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44화 (44/150)

44화 미국으로 (2)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79층부터 82층까지는 지금껏 공실로 비어 있었다.

1945년 육군 소속 B- 25 폭격기가 빌딩 80층에 충돌하면서 탑승자 14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 어떤 세입자도 들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곳에 과감히 둥지를 틀고 업무를 시작한 K 글로벌 USA는 월가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유령이 나온다고 기피했던 장소를 택한 것도 놀라웠지만, K 글로벌의 공동 대표가 너무 의외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일개 펀드 회사에 노벨상 수상자가 공동 대표?

- 너무한 거 아냐? 마이런 숄즈 교수가 생뚱맞게 개인 기업에 들어가고 X랄이셔?

- 거기다 로버트 머튼 교수는 어떻고? 그 양반은 단순한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고. 미국 경제학계의 전설이잖아. 상임 고문이래.

- 하여튼 존 메리웨더가 나긴 난놈이다. 블랙 먼데이 때 한 방 제대로 하더니 바로 독립했네.

- 근데… 그 회사 사우스코리안이 지분을 다 가지고 있다던데? 이제 21살이라는 말이 있어.

- 메리웨더가 내세운 바지겠지. 자기 이름으로 하면 세금관계가 꼬이니까 말이야.

- 맞아, 이면 계약을 해놓고 이름만 얹은 놈일 거야. 머리 좋네. 메리웨더.

대충 이런 평이다.

메리웨더가 내세운 이론은 완벽했다.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 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정립한 이론은 채권의 차익 거래.

쉽게 풀면.

A채권과 B채권을 사고파는 행위는 펀드의 기본 영역이다. 하지만 어떤 펀드 회사도 두 채권을 동시에 거래하지는 않는다. 오르고 내리는 시점도 다르며, 각 채권의 유동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통상 오르는 채권에 콜 옵션 몰빵을 하던가, 내리는 채권에 풋 옵션 몰빵을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메리웨더 팀은 이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뒤 두 채권이 만나는 시점을 도출하여 그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비슷한 자산을 가지고 일종의 배팅을 하는 것이다. 그 비슷한 자산이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가격적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 다시 비슷해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배팅이지만, 두 교수가 만든 모델은 정교한 수학적 공식으로 만들어져 거의 리스크 제로를 구현해 냈다.

그러나 블랙 먼데이 같은 한 세기에 한 번 발생할 사태가 생기지 않는 한, 채권 거래는 수익률이 극히 적었다. 투자하는 금액에 비해 기대수익이 형편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레버리지를 30배까지 높여 투자를 합니다. 싱가폴 대화은행은3억 달러를 우리에게 투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90억 달러의 자금을 일으켜 채권을 사고파는 것이죠.”

“……!”

“수익률? 의미 없습니다. 땅콩 한 알로 얼마나 벌겠습니까? 그 땅 콩 한 알을 담보로 우리는 세 포대를 빌려 투자하는 것이죠. 세 포대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는 땅콩 한 알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익으로 돌아올 거고요.”

“아! 이제 이해를 했습니다. 꼭 우리도 투자하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회사가 제시한 조건 네 가지를 수용하셔야 합니다. 최소 투자금이 천만 달러 이상이라야 합니다… 아, 이건 3억 달러니까 충족이 되셨고요.”

“꿀꺽- “

“기본 수수료는 2%입니다. 이건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매년 공제합니다.”

“…….”

“그리고 수익이 발생했을 때, 수익금의 25%를 성공 수수료로 재차 공제합니다.”

“…….”

“마지막으로, 일단 계약을 하면 3년간 자금을 못 뺍니다. 이건 투자의 안정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입니다.”

“메리웨더, 대단히 죄송하지만, 만약 손실이 발생하면 어찌 됩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투자한 원금에서 손해를 보셔야죠.”

“너무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불공평한 계약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싫으면 하지 마세요. 오늘 미팅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한 이유… 아십니까? 월가의 모든 투자회사들이 우리 펀드에 돈을 넣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지 않습니다.”

