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52화 (52/150)

52화 나는 차라리 빌런이 되련다

시혁은 노태후와 저녁 밀담을 나누고 호텔을 나섰다.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다. 수습이 중요하다.

한번 예방주사를 맞아 본 경험이 있었다. 백악관 경호 총괄 웨인에게.

한번 꽂히면 끝까지 파고.

원한을 맺으면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지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겁하고 야비한 짓도 서슴지 않는 남부 텍사스 스타일. 원래 총 한 자루와 말 한 마리 몰고 종횡무진 개척하던 사람들의 특성이 그렇다.

어제까지 밭을 갈던 사람들이 떼강도로 돌변해 은행을 털고, 기차를 뒤엎던 기질, 그들에게 적과 아군의 구분은 누가 이익을 줄 것인가로 구분된다. 내일의 천금보다 당장 금화 한 닢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이다.

“윌슨, 급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지지 말고,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를 만날 수 있도록 수배해 주세요. 무조건요.”

“보스, 알겠습니다. 제 모든 라인을 동원하겠습니다.”

믿음직스런 사나이다. 저녁 9시에 지시를 해도 두말하지 않는다. CIA공작팀의 에이스였던 윌슨이라면 해낼 것이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미국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CIA는 아이가 필요없다.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못 하는 일이 없는 곳이란 말이다.

역시 윌슨.

다행히 시혁은 그 늦은 시간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도 내일 정상회담 백악관 만찬 초대손님으로 워싱턴에 있었다.

“10분 안에 끝내 주시오. 소개한 사람의 체면 때문에 만나긴 했지만, 아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빨리 끝냅시다.”

“1분 안에 끝내 드리죠.”

“…….”

구단주는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서 팔짱을 꼈다. 마음대로 해 보라는 의미다.

“지금 구단의 거취문제로 고민 중인 거 알고 있습니다. 일본 회사에 넘기면 당신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장난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자그마치 돈이 오천만 달러나 높아.”

“잘 들어요. 세상에는 왕왕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만약, 이번 선거가 당신의 생각과 달리 진행되면, 당신은 아마 곧바로 세무국의 방문을 받을걸?”

“……!”

“탈탈 털려서 오천만 달러는커녕 백 달러도 쓰지 못하고 남은 여생… 감옥에서 딱딱하게 굳은 빵을 먹게 될 거란 말이지.”

“당신이 아무리 어설픈 협박을 해도 내 맘은 변치 않아. 나는 구단을 팔면 바로 남태평양으로 날아갈 테니까.”

시혁은 시계를 들여다보고 품에 손을 넣어 수표책을 꺼냈다. 돈이면 유령도 춤추게 만든다고 워런 바핏이 말했던가.

“여기 일억 달러라고 쓰겠습니다. 오늘 자리를 마련해 준 CIA 부국장에게 이 수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도 좋습니다.”

“헉!”

“당신은 돈을 두 배로 벌어서 좋고, 나는 선물을 마련해서 좋고… 이제 막 1분이 지났네. 당신 아내 깨기 전에 결정하시오.”

“…….”

“내가 원하는 조건은 딱 하나. 당신이 지금 바로 옷을 입고, 조지 W. 부시에게 가 주는 것이오.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는 말을 해 주면 됩니다. 그게 전부요.”

“…….”

“물론 이 거래는 당신과 나만 알고 있읍시다. 그래야 당신이 이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테니까. 오케이?”

조지 W. 부시의 평생 소원은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을 갖는 것이었다. 구단은 비실비실 했다. 구단주의 욕심 때문에 우수한 선수들을 다 팔아먹었다.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기고, 팬들이 악을 쓰는 상황까지 내몰리자 시장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W. 부시가 제시한 가격과 일본의 부동산 재벌이 제시한 금액 차이가 무려 오천만 달러. 거의 포기 상태였다.

이놈은 조지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에게 달려가 시시콜콜 나불거릴 것이다. 혹시라도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짜 뒈진다. 그런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왜 이 거래가 성사됐는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밤늦은 게 대수냐? 오천만 달러를 더 손에 쥘 수 있는 판에.

