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화 (1/150)

1화 개같은 인생

하늘 참 맑다.

이렇게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맑은 하늘에는 오늘따라 뭉실뭉실한 구름이 많기도 하다. 저건 토끼 모양, 저건 또 사자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똥개 비슷한 모양일세. 크크크…….

그래, 개같은 내 인생. 딱 맞는 말이다.

평생 남의 집 종살이를 한 셈이다. 단 한 번도 내 자의로 자유롭게 살아 보지 못했네. 단 한 번도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인생인데 왜?

“형님, 이 새끼 실실 쪼개는데요?”

“냅둬라.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 얼마나 아쉽겠냐. 담배 남았어?”

“예, 여기… 박하인데 괜찮습니까?”

두 명은 열심히 삽질을 하고, 또 두 명은 나뭇등걸에 엉덩이를 걸친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 담배에 불을 붙인 거구의 사내가 한 모금 빨더니 몸을 일으켰다.

“김시혁 부장.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아무 감정 없어. 가질 이유도 없고… 어쩌겠나?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거 잘 알지?”

“크크큭.”

“그래, 아쉽겠지… 한 대 빨아라.”

거구의 사내가 땅에 드러누운 김시혁에게 담배를 물려 주었다. 온몸이 결박당한 상태로 움쩍달싹할 수 없었던 김시혁은 붕어처럼 담배를 받았다.

몇 모금을 연달아 태우자 마른기침이 터졌다. 담뱃재가 얼굴로 떨어졌다. 불똥이 남아 있었는지 뜨거웠다. 저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제기랄, 쪽팔리게…….’

그러거나 말거나 담배를 건네준 거구의 사내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김시혁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금방 피로 물들었다.

쟈스민 향이 풍겨 나왔다. 도살자 주제에 꼭 샤넬 No.5 향수만 고집하는 백정.

“그러게 왜 반항을 하고 그래. 나도 괴롭다. 생목숨 끊는 거 솔직히 편치 않거든.”

“개X끼, 너희도 곧 내 꼬라지 날 거다. 저승에서 기다리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울 엄마가 교회 권사거든. 어릴 때 수없이 들었던 성경 구절이야. 정확히 어디 말씀인지는 모르겠고.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말 안 하겠지?”

“X신,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말하겠냐? 설사 내가 다 분다고 살려 줄 것도 아니면서… 크크크, 빨리 끝내 줘.”

“이봐, 김 부장. 백억이 우리한텐 큰돈이지만 회장님에겐 껌 한 통 값도 안 돼.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어차피 방송에 나가지도 못해. 그냥 우리라도 먹고 살게 알려 주면 안 될까?”

거구는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건네받아 불을 붙였다.

“나도 박하는 안 피운다. X발놈아.”

“미안. 다 떨어지고 이것밖에 없네. 그런데 김 부장, 네 딸 말이다. 오늘 초등학교 입학식 했겠구나.”

“……!”

“어쩌냐? 백억 중에 만 원도 못 쓰고 아빠 따라가면 너무 억울하겠다. 아무리 내가 백정으로 불리지만 그런 어린애까지 손대기 진짜 싫거든. 알지? 내 마음.”

“너, 너. 이 개X끼야!”

“파일 어딨어?”

“으흐흐, 혜림이는 손대지 마, 부탁할게.”

“파일 어딨냐고?”

“…담배 다시 줘.”

거구는 반쯤 피운 담배를 김시혁의 입에 물려 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프로다.

김시혁은 담배를 빨면서 잠시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줄 알았더니 아니구나. 내 딸 혜림이가 있었어.

천사 같은 내 딸, 혜림이.

* * *

김시혁은 혈혈단신 고아였다. 공원 화장실에 탯줄째 버려진 진짜 완벽한 고아.

뻔한 과정을 거쳐 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입양을 기다렸다. 하지만 김시혁에게 입양의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원 화장실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입양할 양부모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절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흘러들었다.

김시혁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얻었다. 나름 나쁘지 않았다. 헌신적인 스님 덕분에 크게 엇나가지 않고 안정을 찾았으니까. 오히려 넘치는 사랑을 받았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때도 그저 그런 아싸로 크던 시혁이 각성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 이후. 의외로 시혁에게는 총명한 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언감생심, 과외 같은 거 해본 적 없고, 학원도 다닌 바 없건만 시혁은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주위에서 보는 눈이 달라졌다.

