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37화 (37/150)

37화 종목별 훈장 챙기기

“아! 씨… 아버지, 문 잠가.”

“너 또 사고쳤냐?”

“내가 무슨 말썽쟁이야? 딴소리 말고, 빨리 잠궈요.”

“싫다, 내 방에 무슨 훔쳐 갈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제발!”

“보나마나 오늘 시험 결과 보고 찾아온 모양인데, 그럴싸하게 인터뷰해라. 쌀 떨어 졌다.”

“…알고 있었어?”

“내가 이놈아, 명색이 네 애비다. 그 정도 모르고 있었겠냐?”

“그런데, 왜 쌩까고 모른 척했어?”

“잠시라도 좀 쉬라고 그랬지. 그런데 저렇게 떡하니 찾아온 사람을 어쩌겠니? 너무 세상과 벽을 만드는 거… 안 좋은 버릇이여. 자식아.”

과연 아버지다. 어떨 때는 땡중 같지만 깊은 현기를 띤 고승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내 아버지.

“빨랑 문 열어, 이놈아. 활짝 웃고… 돈 들어오는 소리가 짤랑짤랑 들린다. 껄껄껄.”

또 땡초로 변신. 헷갈린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예, 저만의 촉이랄까… 덕분에 이런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헤헤헤.”

“그 과자, 좀 천천히 드시면 안 될까요?”

“역시 절에서 만드는 과자라 맛이 기막히군요. 나중에 비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아닌데… 그 과자 청와대 제빵사가 만든 겁니다. 이번 달에는 배달 안 와서 빠듯한걸요… 또 볼이 미어터지도록 밀어 넣어?

“기자님, 제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그만 먹고 인터뷰하시면 안 될까요?”

한 번에 두 개씩 욱여 넣는 먹성 좋은 기자.

하나씩 과자가 없어질 때마다 가슴이 도려지는 것 같은 심정이건만 이 양반… 손이 쉬지 않아. 넉살 죽인다.

“우선 사진부터 몇 방 박고 합시다. 김시혁 군.”

사진기를 드는 조갑조, 스님이 슬며시 옆으로 당겨 앉았다. 이거 독사진 찍는 건데…….

그러나 조갑조는 아랑곳없이 펑펑 잘도 찍는다. 누가 이 방의 주인인지 아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독사진도 몇 방 박았다.

“계속 역사를 쓰고 계신데, 이차까지 합격하면 판사나 검사 중에 어떤 선택을 하실 겁니까?”

“저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억! 그럼 고시는 왜 보셨어요?”

“제 한계를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얼마 전 본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도 마찬가지입니다.”

“……!”

지화자! 진짜 대박을 쳤다. 오늘 조갑조 인생 역전하는 날이 분명해. 아직 만점 수집가가 행시와 외시도 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곧 결과 발표가 있으면… 이것도 만점?

세상이 뒤집어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초대형 사건을 나밖에 모르고 있잖아?

“혹시, 행시와 외시도 만점을 예상합니까?”

“예.”

“……그렇게까지 자신 있다는 말… 이네요?”

“틀린 게 없으니까요.’

어쩌면 건방지고 교만한 말일 수 있는데,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이미 증명하지 않았나. 이 친구라면 전무후무한 기록을 또 해낼 것 같다.

아니, 저토록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맞다. 문제는 독점! 단독!

“시혁 학생, 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내 밑으로 동생이 주렁주렁 다섯이나 됩니다.”

“왜 갑자기 집안 이야기를 늘어놓으세요?”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요? 제가 이렇게 손 모아 빕니다.”

흠… 그러니까 말단 기자 신분을 벗어날 기회다. 며칠 후 행시와 외시의 발표가 있을 때까지 자기하고만 인터뷰를 하자. 이런 말이네?

“제가 왜 죄지은 사람처럼 숨어 있어야 하는데요?”

“…아니, 꼭 숨으라는 게 아니라…….”

“싫은데요. 저는 귀찮은 게 싫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숨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독점 인터뷰만 따도 말단의 설음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조갑조 기자. 스스로도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 아까운 마음에 던진 말이다.

그러나, 엉뚱한 곳에서 구원의 화살이 날아들 줄 조갑조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해라.”

“아버지, 내가 왜?”

“이것도 인연인 게다. 조 기자의 선업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 이 자리가 있는 것이지. 세상사 그렇다 시혁아. 품안으로 들어온 새를 쫓는 것은 부처님께 죄를 짓는 거여. 이놈아.”

