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62화 (62/150)

62화 뇌봉탑의 비밀

근현대사를 볼때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세 개의 화두가 있으니.

개혁 개방,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중국은 중국일 수밖에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미래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중국인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바퀴벌레 취급을 받는 것일까?

왜 그들은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었을까?

개혁 개방을 하면서 덩샤오핑이 부르짖은 것은 선부론(先富論)과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었다.

다 한꺼번에 부자가 될 수 없으니 누구든 먼저 돈을 벌고, 이들이 앞장서 나머지 인민들을 부자로 만들라는 선부론.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제일이라는 흑묘백묘론.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만 잘살게 해 주면 장땡이지. 암!)

이게 미래의 괴물 중국을 만든 원흉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개혁 개방으로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부자가 되었지만 인민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전에는 다들 못 살았으니까 꾸역꾸역 참을 만했으나 일부 지역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일부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자 인민들은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소위 꽌시(關係)라는 인맥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 큰돈을 벌 수 없었다. 불만이 부글부글 가마솥의 기름처럼 끓어올랐다.

임계점을 넘은 가마솥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1989년 6월, 100만 명의 인민들이 중국의 중심 천안문 광장에 집결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간 것이다.

덩샤오핑이 장쩌민에게 막 권력을 넘겨주려던 그 시점.

학생들로 시작된 시위는 빈민층과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붙어 버렸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은 죽고, 죽어야 할 사람은 안 죽었다!

-또다시 좌파가 번성해서 이 나라를 다해 처먹고 있다!

-우리는 돼지고기 한 근도 못 먹는데, 88첩 반상을 매일 차리는 탐관을 때려잡자!

-깨어나라, 투쟁만이 나라를 바꾼다!

드디어 터졌다.

덩샤오핑의 측근이었지만, 항상 공산당보다 인민의 편에서 정책을 펴던 후야오방(胡耀邦)이 급작스럽게 죽자, 이게 기폭제가 된 것이다.

후야오방의 장례를 끝낸 군중들은 자연스럽게 천안문 광장으로 집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했다. 피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었구나, 김시혁이 말한 천지개벽.”

“부총리님, 천행입니다. 아직 한 달 더 입원 기간이 있습니다. 쥐 죽은 듯이 웅크려야 합니다.”

“그래, 리커창 주임. 족쇄를 풀 때가 되었다. 하늘이 준 기회 아닌가?”

“참으로 신통방통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이런 민란 봉기를 미리 알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나도 신기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맘으로 입원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몰랐어.”

“큰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두 달 전 공개적으로 장쩌민 서기와 대적을 했더라면… 어찌 됐을지 끔찍합니다. 자칫 저 군중들의 처리를 부총리님께 떠넘겼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기인이 아냐. 신인(神人) 반열에 든 존재일세. 그런 사람이 내 편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지.”

“그렇습니다. 올림픽 위원 자격으로 한국에 가신 것이 신의 한수가 된 셈입니다.”

“응, 평생의 은인이 아닐 수 없어. 지금 어디에 있다고?”

“예, 완전히 관광객 모드로 유유자적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벌써 몇 개 성을 거쳐 지금은 절강성에 도착했다 합니다.”

“당연하지. 장쩌민을 그토록 대놓고 면박 줬으니 이를 갈고 있을 거야. 안전부 놈들 수십이 따라 붙었겠구먼.”

“어쩌면…….”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있나?”

“예, 김시혁 선생 말입니다. 왜 그렇게 장쩌민 서기와 불화를 자초했을까요? 부시 대통령이 직접 전화까지 걸어와서 극진히 대접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설마?”

“그랬을 겁니다, 그분이라면.”

“그러니까, 리 주임 생각은… 잠시라도 나에 대한 화살을 대신 막아 준 것이다?”

“솔직히 누가 차기 권력자와 척을 지려고 하겠습니까? 대충 장단만 맞춰 주면 큰 이권을 취할 수도 있는데요.”

“……!”