군인이 총 잘 쏘면 장땡이듯, 줄곧 탑을 유지하는 시혁에게 학교에서도 기대를 품었다. 꼴통 학교 최초로 한국대학생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에 선생님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예상했던 그대로 시혁은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떡하니 합격했다. 그것도 차석으로.

이쯤 되면 고아건 개잡놈이건 출신 상관없이 인생 필 줄 알았다. 이제 사법 고시만 패스하면 개천에서 용 나는 거다. 그리 생각했다.

그 개자식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타 공인 대한민국의 첫째 가는 재벌 삼송그룹. 그 유명한 삼송그룹 비서실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겨우 대학교 1학년생 주제에.

뭐. 삼송이 워낙 법조계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정밀하게 관리한다는 말은 들었다. 하다못해 될성부른 떡잎을 미리 삼송 장학금으로 묶어 두고 육성한다는 말도 들어서 그러려니 했었다. 오히려 삼송으로부터 간택당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흥분했다.

하지만, 삼송에서 김시혁에게 요구한 임무는… 전혀 결이 다른 것이었으니.

삼송의 유일한 후계자 이자룡, 인생을 그에게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땐 몰랐다.

같은 해, 동양 사학과에 입학한 이자룡의 학교 생활을 보좌하는… 그래, 지금 생각하면 머슴으로 고용된 것이지.

‘너무 철이 없었어.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거든.’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는 졸업을 하고서도 이어졌다. 이자룡에게 김시혁은 손이요 발이 되었다. 물 한 잔까지 떠다 바칠 정도의 주종 관계가 된 것이다. 덕분에 김시혁은 고시를 포기해야 했다. 법전 들여다볼 시간이 어디 있나.

이자룡의 일본 유학길도 따라가서 수발을 들었고, 미국 하버드 유학 역시 같이 갔다. 이자룡은 유학생이지만 김시혁은 삼송그룹 비서실 직원 신분. 그렇게 시혁은 이 생활에 젖어 버렸다. 발을 뺄 수 없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개처럼.

어찌어찌 삼송 비서실 직원이라는 뻑가는 명함 덕분에 늦게 결혼을 했으나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아내와 헤어졌다. 그럴 수밖에… 한 달 중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남은 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김혜림.

벌써 오십 중반, 겨우 한둘 연락이 되는 동기들은 벌써 대학교 다니는 자식이 있건만 김시혁에게는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어린 딸 하나뿐. 부르기도 아까운 내 아이. 혜림이.

돈은 적지 않게 모았다. 달리 쓸데도 없고, 수시로 챙겨 주는 이자룡 덕분에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부장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계열사 사장도 먼저 눈인사를 건네는 이자룡의 최측근,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동안 김시혁은 자신이 이자룡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심복이요, 한 몸과 다름없다고 스스로 자위했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후계자 이자룡은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착각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도록 몰아가는 사냥꾼도 있다는 것을 정녕 몰랐다.

“시혁아.”

헉! 김 부장이 아니라 이름을? 이건 사적인 일이라는 말이다. 김시혁은 단숨에 털을 곤두세우고 머리를 굴렸다.

최근 뭐가 있었지? 우유 주사 맞을 때는 아니고, 얼마 전 갓 데뷔한 아이돌 여자애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남은 건 뭐지?

김시혁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이자룡은 혼자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너, 고생 좀 해 줘야겠다.”

“…예?”

“이번에 터진 X파일 문제가 심상치 않구나. 검찰에서 소독을 한다고 했지만, 다 닦이지 않는 모양이야.”

“비자금 말입니까? 그건 바이오에서 다 덮어쓰는 것으로 정리되지 않았습니까?”

“바이오 대표가 오늘 사표를 냈다. 늙은이가 감옥 갈 생각을 하니 두려웠던 모양이야. 그대로 밀어붙였다가 입을 털기 시작하면 칼끝이 돌아온다. 검찰이 대타를 달라고 하는구나.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회장님.”

