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7화 (17/150)

17화 열도 침공 (1)

‘가깝고도 먼 나라.’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말이 정답이다.

‘불구대천지 원수.’ 이건 좀 더 직설적인 표현되겠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나라. 열도가 침몰하면 전 국민이 박수로 환영할 나라…….

오죽했으면 명장 김응룡 감독이 ‘모든 팀에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만 이기면 전승이다’라고 할 정도겠는가.

일본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하지만, 일본은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조선이 쇄국과 당파 싸움으로 지지고 볶을 때, 1868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그 뒤로 거칠 것이 없었다.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넘겨받고.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을 합병한다. 개자식들.

1941 년 세계 최강국 미국과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는 간 큰 짓을 저지른다. 비록 패전했지만 장장 5년간 공방을 치르며 버틴 나라가 일본이다.

패전 이후는 더 놀라운 행보를 보였다. 20년 만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등극한다. 2010년 중국에 밀리기 전까지 40년이나.

1987년 지금.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50대 기업 중 32개 회사가 일본 기업이고, 세계 10위권 가전제품 회사 중 8개가 일본 기업이다. 실로 빵빵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공사홍,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노무라, 잘 있었나?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세었구먼.”

“당연하지 우리 벌써 오십이야. 자네를 이십 년 만에 보게 될 줄 몰랐네. 친구.”

공사홍은 일본으로 건너가자마자 대장성 공무원으로 있는 친구를 만났다. 게이오 대학 룸메이트였던 절친이다.

“간간이 자네 소식은 듣고 있었네. 지금 대장성 은행 감독국 과장이 되었다고? 축하하네.”

“무심한 친구, 한국으로 건너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어. 다리는 왜 그 모양인가?”

“좀 다쳤을 뿐이야. 괘념치 마시게.”

“…내가 뭐라 그랬나? 조선은 이상한 왕국이라고 가지 말라 그리 말렸건만. 여기서 그냥 있었으면 자네는 나 이상으로 크게 성공했을 거야. 게이오 대학 회계학과 수석 졸업생 꼴이 그게 뭔가? 쯧!”

“노무라, 한국은 내 조국이야. 더 이상 무례한 말은 용납하기 힘들어.”

“알았네. 알았어. 그 고집 때문에 끝내 조선으로 간 자네인데… 내가 선을 넘었구먼. 이런 이야기 그만하세.”

“고마워. 친구. 오늘 자네를 보자고 한 것은 부탁이 있어서야.”

“콜!”

“들어보지도 않고?”

“어느 은행을 조지면 되나?”

“…그냥 대출을 좀 받고 싶어.”

“고작 그거야?”

“응. 그거면 돼.”

“나는 은행 하나를 작살 내 달라는 얘기라도 할 줄 알았지. 무려 이십 년 만에 나타난 친구가… 고작 대출 부탁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

“그런가? 아무쪼록 부탁하네.”

다음으로 공사홍이 찾은 곳은 일본의 심장 도쿄 번화가.

이면도로로 살짝 접어들자 작은 빌딩의 한쪽에 간판이 보였다. 일본 부동산 투자 개발 주식회사.

이름만 놓고 보면 대기업처럼 보인다. 실상은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회사다. 일 층은 사케 선술집이고 이 층은 당구장, 삼 층이 부동산 뭐시기 하는 회사 사무실로 보인다.

“어서 옵셔.”

잘못 들어왔나? 입구에 서 있던 제복 차림의 여직원이 공손히 허리를 꺽어 인사를 하지만… 좀 이상하다. 제복이라고 걸친 것이 거의 호스티스 차림과 흡사하다.

“여기 사장을 찾아왔는데요.”

“아! 그러십니까? 어떤 사장님 말씀이십니까?”

“…사장이 여러 명인가요?”

“넵, 저희는 각 부서가 독립채산제라서 총 열 명의 사장님이 근무하십니다. 예!”

“이끼 다다시라는 사람을 찾는데요.”

“그럼 제대로 오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방. 문패가 다 사장이다. 공사홍은 헷갈렸다.

비로소 안내된 맨 마지막 방 문을 열자… 맞다. 그놈.

“누구?”

“기억도 안 나나? 이끼.”

“…혹시.”

“그래, 공사홍이다.”

“이, 이. 미친 새끼. 현해탄에 빠져 뒈진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어요?”

격한 포옹, 진심으로 걱정했던 마음이 절절이 와닫는다. 게이오 대학 럭비부 주장을 했던 공사홍이 가장 믿고 아끼던 후배였다.

