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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69화 (69/150)

69화 쇼핑 바구니

“쨘! 어때?”

“…응, 감동적이다. 고생했다, 친구야.”

“웬일이래? 그리 다정하게 부르고?”

“아니, 진심으로 감탄했다. 네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겠어.”

“흐흐흐흐, 내 귀중한 살들이 10킬로그램이나 떨어져 나갔어, 새꺄.”

바닥이 자그마치 8천 평. 4층까지는 그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5층부터는 4천 평씩 20층까지, 다시 그 뒤로 2천 평씩 60층까지, 마지막으로 6개 층은 천 평씩 건설되었다.

지하의 주차 구역까지 몽땅 합한다면 연면적이 28만 5,500평. 역대 어떤 건물도 이 정도 규모로 건축된 역사가 없었던 메머드 빌딩이 탄생한 것이다. 1년 전에 완공된 근처 코엑스 빌딩이 55층에 14만 평. 비교 불가다.

계단식으로 올라갔지만 각 층이 모두 타원형으로 마치 회오리처럼 말린 디자인, 흡사 용이 똬리를 틀고 하늘로 승천하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런 66층 최상 층의 팬트하우스는 K 타워의 백미였다.

오백 평에 달하는 거주 공간과 나머지 오백 평의 내부인 듯 외부와 통하는 옥상 정원.

삼면의 대형 문을 다 열면 완전 외부 정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어떻게 꼭대기 층에, 그것도 3층 높이의 돔을 씌워 정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멋들어진 식물원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건물 안이건만 본채와 분리된 설계로 아늑하기 그지없다. 구석구석에 놓인 벤치와 작은 연못 위로 지나는 아치형의 구름다리, 그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자.

여기서 끝판왕은 수영장, 국제 규격에 맞춘 수영장이 옥상 한쪽 끝에서 시혁을 맞이했다. 여기에 물을 꽉 채우고 몸을 담그면 수평선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리라.

“66층의 실제 층고는 3층, 이를 합산하면 69층이고 지하 3층을 더하면 72층이다. 명실상부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다.”

“응, 말을 잊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있어.”

“나는 한 게 거의 없거든? 현도 회장님이 일일이 신경 쓴 거지. 저기 정원에 심은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 정 회장님이 선별한 거래. 나중에 감사 인사나 드려.”

“응. 그래야지. 이제 내부를 볼까나?”

총 평수 오백 평의 실내는… 그냥 쩔었다.

거실만 세 개. 침실이 12개. 방마다 욕실은 기본적으로 달려 있어서 15개나 있었다.

압권은 삼면이 모두 통창이라는 점. 서울의 어느 곳이든 다 조망할 수 있었다. 특히 강남의 모든 정경이 발밑에 있었다.

한쪽 섹터에는 영화관과 체력 단련실, 당구대가 놓인 바도 있었고, 50인용 회의실에 메이드 3인의 거주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어떤 호텔도 따라갈 수 없는 최상급 자재로 돈을 처바른 흔적이 역력한 팬트하우스. 좀 과했다.

“이 새끼, 최초 설계와 완전히 다르잖아?”

“그 설계 변경, 네 할아버지가 했거든?”

“……!”

“네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힘들었다고, 자신과는 다른 세상처럼 제일 화려하게 꾸며 주겠노라고, 당신은 얼마 누리지 못하는 삶이지만 너만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시더라.”

또 코가 찡하다. 세심한 부분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직접 자재를 골랐을 것이다. 당신 친아들에게도 해 주지 않았던 지극정성을 베푼 정조영 회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제가 진심으로 할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당신입니다.’

이제 됐다. 내 왕국이 완성되고 있다. 먼 훗날 전 세계의 모든 이가 이 왕국을 향해 경배토록 만들 것이다.

적들은 두려워서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고.

친구들은 가장 든든한 보호자로서 의지할 것이며.

동지들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시 66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오자……. 시혁은 피식 웃고, 박하송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김보성의 눈탱이가 밤탱이로 커져 있었고 옷이 엉망인 게 아닌가. 윌슨도 숨을 거칠게 몰아 쉬고 있었다. 연신 팔을 주무르는 모습이 꽤 고전한 모습이었다.

“두 분, 정리가 다 됐나요?”