쪽팔리는 게 대수냐? 혹시 모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시혁은 이 정보를 공사홍에게 들었다. 공사홍은 K 글로벌 재팬의 이끼 다다시에게 입수했고. 이끼는 겐코 상사와 마지막 부동산 서류를 넘기며 이 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절묘한 한 수. 비록 오천만 달러를 더 질렀지만… 까짓것.

세상에서 제일 큰 빽을 얻을 수 있다면 백 번 남는 장사다.

* * *

다시 여기는 노태후와 조지 부시의 아침 식사 자리.

“뇌물치고는 최고였어. 마이다스 킴.”

“뇌물과 선물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각하.”

“오! 고견을 청해 듣지.”

“돈이냐? 물건이냐? 또 그 물건을 직접 주느냐? 합법적인 소지인이 주느냐?”

“……!”

“저는 뇌물을 아드님께 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작은 마음을 얹었을 뿐입니다.”

“작은 마음이라… 멋지군. 방법도 멋있었고,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받은 사람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겠지. 멋있어.”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엥? 아부까지? 껄껄껄.”

“아닙니다. 각하는 꼭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여 위대한 미합중국의 41대 대통령이 되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각하를 지지합니다.”

이쯤되면 게임 아웃이다. 누군들 예쁘지 않을까?

“노태후 대통령 각하, 이렇게 무서운 로비스트를 데리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부럽습니다.”

“조지 부시 부통령 각하, 필요하다면 언제든 옆에 두고 쓰시지요. 그러고 보니 이 선물이 더 값어치 있겠습니다.”

“응?”

“이놈은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입니다. 솔직히 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도록 가장 큰 전략을 세워 준 세기의 지략가죠.”

“오호!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뿐 아니라 각하께서 어떤 나라 사람들을 만나든 원어민보다 더 뛰어난 언어 구사가 가능합니다. 저도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동의합니다. 어제 저녁 짧은 시간에 구단주를 녹아웃 시키고, 제 아들 놈을 미쳐 날뛰도록 만들고, 마지막에는 나까지 자기 편으로 만드는 놀라운 책략, CIA도 이렇게 못 해요.”

더 말해 뭐할까?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의 친구를 얻었다.

“내일이면 한국 대통령은 가실 테고… 어떤가? 내일 저녁은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지 않겠나? 철부지 아들은 자네가 와 주길 기린처럼 기다린다네.”

“기꺼운 마음으로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프레지던트.”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기에.

일억 달러는 어디서 동원했는지?

또 있다고 해도 그런 엄청난 거액을 과감하게 배팅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조지 W. 부시가 받지 않았을 경우 어쩌려고 했는지?

노태후는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김시혁의 뒤를 봐줬다고 생각한 것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은 자신의 도움이 없었어도 정상을 밟았을 것이다. 어느새 불쑥 성장해 장애물을 처리하고 있다… 나쁜 놈, 미리 말이라도 해 줄 것이지.

- 그런데, 저 무정한 놈. 예지가 수없이 전화를 하지만 정작 먼저 전화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에휴… 불쌍한 내 딸!

* * *

노태후 대통령 일행은 정상 회담을 마치고 환대 속에서 미국을 떠났다. 비록 물러나는 레이건 대통령과의 만남이었으나 조지 부시 부통령의 배려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회담이 된 셈이었다.

시혁은 대통령이 떠나는 순간까지 옆을 지키며 통역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동안 수많은 워싱턴 거물들의 눈길을 받아야 했었다.

명색이 세계 최강, 유일한 G1 미국을 움직이는 심장 워싱턴에서 살아남은 정치인들은 백 년 묵은 구렁이거나 승천을 꿈꾸는 이무기들이다.

요소요소에 귀를 열고, 구석구석에 빨대를 박아 두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고 뒤로 밀리는 신세가 된다. 그런 이들의 레이다에 걸린 시혁은 신성이었다.

만약, 혹시라도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새로운 권력자, 미래 대통령의 숨겨진 칼날이 되는 것이니까.

“드디어 보네. 나의 히어로!”