노무라에게 가장 먼저 이끼의 근황을 묻자 주저하며 대답을 피하길래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었다. 이런 꼴이라니.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방은… 노숙자 쉼터와 다름없는 풍경이다.

달랑 책상 하나와 천이 다 터져 속이 보이는 이인용 소파. 그 위에 널브러진 서류 뭉치와 컵라면 용기들, 뒹구는 술병도 보인다.

“여긴 뭐 하는 사무실이냐?”

“…그냥 사무실.”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정색한 공사홍의 물음에도 쉽게 답을 하지 않던 이끼 다다시가 깊숙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졸업하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네? 나중에는 야쿠자에 몸을 담았었지. 근데, 형도 알다시피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성격상 사람을 담그지 못해. 거기서도 쫓겨나고… 오갈 데 없는 판에 내가 사정을 조금 봐준 여기 회장이 불러서 먹고 자고 해결하는 곳이지.”

“그래서 하는 일은?”

“…부동산 중개업. 때로는 사기도 치고… 자기 자본이 있는 놈들은 큰돈을 벌지만, 나는 심부름해 주고 용돈 얻어 쓰는 신세라고 할까? 흐흐흐. 초라하게 됐네.”

“그래?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 너 나하고 일 좀 하자.”

여기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부동산이 왜 이렇게 미친 듯 오를까?

이유는 단 한 가지, 발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설익은 발톱을.

미국은 항상 일본을 경계했다. 지긋지긋하게 싸운 상대지만 원자폭탄 두 발로 속국화한 이후, 의도적으로 키우면서도 그랬다. 언제 다시 미국에게 칼을 겨눌지 모르는 족속이니까.

때마침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은 나라를 다시 세울 정도의 특수를 누렸다. 미국 전체 예산 절반이 일본기업들에게 쏟아부어졌다. 일본은 단숨에 예전의 성세를 거의 회복한 것을 넘어 돈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급행열차를 타 버린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지.

그러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미국이 아니다. 감히?

- 야, 이리 와 봐. 독일도 이리 와. 패전국 주제에 너희가 다시 대가릴 쳐들면 돼, 안 돼? 냉큼 싸인해.

미국은 1985년 뉴욕의 플라자 호텔로 G5 재무장관을 불러 놓고 독일의 마르크와 일본의 엔화에 대한 강제 평가절상 사인을 받아 내고 말았다.

호떡집에 불이 붙어 버렸다.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수출기업을 살리기 위해 5차례나 금리를 떨어 뜨렸다. 이게 그야말로 바보 같은, 역대 최고의 멍청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2배가 떨어진 화폐가치로 인해 가만 있던 부동산이 단숨에 몇 배나 뛰어오르던 참이다. 금리까지 바닥으로 떨어지자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을 사려는 수요가 더 몰렸다. 버블이 시작된 것이다.

눈만 뜨면 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두 배가 오른 적도 있었다.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돌아서면 다른 사람이 웃돈을 주고 사 가는 판국이다.

작금의 일본 부동산은 미쳤다.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고 매일 가격이 뛰어올랐다.

내년 시세를 전망한다는 어느 전문가는 TV쇼에 나왔다가 개망신을 당했다. 전문가가 차트를 꺼내서 설명하는데 급히 아나운서가 제지했다. 내년에 도달한다고 전망한 그 가격을 방금 넘어선 것이다.

정부는 줄어든 수출 대신 내수 경기 활성화를 환영했다.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 덕분에 버틸 수 있다고 자위하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땜빵은 되었으니까.

이건 폭탄 돌리기와 같은 것이다. 내가 쥐고 있을 때는 절대 안 터져. 가격이 더 올라갈 때 다른 놈에게 넘기면 그만이야…….

이정도면 정부도, 국민도 미친 거지.

“K 글로벌 주식회사 부사장 공사홍입니다.”

“연락 받았습니다. 대출을 받고 싶다고요?”

“예.”

“…담보는 있으십니까? 대장성 노무라 과장님의 특별 당부가 있어서 최대한 편리는 봐 드리겠지만 혹시 싶어서.”

별로 기대를 안 했구나. 대충 소액이라면 담보 없이도 해 줄 테지. 그냥 형식상 물어본 것일 거다.

“여기, 한국 보람은행에서 귀국 다이치 은행으로 외화 입금된 잔고 증명입니다. 이 현금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 주셨으면 합니다.”

“아… 오십만 달러군요.”

“은행원이 숫자를 잘못 보면 되겠습니까? 오백만 달러입니다만.”

“헉…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왜 현금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으려는지?”