“아버지, 이분 기독교 계열 신문사 기잔데?”

“어허! 이놈이… 조 기자님의 하나님이나, 저기 대웅보전의 부처님이나 뭐가 다를까. 형상만 다를 뿐 다 똑같은 것을.”

“아이고, 스님. 감사합니다. 십일조를 여기 불당에도 꼬박꼬박 하겠습니다.”

“조 기자도 그런 생각 하지 말고, 그대의 하나님께 신심을 다하구려. 윤회가 되었건 구원이 되었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믿음이란 맘속에 있는 겁니다.”

“……네, 스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천하의 고승이 되셨을 것을.

“험, 험. 기사 낼 때 불광 자비사 땡중이 이놈 공부를 다 가리켰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잊지 않고 했기 때문에 거… 뭐냐. 만점… 그래,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런 문구를 꼭 넣으시구려.”

“…….”

“아, 아버지. 지금 뭐해?”

“가만 있어. 이놈아. 아비도 좀 시주에 깔려 죽어 보자.”

“…….”

“사진 있잖아? 내 얼굴이 더 크게… 가만 있자, 머리를 깨끗하게 밀고 다시 찍을까?”

전각 지붕 위의 참새들이 한꺼번에 푸르륵 날아갔다.

* * *

신문과 방송은 시혁이 입학할 때 제출한 증명사진을 내보내야 했다. 뒤늦게 눈치 빠른 기자들이 불광 자비사로 달려가 봤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공양주 할머니의 소금밖에는.

그렇게 일주일 후 언론은 온통 13대 노태후 대통령의 취임 소식에 매몰되어 있을 때.

오직 국민신문 조간판에서만 벼락처럼 단독 뉴스가 나왔다. 두 번째 특종이 한 신문사에서 연이어 터진 것이다.

- 만점 수집가 김시혁 학생 사시 만점에 이어 행시까지 정복하다. 내일 발표할 외시 결과에 관심 집중.

- 외시까지 만점을 받는다면 역사상 유래가 없는 올 만점 획득… 그는 누구인가?

- 김시혁 단독 인터뷰. (본지 조갑조 기자)

- 만점 수집가 김시혁을 키운 불광 자비사 현장스님의 천재 육성법 집중 탐구. (조갑조 기자)

“야, 야. 야. 이 X신 머저리들아! 이제 갓 출범한 신생 신문사의 그것도 막내 뻗치기가 이런 핵폭탄을 따는 동안 너네들은 뭐했어?”

“나가 뒈져라, 혀 깨물고 뒈져. 지금 편집국장 사장님께 불려 갔다. 줄줄이 조인트 까일 줄 알고 있어.”

“도대체 조갑조가 뭐 하는 놈이야? 이놈이 평소에 김시혁을 케어하고 있는 동안 우린 뭐 한 거냐? 꼭 사건이 터지고 나서 달려가면 어서 옵셔 한다던? 취재비는 다 술 처먹고 길바닥에 오바이트로 날렸냐고, 엉?”

“이거 한국 언론사 전부 줄초상 나게 생겼다. 국민신문에 빌어야 쪼가리 기사라도 얻어 쓰게 생겼어. 연락도 안 받는다. 이 새끼들.

실제 국민신문 데스크는 각 언론사의 읍소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국장님. KBC 보도 본부장이랍니다.”

“그래, 전화 돌려 줘. 오 분 있다가.”

“크크크… 알겠습니다. 오분 십 초 후에.”

기존 언론의 텃세로 숨도 못 쉬던 국민신문 편집국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단숨에 준 메이저급으로 부상해 버린 위상을 실감하는 중이다.

기자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특종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도 못 하는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 특종이 언론의 꽃인 까닭이다.

편집국장은 사회부 끝쪽 책상에 머릴 처박고 있는 조갑조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저 예쁜 보배덩어리.’

뭘 해 줘야 될까? 사장실에서 금일봉이야 당연히 내려올 것이고, 겨우 뻗치기를 사회부 캡 시킬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이번 특종은 잠시 반짝하는 불꽃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이슈마저 뒤덮어 버릴 정도의 핵폭탄급 아니던가.

국민들은 이런 소식에 목 말라 있었다.

흙수저 정도가 아니라 무수저 고아 출신이 학력고사 만점을 받고 한국대학교 수석을 하더니, 이제는 국내 삼대 고시의 만점을 휩쓸고 있다.

