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65화 (65/150)

65화 졸지에 일타 강사

똑똑똑똑-

조용히 문이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 들어서는 두 사람.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다.”

“아닐세. 자칫 함정에 빠질 뻔한 생명을 구해 준 은인조차 배웅하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도 아닌 거지.”

“위험한 행동입니다.”

“껄껄껄. 미래를 내다보는 현자가 그런 걱정을 하시나? 지금 천안문 사태 때문에 온 중국이 난리야. 걱정 마시게.”

“결국 탱크로 밀었더군요.”

“응, 이건 두고두고 우리 중국의 치부로 기록될 거야. 수천 명의 인민이 죽고 감금되었어.”

“10년 후 부총리께서 주석이 되면 시야를 크게 가지시길 권고드립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큰 시야를 가지는 것인가?”

“아마 장쩌민 주석의 10년 통치 기간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할 것입니다. 어쩌면 미국의 턱밑까지 도달할 수도 있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덩샤오핑이 차후 100년간은 미국에 도전치 말라 당부를 했지만, 힘이 커지면 누구나 그 힘을 쓰고 싶어 하죠. 근질근질하거든요. 그때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덩샤오핑이 당부한 도광양회(韜光養晦)?”

“네, 또 한 가지는, 더 많이 내려 놓으십시오.”

“뭘 말인가?”

“힘을.”

“……!”

“국경을 맞댄 주변국과 사이좋게 지내시고, 힘을 과시하지 마시고, 무엇보다 인민들을 계몽해야 합니다.”

“계몽?”

“예. 가장 기본적인 문화, 예절, 겸손함, 타인에 대한 배려… 이런 점들을 어린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중국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린 중화라는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 있어. 인민들의 생활이 향상되면 저절로 문화는 꽃피게 되어 있다네.”

“기분 나쁘겠지만, 절대 그렇게 안 됩니다. 중국은 전 세계의 깡패 국가로 돌변하고, 중국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거예요.”

“…….”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 더 나쁘게 표현하면 바퀴벌레, 나중에는 이런 말까지 나옵니다.”

“…….”

“착중죽중.”

“……?”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밖에 없다!”

후진타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말하나?”

“부총리님, 당신은 반드시 주석이 될 겁니다. 그러니 책임을 지세요. 그렇게 바뀌지 않으면 중국은 역사상 다시 없는 깡패, 민폐국이 될 거예요.”

“일단 알겠네. 가슴에 담아 두지.”

“그리고 마지막 충고는… 상하이방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중국의 암적인 존재로 부상합니다.”

아침이 밝아 올 무렵 후진타오는 베이징 호텔을 나섰다. 이 호텔은 후진타오 계열의 공청단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장쩌민을 너무 무시했다, 그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 * *

베이징의 수도 공항은 항상 붐빈다. 새로 크게 짓고 있는 신공항이 완공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다. 개혁 개방 이후 나가는 인민은 드물지만,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투자자가 밀려들면서 생기는 병목 현상이다.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행하기 전의 한국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시혁은 중국 정부에 별도의 출국 통보를 하지 않고 공항에서 가장 빠른 항공권을 구매했다. 아쉽게도 한국과 중국은 미수교 국가, 당연히 직항편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참 밑의 홍콩으로 갔다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와 한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북경에서 직접 김포공항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갈 것을… 이제 곧 한중 수교가 이뤄지고 직항이 생기면 그리 되겠지.

시혁과 윌슨은 시장판처럼 복잡한 수도 공항 청사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간판을 발견하곤 걸음을 옮겼다. 맥도날드가 있었구나. 1979년 1월 1일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그다음 날 베이징과 상하이에 입성했던 두 가지 상표,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대단한 영업력이다.

미래에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스몰 맥이라고 조롱을 받지만, 이때의 빅맥은 정말 컸다. 한입에 욱여넣을 수 없는 패티와 세 겹의 빵.

음, 맛있다. 상대적으로 야채가 적어 약간 퍽퍽한 느낌, 여기에 케첩을 추가해 뿌려 먹으면… 역시 맛있다.

윌슨과 시혁은 볼이 터지도록 빅맥을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그때 윌슨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시혁의 앞을 막아섰다.

