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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51화 (51/150)

51화 진짜 백그라운드를 만들어 볼까?

“야! 너, 이거이거 뭐냐?”

“제 차죠.”

“너 아버지 찾았냐?”

“뭔 놈의 해파리가 고래 깨무는 소리하고 그래요?”

“그 아버지가 알고 보니 미국 재벌이었어?”

“에이… 그만해요. 그냥 샀어.”

“사랑합니다. 아우님.”

“미친… 바쁜 사람 불러 놓고 한다는 소리가.”

따뜻한 눈길로 마주 보는 시혁과 이상호 과장.

이권이나 야합 관계가 아니라 힘들 때 서로 기댈 어깨를 빌려줄, 사람 냄새나는 형과 동생이었다.

갑자기 시혁이 롤스로이스를 몰고 등장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눈을 휘둥그레 뜨던 이상호도 금방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상호 형, 대사관 통역이면 영어 능력자 아냐? 소통이 안 된다고?”

“영어는 잘하지. 문제는… 에이, 모르겠다. 직접 보면 알게 될 거다. 저기 오는 양키, 보이지?”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미는 구레나룻 가득한 백인. 시혁도 윌슨 이후로 처음보는 고릴라 같은 거대한 체구다.

“오! 새로운 통역?”

“예, 킴입니다.”

“영어 이름은 없나?”

“미다스(Midas) 킴으로 불러 주십시오.”

여기서 마이다스라는 영어 발음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그리스 식으로 읽으면 미다스도 맞는 말이니까.

“그래 킴. 내 발음 때문에 한국 팀이 상당히 힘들어 하는 모양이야. 근데 나도 안 고쳐지네. 껄껄껄.”

감 잡았다.

영어도 사투리는 존재한다. 다만, 그 차이가 발음과 악센트의 차이가 심한 지역이 있을 뿐이다. 이 사람은 전형적인 남부 텍사스 사나이구나.

남북 전쟁에서 북부의 링컨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미국판 파시즘의 소유자는 모두 남부 사람들이다. 말도 안 되지만 남부 연맹을 만들어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족속들이다.

유명한 KKK단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극도로 유색인종에 대해 반감을 가진 특성, 그래서 한국 선발대를 괴롭혔구나.

이런 사람들은 너희가 알아들어라. 어쩔건데? 이런 식 꼬장을 부리곤 한다.

“제가 좋아하는 남부 텍사스 사나이의 말이군요. 억센 억양, 골이 깊은 말투… 좋습니다. 다행히 저에겐 익숙한 언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미스터?”

“아! 미안하네. 나는 웨인일세. 풀 네임은 마샬 패트릭 웨인이지만 웨인이라고 불러 주게나.”

“반갑습니다. 웨인. 앞으로 한국 선발대의 모든 통역은 제가 맡겠습니다.”

“…놀랍군. 한국인 중에 남부 텍사스 억양을 자네처럼 완벽하게 터득한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

“설마 백악관의 경호 책임자가 KKK는 아니길 바랍니다. 미스터 웨인.”

“껄껄껄! 내가 장난이 조금 지나쳤나 보군. 그 정도는 아닐세. 앞으로 잘 협조하지. 한국 팀의 미스터 리에게 정식으로 사과함세.”

의외로 소탈하다. 그리고 직선적이다. 바로 사과하고 바로 화해를 하는 이것도 남부 남자의 특징이라고 봐야 한다.

이상호의 얼굴이 비로소 환하게 밝아졌다. 며칠 후면 노태후 대통령이 도착하는 데 이놈의 꼬장 때문에 전혀 협조를 받지 못했던 상황이 시혁의 등장 한 번에 바로 해결이 된 셈이다.

역시 난놈이다. 왜 대통령과 막내 아가씨가 저리 침을 바르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됐죠?”

“한국 오면 거하게 밥 사마.”

“소고기!”

“…그냥 돼지로 가자. 나 포니 탄다”

그 뒤로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한번 친해진 백악관 경호 책임자 웨인은 알아서 한국팀의 요구를 전격 수용해 주었다. 영어도 충분히 알아들을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진작 그럴 것이지.

간혹 시혁에게 롤스로이스 키를 빌려 달라고 징징대는 것만 빼면 천성이 나쁜 놈은 아니었다.