“맞을 겁니다. 그분은 애초부터 부총리님을 위해 자신의 부귀영달을 버린 겁니다.”

“아… 내가 진정 큰 빚을 졌구나. 그의 우정이 눈물겹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고.”

아닌데.

장쩌민이 조선이 어떻고, 형과 아우 관계가 저떻고, 도발을 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인데.

착각은 자유니까.

“리커창 주임, 자네가 차에서 전화기를 줬다고 했지? 왜 그랬나?”

“안전부의 지시였습니다, 그가 딴마음을 먹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에서 어떤 사람과 통화를 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겠죠.”

“하하하.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먼.”

“예, 신중한 성격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화기는 김시혁 선생이 퇴실한 후 호텔 수족관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그 시각, 시혁은 두 달간 빙글빙글 돌다가 절강성 항저우에 도착했다.

여기가 실제 시혁의 목적지였던 것이다. 너무 와 보고 싶었다, 항저우.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칭송받았던 아름다운 도시. 마르코폴로는 항저우를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고 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그러나 항저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번째 관광지는 뭐니 뭐니 해도 ‘시후(西湖)’다.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인공 호수로 너무 넓어 바다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시혁은 항저우에 도착한 이래로 며칠째 시후 주변만 거닐었다.

두 달 동안 북경에서 출발하여 말 그대로 정처없이 떠도는 모습. 도대체 왜 중국에 왔는지 목적을 알 수 없는 행동 패턴을 보여 주었다.

시선을 분산하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호텔 구석구석에는 시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눈길이 깔려 있는 상황이다. 입구에 주차된 두 대의 승용차는 이제 굳이 숨으려고 하지 않는다. 북경에서부터 줄곳 시혁을 따라온 안전부 감시 요원의 차다.

그들에게 시혁은 그냥 관광객이어야 했었다. 왜 시혁이 이토록 조심하면서 항저우까지 왔는지 몰라야 했으니까.

항저우에는 그곳과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윌슨, 오늘은 뇌봉탑(雷峰塔)을 가 볼까요?”

“네, 보스. 준비하겠습니다.”

윌슨도 시혁이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단 한마디도 먼저 묻지 않았다. 적격이다. 이런 사람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천운이 아닐 수 없다.

윌슨이 로비에서 얻은 정보와 간단한 지도를 챙긴 뒤 차를 대기시키자, 안전부 요원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장감은 많이 희석된 듯, 굼뜬 행동이 눈으로 보였다. 그동안 보아 온 시혁은 딱 하릴없고 시간 남는 관광객이었으니까.

시혁은 차에 오른 후 백미러로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어 주었다. 이 놈도 만 퍼센트 안전부 요원이겠지.

“오늘도 부탁합니다. 뇌봉탑이 보고 싶군요.”

“네. 귀빈(貴賓). 그런데 뇌봉탑은 가 봐야 별거 없습니다.”

“왜요?”

“명나라 시절, 왜구가 불을 질러서 다 타 버리고 지금은 거의 폐허나 마찬가지거든요.”

“호오! 그런가요? 그래도 흔적은 남아 있겠죠. 보고 싶군요.”

“예, 그러시다면 탑 근처까지 차가 들어가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뱉었지만, 시혁의 가슴은 진한 흥분으로 두방망이질 하고 있었다.

‘왔구나, 내 비밀의 열쇠를 쥔 곳으로.’

* * *

골격을 흙벽돌로 쌓고 처마와 평좌, 회랑, 난간은 목재로 만든 5층 높이의 탑.

왜구가 불을 지른 뒤, 오 층 목재 탑 부분은 완전히 소실되었나 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도굴꾼 손을 탔겠지. 돈이라면 자기 조상 묘라도 파헤치는 것이 중국인이니까.

처참했다. 너무 오래 방치된 탑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겨우 하부의 흙벽돌만 남아 이게 옛날에 탑이었다는 흔적을 보여 주는… 기사 말대로 폐허와 다름없는 뇌봉탑.

하지만 시혁의 가슴은 한층 더 뛰고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떨림.

