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54화 (54/150)

54화 어때? 쫄리지?

미국의 41대 대통령 선거는 마지막 TV 토론을 계기로 줄곧 부시가 우세한가운데 치러졌고.

결국 53.4%를 득표한 부시가 승리했다. 두카키스로서는 뼈아픈 패배를 한 것이다.

조지 부시는 죽은 오리 꼴이라던 에드워드 케네디의 비아냥처럼 힘든 열세를 극복하고 판을 뒤집은 셈이다.

그런데, 부시 진영의 기뻐하는 순간을 찍은 NBC 카메라에 진귀한 장면이 찍혔다.

조지 부시와 아들 조지 W. 부시가 한 명의 동양인 청년과 격하게 포옹하며 환호하는 모습!

이미 워싱턴 정가에서 알만 한 사람 사이에서는 알려져 있지만 대중들은 도대체 저 동양 청년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면 부인과 먼저 기쁨의 키스를 나누고, 그 다음 핵심 참모와 기쁨을 나누는 것이 관례이거늘… 놀랍다.

저 사람, 도대체 누구냐?

“우하하하하. 내 평생 가장 기쁜 날이야. 킴! 모두 자네 공일세.”

“축하드립니다. 프레지던트”

“그래, 내가 뭘 해 줄까?”

“저는 대통령과 같이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아냐아냐, 시민권은 당연한 것이고, 자네에게 합당한 자리를 줄 테니 백악관으로 같이 들어가세.”

만만의 콩떡, 시혁은 그럴 마음 1도 없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네… 제 정신인가? 미합중국 시민권과 백악관 요직에 기용될 절호의 찬스를 다 포기한다고?”

“예, 사람마다 지향하는 바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저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게 뭔가?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야. 또 백악관은 미국을 움직이는 심장이고. 대통령인 내가 자네 후견인이 되면 하원을 거쳐 상원, 주지사 정도는 능히 꿰찰 수 있지 않나? 이런 권력보다 더 큰 것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돈입니다.”

“돈!”

“그렇습니다. 저는 무한한 자본을 가질 것입니다. 모든 부를 한 손에 움켜쥔 뒤 내 맘대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세상을요.”

미친놈.

그런데 꼭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부시도, W 부시도.

“안 돼! 이젠 내가 안 돼. 자네가 꼭 필요해.”

“…….”

“아버지, 그냥 두세요. 킴은 이미 자기 갈 길을 정했습니다. 괜히 억지로 강요해 적으로 만들지 마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들 부시가 중재에 나섰다. 함께 하면서 시혁의 무서운 지략과 천재적인 머리를 경험했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압력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이를 고려해 차관급으로 하고, 언제든 자유롭게 백악관에 들어와 조언하는 정도는 외국인 신분이라도 문제없지 않을까요?”

“끄응! 그렇게 하지. 이건 거부하지 말게. 대통령 당선자의 첫 번째 명령일세.”

땡큐! 바라던 바입니다.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백악관 프리패스를 위해 특별보좌관직은 받겠습니다.

조지 부시 한 번, 그리고 아들 부시 두 번, 이렇게 세 번의 미국 대통령 빽을 만들었으면 얻을 건 다 얻었지.

딱 이정도.

나는 검은머리 외국인이 될 생각 추호도 없거든요. 한국에는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고요. 지금도 불광 자비사의 스님 방 구들장이 그립습니다.

* * *

“저놈이 왜 부시 옆에 있는 건가? 내 눈이 잘못된 거야?”

“…….”

“말을 해, 이 사람아.”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회장님.”

“미국으로 보낸 팀은 지금 뭐 하고 있어?”

“혹시 몰라 지사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도록 단속 중입니다.”

“그건 잘했어. 작업이 실패했으면 즉시 뒤로 빼. 절대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미국 대통령을 등에 업었어. 어떤 반격을 할 지 몰라.”

“파견된 팀장이 한국 특수부대와 국정원 블랙 출신입니다. 증거를 남길 정도로 허술하지 않습니다.”

“난감하네. 큰일이야.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만들어 버렸어. 독까지 가득 품은 독사를 말이야.”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제가 듣기로는 노태후 대통령 통역을 맡았다 합니다. 그 인연으로 조지 부시와 관계를 가진 것 같습니다.”

“통역?”

