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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38화 (38/150)

38화 반갑다, 백정!

원하는 것은 다 이뤘다.

내일 외무고시도 보나마나 만점이다. 물론 모두 1차 시험이고 앞으로 2차를 합격해야 하지만, 그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국민신문의 특종이 터진 이후 모든 언론은 시혁의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이건 단순히 머리 좋은 천재가 아니거든. 그야말로 온갖 역경을 스스로 헤쳐 나온 스토리가 있으니까…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그래서 시혁에게 열광했다.

통쾌한 것이다. 가진 자들의 성공은 시들하지만, 개천용의 성공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주기 마련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친근한 이웃처럼 감정이입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가 김시혁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이다.

비록 내가 김시혁만큼 타고난 천재는 아닐지라도 흙수저가 노력하면 승천할 수 있다는 산 증거가 되어 주고 있으니… 캄캄한 바다에서 이리저리 폭풍우에 흔들리는 잡초의 삶에 한 줄기 등대의 빛은 이정표가 되어 주듯이.

명예,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 명예와 훈장은 시혁이 세상 만들기 행보에 큰 바람막이와 명분을 줄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시혁은 삼성동 K타워의 첫 삽을 뜨는 기공식 자리에도 나가지 않았다.

지금 시혁은 전 국민적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 판에 엄청난 땅부자라는 소문이 나면 고개를 갸웃거릴 놈들이 나올 것이다. 괜한 의심과 역풍이 있으면 안 되니까 몸을 낮췄다.

K타워는 일 년 반 후면 당당한 위용을 삼성동에 드러낼 것이다. 국내 최고의 높은 빌딩이 되는 것이다. 현재 시점으로는 아시아에서도 제일 높다. 마음 같아서는 100층 이상으로 올리고 싶지만, 여기에 몰빵을 할 자금도, 이유도 없기에 적절히 타협을 한 셈이었다.

“너는 언제쯤 세상에 나올 테냐?”

“무슨 말이세요?”

“구름 속의 신룡처럼 숨어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언젠가 네 재력에 대해 세상이 알게 될 거 아니냐?”

“아직 멀었습니다. 좀 더 벌어야 합니다.”

“꼭 시장 좌판의 찌꺼기까지 다 팔면 일어나겠다는 장사꾼 말 같구나.”

영감님… 아직 저에 대해 다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일본 부동산 버블을 이용해 누만금의 돈을 벌었다는 정도만 아시겠지만… 저는 그 정도에 만족할 놈이 아니거든요.

“중동 공사 상황은 좀 어때요?”

“음… 네 말대로 공사 대금이 담보되지 않으면 수주를 안 하는 정책으로 바꾼 뒤로 수주액이 조금 줄긴 했다만 여전히 거긴 눈먼 돈이 넘쳐 나는 노다지밭이라서 말이다.”

“정 회장님, 계륵이라는 말 아시죠?”

“그래, 조조가 했다는 말이지. 버리긴 아깝고 먹자니 별로 먹을 게 없는 닭의 갈비뼈 아니냐?”

“또 중동은 눈먼 돈이 넘쳐 나는 노다지 판이라고 하셨고요.”

“그래. 그것과 계륵이 무슨 상관이더냐? 중동은 계륵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돈이 쏟아지고 있는 곳이거늘.”

“세상에 눈먼 돈이 있던가요?”

“…….”

“잠시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돈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습니다. 신기루처럼.”

“그래서 계륵이다?”

- 예, 사실 지금도 이 사실을 어떻게 경고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만… 당신이 이룩한 현도건설이 그 눈먼 돈 때문에 법정 관리로 넘어갑니다.

“아마, 회장님께서 미래에 집중할 사업을 꼽는다면 현도 자동차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장 애지중지하는 회사는 단연 현도건설일 거예요. 맞죠?”

“끄응, 내가 너 앞에서 뭘 감추겠니… 맞다.”

“삼송그룹이 2세 승계를 마쳤습니다. 현도 역시 곧 시기가 도래하지 않겠습니까?”

“시혁아, 오늘 이야기는 너무 장황하구나. 이 할애비 머리로 정리가 안 된다.”

