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학력고사 만점의 위용
1986년 11월 20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날 치러진 전국 대입 학력고사의 점수가 12월 29일 발표되었다.
항상 이랬다. 대입 시험날은 신이 시샘을 하듯 강추위가 몰아닥치고, 발표날은 겨울 같지 않은 온기가 넘쳤다.
1986년과 1987년은 먼저 시험을 치르고, 그 점수로 대학을 지원하는 ‘선시험 후지원’ 방식이었다. 현재의 수능 정시 모집과 유사하다. 그러나 1988년부터 먼저 대학에 지원을 하고 시험을 봐서 당락을 결정하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으로 바뀐다.
어떻든 오늘은 또 한번 전국이 들썩이는 날이다. 사찰과 교회, 점집, 굿당이 학부형으로 꽉 차는 날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거 진짜 맛있다. 같이 먹어.”
“이 마구니야. 기름이 둥둥 뜬 음식을 스님에게 먹으라고 권하는 나쁜 놈아!”
“라면에 무슨 고기라도 들었어? 농심에서 이번에 제대로 만들었네. 신(辛)라면? 매콤한 게 한국 사람에게 딱이라니깐.”
“공 처사가 두 박스나 가져다 놨으니 많이 먹으려무나.”
“공씨 아저씨는 무슨 돈이 있다고 매번 그런데?”
“부처가 멀리 있는 게 아녀, 공 처사 같은 이가 활불이지.”
“그러게… 다리만 좀 성해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분인데 말이야. 개같은 안기부 놈들.”
“쉿! 그러다 잡혀 갈라. 어따 대고 서슬 퍼런 안기부 욕을 하고 지랄이여?’
“너무 아깝잖아? 일본에서 공부한 것이 무슨 죄야?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간부도 아니고 부친 따라 가입한 것을 트집 잡아 사람 다리를 부러뜨리고 뻑하면 정보과 형사가 사찰하는 게 정상이야?”
“시끄러, 이놈아. 너는 네 갈길 가면 되는 거여. 괜히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거라.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 하지 않더냐? 뻥 뚫린 네 앞길, 앞만 보고 가면 되는겨.”
“그거 비겁한 짓이야, 아버지.”
“이놈이… 너 대학 가거든 행여 학생운동 같은 거 얼씬도 할 생각 말어. 계란으로 바위 깨기여. 아까운 생명들만 버리는 짓이니께.”
아버지…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그 은혜, 어찌 잊겠습니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죠.
“바위가 깨지지 않겠지만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그래야 다음 사람이 어디에 던져야 할지 알거든.”
“어허, 안 되겠다. 네 마음에 심마가 가득하구나. 냉큼 목욕재계하고 본당에 가서 백팔 배나 하거라. 썩을 놈.”
자비 보육원은 그래도 서울 관내에 자리 잡고 있다. 은평구 불광동 산자락, 연신내라고 부르는 곳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해 서인 세력이 일으킨 인조 반정 때 이서(李曙)의 지원군이 한발 늦게 도착했다. 그런 연유로 ‘신하를 늦게 만난 개천’이라고 빗대어 생긴 이름 연신내(延臣川).
비만 오면 주변이 온통 진창이 되고 버스도 드문드문 다니는 서울의 외곽이다. 버스 종점에서도 삼십 분을 더 걸어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불광 자비사가 나온다.
이름은 거창해도 딱히 웅장해 보이지 않는 대웅전 하나 있는 작은 사찰. 나머지 부속 건물은 다 보육원이다. 절이 우선인지, 보육원이 우선인지 아리송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형님아.”
“응, 태식이 왔어? 너도 신라면 한 그릇 할래? 땀이 쫘악 흐른다.”
“라면 많이 먹으면 안 좋다. 나는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절대 안 먹어.”
“자식, 나중에 스님 따라 머리 깎으면 딱이네.”
“형님, 그거 악담인 거 아십니까?”
태식은 말을 맺기도 전에 뒤통수를 잡고 식탁에 엎어졌다. 그렇지, 가만 듣고 있을 아버지가 아니지.
장태식은 김시혁보다 일 년 늦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있지만 유독 기계류 만지는 일에 환장을 하는 놈이다. 어릴 때도 태식은 보육원 아이들에게 기피 대상 1호였다.
어렵게 기부품으로 안겨지는 장난감을 하나씩 다 분해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다시 고칠 줄 몰랐다는 것.
