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71화 (71/150)

71화 방송사 쇼핑

성남공항에 착륙한 미군 군용기에서 두 명의 민간인이 내렸다. 대충 봐도 군 관계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길래, 민간인이 좌석도 불편한 군 수송기를 타고 와야 했을까?

이들은 활주로까지 마중 나온 사령관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군 차량으로 공항을 떠났다. 그런 이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구 삼성동 K 타워.

아직 어수선하다. 마무리 공사로 밤낮을 잊고 작업 중이라 정신이 없었다. 로비에서 러셀 홀스타인 기자가 합류했다.

“이쪽으로 타시죠. 66층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누구시죠?”

“네, 저는 김시혁 회장의 파트너 박하송이라고 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멋진 건물이군요. 아시아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맨해튼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죠. 그래도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층고는 차치하고 너무 미래지향적이에요. 지금 시대에 이런 빌딩 디자인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곧 만나실 마이다스 킴이 직접 스케치를 했습니다. 믿기 힘들겠지만요.”

“설계를 다 했다는 말이오?”

“아닙니다. 설계는 전문 팀이 맡았고, 전체 외형에 대한 그림을 그렸죠. 처음에는 과연 될까… 싶었는데, 되네요? 이렇게 멋지게 말입니다.”

“언빌리버블! 나는 원래 디자인 계열 공부를 했습니다. 기자로 입문한 것도 그쪽이었지요. 비록 지금은 방송국 데스크가 되었지만 말이에요.”

그들에게 K 타워는 이 세상 빌딩이 아니었다. 마치 우주선 같기도 하고, 동양의 용이 승천하는 것 같기도 한… 실로 오묘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빌딩을 마이다스 킴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더 궁금해지는 버트 라인하트였다.

“반갑습니다, 마이다스 킴입니다.”

“CMM 사장 버트 라인하트입니다. 이쪽은 CFO 마리 콜빈입니다. 한국의 러셀에게 연락받고 너무 놀랐습니다. 민간 항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군 수송기를 타고 왔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한편으론 CMM의 현 상황이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반증으로 보입니다. 그런가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줘서 감사하군요.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마이다스 킴.”

상당히 솔직하다. 갑자기 훅 찔러 본 말에 오히려 한 발 더 무장 해제를 하고 덤빈다. 옷을 여미는 것보다 발가벗는 상대가 더 까다로운 법이다.

“24시간 뉴스만 줄곧 틀겠다. 좋은 발상이에요. 하지만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수많은 뉴스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 기본입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좋지 않습니다.”

“창립한 지 벌써 9년이 지났어요. 지금도 헤매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이 정도면 귀사의 시도가 실패한 것 아닌가요?”

“마이다스 킴,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설정한 좌표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의 역량이 부족했을 뿐이에요. 반드시 24시간 뉴스 전문 방송을 시청하는 그런 세상이 옵니다.”

음, 예상외의 반응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패했지만 우리의 좌표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건 확고한 신념이다. 사장인 버트 라인하트 혼자의 고집이 아니었다. 동석한 CFO(최고 재무 책임자)와 시혁을 찾아 서울까지 쫓아온 러셀의 눈빛에서 느껴진다.

그들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얼마가 있으면, 그 시기가 도래할 때까지 버틸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CFO께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마이다스 킴. 솔직히 다음 달 취재비가 바닥 났습니다. 일반 직원들은 참을 수 있어요. 그러나 현장 취재 기자는 우리 CMM의 전부입니다. 이들의 활동비만큼은 멈출 수 없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래서요?”

“매달 삼백만 달러를 벌어야 손익 분기점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광고비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서 매달 백만 달러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흠… 돈을 벌기는커녕 매달 33%의 손실을 보는 방송사였군요.”

“네, 아직 인지도가 너무 낮고, 또 24시간 뉴스만 나오는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의 인식도 부정적입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에요?”

후와! 이 사람들, 강골 아닌 이가 없다. 하물며 자금을 담당하는 CFO까지 아예 홀랑 벗고 덤빈다. 아름다운 금발을 찰랑이는 마리 콜빈 CFO.

“킴, 저도 기자 출신입니다. 지금 사람이 없어 제가 CFO를 맡고 있지만, 저는 죽어도 기자예요. 진실을 외면하는 기자는 쓰레기보다 더 악취 나는 법입니다.”

