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46화 (46/150)

46화 보물 창고 채우기 (2)

“명심해. 다음 주까지야.”

“한 달만 더 기다려줄 수 없습니까?”

“당신, 양심에 털난 건 알고 있나? 지금까지 무려 삼 개월을 참았어. 한 달 더 기다린다고 없는 돈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러면 이 장비들을 어디로 옮기란 말입니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나는 할만큼 했어. 하여튼 다음 주면 새 입주자가 들어올 거야. 어차피 보증금은 다 까먹었으니 계산할 것은 없고, 원상복구 안 되면 여기 장비들 못 가지고 나가는 거 알고 있지?”

건물 관리인이 매몰차게 문을 닫고 나가자 젠슨 홍은 머릴 감싸고 퍼져 앉았다.

그제서야 밖에서 기척을 엿보던 두 사람이 들어왔다.

“홍, 우리 끝난 건가?”

“이 장비들이 없으면 더 이상 연구도 못 하겠네. 쫑났어. 참 허무하다.”

같이 창업한 커티스와 크리스도 한숨 쉬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기에 세 사람은 모든 걸 다 넣었다. 이미 세 사람 집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고, 장비들은 리스료 체납에 압류된 지 오래 되었다.

1983년 설립하고 야심차게 시작했건만, 시장은 이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기술에 대해서 설명하고 시제품을 보여 주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문제는 그걸 활용한 완제품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 그래, 좋네. 그런데 이걸 어디다 써?

천재들은 자신의 머리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맹목적 생각에 몰두한다. 하지만, 정작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너무 세상을 앞서가 버린 탓이다.

답은 기다리는 것… 빨리 개발된 기술이 적용될 세상이 올 때까지.

그러나, 버틸 돈이 바닥났다. 이제 일주일 후에는 이 개발 장비들을 다 놓고 쫓겨날 신세에 내몰렸다.

젠슨 홍(Jensen Hong)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유명한 마이크로 프로세서 엔지니어였었다. AMD 수석 엔지니어로 재직하면서 기발한 상상력과 실력을 증명한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결국 뚫고 나오듯 자신의 창의적 의견이 회사에서 몇 번 묵살되자 젠슨 홍은 두 명의 동료와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차린 것이다.

엔바디아(NVADIA)의 탄생이었다.

컬컴과 또 다른 위대한 이름. 엔바디아.

미래에는 컴퓨터의 핵심인 그래픽 카드(GPU)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회사. 그리고 2021년 자그마치 시총 7,000억 달러(약 850조)를 달성하는 기업이 된다.

하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은 세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하아… 끝났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두 사람에게 정말 미안해. 내 고집 때문에… 미안하네.”

“이봐, 홍. 우리 스스로 결정한 길이야. 너무 자책하지 마. 그래도 기술은 영원히 남는 법이다. 언젠가 우리가 설계한 GPU가 세상 모든 컴퓨터에 장착되는 날이 올거다.”

“그래. 홍, 우리는 엔지니어, 비록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상황이지만 기술은 남겼어. 그걸로 만족한다.”

젠슨 홍은 더 미안했다.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두 친구를 꼬드겨 창업한 것이 너무 후회되는 것이다. 자책감에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가슴이 먹먹했다.

‘맞아… 친구와 기술은 남았구나. 다 망했지만.’

눈치 빠른 직원들은 벌써 다 나갔고, 미련하게 버티던 몇 몇조차 건물주의 고함을 들어 버렸다. 사기는 바닥을 치고, 뒤늦게 주섬주섬 짐을 싸는 직원도 보인다.

“이제 우리도 이사 준비하자. 일부는 건질 수 있겠지. 테스트 로딩기와 검측 장비, 그리고 웨이퍼 제조 시설 정도만 가져 가서 버티는 거야.”

“그만하게. 크리스. 자네가 말한 장비, 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벌써 유태인 건물주 놈이 경비를 바꿨어. 책상 하나 빼내기 힘들어.”

“…….”

“제기랄, 차라리 AMD에서 인수합병을 제안했을 때 받았어야 했어.”