-겨우 이 층 정도의 기단부만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는 페허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깊은 울림.

-간질간질하다. 그러면서 온몸을 관통하는 듯 짜릿한 이 느낌.

-왜 내가 다시 살아나 지금 같은 힘과 두뇌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

다 느껴진다.

뇌봉탑은 시혁을 부르고 있었다.

“윌슨, 여기 있어요. 혼자 올라가겠습니다.”

“…예, 보스.”

윌슨도 시혁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나 별다른 위험 요소는 없다고 판단하고 걸음을 멈췄다. 보스가 저토록 흥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있겠지. 윌슨은 멀리서 지켜보는 안전부 요원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들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런 폐허를 구경하러 오는 시혁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유적지랍시고 접근 금지 푯말이 있었으나 아무도 시혁을 제지할 생각은 없는 듯 관심이 없었다.

다행이다.

시혁은 천천히, 한 걸음씩, 무너진 흙벽돌을 밟고 탑을 올랐다.

발밑에서 퍼석, 흙벽돌이 깨지며 먼지가 피어올랐지만 개의치 않았다.

‘왜 저를 다시 살리셨습니까?’

‘그 긴 세월을 격하고, 저를 부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왜 마운과 저는 당신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의 진정한 뜻은 무엇입니까?’

탑의 상층부로 다가갈수록 시혁의 몸은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탑과 자신이 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때, 시혁의 눈에 삐죽이 튀어나온 석판이 보였다. 시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석판에 덮힌 먼지를 쓸어내렸다.

화엄경(華嚴經)!

그것도 한문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소위 범어(梵語)라고 불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화엄경이 왜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현시대에 이를 읽고 해석할 사람이 드문, 산스크리트어로 된 원본 화엄경을 시혁은 또렷이 읽어 내려갔다.

-제1회륜. 석가모니불이 마가다국의 보리수 나무 밑에서 막 대각(大覺)을 이루고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 둘레에 많은 보살이 한 사람씩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있다.

-이때 석가모니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일체가 되었다.

여기까지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석판을 더 읽기 위해 파낼 수도 없는 일. 시혁은 아쉽지만, 한 걸음 더 내디뎌 탑의 무너진 꼭대기까지 올랐다.

스님의 말씀대로 군데군데가 그을려 있었다. 이건 불에 탄 것이 아니다. 뭔가 강력한 뇌기로 인해 흙벽돌 자체가 구워진 듯 가운데를 기준으로 동심원처럼 퍼진 흔적.

여기였구나, 옥 조각을 발견한 곳이.

시혁은 몸을 굽혀 흙벽돌을 어루만졌다. 감개가 무량한 것이다.

순간.

윌슨은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자신도 모르게 귀를 움켜 잡았다. 평생을 포성이 자욱한 전장에서 보냈고, 음모와 귀계가 난무하는 CIA의 블랙으로 살았던 윌슨.

그마저 움찔하게 만드는 엄청난 굉음. 인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윌슨은 즉시 보스가 올라간 탑의 상층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보스는 멍하니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전부 요원들도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으나 별 다를 게 없는 시혁을 보고 다시 휴식 모드에 빠졌다.

조금 지루하긴 해도 꿀보직이다. 남들 뒤를 파는 공작질보다 훨씬 편한 일. 한 번씩 귀빈이 찔러주는 뭉텅이 돈을 받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이봐, 저 가오리빵즈(高麗棒子 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는 언제 가는 거야?

-몰라. 좀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간만에 쉬고 좋잖아?

-어린 나이에 출세했네. 제길,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인데 말이야.

-쉿! 함부로 말하지 마, 미국 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조선은 참 이상한 나라야. 쥐 밤톨만 한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인재가 불쑥불쑥 나온단 말이지.

-올림픽도 했잖아? 우리랑 비교도 안 되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어. 부럽다.

-그런데, 저 양반은 왜 여기 왔지? 다 무너진 탑, 뭐 볼 게 있다고.

그러나 지금 시혁은 이들과 전혀 다른 시공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일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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