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시드 머니 만들기
“이게 다야?”
“예, 그것만 해 주면 됩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오히려 골칫덩어리를 떠맡아 주는 건데?”
“결과는 나중에 보시면 됩니다. 지금 제 능력으로는 처음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겸사겸사 부탁드리는 거죠.”
약간 실망한 눈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탁이란 게 너무 초라하다. 지금 노태후라면 그보다 수백 배 더 큰 청탁이라도 들어줄 수 있거늘.
“별로 큰돈을 벌 수 없을 텐데? 아니, 내가 아는 그 일이라면 오히려 까먹을 확률이 더 높아.”
“시드 머니를 마련하는 첫 단추를 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기간 적지 않은 수익도 거둘 수 있습니다. 자신합니다.”
“허참, 자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든 것이 꼭 그렇게 될 것 같단 말이야. 희한하게 설득당하네.”
“아빠, 우리 오빠가 누군데? 바로 만점 받은 사람이야. 말한 대로 다 돼!”
노태후와 김옥순 여사는 머리를 잡았다. 저 여우가 완전히 눈이 멀었구나. 딸 자식 키워 봐야 아무 소용없다더니. 딱 그 짝이다. 하는 꼴이 아예 친정에 쳐들어와 자기 서방 챙기는 얄미운 딸 모습이다.
이거이거, 잘 감시해야겠다. 큰일 나기 전에.
“알았네. 내일이라도 조직위원회 박세진을 찾아가 보게. 사관학교 1년 후배고 내가 위원장 자리를 물려줬으니 어렵지 않을 걸세.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겠군. 골칫덩이를 해결하는 셈이니까.”
“감사합니다. 의원님.”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초기 자금이 적잖게 들 텐데… 자네, 사업 밑천은 있나?”
“아빠, 돈은 걱정 마. 나한테 많아.”
“예지야, 사업은 장난이 아냐. 네 코 묻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헹! 나 1억 있거든?”
“……!”
1억 원이면 강남에서 가장 좋은 압구정동 현도 아파트 40평을 사고도 우수리가 남는 거금. 지금 시세로 8천만 원이면 너끈히 산다.
이건 정말 몰랐나 보다. 노태후도, 김옥순 여사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노예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가 무슨 그런 큰돈이 있어? 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외삼촌이 몰래 줬어. 왜?”
“이게 오냐오냐 하니까 완전히 돌았네. 아빠랑 외삼촌이 서로 안 보고 사는 거 몰라?”
“알아. 안다고, 그건 아빠랑 처남 매부 관계 문제지. 나랑 외삼촌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잖아!”
맞는 말이네. 막내딸의 앙칼진 대꾸에 노태후도 김옥순도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야 했다. 김옥순 여사의 친오빠 김복돈은 전도환, 노태후와 사관학교 동기였다. 셋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사람은 김복돈이었다.
하지만, 하늘회 가입을 거부하고, 12. 12 쿠데타도 반대한, 어쩌면 반골기질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자연히 노태후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면서 연락을 끊고 산지 제법 되는 손위 처남… 유별스럽게 막내 조카를 예뻐하던 김복돈이 돈을 준 모양이다. 아무도 모르게.
“저… 미안하지만 예지야. 그 돈 필요 없거든? 마음만 받으마.”
“오빠, 왜요?”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니까. 그리고 이 사업에 그런 큰돈 필요 없다. 오빠 혼자 충분히 감당할 정도야. 됐니?”
“씨, 안 돌려줘도 되는데.”
아이고야, 진짜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구나. 오늘 노태후와 김옥순이 머리를 몇 번 잡는지 모른다.
딸이 하도 보채서 시작된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 노태후도 몰랐다. 나중에는 딸의 눈에 씌운 콩깍지를 확인하려고 청와대를 동원해 직접 보기도 했다.
저 정도 인재면 괜찮지 않을까?
배경 따위 따지지 않고 한 사람의 사내로 본다면 다시없을 진국이다. 문제는 애가 타는 딸과 달리 저놈은 그저 귀여운 동생을 보는 정도라는 것… 딸의 짝사랑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 * *
보육원으로 돌아오자 스님 아버지와 공 처사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겨 준다.
한 번도 절을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바로 어제 보고 또 보는 듯 변함없이 따뜻하게 맞아 준다. 시혁은 코가 시큰했다. 여기가 내 집. 곧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아버지, 공 처사님. 잠깐 봐요.”