그랬던 태식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영역을 늘리기 시작했다. 스님 방에 있는 전자기기가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라디오가 없어지더니, 아침 예불 시간에 틀어 놓는 카세트 플레이어도 종적을 감췄다. 분명 카세트 테잎은 있는데 본체를 찾을 수 없었다.
물건이 자꾸 없어질수록 스님과 태식의 숨바꼭질은 더 치열 해졌다. 나중에는 대웅전의 불상 뒤까지 뒤져야 했다.
보육원 아이들이 다 사랑을 못 받아 칙칙하고 어두울 것이라는 편견은 적어도 여기서는 없었다.
그렇게 매를 벌면서 자란 태식에게 시혁은 영웅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요, 스승이요, 등불이었다. 비록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든든한 큰형으로 여기는 것이다.
불광 자비사는 산 중턱 언덕에 위치해 있다. 사찰의 마당까지 차가 오지 못 한다. 대웅보전이 가장 위에 있고, 한 단계 밑으로 보육원 건물이 자리 잡았고, 마지막으로 텃밭과 작은 주차장이 있는 풍경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정말 아름답다. 배경이 북한산이라 더 그렇다.
하지만 실상은 살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외진 곳이라 급히 뭐라도 필요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동네 슈퍼가 20분 거리, 버스 정류장도 족히 30분은 걸어야 하는 곳이 편할 리 없지 않나.
이런 곳에 갑자기 미친 듯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승용차부터 방송용 송출 안테나를 갖춘 대형 차량까지 수십대가 좁은 산길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사찰 주차장은 달랑 세 대밖에 못 세운다. 한 대 자리는 사찰 일을 보는 공 처사의 다 썩은 일 톤 화물차가 버티고 있다. 그런 판에 수십 대가 주차할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도 시혁은 스님과 태식의 활극을 구경하느라 모르고 있었다. 왼쪽 다리를 쩔룩거리며 들어오는 공 처사가 아니었다면, 이 북새통이 벌어진 것을 더 오래 몰랐을 것이다.
“스님, 시혁아… 나가 봐야겠다. 전쟁이 났어.”
“그게 뭔 말이여? 북쪽 놈들이 결국 땅크를 밀고 쳐들어 온겨?”
“스님, 그게 아니고요. 시혁이 때문에 절 입구가 시장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 * *
펑-
퍼펑-
대낮에 왜 플래시를 터트리는지… 시혁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우리나라 대입 시험 역사상 처음으로 만점을 받으셨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김시혁 학생, 어떻게 공부를 했기에 만점을 받을 수 있었죠?”
“야, 앞에 좀 앉아. 우리도 찍어야 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너네 데스크에 하시고, 먼저 온 놈이 장땡이지.”
“너 가람일보 새끼, 말 가려서 해라. 담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예, 예. 나는 건더기만 먹으면 되니까 국물은 너네님 드세요.”
아이고… 이게 뭔… 좁은 방에서 인터뷰를 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원생 식당으로 옮겼지만, 아직 밖에는 밀고 들어오려는 기자들의 몸싸움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또 미리 들어온 기자들 사이에서도 자리 싸움이 벌어졌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할 만큼 엄청난 일이 뭘까?
드디어.
만점자가 나온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매해 치러진 대입 시험에서 아직까지 만점자가 나온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전 과목 만점을 받은 수험생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매스컴들이 난리를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고두고 우려먹을 대형 호재, 특종에 목숨을 거는 기자들 등쌀에 스님과 공 처사까지 구석으로 몰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매급으로 같이 떠밀린 태식은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아… 씨, 오줌 마려운데.
“김시혁 학생, 축하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전 과목 만점을 받으셨어요.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말 좀 해 주세요.”
“당연히 한국대학교죠? 어느 학과로 갈 겁니까?”
“문상고 같은 학교에서 이런 결과를 낼 줄 아무도 예상 못했거든요?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나요?”
얼떨떨하다. 솔직히 시혁도 만점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매 교시 마지막 문제를 풀고도 시간이 남아 다시 검토를 하면서 어렴픗이 생각하기는 했었다.
왜 이렇게 쉽지?
그렇다고 하나도 틀리지 않고 올 만점을 받다니… 다시 한번 전율이 일었다.
앞 전 삶에서 받은 학력고사 점수는 필기점수 302점에 체력장 20점을 합해 322점. 영어에서 두 문제, 수학에서 두 문제씩 나란히 틀렸고, 암기 과목은 다 만점이었다.