“너, 경호실과 비서실에서 이번 얘기 듣고 다들 감탄한 거 아니?”

“소고기!”

“의외로 질긴 놈일세. 하하하. 안 그래도 청와대 특활비 맘껏 써도 된다고 허락받았거든? 소고기 콜이다. 짜식아.”

“투 뿔 등심으로.”

“뒤끝 작렬이다. 너… 알았다, 투 뿔 등심. 근데 각하 오시면 정상회담 통역도 네가 해 줘야 겠다.”

“그건 애초에 약속한 거니까 당연하고요.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요?”

“첫째 날은 국빈 환영식과 저녁 만찬이면 끝이고. 둘째 날은 아침을 부통령과 같이 하는 것으로 잡혀 있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이게 제일 중요한 일정들이지.”

“부통령?”

“응, 조지 부시.”

“……!”

그렇네… 다음 대의 권력이 지금 부통령으로 있었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부시가문의 장자.

명문가에서 태어나 명문 고등학교를 마치고 예일대에 합격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학 입학을 취소한 채 전투기 조종사가 된 전쟁 영웅. 그냥 돌진하는 상남자 스타일이다.

전투 중 비행기가 격추되어 동료들과 같이 해상에 비상 착륙했지만 혼자 운 좋게 살아 남았다. 그때 붙잡힌 동료들은 일본군의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 때 잡아먹혔었다.

만약 부시가 잡아먹혔다면 아들 부시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던 럭키 가이.

그 뒤로도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텍사스 7선거구에서 하원의원을 지낸 뒤, UN 미국대사, 초대 중국 주재 연락 사무소장을 지냈고 CIA 국장까지 거쳤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다 패배한 뒤에 쾌히 부통령직을 수락한 조지 부시…….

시기가 너무 공교롭다. 올해 부시는 다시 출마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된다.

* * *

백악관에서 먹는 줄 알았던 아침 식사는 엉뚱하게 근처의 바베큐 식당이었다. 새벽에 갑자기 통보를 받고 경호팀들은 초 비상이 걸렸다. 사전 답사도 못 한 곳이었다.

“이 새끼들, 일부러 엿 먹이는 거 아냐? 명색이 국빈 방문한 각하를 뺑뺑이 돌려?”

“상호 형, 이 양반 원래 그래요.”

“네가 어떻게 알아?”

“…아는 게 아니고, 많이 들었어요. 그냥 내키면 직진하는 전형적인 남부 스타일이라고.”

“SS(비밀 경호국)가 어련히 알아서 사전 검색을 다 했겠지만, 우리는 이거 완전 들러리가 되게 생겼다. 제길!”

어제 도착한 노태후 대통령은 국빈 행사를 소화하고 공식 만찬을 마친 뒤 시혁을 따로 숙소로 불렀었다.

시혁은 그 자리에서 노태후와 나눴던 심각한 대화를 떠올렸다.

“시혁아, 참 처량하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국빈 자격으로 왔다만, 곧 물러날 대통령과 하는 정상회담이잖냐? 김 빠지는 일이지.”

“…….”

“내가 지금 심혈을 기울이는 북방 외교에 대한 미국의 협조가 꼭 필요한데 다음 정부에서 딴지를 걸지 않을지 걱정이다.”

“예, 이해했습니다.”

“내일 아침을 먹는 부통령, 공화당의 지금 지지율이 형편없다고 말들이 많더구나. 보나마나 이번 선거는 민주당 두카키스가 대통령이 될텐데… 그렇다고 섣불리 두카키스를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한 입장이다. 허허허.”

“각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든지 괜찮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는 거 인정하는 바다. 기탄없이 말해라.”

“내일 오후 정상회담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내일 아침 식사가 각하께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너, 혹시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눈치는 백단이다. 인정.

“예. 미국의 41대 대통령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됩니다. 반드시요.”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하는 게냐? 지지율이 겨우 30%, 상대 후보 두카키스는 58%, 거의 두 배 차이가 나고 있는 판에…….”

“각하, 혹시 민주당 두카키스 후보에게 뒤로 후원금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

“보내셨군요. 이거 큰일 났습니다. 텍사스 사람들 뒤끝 장난 아닌데 말입니다.”

“부시에게도 보험 삼아 보냈는데 그게 큰일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모두 부시가 안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보나마나 두카키스에게 더 많은 금액을 보냈을 거 아닙니까?”

