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제 13 장. 지버트 공방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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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비룡들이 등장했다는 신호가 울렸다.
공녀는 무기를 든 손에 감긴 붕대가 단단히 고정되어있는지 확인했다.
창틀에 발을 올리며 공녀는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비룡이 일정 고도 아래로 내려오면 제대로 견제해주세요. 놈들이 다가오면 시레온 생도가 막아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궁병, 총병들과 함께 첨탑에서 대기하던 에밀이 대답하자 공녀는 냅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병사들이 조금 술렁거렸지만 곧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는 공녀를 보며감탄사를 내뱉었다.
“끼에엑!”
비룡들이 서서히 하강하다가 날아오는 공녀를 발견했다.
공녀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비룡의 기수들은 빛의 날개를 단 짧은 검은머리의 소녀가 공녀임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장이 내렸던 ‘마왕공녀를 발견하면 도망쳐라’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대신 무기를 꺼내들었다.
휙 휙휙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비룡 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것도 묘기에 가까웠는데, 공녀가 현재 있는 위치, 지나가야할 경로, 아래로 약간 떨어진 장소에 동시다발적으로 화살들이 날아왔다.
공녀는 혀를 차며 복잡한 회피기동을 했다.
이미 올라올 때 바람의 마력으로 화살을 날려버렸는데, 그런 일을 연속으로 하는 것은 자신이 공녀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옆으로 쭉 빠졌다가 멈추고 빠른 속도로 솟구치는 동작 사이에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비룡의 비행궤도와 속도를 눈에 익히던 공녀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가까이 있던 비룡에게 접근했다.
“잡았다!”
공녀의 검에 무시무시한 오러가 깃들었다. 검 끝에서거의 1미터 정도 뻗어 나온 무형의 기운이 비룡에게로 짓쳐들어왔다.
“!!”
비룡을 탄 숲의 마족이 놀라서 방향을 틀려 고삐를 확 당겼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고개를 돌려 맞대응하려던 비룡이 잠깐 멈칫했고, 그 결과 비룡의 목은 공녀의 검에 의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잘려나갔다.
“일단 한 마리.”
공녀는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는 덩치가 다른 비룡들보다 조금 큰 녀석이었는데, 저번에 창고에서 마주친 놈과 비슷한 크기였다.
“키에엑!”
날아오는 공녀를 보고 비룡이 울부짖었다. 비룡의 고삐를 틀었다가 당한 동료를 보고 숲의마족은 모든 것을비룡에게 맡긴 채 화살을 날리기만 했다.
공녀가 내지른 검이 비룡의 목을 치기 직전, 비룡은 긴 목을 확 꺾어 부리로 검을 튕겨냈다.
까앙
확실히 비룡의 부리와 발톱에는 오러가 통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의 기운이 녀석들의 부리와 발톱에깃들어있었다.
그 뒤로 몇 번의 공격을 가했지만 노련하고 강한 그 비룡은 공녀의 공격을 모조리 쳐냈다.
비룡은 지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래고 유연했다.
녀석의 뒤를 잡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날아다니는 데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태생부터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은 원래 비룡의 무대였으니 공녀에겐 적진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상에 있을 때는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 다른 무기를 꺼내거나 재정비를 할 수가 있었지만 공중에서 그런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왼쪽 허벅지에 차고 있는 총도 한 번 쏘는 것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마력을 동원하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녀석들이 뿔뿔이 흩어질 우려가 있었다.
공녀는 자신이 빠지자마자 놈들이 쳐들어온 사실에 자신의 정보가 적에게 알려져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저 검 한 자루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다.
오랜만에 정통기사로서의 피가 끓는 것을 느낀 공녀는 일단 덩치가 작은 다른 비룡들로 목표를 변경했다.
까앙-
페이크로 검을 내질러 발을 내밀게 한 다음 부딪히는 순간 대검을 한 손으로 쥐고 손목을 비틀었다. 검의 궤도가 짧은 원을 그리며 비룡의 발을 대각선으로 절단했다.
비룡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공녀의 검이 머리로 날아들었다. 비룡이 부리로 검을 쳐내려 했으나 검을 똑바로 세운 공녀는 오러를 검에 응축시키고 번개의 마력을 일으켰다.
파직
부리와 검이 맞닥뜨린 순간 비룡의 몸에 전류가 흘렀다. 예전에 벨로나가 지룡의 머리에 번개의 오러를 쏜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발쪽이었으면 효과가 미미했을 테지만, 머리에 직격으로 번개의 마력을 먹이자 비룡이 순간 비틀거렸다. 공녀는 날아온 화살 하나를 쳐낸 뒤 곧장 비룡의 목을 베었다.
“후우.”
지룡을 연속으로 6마리를 처치했을 때는 크게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비룡은 확실히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벌써 도망치려는 놈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하면 공녀는 단 한 마리도 잡기 힘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
빛의 날개로 녀석들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도 공녀의 비행실력과보조를 해주는 바람의 마력과 작은 몸체 덕분에 공중에서 비룡의 상대가 가능했던 거지, 본격적으로 비행 성능을 비교하면 공녀 쪽이 질 수밖에 없었다.
“끼엑-!”
아까 공녀와 호각으로 겨루던 놈이 괴성을 지르자 흩어져서 날고 있던 비룡들이 녀석의 뒤로 모이기 시작했다.
‘비룡들이 대열을 갖춘다고?’