“왜? 곧 저녁 예불 시간이다.”
“잠깐이면 돼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가 절인지 보육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편에 곱게 개어 둔 이불 하나와 벽에 걸린 회색 승복과 바랑, 그리고 다리가 부러진 개다리소반(小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의 휑한 방.
아버지… 당신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까워서 덜어 내던 사랑을 어찌 잊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애들이 전부셨지요. 당신이 있어서 제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아들이 되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뭐냐? 나 돈 없다.”
“에이… 씨, 말도 꺼내기 전에 선수를.”
“아버지가 너를 하루 이틀 보냐? 네 꼬라지를 딱 보아하니 뭔가 꾸미고 있어요… 하는 표정이구먼.”
“아버지, 곧 제가 퇴소할 텐데, 정착금 얼마나 나와요?”
“삼십만 원.”
“꼴랑 삼십?”
“그래. 누가 신경이나 쓰던? 우라질, 세금을 다 어디 쓰는지 복지 자금은 쥐꼬리만큼 나오는 거 몰라서 물어?”
“아버지, 따로 꿍쳐 둔 돈 없어요?”
“…….”
“있구나! 얼마나 되는데요?”
“없어. 이놈아.”
“백 배로 불려 줄게요.”
“그런 말 믿다가 사기당한 돈이 얼만지 아냐?”
“아들한테 사기 좀 당하면 어때서?”
비로소 진지해진다. 장난으로 꺼낸 말이 아니란 것을 느낀 것이다.
“너, 사고 친 거 아니지?”
“사고 칠려고 필요한 거예요.”
“…기다려 봐. 마구니 같은 아들 놈아.”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벽에 걸린 바랑을 뒤적거린다. 그리곤 소반에 두 개의 통장을 내려놓으신다.
“옛다. 네가 텔레비 나오는 바람에 후원금이 제법 들어왔다. 거기다 애비가 너 퇴소할 때 주려고 틈틈이 모은 것도 꽤 된다. 다 합하면 한국대학교 근처에 전셋집 한 칸 마련할 정도는 될 게야.”
“시혁아, 아저씨도 조금 모은 돈이 있다. 삼백만 원 보태마.”
아무리 피와 눈물이 말라 버린 세상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계속 코가 시큰거렸다.
“다 합하면 천만 원이 넘네. 됐어.”
외곽이라면 작은 집 한 채는 사고 남을 돈이다.
“뭘 하려는지 묻지 않으마, 하지만 시혁아. 명심하거라. 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돼. 애비는 항상 여기 있다.”
결국 시혁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아버지, 내가 씨… 만점 받은 놈이에요. 이제부터 아버지는 황금으로 만든 침대 아니면 못 자게 만들어 줄게.”
“애비는 나이 들어 손에 힘 빠지면 바랑 메고 길 나서면 그만이다. 호강 안 해도 되니까 네놈 몸이나 잘 건사혀. 세끼 밥 꼬박 꼬박 챙겨 먹고… 그게 보답하는 거여.”
“아직 칠십도 안 된 노인네가 벌써부터 누울 자리 걱정해요? 지금까지 길러 낸 아들, 딸이 몇 명인데. 씨이.”
마주 보는 세 사람의 눈에 고인 눈물, 슬픔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흘리는 보석이다. 너무 사랑하니까.
* * *
애증의 88서울 올림픽.
대한민국에게 빛과 소금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빛과 소금만 있었을까?
혹시 그 이면에 어둠과 시궁창은 없었을까?
앞서 치러진 1972년 뮌휀 올림픽은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검은 9월단’에 의해 사살된 피의 축제가 되어 버렸다.
다음번 몬트리올 올림픽도 실패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올림픽을 개최했던 캐나다 몬트리온 시가 파산 직전까지 몰려 모라토리엄을 선포할 정도였다.
그리고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구 진영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불참하는 바람에 반쪽짜리로 치러졌고, 바로 앞에 열린 LA 올림픽도 공산진영에서 보복 차원의 불참으로 역시 반쪽이 되었다.
그런데.
35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로 변하고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나라.
100년 이전에는 결코 재기할 수 없다고 했던 나라.
동방의 작은 대한민국이 냉전 중이던 이 시기에 진영을 떠나 동서가 참여하는 올림픽을 성공시켰다. 진정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88서울 올림픽은 성공한 축제가 맞다.
그러나.
