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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제 13 장. 지버트 공방전 - 1 (80/82)



〈 80화 〉제 13 장. 지버트 공방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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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버트 마을에 온지 닷새째.

공녀는 오늘도 빛의 날개를 달고 나는 연습을 했다.

첫날에는 구경하며 환호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별 반응이 없다.
마을 꼬맹이들이 자기도 태우고 날아달라고 고집을 부릴 뿐.

엿새째.

공녀가 잠깐 마을을 비우고 다크엘프들과 정찰을 나가니 마을 근처에서 마족들 몇 명이 왔다 갔다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설마? 하며 공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열흘째.

켄스웰 왕국군이 이어렌 마을의 뒤처리를 마치고 지버트로 들어왔다.
분열은 어려보이는 외형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마을 외부의 인원들과 만날 때는 자기를 대표로 내세우기가 힘들었다.

집에 숨어있는 분열 대신 자연스레 촌장이 왕국군을 맞이했고, 그들은 미리 비워놓은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는 놀데도 없네.”

“그래도 이쁜이들은 좀 있구먼.”

질 나빠 보이는 병사들이 벨로나와 공녀, 세냐르를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벨로나가 검을 뽑아들려는 것을 제지한 공녀는 왕국군의 행태를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휘유. 아가씨들 시간 있어?”

급기야 추파를 던지는 병사들도 나타났다. 그녀들이  검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할 자신이 있는 것인지는 알  없었지만 공녀는 왕국군의 수준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와……. 엄청 구닥다리네요.”

“그러게. 나이가 들었으면 연륜이 느껴져야 하는데 촌스럽고 천박하기만 하네.”

“뭐라고?”

개중에 덩치가 크고 수염이 삐죽삐죽 나있는 병사가 다가왔다.
일부러 들리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기에 공녀는 잘 걸렸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봐, 젊은 아가씨. 마왕군을 두 번이나 상대한 우리를 보고 감히 뭐가 어쨌다고?”

‘지난번 전쟁의 참전자인가.’

용사의 일행이었던 시절에는  정로도 질 나쁜 병사들을 본 적이없었다.
테르한과 함께 전방에 섰던 왕국군은 다들 비장했고, 전우애가 넘쳤으며,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살아남은 이들이 많지 않았다.

구제불능이라 후방에 있던 놈들일 가능성이 컸다. 켄스웰 왕국에서는 도플갱어 자치구나 다름없는 지버트를 방어하기 위해 정예병들을 차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수준이 낮은 병사들을 보낸 것이고.

공녀는 이를 뿌득 갈았다.

“당신네들 책임자가 누구죠?”

“뭐? 이 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마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팔을 걷으며 공녀에게 다가오려던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병사의 목에는 벨로나의 세검이 닿아있었다.

“움직이면벤다.”

“무, 무슨……!”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각자의 무장을 들었다.
칠 할이 창에 나머지  할이 검이었다.
수는  스무 명.

원래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었겠지만 공녀는 지금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상태였다. 공녀는 자신의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제국 기사단 양성소 교관이자 위대한 체노스트라 제국 제즈릭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말할게요.”

공녀의 신분을 본 병사들이 놀란 뒤 아연실색했다. 이대로 공녀가 왕국의 높으신 분에게 항의라도 한다면 병사들은 최소 제명에 심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신분증을 집어넣은 공녀는 손과 목을 풀며씨익 웃었다.

“한꺼번에 덤벼. 유효타를 맞추면 이 일은 불문에 붙여드릴게.”

“아가씨!”

여전히 검을 겨눈 채 벨로나가 외쳤지만 공녀는 고개를 저었다.

“무기를 써도 좋아요. 자. 빨리 덤벼요.”

공녀가 손짓으로 도발하자 병사들이 무기를 쥐고 서서히 다가왔다.
하지만 마력각성자에다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공녀는 얼마나 셀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기에 섣불리 덤비는 자들은 없었다.
그런 동료들을 보며 덩치 큰 병사가 외쳤다.

“우리는 1년 만에 마왕을 잡았다! 마왕은커녕 그 군단 하나 잡는데 5년이나 질질 끈 제국의 기사단 따위……. 엌!”