인간 병사로 따지면 마치 기병의 쐐기진형처럼 큰 비룡을 최선두로 비룡들이 삼각형 꼴로 늘어섰다.
놈들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던 공녀는 큰 비룡 위에 있던 자가 불길한 검은 마석을 깨트리는 것을 보았다.
“앗!”
비룡들이 두르고 있던 마의 기운이 강해졌다. 원래 초록색을 띠고 있던 놈들이 어두운 녹색 기운에 휩싸이며 눈을 붉게 빛냈다.
선두의 비룡이 재차 괴성을 지르자 비룡들이 공녀에게로 돌격했다.
돌격해오는 중장기병 앞에 홀로 선 검병의 심정이 된 공녀는 하는 수 없이 주변의 마력을 모조리 끌어 모았다.
우웅-
4대 속성 구체들이 허공에서 생겨났다. 비룡에게 먹힐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이거나 먹어라!”
구체들을 동시에 역회전시키며 비룡 무리의 위, 아래, 좌, 우를 향해 구체를 날렸다.
그리고 구체에 의해 마력이 빨려나가는 바람에 빛의 날개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어라.”
공녀가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교관님!”
그때 지상의 마족들은 멀찍이 물러난 상태였다. 세냐르와 카르나타는 떨어지는 공녀를 보며 놀라서 공녀가추락하는 곳으로 뛰어갔다.
여차하면 단검을 조종하는 기술로 공녀를 받아내려고 쓸 만한 물건을 찾던 세냐르와 공녀를 받아내겠다며 바람의 마력을 일으키던 카르나타의 시야에 첨탑의 창가에 서있는 누군가가보였다.
“시레온?”
이곳에 있는 기사단 멤버 중 유일하게 아직 생도의 신분인 시레온은 자기의 몸을 밧줄로 묶은 뒤 첨탑의 벽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아직 늦지 않았어.’
공녀는 이제 첨탑보다 약간 높은 위치까지 와있었다. 다행히 공녀가 첨탑 근처 높은 곳에 있었기에 미리 대비하던 시레온이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순간 공녀의 빛의 날개가 전개되었지만 추락속도를 이기지 못했는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공녀는 바람의 마력 또한 전개했지만 역시 추락속도가 워낙 빨라서 속도를 조금 줄이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시레온은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들고 있던 가느다란 끈을 공녀의 아래쪽으로 던졌다.
바람의 마력을 실은 끈이 공녀에게 닿자 시레온은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며 정교하게 마력을 조작했다. 공녀가 없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마력조작술이었다.
공녀의 몸에 가느다란 끈이 얽혔다. 이제 땅이 코앞인 상황. 카르나타와 세냐르도 무언가를 준비한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한 것은 아차하는 사이에 공녀가 그대로 땅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시레온은 끈을 확 잡아당기며 공녀가 충격에 대비했기를 바랐다.
“윽!”
시레온의 의도를 짐작했던 공녀는 몸 전체에, 특히 끈이 묶인 허리 쪽에 단단한 대지의 마력을 둘렀다. 하지만 자유낙하를 하다가 갑자기 멈춘 충격을 모두 상쇄하기는 힘들었다.
시레온이 첨탑을 박차고 날아온 추진력도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다. 진자운동에 의해 첨탑 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사이, 시레온은 끈을 끌어올린 뒤 공녀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충격에 대비를-!”
공녀와 시레온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람의 마력을 첨탑 쪽으로 최대한 방출하며 첨탑의 바닥 근처에 착지했다.
“윽!”
이번에는 다리에 충격을 받은 공녀는 재빨리 온 몸에 흐르는 마력을 물과 치유의 마력으로 바꿨다.
“교관님!”
세냐르와 카르나타가 공녀와 시레온에게로 달려왔다. 공녀는 괜찮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시선을 하늘로 던졌다.
쿠웅-
비룡 한 마리가 광장으로 떨어졌다. 구체 네 개를 날렸지만 당한 녀석은 딱 하나.
속성 역행의 구체는 아직도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약점이랄 만한 게 다소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는 다른 공격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공녀는 흩어지는 비룡들을 지켜보았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녀님. 기사님들.”
촌장과 마을사람들은 광장과 마을 밖에 떨어진 비룡세 마리를 보고는 기겁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혹시라도 집 위에 떨어졌을까봐 걱정했던 공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 일인데요. 아참. 레이아에게서 연락은 왔나요?”
“네. 지금 이어렌까지 왔는데 정예 왕국군은 이미 출발한 상태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늦는군요. 저희가 없었으면…….”
공녀가 말을 흐리자 에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놈들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게 특기인지라 이어렌 쪽에 정예병을 대기시키는 작전은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군요.”
“장교님께서 상부에 작전의 재고를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전달한 참입니다.”
공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과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뚫린 성벽으로 들어오던 숲의 거대 마족을 막아낸 기사들의 활약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들은 제법 많았다.
당장 공녀 자신도 전신 타박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치유의 마력에 의해 빠른 속도로 낫고 있었지만 아직도 허리와 다리가 뻐근했다.
“빨리 성벽부터 보수를 해야겠네요.”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창고에서 물자들을 꺼내오고 있습니다.”
촌장의 말처럼 다크엘프와 마을사람, 간간히 왕국군까지 다듬어진 돌들을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하지만 파괴당한 성벽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 며칠 내로 해결될지 의문이었다.
공녀는 팔을 걷어붙였다.
“오랜만에 작업 좀 해볼까요?”
기사들 역시 한숨을 내쉬며 공녀를 따라 성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