“…….”

“부시는 CIA 국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걸 모르겠습니까? 아마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부시가… 진짜 될까? 두 배 차이의 지지율을 역전할 수 있다고?”

“부시는 두카키스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반면 두카키스는 부시를 절대 이길 수 없는 약점이 있고요.”

“그게 뭐냐? 어서 말해 봐라.”

“도덕성!”

“엥?”

“마이클 두카키스는 그리스 이민자 출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두 번이나 역임했습니다. 얼마나 적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청렴하고 도덕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신념도 강하고요. 하지만, 부시는 전형적인 남부 부자 가문의 장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비겁하고 야비할 수 있습니다.”

“…….”

“이번 선거는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치러질 겁니다. 두카키스는 자신의 강점이라 생각한 도덕심 때문에 집니다. 철저히 망가져서요.”

이제서야 조금 알아듣는 눈치다. 노태후도 비록 군인출신이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인물 아니던가.

“네 말대로 흘러간다면 이거 진짜 큰일이구나.”

그때 의전을 담당한 비서관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고도 없이 총 맞을 일이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 생겼다는 말이다.

“각하, 내일 아침을 백악관이 아니라…….”

“뭐야? 숨 고르고 자세히 얘기해 봐.”

“네. 여기 숙소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바비큐 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통지가 왔습니다.”

시혁과 노태후의 눈이 마주 쳤다.

“오 분 거리면 차로 이동할 수도 없고, 걸어오라는 소리네. 이 빌어먹을 자식.”

“시작되었네요. 텍사스 꼬장질이…….”

그렇게 마련된 조찬.

툴툴거리는 이상호의 말처럼 대통령 일행은 숙소인 호텔을 나와 걸어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새벽에, 워싱턴 거리를 경호원들과 함께 걷는다? 국빈으로 방문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건 명백히 엿 먹이는 초대였다.

레스토랑에는 아직 부시가 도착하지도 않았다. 이것도 의도적이다.

참, 약소국 대통령이 감내해야 하는 치욕스러운 아침 식사 자리. 거지 같은 놈들.

잠시 후, 경찰의 패트롤 카 호위를 받는 조시 부시 부통령의 차량이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봐라!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내가 훨씬 더 쎈 놈이라고… 이거네?

그럼에도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 노태후는 웃는 낮으로 부시를 반겼지만 지금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것이다.

“반갑습니다. 부시 부통령.”

“아이고, 제가 조금 늦었지요? 워싱턴의 아침은 워낙 차가 막혀서요.”

조까, 도로 통제하고 패트롤 카가 삐옹삐옹하는데 무슨 차가 막혀.

“이 레스토랑의 바비큐 플래터가 기가 막힙니다. 텍사스식 브리스킷도 맛있고요.”

“아, 네. 저도 고기 좋아합니다. 좋은 곳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노태후와 부시가 직접 영어로 대화를 했다. 노태후는 육사에서 영어 교관을 했을 정도로 능숙한 영어를 구사한다. 사실 이런 자리 정도면 통역이 없어도 될 만큼 훌륭한 영어 실력이었다.

시혁은 조용히 두 거물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의외의 반전이 벌어졌다.

“자네가 골드 보이인가?”

느닷없는 부시의 말에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시혁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부시 부통령 각하.”

“선물은 잘 받았네. 정말 깜짝 놀랐지.”

“감사합니다. 각하.”

“자네는 시각이 다른가 봐?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배팅을 하는 걸 보면.”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 각하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피식 웃는 부시.

“그래? 자네 대통령 각하는 아직 모르는 표정인데?”

“모시는 분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은 스태프의 기본입니다. 그렇게 이해 바랍니다.”

“알아서 했다? 일억 달러를?”

“제 소임을 다할 뿐입니다.”

“마이다스 킴! 월가의 떠오르는 투자회사 K 글로벌 USA의 주인에다, 벤처 엔젤 투자자, 얼마 전에는 엔바디아를 인수했더군.”

“…….”

“자네가 오히려 다크호스 같은데? 껄껄껄. 오늘 아침 식사는 굉장히 유쾌하겠어.”

노태후도, 동석한 외무부 장관도, 경호팀 요원들도,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벌렸지만, 부시와 시혁만 번쩍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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