기사단에 대한 모욕을 듣다 못한 벨로나가 병사를 발로 차서  멀리날려버렸다.
벨로나의 눈에 불길이 붙었다.

“아가씨. 화끈하게 쳐부숴주세요.”

“오케이.”

그들이 있던 중앙광장 근처 집 지붕 위에서 시레온이 영상을 찍는 마도구로 열심히 촬영하는 것을  공녀는 그에게 살짝 윙크를 날렸다. 시레온은 조용히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켜야하는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해이해진  기강에 대한 증거도 확보했으니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한꺼번에 찔러들어오는 왕국군의 창끝을 불의 마력이 깃든 맨손으로 단숨에 잘라내며 공녀의 참교육이 시작되었다.

창날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한 번에  개의 창을 단순한 봉으로 바꿔버린 공녀는 바람의 마력을 타고 몸을 휘청거리며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냈다.

과연 수가 스물이나 되니 맨손인 공녀가 공격할 틈이 없었다.
아무리 후방부대에  나쁜 놈들이라곤 했지만 경험은 제법 풍부했고 지금껏 짬을 그냥 먹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합이 잘 맞았다.

진짜로 부상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막 싸웠다면 시작부터 역행의 구체를 마구 날렸겠지만, 공녀는이들 중  한명도 부상을 입히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 목표였다.
병사들이 부상을 입을만한 공격은 하지 않을 셈이었다.

공녀에게 창날이 잘린 병사들은 재빨리 창을 회수하고 검을 빼들었다.
창이 멀쩡한 이들은 아까와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공녀에게 창을 내질렀고, 공녀는 그 창날들을 땅의 마력이 깃든 손으로 밀어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공녀를 포위한 병사들은 검을 든 이들이 앞으로 나오고 창을 든 이들이 뒤로 물러나 진형을 갖추었다.

검과 창이 한 조를 이루어  열 개의조가 공녀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동시에 베어 들어오는열 개의 검과찔러 들어오는 열 개의 창. 도저히 피할 공간이 없어보였다.

후웅

순간 공녀가 일으킨 바람의 마력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병사들 중 일부가 고개를 돌렸고,  중 두 명 전부 고개를 돌린 한 조에게 파고든 공녀는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든 속도로 검을 밀치고 창을 걷어찬 뒤 병사  명의 목덜미를 잡아 던져버렸다.

“으아악!”

순식간에 수 미터를 날아간 병사들은 짚더미에 거꾸로 처박혔다. 세냐르가 쪼르르 달려가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포위를 빠져나온 공녀는 병사들을 집어던진 자세 그대로  바퀴 돌아 그 옆에 있는 창병 둘을붙잡고 공중에 던져버렸다.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었으니 세이프였다.
어차피 시레온 근처로 던졌으니 알아서 처리하겠거니 하고 생각한 공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목표를 잃은 검과 창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회수되는 검과 창을 따라 공녀가 들어왔다.

두 개를 양 손에 하나씩 잡은 공녀가 그대로 창대를 옆구리에 끼고 병사들을 들어올렸다.
검들이 공녀를 공격했지만 그녀가 몸을 반 바퀴 돌리자 창끝에 매달려있던 병사들과 검병이 부딪히면서 한 번에 네댓 명이 쓸려나갔다.

어느새 광장에서 벗어난 자들은 아웃이 되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았다.
공녀의 공격에 나가떨어진 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병사들은 남은 이들과 공녀의 싸움을 구경했다.

“얌마! 뒤로 돌아 들어가라니까!”

“붙잡히면 끝이야! 더 빠르게 휘둘러!”

어느새 훈수까지 두는 장외의 병사들을 보며 공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남은 병사는 아홉 명.

창병들을 먼저 처리해서 그런지 검을 든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창을들고 있던 세 명도 창을 버리고 검을 빼들었다.
창대가 잡힌 순간 날아가 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진형을 짰다.
인원은 적었지만 그럭저럭 방진(方陣)이 완성되었고, 공녀는 맨손만으로 이들을 제압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했다.