“윌슨, 마저 먹어. 괜찮아.”

“보스.”

“올 줄 알았어.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눈들이 너무 많아. 제기랄.”

윌슨이 막는 바람에 엉거주춤한 사내들.

시혁이 휴지로 손을 닦고 일어서며 물었다.

“어디 계시죠?”

“…저희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어디 있냐고 물었잖아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돌겠네. 묻고 있잖아. 안내하겠다는 거기가 어디냐고?”

“…공항 귀빈실이 따로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아직 공안 정국이다. 캐려고 마음먹으면 뒷집의 거미줄이 몇 겹인지도 다 알 수 있다. 하물며 공산당이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말해 뭐 하리.

하지만 공항까지 올 신분이 아니다. 그게 놀랍다.

예상했던 그대로 공항의 귀빈실에는 장쩌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황제가 자객에게 죽었던 중국의 비극 때문인지 과도한 경호원들로 득실거렸다.

“여어, 김 특보님. 딱 90일 기한을 다 채우고 나가시는군요.”

“네, 돈 많이 썼습니다.”

“허어… 경제에 큰 도움이 되겠소이다그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판에 궁상 떨 수 있나요?”

“……!”

“덕분에 고급 식당만 다녔는데, 그 사람들은 궁상스럽게 식은 만토우(밀가루빵)만 먹더군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허허허, 좀 불러서 배부르게 먹이지 그랬습니까?”

“제가 왜요? 보고를 받을 사람이 먹여야죠, 만토우 말고 기름진 음식으로.”

이래도 되는 걸까? 면전에서 계속 면박을 당하는 장쩌민의 얼굴은 썩은 돼지 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김 특보님,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금의환향하는 모양인데, 소국은 대국을 거스리면 안 됩니다. 가뜩이나 북조선에게 시달리는 입장 아니오?”

흠… 이거였어? 준비한 칼이?

근데 또 그놈의 소국 타령. 기분 나빠, 새끼야.

“장 주석님, 중국에서 유래된 속담인데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딱 맞네요. 10년 통치하시니 말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법이외다.”

“저절로 변하는 강산은 없습니다. 다 사람이 변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익!”

“옛적 고려 충신 길재(吉再) 선조 님의 시조를 장 주석께 올리겠습니다. 두고두고 곱씹을 가치가 있으니 기억해 두면 좋을 겁니다.”

“…….”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시혁도 앞으로 십 년간 중국을 통치하고, 그 후로도 후진타오의 뒤에서 상왕노릇을 또 몇 년씩 하고, 그다음 시진핑 시대에까지 살아남는 세력, 상하이방을 일구는 장쩌민과 다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끝마다 조선이 어떻고, 소국이 어떻고 하는 바람에 빈정이 상해 버린 것이다.

본의 아니게 악연이 되어 버렸다.

어쩔 건데?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라는 빽을 만든 거야, 자식아!

“김 특보, 확실히 젊음이 좋긴 합니다. 거침없는 행동 인상적이오. 그 자신감이 후진타오 동지를 오염시키지 않았는지 걱정이외다.”

“……!”

제기랄, 잉어 꼬리 잡혔네. 조심할 것이지.

시혁도 후진타오에 대한 감정은 노태후처럼 나쁘지 않았다. 둘 다 공통점이 많다. 역사의 평가도 물 흐르듯 처세한 것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시혁에게 먼저 다가와 준 사람들이다.

정으로 묶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시혁의 약점을 장쩌민이 제대로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주석님, 큰 댐도 개미구멍이 뚫리면 무너집니다. 하물며 이제 막 개혁 개방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이 시점의 중국은 아직 견고한 댐을 쌓지 못했어요. 혼자 걸으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지는 못합니다. 같이 가야 먼 길이 외롭지 않은 법입니다.”

“과연, 부시 대통령의 말이 딱 맞았어.”

“……?”

“전화가 세 번이나 왔었소, 절대 그대와 적이 되지 말라고. 만약 적이 되려면 목숨 걸고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고.”

“설마, 저 하나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적이 되겠습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부시와 나는 오랜 친구요. 그가 그러더군요. 당신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라고.”