“예, 회장님.”

“네, 보스.”

“그럼 된 거죠. 김보성 반장님, 역시 하송이가 사람은 잘 봤네요. 멋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왕창 깨진 처지입니다. 칭찬, 거두어 주십시오.”

“아닙니다. 윌슨이 저토록 힘겨워하는 모습, 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 최정상 티어원급을 상대로 그만큼 했으면 선전한 거죠. 곧 국내에도 경호 회사가 설립될 겁니다. 그때 꼭 참여해 주세요.”

“옙, 회장님.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미스터 윌슨과 다시 한번 붙어 볼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꺾이지 않는 기세의 거친 사내다. 이런 사람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박하송이 멋진 사람을 오백 원으로 꼬셨구나.

계속 팔을 주무르던 윌슨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 왔다.

“보스, 그토록 찾아도 나오지 않던 사람이 한국에서 포착되었습니다.”

“응? 그……?”

“예, 방금 대만 블랙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돕는 게 확실하네. 어디 있죠?”

* * *

백제호텔은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오성급 호텔이다. 삼송그룹의 당당한 계열사이기도 하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들어갈 엄두를 못 낼 정도로 화려하고 비싼 곳이다.

시혁에겐 썩 좋지 않은 호텔로 기억되는 호텔이 백제호텔이었다

시혁은 이 호텔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자룡의 수행 비서를 하면서 시시때때로 이용했던 곳.

여기서 일본 자위대 5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고, 한복 입은 사람의 출입을 막았던 사례가 있었다. 한복은 위험하니까 호텔의 규정상 못 들어옵니다? 실상 EFL(특수 목적 투숙객 층)의 모든 객실에 기모노를 비치하고 있으면서… 친일 행각을 서슴없이 해 왔던 호텔.

백제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건지, 헷갈리는 짓거리를 서슴없이 하던 호텔이었다.

간편한 복장을 한 오십 대의 남자가 호텔 입구를 나서자 도어맨이 인사를 건네 왔다.

“왕 선생님, 산책 나가십니까?”

“예, 수고 많아요.”

“좋은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굿 잡.”

왕 선생이라고 불린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서 호텔 경내를 빠져나왔다.

남자는 동국대학교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향을 꺾어 장충동으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초저녁에 산보 나온 평범한 사람이다.

남자는 장충로를 따라 오래 걸었다. 산책치고는 과한 거리였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도착한 곳은 반트리 클럽의 스파, 여기도 5성급 호텔 사우나였다.

자연스럽게 스파로 들어간 남자는 샤워도 하지 않고 건식 사우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수건을 뒤집어쓴 선객이 한 명 있었다.

“안녕하시오?”

“좀 늦으셨습니다.”

“예, 미안합니다.”

“꼬리는 없겠지요?”

“이십 분 거리를 한 시간 이상 돌아왔습니다.”

“…….”

“서로 입장이 있으니 짧게 끝냅시다. 파일은?”

“창 박사님, 그 가격에는 안 됩니다.”

“갑자기 그러면 곤란한데요…….”

“저는 제 모든 것을 걸었어요. 두 배 주십시오.”

“흠… 너무 과합니다. 백만 달러를 더 얹어 드리죠.”

“창 박사님, 지금 딜 할 시간 있어요? 전부 오백만 달러와 3% 지분, 안 주려면 없던 일로 합시다.”

호텔에서 왕 선생이라고 불렸던 남자의 본래 성은 창. 창 박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맞은편 남자의 제시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불쑥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명은 외국인이다.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에 몸이 장난 아니다. 거기다 온몸에 즐비한 상처들은 살벌한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

“아이고, 시원하다. 역시 사우나의 꽃은 땀 빼는 거지. 안 그래, 윌슨?”

“예, 보스. 최고죠.”

영어로 대화하는 두 사람.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을 향해 외국인이 ‘보스’라고 불러? 조직인가?

대화를 나누던 창 박사와 수건을 뒤집어쓴 남자, 둘은 조용히 일어났다. 이미 대화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둘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모린 창 박사님, 땀 좀 더 빼셔야죠. 들어오자마자 바로 나가면 효과가 없어요.”

“……!”

“……!”

“그리고 당신, 오정식 소장… 오래 기다리느라 힘들었겠지만 좀 더 참아.”