은근슬쩍 할아버지와 손자로 관계 설정을 하려는 정 회장. 저 따뜻한 눈빛을 보면… 진심일 것이다.

“저는 현도의 차기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현도그룹의 승계는 누가 하면 좋을 것인지… 하는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일체 조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회장님의 손때가 묻은 현도건설의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중동 건설 수주 방식을 바꾸라 조언한 것입니다.”

“네 신기를 믿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돼, 지금 중동은 비로소 문이 활짝 열렸거든. 현도 말고도 온갖 국내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을 하는 아사리 판이 되고 있다. 이런 때 우리만 배짱을 내밀고 먼저 돈을 줘야 공사를 하겠다고 하면… 금방 밀리고 말 거야.”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

“목이 탄다고 독이 든 우물을 마시면 안 됩니다. 다행히 현도는 중동에 오랫동안 터를 닦은 명성이 있습니다. 기술도 있죠. 그걸로 버티십시오. 지금은 오로지 존버 해야 합니다.”

“뭐? 뭐라고? 존버… 가 뭐냐?”

“아… 그냥 이를 꽉 깨물고 버티라는 말입니다.”

아씨… 귀는 밝아 가지고. ‘X나 버틴다’의 줄임말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지금 제일 심각한 곳이 이라크다. 거기서 지금껏 중동 전체 수주액의 절반 이상을 했는데 결제 조건을 바꾸고 완전 물먹고 있거든.”

“잘됐네요. 거기가 제일 문제였는데.”

“……뭔가 알고 있는 것을 시원하게 털어놔 주면 좋으련만… 나쁜 새끼.”

현도건설은 현도그룹의 간판 기업이자 모체 기업이다. 사실상 모든 범현대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회사. 나중에 분가하는 현도중공업 그룹도 현도건설 조선 사업부가 그 출발이었을 정도였었다.

“조금 더 팁을 드리자면 이라크에서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공사만 맡으십시오. 2년을 넘어가는 공사는 천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절대, 절대로 입찰 하지 마시고요.”

“그럼 2년내에 끝낼 수 있는 공사들은 결제 조건을 조금 느슨하게 해도 괜찮다는 말이렸다?”

“예, 명심하실 부분은 2년 안에 미수금 하나 없이 다 받아 내야 합니다. 한 푼도 남겨 두면 안 됩니다.”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

“그것까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 망할 자식, 꼭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감추는 거… 내가 너 때문에 수명이 십 년은 줄었을 거야.”

“명심하세요. 다른 중동 국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이라크만은 꼭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현도건설이 죽지 않습니다.”

“죽어? 천하의 현도건설이?”

“예, 죽어요. 회장님 손때 묻은 현도건설이.”

정조영 회장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렇게 자신 있게 내뱉다니.

지금껏 긴가민가하면서 조금씩 이라크의 노다지밭을 두고 고민해 왔던 정조영 회장은 정말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애송이의 말은 다 맞았다. 스스로 그걸 증명해 냈다. 지금도 열심히 마지막 깃발 오더를 정리하고 있지만,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 회장도 알고 있었다. 그정도 소식통은 널렸으니까.

처음 시혁이 저 사업을 맡았을 때만 해도, 휘장 사업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애물단지로 알고 있었다. 조직위에서 현도물산에게 제발 맡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는 말도 들은 바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건 사막에서 장미 꽃밭을 일구는 것과 같은 기적이다. 전도환이 직접 나서서 챙긴 사업이 된 셈이다. 그건 신기 충만한 박수무당이라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은 그 돈으로 일본에 가서 벌인 회괴한 짓거리.

현금을 담보로 두 배의 대출을 받아 빌딩을 사고, 다시 빌딩을 후취 담보로 더 큰 빌딩을 사고… 이런 무한 반복을 통해 정확히 모르지만 어마무시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지금 국내로 송금된 돈 150억 원은 새 발의 피일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삼성동 코너변의 땅 2만 평을 덜컥 사들이더니 겨우 몇 달만에 8천 평으로 현도백화점 지분 49%를 날름 삼켜 버렸다. 삼성동 현도백화점에 한해서긴 하지만.

