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0화 (10/150)

10화 잭팟! (1)

시혁이 노태후를 통해 88올림픽 조직위에 부탁한 것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얼핏 생각하면 세계적인 잔치의 한 파트, 마스코트 호돌이와 올림픽 엠블럼의 휘장권(깃발)을 독점하는 사업을 대단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만만의 콩떡이다.

이미 86년도에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다.

어떤 파트가 돈이 되고 어떤 파트가 꽝인지 86년 아시아 게임을 치르면서 겪었다.

지금 시혁이 권한을 획득한 휘장 사업 파트가 딱 그짝이다. 아시안 게임 때 이를 맡은 사업주는 쫄딱 망했다.

올림픽 기념 주화, 기념 뺏지, 인형 같은 파트는 박 터지게 싸우며 경합을 벌였지만, 지금껏 휘장 파트는 어느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상인이 손해볼 줄 뻔히 아는 사업에 뛰어 들겠는가.

[선배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혹을 하나 털어 냈습니다.]

“확실해? 그걸로 돈을 벌 수는 없는 거냐고?”

[예, 최소 수량을 보유해야 하는 특별 규정 때문에 몇 만 장은 인쇄소와 계약한 근거를 조직위에 제출해야 합니다. 십 프로도 못 팝니다. 반만 팔아도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폭망할 게 틀림없어요.]

“그냥 지켜봐. 아무 도움도 주지 말고.”

[아니, 다른 좋은 아이템도 많이 있잖습니까? 손쉬운 용역이나 시설물 관리권도 있고요.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굳이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실패도 경험이야. 아직 어려서 세상을 너무 몰라. 한 번쯤 냉혹한 사회의 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하여튼, 일체 뒤에서 도울 생각하지 말게.”

[오우, 멋집니다. 사자가 절벽에서 자식을 떨어뜨리고 기어 올라오는 강한 놈만 키운다더니… 시혁 군을 각별히 생각하는 선배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옥순 여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여보, 무슨 생각이세요?”

“당신도 모른 체하고, 특히 예지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마.”

“애는 참 올곧고, 착하고, 멋지던데…….”

“맞아, 그래서 더 문제야.”

“예?”

“당신은 아직 시혁이의 깊은 속을 몰라. 그놈은 폭풍이야. 어쩌면 우리 시대에 다시 보지 못할 천재일지도… 문제는 너무 반골 기질이 강하다는 거. 이걸 한 번 꺾어 놓지 않으면 온전한 내 사람 만들기 쉽지 않거든.”

“그정도예요?”

“응, 그놈과 나눈 세 시간이 나를 청와대로 보낼 것이란 확신을 가졌어. 내가 태통령이 된다면 반은 저놈 공이란 말이야.”

“……!”

“내가 괴물을 만난 것인지, 세상을 뒤집을 천재를 만난 것인지, 단순히 머리 좋고 입담 뛰어난 모사를 만난 것인지 곧 판가름 나겠지.”

“무조건 실패하는 일이라 하잖아요?”

“하하하. 모르지. 세상에는 왕왕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만약 저놈이 이번 사업에서 큰 이득을 거둔다면 하늘의 운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겠어?”

“예지가 보통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던데.”

“미국에 있는 애들이나 잘 챙겨. 괜히 코쟁이를 끌고 들어오는 사태 만들면 큰일 나. 그리고 예지는 물 흐르듯 둡시다. 아직 어리지 않소. 혹시, 시혁이와 인연이 된다면… 그도 나쁘지 않지.”

* * *

전국 대학교 입시지원서 접수 마감 한 시간 전.

이날이야말로 오일장에 버금가는 풍경이 연출된다. 시험 점수를 가지고 대학에 지망하는 선시험 후지원 방식인 이상 각 대학의 지원율은, 당락을 결정하는 피 같은 핵심 정보다.

5명 중에 1명만 대학의 문턱을 넘던 시절,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때다. 오직 각 대학이 매직으로 휘갈겨 붙이는 공고문의 지원율에 희비가 엇갈렸다.

이 캄캄한 시절에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의 지원율, 경쟁률을 알기 위해 온 가족이 총 동원되곤 했다. 아버지는 한국대, 어머니는 연세대, 삼촌은 고려대 식이다.

대학 구내의 공중전화 박스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빨리 통화를 끝내라 고함 치는 가족의 절박감에 멱살잡이가 예사로 벌어졌다.

그중에 삼송의 비서실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각 팀별로 정보를 사전에 캐치한 이들은 한참 보급 중이던 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일반인들과 급이 달랐다.

- 여기는 힘들어. 이미 300퍼센트가 넘었어.

