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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제 13 장. 지버트 공방전 - 2 (81/82)



〈 81화 〉제 13 장. 지버트 공방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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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로브를  눌러쓴 두 명의 사람이 지버트 마을을 빠져나갔다.
당직을 서던 세냐르의 경례를 받으며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를무렵 찬 이슬을 맞으며 잠시 바위에서 쉬던 그들은 로브를 벗었다.
벨로나와 공녀였다.

이른 아침을 먹는 그들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나무 위에서 숨을 죽이고 그들을 향해 활을 겨눈 그는 공녀의 초인적인 마력 감응에 의해 견제를 받았다.

공녀가 장전된 총을 뽑아 나무를 향해 쏘았다. 총탄이 나무에 닿아 폭발하자 그 위에 숨이었던 이는 몸을 다른 나무로 날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아직 어두워 인간인 공녀와 벨로나가 숲에서 숲의 마족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간신히 도망친 숲의 마족은 자신의 대장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부복했다.

“족장님. 확인했습니다. ‘마왕공녀’가 마을을 나와서 산 아래로 가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하얀 머리의 다크엘프 청년이 한쪽 눈을 살짝 뜨며 물어보았다.

“확실한가?”

“예. 얼굴도 머리카락도 일치했습니다. 제가 살기와 마기를 전부 감추고 활을 쏘는 시늉만 했는데도 정확히 제가 있던 곳을 노리고 먼저 총을 쏘더군요.”

“흠.”

확실히 그 정도 묘기는 마력각성자이자 온갖 병장기들을 다룬다는 마왕공녀가 아니면 하기 힘든 것이었다.

인간 측에서 제일 강한 전력이라고 평가받는 그녀와 제국의 기사단도 언제까지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어제 왕국군이 마을에 도착했으니 한두 명씩 마을을 빠져나가려는 모양이었다..

‘멍청하게도.’

그까짓 왕국군 수백 명 따위보다 공녀  명이 더 무서운 상대였다. 자신들을 꾀어내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 하루쯤  상황을 지켜보다가 공녀가 산을 완전히 내려가면 급습을 할 예정이었다.

산 아래의 마을에 머물고 있는 왕국군이여기까지 도착하려면 빨라봐야 반나절이 넘게 걸린다. 마을 습격을 하는 동시에 왕국군이 출발해도 그럴 텐데, 습격 소식을 들은 뒤 여기로 온다면 그때는 이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뒤일 것이었다.

그날 저녁 공녀가 이어렌마저 지나서 인간들의 도시 쪽으로 향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숲의 마족에 합류한 다크엘프 족장, 시트론은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선포했다.
숲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천여 명의 마족들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편히 쉰다고 생각하세요. 마을 걱정은 말고.”

운전대를 잡은 벨로나는 신이 나 보였다. 분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왕국군은 못미더우니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아리에가 이끄는 기사들이 최고의 전력일진데.”

자신이 마을에 있었을 때는 마족이 얼씬도 하지 않았고, 잠시 마을을 비운 사이에 마족들이 어슬렁거리자 자신 때문에 공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공녀는 작전을 짰다.

분열에게 키 높이 신발을 신기고 마력을 조정하여 머리카락 색깔을 바꾸는 신제품 염색약으로 분열의 머리를 자신과 똑같은 하늘색으로 바꾼 뒤 자신의 총을 쥐어주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공녀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변장한 분열을 벨로나와 함께 내려 보낸 것이다.

이어렌 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마족들이 또 간만 볼까봐 벨로나에게는 아예 피체르까지 다녀오도록 명령해놓았다.

“그럼 일단 피체르 근처까지 가서 조금 대기하다가 돌아오죠.”

“그래. 그러자꾸나.”

벨로나는 백미러를 통해 후방을 보았다.
야트막한 구릉 사이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지만 대부분 평탄했고 마족은커녕 인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머리 위에 마족 놈들의 염탐꾼이 있군.”

조그마한 손거울로 창밖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분열이 하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벨로나가 모는 차 바로 위쪽에 조그마한 크기로 보일 정도로 높이 나는 비룡이 있었다.

“칫. 꼼짝없이 피체르까지 가야겠네요. 놈이 습격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래. 나를 아리에로 착각했으면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대비는 해놓아야겠지.”

분열은 공녀가 쥐어준 총을 매만졌다. 자신과 똑같은 ‘분열’이라 이름 지어진 총은 은빛의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피체르시 근처까지 가니 비룡이 산맥으로 방향을 돌렸다. 차를 몰아 피체르의 외곽을 따라 천천히 돌던 벨로나는 비룡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또 차를 타고 가면 들킬 것 같은데요.”