“예, 저놈이 거의 못하는 언어가 없다 합니다.”

“허어, 어쩌다 하늘은 저놈에게 그런 재능을 내렸단 말인가?”

“나긴 난놈입니다.”

“닥쳐! 내 앞에서 저놈 치켜 세우지 말게.”

“…….”

“나는 분명히 보고 느꼈어. 저놈과 대면할 때 살이 떨렸다. 창피를 무릅쓰고 사과까지 했지만… 저놈은 내 앞에서 독기를 숨기지 않았지.”

“예. 고집스런 놈입니다.”

“이해가 안 돼. 왜 우리에게 그토록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때 도련님이 섣부르게 삼류 깡패를 동원한 것에 대한 적의가 아닐까 합니다.”

“X신 같은 놈! 손을 대려면 완벽하게,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만들던가… 아니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친구로 만들었어야지.”

“…….”

“그 깡패들은 어찌 되었나?”

“…….”

“어차피 수배했을 거 아냐? 말해 봐.”

“그게… 여섯 놈을 보냈는데 모두 다리 X신이 된 후 그 바닥에서 사라졌습니다.”

“머리만 좋은 게 아니란 소리잖아?”

이건호 회장의 장탄식이 이어지자 이학소 실장은 다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장사동 전 안기부장도 그리 말했습니다. 안기부의 정예 요원 셋을 유유히 따돌리고 사라졌다며 보통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걸 알면서 이번에도 미국에서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 말이 돼?”

“미국에 나간 팀장이, 전문적인 히트맨을 고용하면 총으로 지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히트맨은?”

“역시 연락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무섭군… 둘도 없이 총명한 머리에 깡패 여섯을 혼자 때려 눕힐 정도의 괴력, 거기다 총을 가진 전문 암살자까지 제압했다?”

“…….”

“그런 엄청난 놈이 부시 옆에 있는 장면이 뉴스에 나오고 있어. 저 장면을 보면 통역 정도가 아냐. 미국 차기 대통령이 당선 순간의 기쁨을 겨우 통역과 나눈다? 절대 아냐.”

“…네, 그렇긴 합니다.”

“일단 미국 지사에 보낸 인원들 은밀하게 철수시켜. 뒷정리 잘하란 말이야. 알아들어?”

* * *

“형님,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본사에서?”

“네. 다 건너뛰고 이 실장님이 직접 연락을…….”

“흐흐흐, 우리 X나 초라하게 됐네.”

“형님, 특임대의 전설이 그리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명식아, 차라리 우리가 직접 나서야 했었다. 양코배기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그놈, 101공수사단 출신의 베테랑이라며요? 만만한 놈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시끄러,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하는 법이다. 우리는 실패했어. 너무 쉽게 접근했다.”

“…….”

“다 소각했지?”

“네. 은행 계좌는 파기했고, 흔적들 다 지웠습니다. 여기 지사장 말고는 접촉한 직원이 없으니 형님과 저만 사라지면 끝입니다.”

“티켓은?”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거기서 다시 부산으로 들어 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동선입니다.”

백정태는 웬지 감이 좋지 않았다.

특수부대 근무 중에 안기부 블랙 요원으로 차출돼 투입된 작전이 얼마던가? 항상 데리고 다니는 후배 한 놈과 같이 삼송 비서실에 스카우트되면서 비로소 양지로 나오나 싶었다.

그러나 하는 일은 여전히 똑같다. 소속이 바뀌고 주머니가 두둑해졌다는 점만 다를 뿐. 그런 판에 까마득한 상사, 이학소 실장의 직접 지시로 진행한 미국 작전이 실패한 것이었다.

백정태는 김시혁을 한 번 본적이 있었다. 하늘 같은 회장님께서 보자고 해서 데리러 갔었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천하의 삼송 회장이 보자고 하는데… 하! 직접 오라고, 우물은 목마른 사람이 파는 법이라고, 딱 잘라 거절당했었다.

보통 놈은 아니다. 그런 꼴통 짓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쳤거나,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지.

백정태는 어쩐지 시혁에게 기시감(데자뷰)을 느꼈다. 분명히 처음 보는 데, 어디선가 본 듯한 간질간질한 기분…….

놈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흡사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한 이글거리는 눈빛에 살짝 질릴 정도였었다.