“과찬이십니다. 조시 W. 부시.”

“아, 아… 그냥 편하게 부시 주니어라고 불러도 돼. 자네는 충분히 자격이 있어.”

1946년생, 시혁보다 22살 연상이다. 그래도 처음 보는데 대뜸 반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뱉어 내는 직설적인 성격.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부시 주니어.”

“아니지, 내가 고마워해야 정상인 거야. 선물 잘 받았네.”

“약소합니다.”

“크하하하, 진짜 물건이네. 아버지, 그렇지 않습니까?”

의외로 화목한 가정이다. 어떤 일탈도 이해하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자를 경멸하는 부시가문. 아버지 부시도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고… 오죽하면 2차대전 때 조종하던 전투기를 지금의 부인 이름 ‘바바라’로 지을 정도였었다.

“여기는 어떤 도청도 허용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일세. 이제 자네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네.”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양심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깨끗하게 현재 지지율을 인정하고 패배할 것인가.”

“흐음… 둘 다 마음에 안 들면?”

“평생 말 편자나 갈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까?”

“아니.”

“그럼 전자를 택해야죠.”

“그래야 이긴다?”

“무조건.”

바바라 여사는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슬며시 자리를 떴다. 커피를 다시 내온다는 핑계로.

“내 최대의 약점이 뭔가?”

“중도파를 다 잃어버린 것이죠. 멍청한 공화당의 대응 때문에요.”

“그래, 뼈아프지만 지금 레이건 영감이 말년에 헛발질을 몇 번 하고 말았어. 그 바람에 중도층이 모두 두카키스 쪽에 붙어 버렸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대중에게 친숙한 정치인이었다. 또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기도 했었다.

나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빼껴 쓰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됐고, 재선까지 성공했으며.

영화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치면서 미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은 대중 정치가이기도 했었다. 대국민 소통에 있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지도자.

그러나, 인권에 관해서는… 글쎄다.

이란 콘트라 사건 같은 경우, 니카라과에서 테러와 학살을 자행하던 우익 민병대 ‘콘트라’를 지원했고.

엘살바도르 군을 지원해 시민이 학살당하는 것을 방조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권을 지원하는 등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강경 우파로 꼽혔었다.

그리고, 국민에 대한 도청과 감청을 늘린 점.

마약과 전쟁을 한다는 핑계로 흑인 사회를 고립시킨 점.

정작 CIA가 비행기로 마약을 실어 와 흑인 사회를 마약 소굴로 타락시킨 점.

이런 것들은 치명적인 인권 말살 정책이라고 봐야 했었다. 모두 레이건의 묵인과 방조, 또는 지시에 의해서 자행된 것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임기 말이 되자 이런 사실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공화당이 몰락한 것이다.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는 찬조연설에서 공공연하게 부시를 조롱했다.

- 조지 부시는 죽은 오리꼴이다(George Bush is dead duck!).

“각하, 착각하지 마십시오. 중도층은 중간에 있지 않습니다. 중도층에게 신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도층은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그들은 사안별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갈대와 같은 중도층의 감성을 건드려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감성을 자극하라?”

“네, 그래서 양심과 패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 것입니다.”

“양심을 버려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네만?”

“그렇죠, 이건 전쟁입니다. 전쟁에서 알량한 도덕심을 찾으려면 쪽박 차고 말 편자 갈러 가야죠.”

시혁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승리의 비책을 권하고 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빌런의 술책을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지 않는가?

실상 승리를 위해서 비겁하고, 잔인해지는 건… 자신이 아닐까?

‘그렇다. 나는 빌런이 되련다. 다시는 비참하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는 55살의 김시혁 부장으로 살지 않기로 맹세했다.’

‘세상의 비난과 저주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주마. 코와 입으로 흙이 들어오고, 눈을 뜬 채로 생매장당하는 꼴… 다시는 겪지 않는다.’

“자네, 보기보다 악당이구먼.”

“패배를 받아들인다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 악당이 되야 한다면 저는… 백 번이라도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프레지던트.”

‘다시는 당하지 않는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빌런이 되련다. 당신의 후광이 필요해.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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