

“그럼 오늘은 간단한 만찬 정도만 하도록 하지.”

분열이 광장 한쪽에 늘어서있는 테이블들을 가리켰다. 인근의 가로등 불빛이 켜지자, 테이블 위에는 차려진 온갖 음식들이 보였다.

“저녁 안 먹었어?”

“응. 아리에가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고 했는데 우리끼리 식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한 분열은 만찬의 시작을 선언했다. 마을사람들과 기사들은 돌아다니며자유롭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공녀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분열이 바로 옆에 서더니 공녀만 들릴 정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비룡 뒤처리도 조금 걸렸고.”

“뒤처리라니…….”

비룡은 마을 광장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는데, 불이 켜진  다시 한 번 보니 몸통이 상당히 줄어있었다.
한편 공녀는 테이블 위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비룡 고기?”

“음. 남부 전선에서는 지룡 고기를 먹었다는 말을 들었지. 적의 살점을 먹음으로써 그 강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법 널리 퍼져있는 문화야.”

“누가 지룡 고기를 먹었대?”

공녀가 미간을 찌푸리자 분열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기를 한 점 집어 들었다.

“아리에는 수뇌부에 파견된 기사단의 리더 격이었으니 보급이 상당히 좋았겠지. 하지만.”

분열이 고기를  입에 삼켰다. 한참이나 고기를 씹어 삼킨 분열이 포크로 공녀를 가리켰다.

“휘하의 병사들은 그렇지 못해.”

공녀는 뜨끔했다.
남부 전선에는 와본 적도 없는 분열이 자기보다 내부의 사정을 더  알다니.
공녀는 자신이 너무 기사단에만 신경을 썼던 것을 반성했다.

파멸을 상대하기 위한 최대의 전력은 기사들이긴 했지만, 병사들이나 민간인들의 도움 없이는 파멸의 군세를 뚫을 수도, 제대로 보급을 받을 수도 없을 터였다.

반성의 의미로 비룡의 고기를 집어든 공녀는 눈을 딱 감고 한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란 공녀가 말했다.

“이러면 반성이 안 되잖아…….”

분열은 그런 공녀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밤에는 다크엘프들이 마을과 외곽을 순찰했다.

시트리아를 비롯한 어린 다크엘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갓 성인이  자들이었기에 활력이 넘쳤다.
덤으로동족에게도 다소 냉정한 그들은 숲의 마족을 발견하면 바로 화살을 날릴 정도로 정신도 굳건했다.

기사단을 소집한 공녀는 매일의 당직 순서를 정했다.
불침번은 다크엘프와 마을 경비대가 맡고 있었기에 적당히 쉬면서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초기에 대처하기 위한 인원을 하루마다 돌아가며 뽑는 것이었다.

“난 두 번째.”

공녀의 말에 시레온이 자신의 제비를 들어보였다.

“저는  번째입니다.”

세냐르는 ‘3’이 써져있는 제비를 흔들었다.
제레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1’이 적힌 제비를 내밀었다. 제비뽑기 결과 제레인이 첫날의 당직을 맡게 되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갑옷과 덧갑옷으로 완전무장한 제레인이 투구의 바이저를 내리며공녀에게 경례했다.

“네. 심상치 않다 싶으면 바로 깨우러 오세요.”

적당히 간만 보는 공격에 일일이 기사들을 깨워 대응한다면 결국 지치게 되어 나중에 정작 중요한 한 번을 막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낮에 봤던 숲의 거대 마족이 대량으로 온다던지, 비룡이 등장한다던지 하지 않는 이상은 어지간하면 당직인 기사가 병사들 다크엘프와 협조하여 처리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제레인에게 맞경례를 한 공녀와 기사들은 각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밤새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무장하고 출격할 수 있도록 갑옷 위에 덧갑옷을 느슨하게 씌우고 무기들이 꽂혀있는 벨트를 탁자 위에 놓은 공녀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상당히 피곤한 하루였기에, 눈을 붙이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밤새 별일은 없었다.
비룡을 쓰러트려서인지 숲의 마족조차 어슬렁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보고를 마친 제레인이 피곤한 눈으로 서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제레인 경.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예, 알겠습니다. 교관님.”

제레인은 경례를 한  하품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기사인 그는 따지자면 카디엄과 비슷한 과였다.
장검을 쓰는 ‘기사’라는 호칭을 들으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모습.

정작 공녀 자신은 여러 무기를쓰고 있었지만 테르한 시절부터 역시 기사라면 검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다만 온갖 종족으로 구성될 파멸의 군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무기의 조합이 필요했다.

다수를 원거리에서 요격할 수 있는 수십 개의 투척단검을 사용하는 세냐르, 레인저에 가까운 활과 총 솜씨를 보이는 시레온, 거대한 괴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도끼의 레무르트 등.

공녀 덕분에 오러의 사용법이 보편화되면서 특이한 무기를 사용하는 기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신입 중 절반 가까이가 장검 대신 다른 무기를 주력으로 쓴다고 한다.

이를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야할지, 검술로 회귀하라고 일갈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공녀는 결국 공을 기사단장에게 넘겼다.
아직까지 별 말 없는 것을 보니 기사단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오늘의 당직인 공녀는 편한 옷을 입고 마을로 나왔다.
밤새 당직을 서고 자러간 제레인과 오늘 당직인 공녀 제외한 세냐르, 시레온은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둘 다 원거리 공격이 주력이라 그런지 금속갑옷이 아닌 가죽갑옷에 덧갑옷을 입고 있었다.
어차피 비룡이라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고전할 상대는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만일 비룡이 나오더라도 엘로나가 알아서 상대할 테고, 공녀가 무장을 갖춰서 지원할 시간만 벌어도 된다.
이곳은 집들도 튼튼하고 각 집마다 지하실이마련되어있어 이어렌 마을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않을 것이다.

예전에 지룡을 한꺼번에 상대한 것처럼 비룡이 여러 마리가 와도 상대가 가능할까.
 동안 자신의 기량이 얼마나 상승했을지 궁금해서 손이 근질거렸다.
비룡 여러 마리가 애초에 오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만일 온다면 한  혼자서 상대해보고 싶었다.

마침 여러 번의 개량을 마친 빛의 날개도 가져왔으니 공중전을 연습할 좋은기회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공녀는 며칠이 지나도록 마족의 ‘ㅁ’자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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