영웅의 탄생이다.

사천만 국민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듬뿍 안겨 주는 등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빈부격차에 대해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은 시절이다. 몇 년 월급을 모으면 작은 집도 살 수 있었고, 모두 가난한 시절이기에 정도 넘쳤다. 그러나 서서히 사회 불안이 태동하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재벌들이 2세로의 경영권 이양을 연이어 발표했다. 노동시장은 여전히 경색되어 막 탄생하는 노동조합과 회사 간의 극심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었다.

올림픽으로 인해 강제 철거당하고 갈 곳을 잃은 서민이 몰린 지역에서는 연일 시위로 소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삼송그룹은 3남 이건호의 2세 승계를 완료했다.

이건호는 제2 창업을 발표하면서 반도체에 집중하겠다는 그룹 재편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희대의 승부사 이건호의 뚝심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판단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걸이가 결정되고 있었다. 굿 초이스!

“이 실장, 이 친구가 그 친구… 맞지?”

“회장님, 누구를 말씀하는지?”

회장 집무실 책상에는 온갖 조간신문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비서실에서는 조간신문을 다 챙겨 회장실에 올려 놓는 것이 첫 일과였었다.

그런데 급히 호출을 받고 회장실로 불려온 이학소 실장(기획경영실 사장급)은 회장이 쥐고 있는 신문 이름이 생소했다. 국민신문? 그런 마이너한 신문을 회장이 왜?

“이 신문 봤어? 내가 출근길에 차 세우고 직접 산 거야.”

“국민신문은 보고 대상이 아니라서… 못 봤습니다.”

“앞으로 제일 앞에 올려놔. 그건 그렇고 김시혁… 얘가 전에 자룡이에게 붙이라고 했던 걔 아냐?”

“…네, 그렇습니다만, 너무 완강히 거부를 하는 바람에 영입을 포기했습니다.”

“그럼 지금 자룡이에게는 누가 붙어 있나?”

“체육교육과 출신 한 명하고, 비서실 전략팀 애들이 차 두 대로 같이합니다.”

“풋! 머리를 못 구하니까 몸으로 바꾼거네. 이 실장답다.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더 할 말 없어?”

“……!”

“김시혁이 이놈, 머리만 총명한 게 아닌가 봐? 안 그래?”

“…….”

“이 실장, 요즘 감이 떨어졌어. 호랑이는 하찮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인데, 하물며 이런 폭탄을 상대하면서 그렇게 소홀했다는 게 말이 돼?”

X발… 회장님은 다 알고 있었구나. 도대체 몇 개의 비선 정보 라인을 가지고 있는 거냐?

“면목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우리가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도록 꼬리, 다 잘랐습니다.”

“그래야지.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야지. 당신 연봉이 삼송전자 사장보다 많은 이유니까.”

“…….”

“한번 보고 싶은데… 올까? 천성적인 반골에다 웬일인지 우리 삼송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세기의 천재라…….”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옛날 유럽 농장주들에게 가장 큰 적이 누군지 아나?”

“네?”

“비버(Beaver)야. 작은 쥐새끼 비버. 이놈들은 강의 입구를 틀어막곤 하지. 물줄기를 바꿔 버린단 말이야. 겨우 쥐새끼 주제에.”

“아직 어린 학생에 불과합니다.”

“그래, 지금은…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 그놈이 삼송이라는 댐을 말리는 비버 짓을 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어?”

“…….”

“자룡이 X신 같은 놈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놈이 언제까지 비버처럼 작은 쥐새끼로 있을까? 점점 덩치를 불려서 이무기로 변하고, 용으로 탈피한 후에는? 자룡이에게 치명적인 적이 될 거야.”

“…….”

“될성부른 떡잎을 육성해서 삼송의 울타리로 삼는 것은 아버지때부터 해 온 백년대계였어. 하지만, 독성 가득한 독초는… 싹을 자르고 뿌리를 뽑아야 삼송의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법.”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너무 쉽게 봤어. 이 실장도 자룡이도. 이미 싸움 소로 성장한 놈에게 닭 잡는 칼을 꺼낸 셈이야. 제대로 된 전문가… 찾아봐.”

“예, 그렇지 않아도 직접 명령을 수행할 조직을 구축하는 알파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그전에 이놈을 한번 보고 싶군. 너무 간질간질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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