놀라셨어요? 고객님. 오백만 달러면 꿀 같은 돈이죠. 더군다나 지금 일본에게 귀한 외환인데. 그것도 현금을 담보로 은행 이자를 주면서 왜 대출을?

“오백만 달러를 담보로 천만 달러를 대출을 원합니다.”

“……!’

X발… 그럼 그렇지. 괜히 좋아했다. 완전 똥 밟았네.

다이치 은행 지점장의 안색이 노랗게 떴다. 웬일로 대장성 은행감독국 과장이 직접 전화를 하더라.

“저… 부사장님. 오백만 달러를 담보로 두 배를 해 주는 건 제 힘으로 무리입니다. 이건 은행장의 결재가 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뇨, 당신이 결재할 거예요.”

죽겠다. 이건 대놓고 협박을 하는 거다. 안 해주면 노무라 과장이 내 목을 날린다는 협박… 하지만 무리다. 내 목이 몇 개가 있다 해도 불가능한 대출이다.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사홍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

“지점장님, 우리 K 글로벌이 대출한 돈은 인출 안 합니다. 이 돈으로 도쿄 긴자의 건물을 하나 인수할 생각입니다. 계약을 하면 그때 은행에서 건물주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십시오. 물론 그 건물도 담보로 잡으시고요.”

“……!’

“그 다음 이천만 달러 정도의 건물을 또 매입할 겁니다. 역시 그 돈도 귀행이 똑같은 방식으로 건물주에게 지급해 주시면 됩니다. 그 건물도 담보로 잡으시고.”

지점장의 머리가 번개처럼 회전했다.

오백만 달러 예금 담보로 천만 달러 대출을 일으키지만 일 엔도 인출하지 않는다. 또 천만 달러짜리 빌딩을 사지만 그 돈도 은행에서 직접 지급한다. 더불어 빌딩도 담보로 잡는다. 결과적으로 은행의 리스크는 없다.

그리고 또 이천만 불짜리 빌딩을 매입할 때도 은행은 여전히 그 건물을 담보로 확보한다. 여전히 은행의 리스크는 없다.

지금 일본의 은행은 부동산 대출을 못 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고객이 부동산을 계약하면 거의 120%까지 대출해 주는 상황이다. 자고 나면 오르니까.

이거, 은행은 땅 짚고 헤엄치는 대출이잖아?

“부사장님, 그런 식으로 덩치를 키워서 얼마나 부동산을 늘릴 생각이십니까?”

“좋군요. 이제 상담할 준비가 되신 모양입니다. 우리 K 글로벌은 최소 백 개는 사려고 합니다.”

“배, 배. 백 개라고 하셨습니까?”

“예, 그 이상도 가능하면 좋겠지만, 대충 그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다이치 은행에 잘 오셨습니다. 본점에 급히 보고 해서 성심성의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부사장님.”

지점장은 벌떡 일어나 구두코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소개해 준 노무라 과장에게 박스를 보내야 겠다 생각하면서.

그런 지점장 튀통수를 바라보는 얼음처럼 냉정하고 차가운 공사홍의 눈을 지점장은 볼 수 없었다.

[시혁아. 첫 거래를 끝냈다. 명품거리 긴자의 이면 도로변 작은 빌딩이다.]

“수고하셨어요. 아저씨. K 글로벌은 또 언제 만드셨데요?”

“일본에 도착하자 마자… 100% 지분 모두 네 이름으로 등록을 마친 회사다.”

역시 공사홍 아저씨. 일 처리에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최고다.

“시간이 생명입니다. 밀고 당기고 하지 마세요. 적당하다 싶으면 무조건 사 모으세요.”

“그리하마.”

“아저씨, 이런 사업 방식에 의문이 들지 않으십니까?”

“시혁아,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움직이는 사람이지. 네가 판단한 일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면 되는 거다.”

“그러다 망하면 어쩌려고요?”

“나는 말이다. 지금까지 운을 믿지 않고 살았다. 빌어먹을 운이 있었다면 다리가 이 꼴로 망가지지 않았겠지. 그런데, 너를 만나고 느꼈다.”

“…….”

“아무리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기고, 아무리 즐기는 사람도 운 좋은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 너는 증명했다. 올림픽 휘장 사업으로.”

감사합니다. 아저씨. 제가 미래의 정보를 이용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아저씨의 굳건한 믿음이 없다면 이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을 겁니다.

좋아!

너희들 쪽바리 눈먼 돈을 왕창 긁어와 주마. 삼송의 발톱 하나는 뺄 자금을 먹어 줄게.

자! 판은 펼쳐 놨다. 그물에 고기가 얼마나 잡힐지 기다려 보자.

- Hit and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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