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53화 (53/150)

53화 미국 대통령과 그 아들

시혁은 다시 한번 조지 부시를 기억의 창고에서 소환해 보았다.

비록 네거티브 전략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재임시절의 치적은 분명 긍정적이었던 지도자.

나중에 역사가들도 그랬었다.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는 최고(best one- tem President)라고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었으니까.

어차피 역사의 큰 물줄기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주저없이 가야지.

비록 빌런의 역할이라도 웃으며 감내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또, 그 아들, 조지 W. 부시와 연결되는 기회를 얻었지 않나.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고 정권을 잃지만, 바로 그 다음 선거에 나가 당당히 미국 대통령이 되는 남자. 재선까지 성공하면서 거푸 두 번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는 남자.

이들 부자를 얻을 수 있다면… 12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빽을 두는 것이다.

“헤이 킴.”

“네.”

“자네 말대로 선거 전략팀에서 네거티브 전략 보고서가 올라왔어. 그런데 이런 촌스런 방법이 과연 먹힐까?”

“제가 예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해보게.”

“백마가 한 마리 있습니다. 지금부터 절대 이 백마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무조건 백마를 10초간 생각하지 마시란 얘깁니다.”

“…….”

“이해했습니까? 오히려 1초도 되기 전에 필연적으로 백마를 떠올렸을 겁니다. 이걸 ‘인지적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생각나는 무의식의 인지상태.”

“……!”

“우리가 백마라는 단어를 던지게 되면 두카키스는 당연히 이를 부정할 것입니다. 절대 아니라고… 백마는 없다고… 허상의 백마 따위 생각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하지만, 대중들은 두카키스가 부정하면 할수록 더 백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의식 속에 백마를 박아 버리죠. 곧 두카키스는 백마가 되고 맙니다.”

“오!”

“그게 프레임의 무서운 점입니다. 그 틀 안에서 두카키스는 스스로 침몰할 것입니다.”

시혁은 선거 전략팀의 보고서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 누가 짰는지 몰라도 굉장하군요. 기획팀에 천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응? 리 에트워터? 나도 못 들어본 이름인 걸 보니 신참 같은데?”

그러나 시혁은 이 이름을 발견하고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잊을 수 없는 이름. 리 에트워트.

실제 조지 부시를 당선시키는 모든 네거티브 전략을 수립한 당대 최고의 천재 지략가.

드디어 나왔구나.

그러나, 당신은 장기판의 졸로 끝나야 한다. 어차피 당신은 선거가 끝나고 암으로 생을 마감하니까. 차라리 적당한 자리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몇 년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되겠지.

“이거 멋지네요. 실행에 옮기죠. 가장 잘 통하는 기자들 추려서 말을 흘려야 합니다. 전혀 의도적이지 않게.”

* * *

며칠 후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몇 개의 대형 신문 첫 꼭지에 비슷한 기사들이 동시에 실렸다.

- 두카키스, 메사츄세츠 주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사실인가?

- 위대한 미국의 신 경제시대를 열겠다는 두카키스 후보,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의문 증폭.

- 진실 논란 가속, 두카키스의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사태.

부글부글 여론이 달아올랐다. 방송국에서도 두카키스의 해명을 요구하는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사실이라면 미국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는 성토가 뒤를 이었다.

당연히 민주당에서는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문제는 당 차원에서 상식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고 발표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묻혔을 것을…….

두카키스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전격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문산의 험악한 겨울 전투를 치른 애국자다. 그런 내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다시 여러 곳의 언론에서 새로운 꼭지 기사가 터져 나왔다.

- 두카키스 아내, 성조기를 불태웠다는 소문의 진원지는?

-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소동에 이은 아내의 성조기 방화 사건, 일파만파로 번져.

-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한 두카키스와 성조기를 불태운 아내, 그들에게 애국심이 존재하는가?

- 사실이라면 역대 최악의 대통령 후보를 낸 민주당 책임론 대두.

개자식들!

어디서나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좋아하는 속성을 떨칠 수 없는 법이다.

거기다 현재 정권을 쥐고 있는 공화당의 눈치를 보는 몇몇 기레기가 가세하면서 점점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민주당은 헛소문이고 유언비어라는 공식 발표를 하고.

거기에 한층 더 휘발유를 끼얹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두카키스 아내가 직접 해명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나는 성조기를 불태운 적이 없다. 모두 날조되고 악의적인 소문이다. 믿지 말라. 이와 관련하여 묻지마 보도를 하는 언론사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한 번만 하면 될 것을, 세 번이나 아니라고 격렬하게 주장을 하는 바람에 대중의 뇌리에는 두카키스를 떠올리면 불타는 성조기가 동시에 생각나는 주홍글씨가 박혀 버렸다.

“대단해, 벌써 지지율이 골든 크로스를 이뤘어. 중도층이 볼 때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네. 두카키스하면 무조건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와 성조기 방화가 먼저 떠오른다고 난리야. 껄껄껄!”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그랬습니다. ‘선동은 쉽고 반박은 어렵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 자네의 생각이 맞았어. 대중은, 특히 중도층은 사상으로 공략할 것이 아니라 감성과 프레임으로 때렸어야 해. 굉장해.”

“…예.”

“승리가 코앞인데 자네, 표정은 왜 그리 어둡나?”

솔직히 썩 개운치는 않다.

비열한 방법이었다. 더럽고 치졸한 프레임 싸움.

그러나 실제 이 전략을 수립한 것은 리 에트워터라는 전략팀의 막내. 역사에 남을 네거티브 전략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었다.