선수단이 도착하는 김포 국제 공항, 성화가 지나가는 대로와 간선도로, 국회 주변, 경기장과 선수촌 일대에 살았던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 재앙이었다.
판잣집과 양철 지붕을 얹은 집들은 무단 철거되었다. 통보? 같은 거 필요 없는 무자비한 시절 아니던가?
부랑자와 거지,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이 거리에서 보이면 무조건 잡아 보호시설에 수용했다. 덕분에 형제원 같은 극악무도한 시설이 마구 생겨났다.
말이 돼?
올림픽이 끝나면 곧이어 열리는 것이 장애인 올림픽(패럴럼픽)이잖아?
민주주의가 아무리 실종되어도 유분수지. 집회와 시위를 금지시키고… 올림픽 기간 중 개고기 먹다가 걸리면 구류를 살린다는 포고도 나붙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시혁이기에 88올림픽이 애증의 대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버스가 광화문 정류장에 도착하면서 상념에서 깨어야 했다.
오늘은 결전의 날, 김시혁이 세상을 향해 첫 포효를 터트릴 금광을 캐는 날이다.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와 마주 보고 있는 현도빌딩. 88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곳이다.
입구의 경찰관 앞에 시혁이 다가갔다.
“박세진 위원장님실이 몇 층이에요?”
“학생, 자원봉사자 지원은 저기… 합동 지원실 보이지? 그리 가.”
“…그게 아니고 위원장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알아. 알아, 일단 지원실에 등록하고 거기서 물어봐라.”
말이 안 통해. 예상했던 결과다. 어쩔 수 없이 프리패스 카드를 써야 하는 건가?
“아저씨, 오늘 3시에 약속이 잡혀 있을 거예요.”
“아, 그놈 참 끈질기네. 나는 대통령 각하하고 저녁 먹고 술 한잔 약속 있다.”
“휴우… 이거 좀 봐주실래요?”
“……!’
“민공당 노태후 의원님 명함이면 믿을 수 있죠?’
바로 태세 전환. 그렇다고 ‘충성’은 좀 너무 나갔어요. 대한민국의 경직된 사고에 시혁은 씁쓸했다. 그까짓 명함 한 장이 뭐길래.
“어서 오게. 노 선배님 연락 받았어.”
“안녕하십니까? 위원장님. 절차를 건너뛰고 찾아뵙게 되어서 송구스럽습니다.”
“뭘. 다 그런 거지. 한국에서는 이게 최고의 무기야. 서로 안다는 거.”
‘딱 한 번입니다. 다음에는 제 명함을 보고 지리도록 만들 겁니다.’
“그래, 올림픽 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예, 의외로 몇몇 사업에 지원자가 없어서 고민 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오! 애국! 좋지. 평생 한 번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역사적 행사 아닌가. 상인들은 너무 이해득실만 따지니까 아쉽긴 했어.”
“네, 위원장님.”
“그런데 어떤 분야를 하려고? 인기 있는 것들은 다 나가고 돈 안 되는 쭉정이밖에 없는데?”
“예, 그 쭉정이 중에 휘장 사업을 제가 해 보겠습니다.”
“휘장?”
“예, 마스코트인 호돌이와 올림픽 엠블럼 깃발 말이죠.”
꼭 그거라야 합니다. 반드시.
“흠… 다시 생각해 보게. 노태후 선배께서 직접 당부를 한 사람에게 맡길 일은 아닌 듯하네. 이건 백 프로 까지는 일이야. 무조건 손해를 보는 파트란 거 알고 있나?”
“상관없습니다. 깃발의 수요란 게 결국 관공서에서 한 번 구매하면 끝이란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특출 난 몇몇 수집가 외에 누가 그 큰 깃발을 사겠습니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이걸 콕 찍어 하려는가? 다음 대 대통령까지 동원하면서.”
“그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처리 곤란한 잉여 파트를 맡아야 하는데, 1억 원씩 납부하기로 된 특별 기부금을 후불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안 내겠다가 아니라 후불로?”
“예, 올림픽 개막식 전에 다 납부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유예해 주십시오.”
“뭐… 그 정도야 문제될 것 없지. 기부금을 안 받고 대기업에게 떠넘길 상황이었는데.”
됐다! 잡았다.
절대 모를 겁니다. 이게 얼마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지.
나는 당신들이 죽어도 알 수 없는 일을 꿰차고 있거든.
‘땡큐, 잭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