“커티스,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내가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푼돈에 우리 자식 같은 GPU 특허를 뺏기고 싶지 않아. 차라리 안고 자폭을 하더라도 말이야.”

비냄새 섞인 바람이 열린 창으로 스며들어 실내를 눅눅하게 만들었다.

당시 세 명 모두 반대를 했던 일이다. 너무 답답하니까 그만 입밖으로 뱉은 것이다.

그런데.

세 사람의 무거운 공기를 깨트리는 말이 입구에서 들렸다.

“아이고, 이거 노크를 했는데 답이 없어서 실례하고 말았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나중에 오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미수금 드릴 돈이 없으니 고소를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보나마나 악덕 중국인 자재 업자 앞잡이로 보… 그렇게 보기에는 말쑥하다. 우선 표정이 너무 밝다. 또 중국 양아치가 할 수 있는 차림새가 아니다.

자신들의 때에 절은 와이셔츠와 비교하면 대충 걸치고 있는 것만 팔아도 작은 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것 같은 명품 일색.

“네, 미안합니다. 아무리 연락을 드려도 직통 전화는 안 받고, 또 내선 교환원조차 응답이 없길래 실례했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차이나계 은행과는 거래한 적이 없는데.”

“차이나? 아닙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마이다스 킴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컬컴에 이어 두 번째 등장한 이름, 마이다스 킴.

어윈 제콥스는 고통스런 순간에도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손에 닿는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만든다는 마이다스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이라…….

“어? 진짠데.”

“마이다스던 미다스던 무슨 일로 왔습니까? 커피머신도 고장나 차를 대접할 입장이 못 되니 짧게 해 주시오.”

“제 손이 닿는 것을 황금으로 바꾸지는 못하지만, 제 사인은 황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농담, 받아 줄 여유가 없소만.”

“허참, 계속 사람 말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초면에 부끄럽지만 속물처럼 행동해야겠네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밝힌 청년은 그대로 책상 머리에 엉덩이를 걸치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 의자에 앉아 있는 젠슨 홍에게 내밀었다.

“……!”

“예, 아직 금액이 빠진 백지수푭니다. 제 사인도 없네요.”

“이제 무슨 짓이오?”

“아까 못 들었습니까? 제 영어 이름이… 마이다스 킴이라고 밝혔는데.”

“…….”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엔바디아 회생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해 볼까요?”

아직도 멍한 얼굴로 시혁을 바라보고 있는 젠슨 홍과 달리 커티스와 크리스의 얼굴은 순식간에 희망으로 넘쳐났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할 순간에 수표책을 꺼내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투자자님, 커피?”

“어? 아까 커피 머신?”

“그게… 원두가 떨어진 거죠. 옆 회사에 부탁해서 한 잔 뽑아 오면 됩니다.”

눈치 빠른 크리스가 급히 머그 컵을 들고 뛰쳐나가고, 기회를 보던 커티스가 슬쩍 끼어들었다. 젠슨 홍은 훌륭한 엔지니어지만 너무 솔직 담백한 직진형 인간이다. 이런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AMD의 악몽을 다시 만들면 안 된다.

“솔직히 우리 엔바디아가 약간 적자긴 하지만 기술 선도 기업입니다. 보유한 특허만 해도 800건이 넘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영권을 위협받는 투자라면 무조건 거절합니다.”

이쯤 던지고 다시 밀당을 하면 조건이…….

응, 아냐, 당신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넘겨줄 경영권이나 있습니까?”

“……!”

“보유 주식의 35%는 JP모건이, 또 20%는 헤지펀드에게 줬잖습니까? 그것도 악랄한 사채꾼 같은 엘리엇 펀드에게 말입니다.”

“…….”

“사업을 하다 보면 사채를 쓸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마지노선은 지켜야 합니다. 당장 목이 타서 미치겠다고 덜렁 바닷물을 마신 꼴이죠. 그래서 이 짝 난 거 아닌가요?”

“…….”

“미스터 커티스, 어쭙잖은 협상 따위 할 시간 있어요? 당장 짐을 싸야 할 상황인데.”

“…….”