뜨거운 사우나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여기 비싼 곳이네. 돈값은 뽑고 가야지, 안 그래요?”

“당신, 누구야?”

“이런이런, 나는 그래도 나이를 생각해서 존대를 해 줬는데, 창 박사가 대뜸 반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누구시오?”

“걱정 마, 정부 기관원은 아니니까.”

“…그럼 혹시?”

“삼송도 아냐.”

반말한다고 싸대기를 날리더니, 이젠 거꾸로 거침없이 반말을 던지는 청년. 시혁이었다.

“나는 나가겠소. 여기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어.”

“오호! 자신 있으면… 오정식, 당 48세, 삼송전자 연구소장, 펜실베니아 대학을 졸업한 반도체 권위자,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서 창 박사와 같이 10년간 근무… 맞지?”

“그게 무슨 상관이요?”

“그래, 우연일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당신의 여동생 계좌에 입금된 오십만 달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당신 매제가 여기서 십만 달러를 꺼내 쓴 것 때문에 집안 싸움까지 했던데? 매제가 당시 출동한 경찰관에게 악을 썼다며? 자기는 250만 달러나 벌 건데 겨우 이 정도 돈 쓴 거 가지고 지랄한다고 말이야.”

“…….”

“어디서 250만 달러가 생길까나? 당신 연봉을 다 해 봐야 고작 25만 달러, 물론 큰 돈인데, 십 년은 모아야 되는 거 아닌가?”

“…….”

“내기할까? 밖의 당신 사물함을 뒤지면 삼송의 반도체 장비 정보가 있다? 없다? 내 손목을 걸 수 있어.”

이젠 머리에 둘러쓴 수건이 흘러내린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정식 소장. 그 옆의 창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보다 누구요? 당신.”

“오! 이제야 협상을 하려는 자세가 되었네. 두 분, 우리 대충 씻고 차 한잔하실까?”

* * *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다.

힘으로? 윌슨의 살벌한 몸을 봤는데 무슨 재주로? 또 저 보스라고 불린 청년의 몸도 장난이 아니었다. 배 나온 연구자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거기다 청년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삼송에서 알게 되면 어차피 끝장인 것이다.

“괴롭겠지. 대만 정부가 앞장서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만들었는데 경험이 없어서 고민일 거야. 여기에 다년간 공장을 돌리고 있는 삼송전자 시스템에 대한 정보는 꼭 필요했겠지.”

“…부인하지 않겠소.”

“그래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 오 소장에게 손을 뻗은 것이고… 여기까지는 이해를 한다니까.”

“…….”

“그런데 말이야. 이해를 한다고 해서 용인한다는 말은 아니거든.”

“뭘 원하시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소.”

“입 닥쳐! 당장 국정원 요원 불러서 처넣기 전에.”

제길,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돈은 훨씬 더 들겠지만 당신이 근무하던 텍사스 인스투르먼츠사에 공식적으로 요청해. 이따위 양아치 같은 놈에게 뒷돈 주면서 설계도 빼돌리지 말고.”

“흐음…….”

“이미 당신의 공작은 뽀록났어. 보안이 깨진 공작은 한 치 가치도 없는 법, 우선 내가 용인하지 않아.”

“알겠소, 아무 대가도 없이 미리 경고해 준 귀하에게 감사드립니다.”

“하하하하! 창 박사, 너무 순진한 거 아냐? 왜 내가 아무 대가도 없이 이 문제를 덮을 거라고 생각하셔? 바보야?”

“……!”

“오 소장, 당신이 미리 받은 계약금 오십만 달러는 그대로 써도 좋아. 하지만, 삼송은 그만 둬. 내가 매국노를 두고 볼 만큼 썩은 놈은 아니거든.”

“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나를 협박하는 거요?”

“등신, 지랄도 가지가지하네. 최고 25년동안 감옥에서 썩을래? 아니면 아예 여기서 모가지를 꺾어 줄까? 박쥐 같은 새끼야.”

“…….”

“윌슨, 이 인간 치워! 냄새가 진동해서 참을 수 없네.”

진짜 갈팡질팡 감을 못 잡을 종자다, 목적이 뭐냐?

“자! 창 박사, 이제부터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쇼핑해 볼까?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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