“알아, 안다고. 네 딸이 곧 초등학교 들어가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천만에요. 회장님. 제가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이건 빼박이거든요. 최소 십 년은 썩어야 할 사안입니다. 바이오 대표가 겁먹을 만한 일이라고요. 제 딸 혜림이를 십 년이나 못 본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왜 하필 접니까? 모든 것을 다 바친 나를 왜?

“힘들겠냐?”

“회장님. 지금껏 대학교 때 모시기 시작한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회장님 말씀을 거역한 적 없습니다.”

“오! 그래… 고맙다. 시혁아. 네가 관리하던 긴급 비자금 백억은 내 손대지 않으마. 네가 나오면 계열사 사장 자리도 하나 봐 줄 테니 걱정 말고. 역시 믿을 놈은 너밖에 없구나.”

“아닙니다. 회장님. 그동안 저같은 하찮은 놈을 보살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백억은 바로 비서실 조 전무님께 전달하겠습니다. 끝까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이번 일 잘 해결되길 바라겠습니다.”

“…….”

“저는 딸과 십 년 이상 헤어질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도 거의 아빠 얼굴을 못 보고 홀로 커야 했던 아입니다. 이제 작은 치킨집이라도 열어 딸만 보고 살까 합니다.”

이자룡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항상 그랬다. 정면에서 시혁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너 혼자 살자고 떠나겠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네 손에 묻은 숯검정도 적지 않을 터인데?”

훅하고 들어오는 칼날. 당신답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

“회장님, 그 모든 일은 회장님 지시로 한 것입니다. 저에게도 적지 않은 자료가 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X파일보다 수백 배는 더 큰 폭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이 보내 주십시오.”

“그렇구나. 삼십오 년 세월 동안 나를 수행했으니 내 똥꾸멍 구린 것들에 정통하겠지. 하하하하. 그러자. 알겠다. 검찰에 보낼 대타는 다른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보마.”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표는 본사에 복귀하는 대로 조 전무님께 올리겠습니다.”

“그래, 불편한 속내를 다 말한 마당에 모른 척 얼굴 대하는 것도 힘들겠다. 다만, 인수인계 확실히 하거라. 네 딸 입학식이 일주일 후지? 그때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하자. 그때까지…….”

* * *

그때까지… 라는 말의 의미를 일찍 간파했어야 했어.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차라리 불이 켜지면 팝콘 봉지를 버리고 나오는 영화이기를…….

- 스님. 죄송해요. 그렇게 말리셨는데 제가 고집을 피웠었죠. 스님 말씀대로 그냥 고시 패스하고 변호사나 할 걸 그랬나 봐요. 삼송그룹이라는 간판은 스스로 이룬 게 아니라고, 고시를 합격하면 네 인생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야단치셨는데.

- 이렇게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게 될 줄 정말 예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목에 걸어 주셨던 이 목걸이 부적… 아무 효과 없잖아요. 영험한 기운이 제 불행을 액막음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순 공갈이셨어요. 크크크크.

“김시혁 부장. 결정했어?”

“그래, 백정아. 내 차에 있다. 딸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아무리 뒤져도 못 찾았는데, 차 어디?”

“하이패스 카드를 빼면 케이스 안쪽에 칩이 하나 있을 거다. 그거야.”

“오! 허허실실 전법, 멋진데?”

“약속해라. 내 딸 안전에 대해서.”

“말했잖아. 내가 백정으로 불려도 아이까지 손대지 않는다고. 그럼, 지금부터 오른손 풀어 줄 테니 편지를 한 장 쓰자. 편지라고 쓰고 진술서라고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말이지. X파일 관련된 모든 일은 내가 한 짓이다. 회장님은 전혀 모르신다. 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영원히 잠적하겠다… 뭐 대충 이정도?”

“알았다.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 빨리 끝내 주라. 산채로 매장되긴 싫다.”

“그래, 알았어. 단칼에 동맥을 끊어 줄 테니 그것도 걱정마. 나도 사내야.”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백정과 부하들은 결국 나를 생매장시켰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흙더미 속에서 악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코로.

목으로.

눈까지 흙이 차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렇게 죽었다. 그때 스님이 걸어 주었던 목걸이가 환하게 빛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개같은 인생… 한 번쯤은 내 의지로 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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