이번에는… 틀린 게 없다.
갑자기 눈을 뜨니 36년을 거슬러 학력고사 당일 아니었던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자신할 수 없었는데.
이건 순수한 내 능력이라고 보긴 힘들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축복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이 하이에나 떼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우선이다. 스님 아버지도 그렇고, 공 처사 아저씨와 태식이가 죽을 맛일 게다.
“공부는 별다른 것 없이 교과서만 봤고요. 수업 중에 선생님들 말씀 잘 듣는 것 말고 없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에이, 틀에 박힌 말 말고 솔직히 털어놔 봐. 기사에는 말한 대로 써 줄 테니까… 과외 어디서 받았어요? 소위 족집게 과외, 우리 딸도 내년에 고 삼이라서 걱정이 되네.”
이 씨뱅이, 거지 발싸개 같은 자식.
꼭 있다. 이런 사람.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비 꼬아 억지로 꺼리를 만들어 내는 자. 특히 미래에서 수없이 겪은 기레기들. 이때도 여전히 있었구나.
서슬 퍼런 5공화국 대머리 대통령이 과외 금지령을 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한 마디라도 실수해 주기를 바라는 미끼다. 자기 딸을 팔면서.
“기자 아저씨, 혹시 매달 월급 받으면 복지 기관에 기부하시죠? 기자님들은 응당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실 거라 생각하거든요.”
“……!”
“우리 보육원은 아저씨 같은 분이 없으셔서요. 보다시피 시주하는 보살님도 몇 분 없거든요. 참, 제 교복 안 보셨구나. 1학년 때 졸업하는 선배에게 물려받았는데, 소매가 제 팔뚝까지 올라와요. 제가 많이 크긴 컸죠.”
“으, 으. 응. 그랬구나. 그냥 교과서로 공부했네? 장하다. 장해.”
“이 기자, 너 뒤로 빠져. 내가 들어도 쪽팔린다. 새끼야.”
석간 신문 일면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사진과 기사가 실렸다.
- 위대한 승리, 보육원 출신 수험생 만점 획득.
-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 대입 학력고사 만점 탄생.
- 오직 교과서로 이룬 쾌거, 과외할 돈이 없었다.
- 진흙 속에서 핀 연꽃,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세기의 천재.
- 만점 받은 김시혁 군, 라면이 제일 맛있어요.
저녁 9시 뉴스도 온통 시혁의 얘기 일색이었다.
스님의 어색한 인터뷰에, 오줌보를 부여잡고 파랗게 질린 태식의 인터뷰, 보육원 아이들 밥을 해 주는 공양주(供養主) 할머니에게까지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떤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했는지 물을 정도로 극성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환호했다. 지친 일상을 말끔이 씻어 주는 사이다 같은 스토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저런 환경에서 공부한 아이도 만점을 받을 수 있구나. 저녁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찍어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닥치는 어두운 그림자.
“아들아, 봤지?”
“…….”
“너는 뭐가 부족하냐? 부모가 없어지고, 교복을 삼 년씩 입어야 성적이 올라가려나?”
“…….”
“화상아! 말을 해라. 아이고 복장 터져. 전교 꼴등? 너 죽고 나 죽자.”
집집마다 죄 없는 아이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 날부터 스님과 공 처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제는 기자들이 줄을 서더니 오늘은 아침 댓바람부터 화물차들이 줄을 서고 있는 게 아닌가. 밀어 닥치는 성금과 기부품.
그리고 태식이 인터뷰 중 지껄인, 우리 형은 신라면을 제일 좋아한다는 한마디 때문에 화물차에 신라면을 실어 보내는 독지가들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농심에서는 8톤 트럭으로 시라면을 보내 왔다.
“공 처사, 쌀은 없더나?”
“예, 스님. 약속이나 한 듯 신라면만 바리바리 보냈는데요?”
“자네, 당장 가서 태식이 멱살을 끌고 오게. 오늘 날 잡자. 이 입싸개 자식.”
* * *
작은 창으로 휘영청 보름달이 스며들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시혁은 상념에 잠겼다.
기억에 감정이 더해지면 추억이 된다던가.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기까지는 좋아. 이제부터 내 삶은 스스로 살 거야. 다시는 종으로 살지 않는다.
이자룡, 너도 한국대학교로 오겠지. 어떤 꼼수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어떡해서든 동양 사학과에 입학할 거야.
곧 만나겠구나.
기다려 줄래?
너무 기대되거든. 우리 만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