이 전략으로 인해서 조지 부시는 비로소 두카키스와 대등한 지지율을 확보하고 대통령이 되는 교두보를 마련했었다.

하지만, 지금 조지 부시 진영의 누구도 리 에트워터를 칭송하지 않았다. 마이다스 킴이라는 초월적 천재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도덕의 찌꺼기를 덜어 내자.’

그래도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룬 수많은 치적은 지금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게 만들지 않는가?

‘내가 역사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순응하고, 담담히 빌런의 길을 가는 거다.’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마지막 펀치 한 방만 먹이면 두카키스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마지막 히든 펀치?”

“네, 곧 다가올 TV토론에서 최후의 칼을 뽑아야죠.”

“어떻게 말인가?”

“가장 화려하게 적장의 목을 치는 겁니다. 도덕심을 전가의 보도처럼 두르고 있는 두카키스는 절대 피하지 못합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자폭할 겁니다.”

“그런 전략이 또 준비되어 있다고? 한 번씩 자네 머리를 열어 보고 싶어.”

한번 무너지면 다시 균형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걸 이겨 내려면 그냥 참았야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약일 때가 있는 것을… 두카키스는 연이어 무리수를 범하고 말았다.

두카키스는 자신도 국방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애국심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으로, 한편의 TV 광고를 내보냈다.

M1 에이브람스 탱크에 반신을 드러낸 채 찍은 이 광고는 후일 세계사를 바꾼 100대 사진에 선정될 정도로 멍청한 짓이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두카키스는 요동이 심한 전차에서 엄지 척을 했지만… 광고를 보는 국민들은 심히 불편했던 것이다.

전차병도 아니면서 넥타이를 멘 상태로 군복을 겹쳐 입고 어색한 표정을 짓는 그 뻘짓 광고. 차라리 하지 말지.

갯벌에 빠진 두카키스가 급히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수렁은 생각보다 깊었던 것이다.

그 광고를 보고 시혁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아저씨, 상대방 부시는 해군에 자원입대한 뒤 전투기 조종사를 했던 사람이라고요. 왜 하필 상대방의 강한 부분을 공격하셨나이까? 아이고.

그렇게 부시와 두카키스의 지지율은 역전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전략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두카키스는 일체 네거티브에 대해 대응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나 이미 덧씌워진 프레임은 그를 더 괴롭혔다.

- 왜 변명도 안 하지? 지금 공화당이 내놓는 의혹들, 다 사실이라는 말이잖아? 나쁜 놈이었네. 두카키스.

이게 프레임의 덫이다. 한번 올가미에 걸리면 몸부림 쳐도, 가만 있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두카키스의 마지막 희망은 양자가 맞붙는 TV 토론뿐.

지금껏 5차례 진행된 TV 토론에서 두카키스는 부시를 압도하고 있었다. 타고난 달변과 말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은 청중들과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었다.

여기서 만회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두카키스의 위기감 때문인지 마지막 TV 토론은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개최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드디어 양 후보의 마지막 TV 토론시간이 왔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자넷 헌트입니다.”

“반갑습니다. 마이클 두카키스 후보.”

“네. 반갑습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후보.”

시작부터 TV를 보는 유권자들은 두카키스의 경직된 표정에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화가 난 것으로 느껴졌었다. 조지 부시 후보라고 해도 충분한데 풀 네임을 다 부르자 감정적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두카키스의 천성이었다. 스스로 결벽증에 가까운 도덕성으로 무장한 두카키스는 부시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차려 불러 준 건데… 이만큼 그동안 쌓인 프레임의 덫은 깊고도 질겼다.

“오늘은 미리 예고된 대로 ‘미국의 사형 제도’에 대한 두 후보의 생각을 듣는 시간입니다.”

“…….”

“…….”

“만약, 당신의 아내가 강간에 살해를 당해도 그 범인의 사형을 반대할 것인가? 뜨거운 주제입니다만 두카키스 후보부터 발언 기회 드리겠습니다.”

“예, 사회자. 저는 사형 제도로 범죄의 발생이 감소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자가 말한 경우에 처할지라도 저는 인간의 목숨을 끊는 사형 제도를 결연히 반대합니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이번에는 부시 후보님.”

조지 부시는 한동안 발언을 하지 않고 두카키스를 노려보는 시늉을 했다. 시청자들은 왜 부시가 화난 표정으로 그러는지 이유를 몰라 웅성거렸다.

시혁은 두카키스의 대답을 예측했다. 부시는 시혁의 시나리오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긴장을 고조시키는 의도된 행동.

“부시 후보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발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회자, 저렇게 가족애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어떻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오?”

먼저 청중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절묘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사형 제도를 찬성한다고 발언했으면 호불호가 갈렸을 사안에서, 부시는 감성에 호소한 셈이었다. 찬성이냐 반대냐 라는 대답 대신 두카키스의 냉정함에 대해 질책하는 것.

이게 시혁이 준비한 마지막 펀치였던 것이다.

여기서 승부가 갈리고 말았다.

중도층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또는 먼저 후보를 정했다 해도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중도층이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중도층들은 이 토론을 보고 나서 일제히 부시에게 표를 던졌다.

이제 부시가 사형 제도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는 수면 아래로 묻히고 말았다.

두카키스만 가족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도 무조건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냉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끝이다. 이걸로 게임 오버!’

시혁은 청중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는 내내 허둥대는 두카키스가 안타까웠다. 혹여 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면, 진짜 새로운 미국을 만들지 않았을까?

부시 시대에 만들어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허상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것도 쓰잘데기 없는 도덕심의 발로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한 것은 자신 아니던가.

‘제기랄… 빌런 짓도 쉬운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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