“나는 여기 오기 전에 고민을 잠시 했어요. 흡수할 것인지, 아니면 백기사가 될 것인지… 지금 당신 같은 자세라면 나는 충분히 악마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망해 가는 처지라고 하나 모욕은 하지 마시오.”

“No, No, No. 때론 말이죠. 진심이, 간절함이 돈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나한테 어설픈 밀당은 통하지 않아요.”

“FUCK! 오늘 협상은 없던 걸로 합시다.”

오히려 젠슨 홍보다 더 흥분해 버린 커티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의 한계다.

시혁은 그런 커티스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는 젠슨 홍에게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JP모건은 실패한 투자로 손실처리를 하고 말겠지만, 엘리엇 펀드는 당신들 세 사람을 고소할 겁니다. 배임에 횡령, 그리고 사기도 있더군요.”

“말도 안 돼, 우리는 사기꾼이 아냐. 엘리엇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알겠죠. 그래도 합니다. 오징어 말린 것 보신 적 있나요? 바짝 마른 오징어도 더 쥐어 짜면 기름 몇 방울은 나와요. 그게 사채업자들의 기본 생각입니다.”

“아냐, 아니라고. 그럴 리 없어.”

툭-

몇 장의 접혀진 서류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고소장 원본입니다. 엘리엇의 주장이 먹힌다면 세 분… 최소한 몇만 달러씩 보석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변호사 비용은 몇 배 더 들겠지만.”

커피를 들고 들어오던 크리스도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다 들은 것이다.

“제기랄, 비열한 자식들. 그러게 백지에 사인을 해 주면 안 되는 것이었어. 당장 임대료가 밀려 쫓겨 나는 마당에, 그냥 감옥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잖아?”

“크리스, 커피 마셔도 될까요?”

“…예, 어차피 타온 건데 드시오.”

깊고 무거운 침묵이 사무실을 잠식했다. 오직 시혁의 커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커티스가 어설프게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제가 못한 말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무섭다. 고소장 원본을 가지고 온 사람이다.

“짐작하셨겠지만, 엘리엇의 투자금… 아니, 채권은 내가 회수했습니다. 거의 두 배를 주고 샀지요.”

“……!”

“그런데 JP모건의 투자금은 오히려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웃기죠? 그들은 엔바디아를 회생불능으로 평가하더군요. 덕분에 20%를 주고 거저 얻다시피 취득했습니다.”

“X발! 이미 다 쓸어 담아 놓고 수표책을 꺼내 우롱하는 건 뭐야? 당신은 이미 우리 엔바디아의 최대 주주가 된 거잖아?”

거칠게 내 뱉는 커티스. 시혁은 그런 커티스를 본채 만채하고 중얼거렸다.

“커티스, 연구원으로서 당신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입과 어설픈 잔머리를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을 겪을 겁니다. 장담하지요.”

“……!”

“내 마음속에는 악마와 천사가 항상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꺼낼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커티스는 나로 하여금 악마를 꺼내라고 종용하는 것 같은데…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행동하지 마시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어떤 처분도 달게 받아야 할 입장, 인정합니다. 마저 말씀하세요. 마이다스 킴.”

이래서 경영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순간 가장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젠슨 홍이었다.

“그래요. 그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엔바디아의 주식 55%를 여기 오기 전에 확보했습니다. 여러분과 오늘 나눌 이야기는.”

“…….”

“아까 밝혔어요. 내가 여기 온 이유… 엔바디아의 회생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하자고 했었습니다.”

“…….”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이 꿈꾸는 세상, 여러분이 만든 GPU가 모든 컴퓨터에 장착되는 날까지 버티려면.”

“……!”

“단순히 버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서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최신 장비와 연구시설을 구비해서 더 나은 칩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말하세요.”

꿀꺽-

“제가 드리죠. 참! 이 따위 더러운 유태인의 낡은 건물, 제발 비우고 좀 쌈빡한 건물로 옮기는 비용도 포함합시다.”

젠슨 홍의 눈에 습막이 차올랐다. 이건 강요된 눈물이 아니다. 그냥 욱하는 것이다.

“이 수표책은 그 용도로 꺼낸 것입니다. 제 이름이 마이다스 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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