“…….”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적으로 삼지 말라 했습니다. 그건 중국과 나에게 큰 불행이 될 것이라면서.”

어? 의외의 상황, 당신 왜 그래?

“지금 중국은 한국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는 곤궁한 처지. 한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조상을 볼 면목이 없어요. 그래서 한 번씩 진심과 다른 말이 나오곤 합니다. 못난 저의 자격지심으로 이해 바랍니다.”

어! 어! 어! 이 아저씨,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정중히 허리까지 숙인다.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인, 그중에 최고 왕초가 일개 약관의 시혁에게 허리를 굽힌다고?

* * *

현대 중국을 관통하는 세 가지 큰 사건을 꼽는다면 개혁 개방과 천안문 사태 그리고 문화대혁명이다.

그중에 문화대혁명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개조하고 말았던 대참사였었다.

문화대혁명은 뒷방 늙은이(마오저뚱)의 권력욕 때문에 일어난 역성 혁명이었다. 겨우 10년 동안 지속된 이 광기 어린 축제에 4천 년 중국의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지식인이라고 이름 붙은 사람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이 미래에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 대국이 되는 하드 파워를 자랑해도 소프트 파워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는 이유도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이라고 봐야 한다.

모든 종교가 말살되고, 칭화 대학교 건물이 무너지고, 공자 사당이 부숴졌다. 대대로 내려오던 서적들은 불에 탔으며, 역대 황제의 능들은 싸그리 파헤쳐졌다.

어리디어린 청소년들에게 홍위병이라는 완장을 채워 중국을 말아먹은 것이다.

지식인과 종교인, 사상가들은 잘못을 시인하도록 강요받았다. 두드려 맞다가 맞다가 죽기 직전에 몰려 시인하면 또 바로 죽였다.

그래서 중국인의 뇌리 속에는 잘못을 시인하면 곧 죽음… 이라는 등식이 각인된 것이다.

그런 족속들의 최고 오야봉,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주석 장쩌민이 갑자기 저자세로 고개를 숙이자, 시혁은 적잖이 당황했다.

“장 주석님, 왜 이러십니까? 곧 비행기 출발 시간입니다. 여기까지 하시죠.”

“부족하오이까? 정식으로 다시 사과를 하리까?”

“아, 아니… 갑자기 주석님의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겨우 21살 어린 놈의 만용으로 이해하시고, 다음부터는 저도 격을 갖춰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시혁 특보, 그대의 말은 다 맞아요. 촌철살인 같은 그대의 지적은 내 심장을 도려 내는 듯 아프오. 부시처럼, 또 그대의 친구인 후진타오 부총리처럼, 나에게도 지혜를 나눠 주길 바랍니다. 부탁이오.”

이건 뭥미?

이 어색한 순간을 어찌 모면한다?

저 지친 얼굴은 지금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주석직을 넘겨받는 시점에 터진 천안문 사태로 얼마나 곤경에 몰려 있는지 여실히 느껴진다.

X발… 인삼 밭 수확하러 가야 하는데.

정말 왜 이렇게 익사이팅 하냐?

한국에 가면 월미도 디스코 팡팡이라도 타야 하나? 아니지… 아직 월미도는 해군 2함대가 주둔하고 있지. 서서히 공원 비슷하게 바뀌고 있지만 해군이 완전 철수하고 디스코 팡팡까지 들어서려면 멀고 멀었다.

아… 돌겠네. 김포공항에 현도 정 회장님이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시혁은 결국 삼 일을 더 머물렀다.

장쩌민이 내친 김에 후진타오까지 불러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분위기를 만들어 시혁을 붙잡았다. 더 이상 엉덩이를 뺄 수 없었다.

중난하이(中南海)는 삼 일간 문을 닫아 걸었고, 현 주석과 미래 주석이 시혁의 조언을 새겨들었다. 졸지에 국가 경영론 일타 강사가 돼 버렸다.

그래도 미국에 이어 중국도 깃발을 꽂은 셈이다.

민주주의 대빵 미국 대통령과 공산주의 대빵 중국 주석이 빽이 되었네?

‘나쁘지 않아, 다 무한 자본을 위한 밑거름. 때가 되면 왕창 써먹어 주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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