“…….”

“참고로, 작년 후반기에 7억 달러로 시작한 우리 프로그램은 27%의 수익을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40%에 육박할 것으로 보여요. 오늘 싱가폴계 은행이 아니었다면 저는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대단하다.

돈을 투자 받아야 할 펀드사가 거꾸로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선택권은 투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펀드사인 K 글로벌 USA가 쥐고 흔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블랙 먼데이 사태 때 메리웨더가 보여 준 놀라운 통찰력과, 겨우 일 년도 안 된 LTCM(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의 실적은 경이적이었다. 제발 우리 돈을 받아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이다.

펀드사의 자산은 돈?

아니다, 실적이다. 성과와 수익률이 모든 것을 말한다. 돈을 버는 놈이 최고이고, 장땡인 판때기다.

메리웨더는 느긋하게 싱가폴 대화은행 부사장을 쳐다보곤 펜을 내밀었다. 더 말하기 귀찮으니까 빨리 사인하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마치 점령군이 패전국 장수에게 하는 행동과 같았지만, 대화은행 부사장은 급히 사인을 하고 머릴 숙였다.

그렇게 항복 문서에 사인을 받은 메리웨더는 크게 기지개를 키며 비서에게 중얼거렸다.

“아, 아… 한 시간만 쉴까? 미스 린지, 다음 예약자는 좀 미뤄줘.”

“대표님, 죄송하지만 감사역, 미스터 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 약속도 없이… 하여튼 동양인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그래도 감사가 보자는 데… 귀찮지만… 들여보내.”

“동행이 있습니다.”

“…누구?”

그때, 예고도 없이 벌컥 문이 열렸다.

“아! 미팅이 잘됐나 보네? 반가워. 메리웨더 대표.”

“…….”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젊은 동양계 청년과 공사홍 감사. 손까지 들며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는 쪽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대뜸 메리웨더의 앞까지 당도한 후 고개를 까닥거렸다. 자리를 내놓으라는 듯이.

“…누구?”

“일단 저쪽으로 가서 앉아.”

순간, 메리웨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악성을 내질렀다.

“설마, 설마… 한국에서?”

“훗! 그나마 눈치가 있네. 아직도 안 비키나?”

온 몸으로 확 끼쳐오는 소름.

꿈속에서도 이 목소리를 들으면 느끼던 알 수 없는 공포가 순식간에 되 살아났다.

“아, 아… 예, 어서 오십시오. 보스!”

“이렇게 보네? 그리고 아름다운 비서를 두셨어. 커피 한 잔씩 다시 부탁할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하하하. 메리웨더, 당신보다 비서 아가씨 눈치가 더 빨라서 좋아.”

“…….”

이제껏 제왕처럼 군림하던 메리웨더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뭔 일이야?

수많은 도상훈련을 했었다. 다짐도 했었다. 전에는 힘없는 일개 펀드 매니저였지만, 지금은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 월가의 모든 투자자들이 자기와 만나기를 소원하고, 돈을 받아 달라고 사정하는 판이다.

여차직하면 이 따위 회사, 바로 뛰쳐나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펀드사를 설립하면 그만이다. 자본금을 대라면 바로 투자해 줄 사람들로 100미터 줄을 세울 자신이 있으니까.

그래서 근 일 년 가까운 시간동안 한국으로 전화를 몇 번밖에 하지 않았었다. 또 사업적인 내용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통화도 숄즈 교수의 공동 대표 임명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어야 했다.

이게 아닌데…….

“존.”

“예, 보스.”

“월가의 스타가 되셨어. 축하해.”

“…….”

“블랙 먼데이의 영웅, 실패 없는 승부사, 마이다스의 손, 펀드계의 신성… 이거 뭐, 더 이상 붙일 수식어가 없어서 민망할 지경이야. 하하하.”