거기다 간도 크게 수백 억이 들어갈 66층 국내 최대 높이의 빌딩 공사도 강행하고 있다. 과연 거기에 다 들어갈 임대 수요를 충족할지 모르겠지만, 저놈의 신통방통한 능력을 생각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결론은.

진짜다!

저놈이 저렇게 확실히 공언을 할 정도면… 현도건설은 반드시 죽는다. 정 회장의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커피 잔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 * *

“어! 시혁아. 오랜만에 학교 나왔네. 한동안 너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오백 원 있냐?”

“너는 식상하지도 않아?”

“됐고, 있어?”

“백 원부터 보자.”

“없는데?”

“지랄… 그럼 백 원도 같이 달라고 해. 새끼야.”

“야, 처음부터 육백 원만… 이러면 누구나 망설이게 되어 있거든.”

한결같은 거지 새끼. 백 할머니 손자 박하송이다.

“박하송, 너 주식 하냐?”

“그게 뭔데? 먹는 거야?”

“잡아떼지 말고 새끼야. 내가 입 벌리면 너 영원히 오백 원 구걸 못 하는 수가 있어.”

“…어떻게 알았냐?”

“그냥 알게 되었어.”

“비밀로 해 주면 안 될까?”

“벌릴 것 같았으면 벌써 했다.”

“흠… 시혁이 너한테 정보망도 있는 줄 몰랐는걸?”

“주접 떨지 말고 말해 봐. 주식 하냐?”

“…뭐,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지.”

“어디가 좋을까?”

백 할머니가 아무리 주식의 신이라 해도, 시혁과 비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디테일은 모자랄지 모르나 시혁은 급등하고, 급락하는 흐름에 대해 기억의 창고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간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할머니가 딱 두 가지만 보라고 했어.”

“…….”

“매수할 회사가 지금 돈을 벌고 있는가? 또 앞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너무 평범한 논리잖아? 주식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백 할머니라면 무언가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박하송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어느새 없어졌다. 노련한 투자가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시혁아. 그 판때기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되어서 눈 감고 귀 닫고 장기간 묻어 두거나, 아니면 폐인이 되어서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없다.”

역시 한칼이 있는 놈이다. 백 할머니 손자답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거든. 자신이 바라는 기대수익률은 꼭대기인데, 실질수익률은 절대 거기 미치지 못해. 그래서 도박하듯이 주식을 하게 되지. 대박과 쪽박은 항상 동행한다. 누구도 장담 못 해.”

“그래서 어쩌라고?”

“시장의 호흡을 느끼지 못하면 무조건 지는 판때기가 주식이야. 탐욕과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탐욕을 부리다 망하고, 미련 때문에 실기해서 망하고… 결론적으로 너, 주식은 하지 마라.”

반듯한 생각이다. 적어도 까먹을 놈은 아니다.

“너 나하고 동업 안 할래?”

“얼씨구? 갈수록 더하네. 너는 천재지만 돈 한 푼 벌어 본 적 없는 놈이잖아? 거기다 무조건 피하라는 친구끼리 동업……? 일없다.”

“앞으로 오백 원, 얄짤 없다?”

“그래도 안 돼. 동업이라니… 미친 짓이야.”

시혁이 몇 발 물러서더니 손으로 깔때기를 만들었다.

“박하송이 백 할머니 손자다! 이 새끼한테 오백 원 주는 놈은 X신 짓 하는 거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이 새끼, 주식도 한다!”

“그만해라. 존말 할 때.”

“동업!”

“……말이나 들어보고, 씰데없는 짓거리면 바로 패 죽인다.”

하지만, 시혁은 박하송과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해를 가릴 듯 거구의 사내 둘이 시혁 앞에 있었다.

기관원은 아니다. 냄새부터 다르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 자스민 향…….

어찌 잊으리. 이 냄새를.

“시혁 학생, 미안하지만 좀 뵙고 싶어하는 분이 계신데… 같이 가 줄 수 없을까요?”

드디어 만나네. X새끼.

의외로 차분해지는 시혁, 그러나 속마음은 다시 사는 생 중에서 맛보는 가장 큰 분노로 주체하기 힘들었다.

‘반갑다. 백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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