- 경제와 경영도 마찬가지. 눈치 작전이 먹힐 수준이 아닙니다.

- 물리학 역시 예상 이상으로 몰렸습니다. 턱도 없습니다.

- 철학, 위험 수위를 방금 넘었습니다. 최소 2 대 1입니다.

- 남은 건 동양 사학 하나, 하지만 아슬아슬한데요?

갑자기 모든 차량의 카폰 접속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거친 목소리.

- 실장이다. 잘 들어.

- …….

-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점. 뜬구름 잡지 마라. 안 되는 과는 과감히 다 버리고 철수한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과가… 동양 사학이라고 했나?

- …….

- 모두 달라붙어. 자금 한도 락을 해제한다. 1팀, 무조건 기존 지원자 중 열 명 이상 설득해. 2, 3, 4, 5팀은 새롭게 접수하는 수험생에게 붙는다. 다른 과로 지원서 바꾸면 삼송장학금 4년 전액 지원하고, 매달 100만 원씩 생활 보조비 주고, 졸업 시 무조건 삼송 계열사 취업 보장한다고 각서 써 줘!

- ……!

- 다시 말하지만 대삼송의 후계자가 한국대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비서실, 존재 이유가 없다. 설득이 안 되면 차로 밀어. 목숨을 걸란 말이야. 새끼들아! 전원 사표냐, 아니면 승진에 보너스냐… 두고 보겠다.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재벌 삼송도 꼼짝 못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장학금 학교 발전 기금을 퍼붓고, 도서관을 지어 줘도 최소한의 기본 점수를 받아야 한다. 거기다 다른 수험생과 공정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게 국립 한국대학교의 위용이다.

그걸 삼송에서 뚫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대학 자체를 움직일 수 없다면 지원하는 수험생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삼송 후계자 이자룡의 한국대학교 간판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곳이 또 비서실.

유례가 없는 돈을 쥐고 삼송이 움직였다.

“학생, 과 이름만 바꿔 쓰면 돼. 어차피 똑같은 한국대학교 아닌가?”

“…….”

“여기 오는 학생들 다 수재 아닌 사람 어딨나? 그 틈바구니에서 장학금 받기 쉽지 않아. 어디 4년 장학금뿐인가? 자네 부친 월급보다 몇 배 더 많은 돈을 매달 생활 지원금 명목으로 받을 기회일세.”

“울 아버지 공무원이세요. 아버지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이 준다고요?”

“학생, 올해 대졸 초임이 평균 삼십오만 원이야. 과장급이 겨우 오십만 원 선이고 말이야. 딱 우수리 없이 백만 원씩 통장에 꽂아 줄게. 매달, 졸업할 때까지.”

원서 접수 창구, 그것도 동양 사학과 접수 창구에 서는 학생이라면 어김없이 삼송 명함을 건네는 직원과 상담 중이다.

한국대학교를 포기하라는 제안 같으면 단칼에 거부하겠지만… 그냥 과만 바꾸면 된단다. 과만 바꾸면.

“잘 생각하게. 한국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말이야. 동양 사학과 간판으로 대기업 갈 수 있나? 노노노, 힘들어. 또 교수는 아무나 시킨다 던가?”

“…….”

“눈 찔끔 감고, 과 이름만 바꿔 쓰면 되는 거야. 그럼 졸업과 동시에 삼송의 정직원이 되는 거지.”

“…….”

“내가 명색이 삼송 비서실 과장일세. 각서를 쓰라면 쓰지. 부족해? 당장 자네 계좌로 1년치 생활 보조금을 먼저 입금해 줄 수도 있어.”

“…저, 거기다 하나 더 부탁해도 되나요?”

“휘유… 뭔데? 돈이 더 필요해?”

“아뇨, 저 재학 중에 미국 유학 비용 책임져 주실 수 있다면 과를 바꾸겠습니다.”

“콜! 각서에 그 부분도 써 주지. 학생, 빨리 다른 과 찾아서 원서 넣어.”

의외로 완강한 수험생도 있었다.

“만약 다른 과를 썼다가 제가 떨어지면 책임질 수 있어요?”

“걱정 말아. 후기에 어떤 대학이든 다시 합격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조건은 똑같아. 간판이 조금 아쉽겠지만 재학 중에 큰돈도 챙기면서 삼송에 입사할 수 있는데 뭘 망설이나?”

악마의 유혹. 어서 달콤한 독 사과를 베어 먹으라는 속삭임은 뿌리치기 쉽지 않았다. 당장 아버지 월급보다 많은 돈을 일 년치 몰아서 꽂아 준다는데 누가?