아홉 명이 3x3으로 짠 진형은 어디서 공격을 들어가기도 애매했다.
어디로 공격을 하던 제일앞에 있는 세 명을 상대해야했고, 어깨 너머로 들어오는 공격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휴우.”

공녀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병사들이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천하의 제즈릭 공녀도 무기 없이 여러 명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은모양이었다. 하고 생각한 순간,

공녀에게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력을 거의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조차 명백히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흐름을 겨우 한 명의 사람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허둥대면서도 용케 진형을 유지하는 병사들을 향해 공녀가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녀가 세게 발을 굴렀고, 그날 지버트 마을에서는 지진이 관측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녀의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허리를 숙인 이는 지버트 마을로 지원 온 켄스웰 왕국군의 책임자인 젊은 장교였다.
아마 나이 어린 엘리트인 모양이었는데, 경험과 나이가 많은 병사들에 대한 통솔이 잘 될 리가 없었다.

공녀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긴 했지만 지금 기회에 왕국군의 기강을 세우기로 했다.

“장교님. 왕국군의 사명은 무엇이지요?”

“네? 아, 우리의 사명은 백성들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켜야하는 백성들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이들은 왕국군이라고 할 있습니까?”

“아닙니다!”

장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악을 썼다.

“딱 한 번은 불문에 붙이겠습니다. 앞으로 이 마을에서 왕국군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들려온다면, 이번에는 놀이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크게 보면 내정간섭이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켄스웰 왕국은 말만 제후국이지 사실상 제국의  영지보다 크게 나을 없었다.
게다가 지버트는 거의 자치구나 다름없었고 에팔레니아 산맥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왕국과 제국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장교는 철저하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는데 불문에 붙여준다니.
소문의 제즈릭 공녀가 참으로 관대하다 여기며 장교는 계속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럼, 앞으로의 작전은 어떻죠.”

무서운 얼굴을 했던 공녀가 얼굴을 풀고 웃으며 말하자 장교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작전 말씀이십니까?”

“네. 마냥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아참. 지버트 말고 다른 곳에는습격이 있었나요? 여기는 소문을 듣기가 영 어려워서요.”

“아, 예. 며칠간의 상황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괜히 젊은 엘리트가 아니었는지 그의 깔끔한 보고에 공녀는 내심 감탄했다.
요약하자면 이어렌 마을이 박살나고 지버트에서 비룡이 떨어진 뒤 이쪽이 아닌 다른 방면에 대한 공격이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아펠이 있는 수도 인근에서도 마족들의 공격이 한 차례 있었다고 한다.
제국 기사단에서 파견 나온 이들은 대놓고 날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암암리에 재림한 용사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다고 한다.

“그렇군요. 그러면 비룡이나 숲의 거대 마족도 있었나요?”

“소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다만 그 수가 이어렌보다 적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생존자들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마을에 쳐들어온 숲의 거대 마족들은 삼십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공녀가 상대했던 숲의 거대 마족  명은  중 일부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룡은 딱 한 번 관측되었다는데 그냥 하늘에서  번 선회를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여러모로 이어렌과 비교가 되었다.

‘어째서 수도 근처를 습격한 거지? 그냥 게릴라로 이어렌처럼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편이  효과적일 텐데.’

“저와 군의 수뇌부는 수도에 나타난 군대는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렌 때 동원했던 병력보다도 적은 병력을 동원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족들의 최종 목표는 아마 여기, 지버트 마을일 거라고…….”

“뭐라고요?”

공녀가 책상을 쾅 내려치자 장교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이끌고 온 병사들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정예병들은 아닙니다. 다 마족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부대죠. 진짜 정예병들은 이어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버트를 미끼로 쓰시겠다?”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다크엘프들이 그들의 목표일 테니 그들을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는? 지버트 마을이 목표라는 증거는요?”

장교는 품에서 사진을  장 꺼내들었다. 처음 보는 다크엘프였는데,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와 조금 닮은 것 같았다.

“그들의 대장이 이 마을 근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제야 공녀는 사진 속의 다크엘프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저 자는 분명, 시트리아의 오빠였다.
공녀는 조만간 큰 전투가 벌어질 것임을 짐작했다.

바로 지버트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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