“말을 타고 가도록 하지.”

차를 주차해놓고 말을 빌린 벨로나와 분열이 다시 산맥으로 향하는 사이, 지버트에 마의 기운이 드리웠다.

“교관님. 슬슬 놈들이 옵니다.”

시레온의 보고에 공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을 반쯤 덮던 머리카락을 목 뒤까지 짧게 치고 밝은 하늘색 머리카락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자신의 허벅지에 매달려있는 검은  ‘조화’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 모자를 눌러쓰고 검을 챙긴 공녀는 정렬해있는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목표는 산 아래 마을 근처에 머무는 정예 왕국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서 적들의 정예들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일반 마족군은 마을 경비병들과 다크엘프, 왕국군들이 상대할 테니 잡병을 쫓다가 강한 적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네!”

“우선순위를 정하죠. 숲의 거대 마족이 1순위입니다. 덩치가 크고 활이 아니라 검을 쓰는 숲의 마족이 2순위. 나머지 강해보이는 녀석이 3순위예요.”

세냐르가 손을 들었다. 공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질문했다.

“교관님. 비룡이 다수 있을 수 있다는 첩보가 있는데, 놈들은 어떻게 하죠?”

공녀가 자신의 검을 들어보였다.
원래 쓰던 바스타드소드보다 한층 더  양손검이었다.
그리고 뒤로 반쯤 돌아선 공녀의 등에 달린 빛의 날개를  세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룡이 내미는 발톱과 부리 쪽은 오러가 잘 먹히지 않더라고요. 목이나 몸통을 노려야하는데 날아다니는 그 녀석들을 그런 식으로 잡기는 힘들겠죠. 그래서 제가 공중에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만일 비룡들이 저를 무시하고 마을을 공격한다면, 녀석들의 날개를 꺾어야겠죠.”

공녀는 잠시 시레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짐작한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비룡이 자신에게 직접 온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과 연계해서 처리하거나 막고 있으세요. 뭐, 놈들이 공중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해볼게요.”

공녀의 자신만만한 말에 기사들은 조용히 웃었다.

“자, 갑시다!”

“네!”

공녀와 네 명의 기사들이 임시 막사를 나왔다.
동시에 지버트 공방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에팔레니아 산맥에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전부 안전한 피난처로 대피했습니다!”

“좋아요! 경비병 여러분들, 무기 사용법은 숙지하셨죠?”

“네, 공녀님!”

“왕국군 여러분들은…….”

한창 지시를 내리던 공녀는 말을 흐렸다. 기사들이야 원래 자신의 휘하였고, 분열에게 전권을 위임받았기에 마을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왕국군은 현재 젊은 장교인 에밀이 지휘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명령을 내릴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에밀에게 간단한 작전만 설명해준 뒤 기사들과 경비병을 배치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공녀님.”

에밀은 작전을 듣고 군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엊그제만 해도 그저 한량일 뿐이었던 왕국군은 전쟁을 앞두자 베테랑의 면모를 보이며 알아서 준비를 시작했다.

적들이 대부분 원거리 공격을 하는 놈들이라 방책은 역효과였다.
강력한 화기를 가지고 있는 경비병들을 지키기 위해 분산 배치된 왕국군들은 가져온 커다란 방패를 세워들고 불이 붙지 않게 적셔놓은 짚더미를 군데군데를 쌓아놓았다.

에밀은 따로 활과 총을 쓰는 병사들을 모아 높은 탑에 주둔했다.
그리고 전쟁 준비를 알리는 종소리가 그친 뒤 모두들 몸을 낮추고 마족의 공격에 대비했다.

여름 오후의 해가 산속의 짧은 낮을 불태우고 있었다. 시원한 산속이었지만 여름의 더위를 물리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턱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땀을 닦으며 공녀는 마력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

전장의 용기를 북돋는 함성이나 고함 따윈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빠르게 나타난 그들은 성벽 위의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텅 텅

왕국군은 노련하게 화살을 막아냈다.
경비병들은 아래에 숨겨두었던 기관총을 꺼내 응사하기 시작했다.

콰쾅

성벽 근처 100여 미터 이내의 나무는 전부 잘라냈기에 숲에 불이 붙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었다.

총탄에서 일어난 화염 회오리로 인해 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습도 높은 여름의 기후 덕분에 산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숨어있던 숲의 마족들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공격이었다.