하여튼 첫 만남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런 풋내기 하나 제거하는 정도는 지금껏 살아온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지사장이 급히 달려와 틀어 준 TV에서 떡하니 등장한 놈의 모습은.

미국 대통령과 포옹이라니?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패착. 차라리 히트맨을 고용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섰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이미 떠난 배다. 되돌릴 수 없는 일.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고 귀국하자.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그때는…….

보안 유지를 위해 따로 호텔을 잡지도 않고 미국지사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두 사람은 가방 하나없이 단출한 차림으로 건물을 나섰다. 지사장이 준비해 준 렌터카를 몰고.

“형님!”

“봤다.”

“누굴까요? 설마?”

“맞아, 이놈에게 벌써 조력자가 있었네. 이제 이해가 된다.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할까요?”

“총도 없고, 별 도리 있냐? 그냥 밟아.”

“앞을 보십시오. 온통 후미등에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완전 갇혔는데요?”

꼬리가 붙었다. 지사를 나선지 얼마되지 않아서 백정태는 백미러로 미행을 알아 차렸다.

미행 차량은 절묘하게 차량 두 대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뒤를 밟고 있지만, 둘은 이런 일에 이골이 난 프로. 모를 수 없지.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려고 도심에서 가까운 라과디아 공항을 택한 것이 실수였다. 델타 항공의 디트로이트행 노선을 이용해 환승한 후 홍콩으로 가려고 선택한 라과디아 공항.

조금 멀더라도 고속도로를 타는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갈 것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는 길은 도심과 가까운 대신 국도를 타야 했다.

지리도 서툴고, 신호등 천지에 가다 서다 반복하는 정체. 쫓기는 쪽에게는 최악의 조건이다. 반면 쫓는 놈들은 쾌재를 부를 일이고.

“흐흐흐. 딱 걸렸네?”

“웃음이 나옵니까?”

“재미있구나. 애송인줄 알았는데, 제법 상대할 맛이 나는 놈이었어. 흐흐흐흐.”

“X발… 이럴 줄 알았으면 암시장에서 썩은 베레타라도 한 정 살걸.”

투털거리는 후배에게 아랑곳없이 백정태는 계속 룸미러와 백미러로 미행 차를 살피고 있었다.

“이거… 점점 재미있어 진다.”

“아이고, 형님이 그렇게 말하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지던데.”

“명식아, 저놈 누군지 알겠다.”

“……!”

“되치기 당한 셈이네? 흐흐흐.”

“설마… 의뢰했던 제이슨이라는 놈!”

“그래, 저놈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릴 털어먹으려고 작정한 거다.”

“개X끼, 어찌 할까요?”

“사거리에서 우회전해라. 그리고 알지?”

“대검으로 되겠습니까?”

“너 쫄았냐?”

“아이고 일없습니다. 장사 일박이일 하는 것도 아니고.”

백정태와 차명식이 탄 캐딜락이 신호등이 빨간 색으로 바뀜과 동시에 교차로를 통과해 첫 번째 골목으로 우회전을 해 버리자, 두 대가 중간에 있는 포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뒤 신호가 바뀌자 다급히 캐딜락을 따라 골목으로 꺾은 포드는 급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골목 중간에 후미등이 켜진 채로 캐딜락이 정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차 두 대는 골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전조등만 밝히고 있었다.

그때.

와장창-

뒤를 따라붙었던 포드 차의 운전석 창문이 깨지면서 불쑥 대검 한 자루가 들이닥쳤다.

“헤이! 제이슨, 오랜만이야? 친구까지 데리고 오셨네?”

백정태가 골목으로 차가 접어들 때 몸을 굴려 내린 뒤 어둠 속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습적으로 대검을 들이민 백정태는 이상한 광경에 더 당황하고 말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제이슨의 두 손에 선명한 수갑.

제이슨은 두 손이 수갑에 연결된 채 핸들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옆의 놈도 조수석 손잡이에 대롱대롱 수갑으로 굴비처럼 엮여 있고.

“뭐냐? 이 상황은? 모가지를 잘근잘근 썰어 주기 전에 말하는 게 좋아. 제이슨.”

“하아… 이봐 한국 놈, 네 가슴이나 보고 씨부려. X신아!’

그제서야 백정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자신의 가슴 심장 위에 빨간색 레이저 스코프 표식이 선명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X나 쫄리지? X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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