“다 과대포장된 허명입니다.”

“아니야, 잘해 왔어. 로버트 머튼 교수와 마이어 숄즈 교수를 영입한 것도 굿 초이스, 신의 한 수였고.”

왜 이러지? 갓 21살의 어린놈을 보스로 모시기 창피해서 주변에는 바지를 앞세웠다는 투로 은근 소문을 흘렸었다. 또 회사 내 모든 요직도 자기 사람들로 채웠다. 어쩌다 한 번씩 오는 공사홍 감사도 아무런 실권 없는 허깨비로 만들었다.

어떤 작은 꼬투리만 주어지면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생각을 단단히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쫄고 있는 거지? 들이받아야 정상 아닌가? 내 자리까지 내주고 뭐하는 짓이냐?

언제까지 저 어린놈의 반말을 참고 들어야 하는 것이지?

“메리웨더!”

“옙, 보스.”

조건 반사적으로 대답을 해놓고 다시 얼굴을 붉히는 메리웨더.

“흔히 말하길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 어떤 자리냐는 중요하지 않거든. 누가 거기 앉아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

“…….”

“지금 당신은 그 자리에 잘 어울려. 그래서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블랙 먼데이 사태 때 당신이 살로만 브라더스에 입힌 손실은 다 정리한 거지?”

“……!”

“그래, 존 굿 브래던 회장과 반대로 매수한 전략 덕분에 빚을 다 감하고도 남는 수익을 줬으니 그걸로 된 거야. 남자는, 특히 펀드 매니저는 절대 회사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돼. 안 그래?”

“…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 공을 메리웨더, 당신의 생각으로 계속 알도록 해. 그래야 투자금이 더 쉽게 들어올 것 아냐? 두 교수도 그 명성을 듣고 영입 제의를 수락했을 테니까.”

“으음…….”

“이미지란 것이 참 무섭거든. 쌓기도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야. 그래서 잘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지.”

“…….”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당분간… 우리 세 사람만 아는 것으로 묻어 두자고.”

마침 비서가 커피를 가지고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커피를 내려놓는 비서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당분간… 이라고……?

제기랄, 이건 살 떨리는 협박이다. 언제든 블랙 먼데이 사태 때 역매수로 대박을 친 것이 자신의 지시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되면 가뜩이나 벼락 출세한 자신을 시기하는 월가의 입들이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길 것이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

“나는 머리가 돌빡인가봐, 어제 통화한 내용도 잘 기억 못 해. 꼭 통화할 때 녹음을 해 놔야 나중에 착각하지 않게 되더라니까.”

휘청거리는 메리웨더에게 날아 든 확인사살, 녹음이라는 화살이 잔인하게 심장을 꿰뚫고 지나 갔다.

이놈은. 아니, 보스는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존재였구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만 있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단숨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치명적 독을 가진 살모사였다.

“당신은 프로야. 프로는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맞지.”

“…….”

“K 글로벌 USA의 모든 전권을 줄 테니 마음껏 해 봐. 나는 이 방에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그러나!”

마지막 그러나… 라는 말에 메리웨더의 고개가 번쩍 치켜 올라갔다. 이제부터 나올 말이 진짜인 것이다.

“배당이 부족하면 다시 올지도 몰라. 어차피 투자금은 모두 외부에서 충당하는 상황이니까 앞으로 버는 족족 이 계좌로 넣도록.”

시혁이 내미는 쪽지에 적힌 이름.

K 미르 컴퍼니?

“K 글로벌과 용역 계약서를 하나 쓰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 조세회피처로 무작정 큰돈을 매번 보내면 세무국에서 의심할 테니까.”

“…….”

“비서 아가씨가 커피를 너무 쓰게 뽑았나봐? 메리웨더 얼굴이 찡그려졌는데?”

“아, 아. 아닙니다. 세무국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그래, 나는 이만 일어나지. 다른 사냥개와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

마지막까지 끝내준다. 사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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