기막힌 방법이다. 삼송답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관리의 삼송. 위기 극복에 특화된 삼송의 비서실은 사력을 다해 마지막 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 이 과장, 어떻게 됐어?

- 네. 실장님 여기도 정리했습니다.

동양 사학과 접수 창구의 사무원이 없어졌다. 접수인 도장을 쥐고. 마감이 코앞인 이 긴박한순간에.

아무리 삼송 직원이 설득을 해도 굳건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소수의 수험생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결국 마감 오 분 전 급히 아무 과나 다시 접수할 수밖에 없었다.

비열한 짓이다. 정말 비열한 놈들이다.

단 한 사람, 후계자의 입학을 위해 다른 이들의 기회와 꿈을 돈으로 사 버린 것이다. 또 아예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 명도 더함 없이 한국대학교 동양 사학과의 정원은 딱 맞춰졌다. 지원율 100퍼센트. 지원자 전원의 입학이 결정된 것이다.

이자룡도.

* * *

“오빠, 이건 너무 심했다.”

“뭐가?”

“아무리 그래도 무슨 사무실이… 비닐하우스야?

“어때서?”

“거지 같아.”

“오빠 거지 맞아. 형편에 맞게 시작하는 거야. 누가 그랬다더라.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니.”

“알아, 유명한 성경 구절이잖아? 헤헤헤. 시작보다 나중이 더 중요한 것이네. 맞네.”

박세진 위원장과 면담 후 이틀 만에 초 고속으로 올림픽 정식 파트너 확인서를 받았다. 과연 탑다운 방식은 한국의 빠른 문화를 여실히 보여 준다. 밑에서부터 올라갔다면 아직 접수 서류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혁은 불광동 끝자락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빌렸다. 한 달에 오천 원, 일 년치를 선불로 납부하는 조건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조직위원회의 기본 조건인 최소 5만 장의 기본 수량을 확보하는 것. 조직위에서 책정한 대형 깃발의 한 장당 가격은 4,500원.

지랄맞게 비싸다. 짜장면이 600원인데 거의 7그릇 사 먹을 돈. 그러니 아시안 게임 때 폭망했지.

이중에 1,500원을 조직위원회에 납부해야 한다. 그럼 한 장당 실제 시혁이 취득할 수 있는 돈은 3,000원이다.

여기서 폴리 원단 가격 300원, 인쇄 비용 200원, 물류 비용 100원을 빼면 2,400원이 순이익이다.

구조상으로 꽤 괜찮다. 안 팔려서 그렇지. 아시안 게임 때는 1만 장이 팔렸다. 95%를 서울시와 경기도가 사들였다. 일반인들에게 판매된 수량은 겨우 500장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계산상으로는 무조건 망한다. 재고가 4만 장이다. 이 재고 수량에 대한 조직위원회 납부 금액도 공제 받지 못한다. 무조건 내야 한다.

깡패냐?

그런데, 왜 이런 단순 수치만 봐도 백 퍼센트, 천 퍼센트, 아니 무조건 폭망이 보장된 사업을 맡았을까?

시혁은 바보가 아니거든. 세상 누구도 모르는 사실 하나를 알고 있거든.

“오빠야, 이번에 망해도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예지, 너 공부 안 해? 곧 학기 초 시험 본다며?”

“…….”

“맨날 여기 오면서 언제 공부할래? 너 또 꼴등하고 징징 짜면 혼 난다?”

‘아… 내 님은 왜 나를 꼬마로만 볼까? 겨우 2살 차인데… 그냥 전교 1등이라고 말할까?’

“하여튼 네 성적이 중간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그래야 네가 여기 안 오지.”

‘안 되겠다. 그냥 꼴등으로 밀어붙이자.’

한쪽에서 피식거리며 웃는 태식과 공 처사. 원래 옆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시혁 형님. 우리는 뭐 하지? 더 할 일이 없는데.”

“인쇄소와 계약은 다 마쳤으니 일단 급한 일 없어.”

“…시혁아. 걱정된다.”

“왜요? 공 아저씨.”

“무려 오십만 장을 어떻게 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이거 올림픽 끝나고 나면 태우는 것도 일이다. 오만 장도 꿈만 같은데… 오십만 장, 에휴!”

“사월 달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아요. 우리 일은 사월 달이 지나야 시작됩니다.”

“왜 사월 달이 지나야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런 게 있습니다. 계약금 지급할 돈이 없어서 수량을 더 확보하지 못하는 게 아까워요.”

“오빠, 나 돈 많다니깐?”

“공부 안 하려면, 가라.”

- 기다려. 이제 곧 잭팟이 터질 거니까.

시혁의 저 근자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삼촌 같은 공 처사와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 예지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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