쿵 쿵

거의 수백에 달하는 숲의 거대 마족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땅이 울렸다.

“쏴! 놈들부터 쏘라고!”

왕국군의 재촉에 긴 재장전을 마친 경비병들이 허겁지겁 총을 갈겨댔으나 강철로 만든 거대한 방패를 든 숲의 거대 마족들은 총탄을 비껴내며 성벽 바로 아래까지 도달했다.
동쪽 정문에 파놓은 깊은 해자와 방책들이 무색하게 마족들은 숲에 가까운 북쪽 성벽을 공격하고 있었다.

숲의 거대 마족들이 크다고는 하지만 자기의 키에 두 배에 달하는 성벽을 오르지는 못했다.
대신 성벽에 착 달라붙어 기관총이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다.

“뭐 하려는 거지?”

성벽 위에서 몸을 잔뜩 낮추고 숨어있던 세냐르는 자기 바로 아래쪽이 비워져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옆으로 약 십여 미터를 떨어진  성벽에 달라붙어있던 숲의 거대 마족들은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수인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이 세냐르의 오감을 자극했다.

세냐르는 근처에 있던 병사들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뛰어내려 마을 안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왓, 기사님! 갑자기…….”

휘유웅- 콰앙-!

놀라서 따지려던 병사의 말은 엄청난 폭음에 묻혀버렸다. 방금까지 세냐르와 병사들이 있던 성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이미 벽에서 충분히 떨어져있던 세냐르와 병사들이 폭발의 충격파에 휩쓸려 수 미터나 나가떨어졌다.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무사히 착지한 세냐르와는 다르게 병사들은 건물에 부딪혀 기절하고 말았다.

세냐르는 파편이 스쳐 볼에 흐르는 피를 옷으로 대충 닦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세냐르가 즐겨 쓰는 투척용 단검보다 약간 큰, 사슬로 이어져있는 두 자루의 단검이었다.

“크아아악!”

숲의 거대 마족들이 하나 둘 마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는 아직도 폭발 때문에 정신이 없어보였다.

“세냐르!”

“도련님!”

마을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르나타가 달려왔다.
거대한 양손검을  그는 세냐르 앞에 서서 오러를 발동시켰다.

우웅

한없이 정련된 무속성의 오러가 검을 타고 뻗어 나왔다.
요 근래 기사단에서 유행하는 속성 오러 역시 자유자재로 사용할  있었지만 카르나타는 딱 필요할 때만 속성을 부여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는 속성을 띠지 않아도 충분히 강한 검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직한 그의 모습에 세냐르는 무기를 집어넣고 단검들을 허공에 띄웠다.

숲의 거대 마족 대여섯 명이 일렬로 늘어서더니 방패를 앞세우고 한꺼번에 돌진했다.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 카르나타는검으로 제일 끝에 있는 마족  명의 방패를 박살냈고 곧장 뒤로 빠졌다. 마족들이 방패를 떨어트리는 순간 세냐르의 오러가 깃든 단검이 놈들의 눈을 찔러 들어갔다.

곧이어 카르나타의 대검이 나머지마족들의 방패를 부수고 목을 떨어트렸다.
눈이 먼 도끼와 검이 카르나타를 치기 직전,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에 마족들은 팔과 목이 찔려 명을 달리하였다.

이미 수백 번은 합을 맞춘 카르나타와 세냐르는 대화는커녕 눈빛조차 주고받지 않은 채 공격의 연계를 이어갔다.

순식간에 숲의 거대 마족 선봉을 꺾은그들이 부서진 성벽 앞을 틀어막자 마족들도 쉬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 사이 대열을 갖춘 성벽 위의 병사들이 숲의 마족들에게 응전을 하며 한 차례의 공격이 물러나는 듯했다.

“휴우.”

세냐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카르나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하지만 잠시 쉬려던 그들의 귀에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끼에에에!”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그림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작렬하는 태양을 배경으로 비룡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적어도  마리는 되어보였다.

삐익-

어디선가 들려온 신호음에 세냐르가 뒤를 돌아보자 높은 첨탑의 창문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등에서 뻗어 나온 햇빛보다 밝은 빛이 하늘을 가르며 비룡들에게로 향했다.

“교관님!”

세냐르의 외침에 날개를 단 사람은 잠깐 뒤를 돌아 손을 흔들어주었다. 날아오는 화살들을 바람의 마력으로 날려버리며, 마침내 아리에 제즈릭 공녀가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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