빙고! 우리나라에 그런 자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그런 자들을 몽땅 싸잡아 ‘기레기’라고 한답니다, 최소한 당신들은 아닌 것 같지만.

“킴, 우리가 이렇게 군 수송기를 타고 온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론 투자에 대한 목마름이겠으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 알잖습니까? 어떤 소스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 주세요.”

“소스?”

“예, 우리 CMM이 일류 방송국으로 점프하는 방법, 그것도 단숨에… 이건 뭔가 대단한 소스라고 판단합니다.”

“나는 방법이라고 말했는데요?”

“킴, 시간을 단축합시다. 방송사가 점프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을 놀라게 할 특종 소스밖에 없습니다.”

호오… 역시 기자다. 촉은 어떤 동물보다 뛰어나다. 완벽한 돌직구.

“여기 세 분은 믿을 만한가요?”

“킴, 같이 배석한 하송 박은 믿을 수 있습니까?”

“……!”

“킴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니까 배석시켰듯이 우리는 모두 진짜 기자요. 장사치가 아니란 말이오.”

씨… 오늘 왠지 말빨에서 밀린다.

가식적으로 나오면 얼마든지 회피하고 한 방 먹여 줄 수 있는데, 이렇게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진심에는 약하다. 시혁의 약점이다.

정에는 정으로, 진심에는 진심으로. 하지만 악으로 나오거나 이익을 지키려는 상대에게는 철저한 빌런으로……

지금은.

항복하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게 이들의 활활 타는 열정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제가 졌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계 역사가 뒤집어질… 소위 특급 소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그로부터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행 누구도 커피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혁의 설명이 끝났지만,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듯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사장 버트였다.

“킴, 우선 이 내용을 미국 정부도 알고 있습니까?”

“전혀. 낌새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킴은 어떻게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까?”

“노코멘트, 절대 밝힐 수 없습니다.”

“…인정! 밝혀지는 순간 그 정보를 준 사람은 사지가 찢겨 죽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함구하시길 권고합니다.”

정보의 출처? 미래에서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기자가 더 이상 정보원을 캐길 포기한다? 거꾸로 정보원을 끝까지 보호하라며 권고한다?

감동이다. 이들은 정보라면 영혼을 파는 미친 기자들이 아니었다. 참 기자라면 이래야 한다. 하지만 시혁의 정보는 너무너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킴의 복안을 듣고 싶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이다스 킴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이런 핵폭탄을 흘리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보며 감탄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사에 목마른 광기 어린 기자가 아니라 인간애를 먼저 생각하는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솔직히 살면서 진짜 기자를 본 적이 없기에 더 그렇습니다.”

“…….”

“역사의 큰 줄기는 일개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엄청난 쓰나미를 어찌 개미 둑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동의합니다.”

“제가 CMM이라면 실시간 생중계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바꾸겠습니다. 이게 단숨에 시청자의 눈을 CMM에 고정시키는 방법입니다.”

“뉴스는 원래 속보가 생명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라도 미리 대본을 만듭니다. 거를 건 거르고, 시청자의 입장을 고려합니다. 방송 윤리란 그런 겁니다.”

“버트 사장님, 시청자의 권리를 왜 당신이 정합니까? 시청자의 눈높이를 왜 당신이 미리 예단합니까? 뉴스는 현장에서 날것 그대로를 내보내면 책임을 다한 겁니다. 나머지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에요.”

“날것 그대로를 내보내자?”

“그렇죠, 그것도 생방송으로.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난무하고, 시신이 쌓이고,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이 죽어 가는 그런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겁니다.”

“너무 잔인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뿌리면 어쩌죠?”

“전쟁의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사람들은 모릅니다. 피부에 와 닫지 않아요. 그러나 한 장의 르포 사진, 방송 화면 한 번에 치를 떨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전쟁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알게 돼요.”

“오우! 지저스!”

“지금처럼 앵커가 리포터를 호출해서 정해진 대본대로 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리 체크 포인트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만 틀어 주는 겁니다. 해설이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 전장의 침묵조차 시청자의 침샘을 자극할 요소니까 말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묘하게 설득됩니다. 킴, 당신은 정말 천재가… 맞군요.”

사장 버트와 러셀 그리고 CFO 마리 콜빈마저 머리에 두 손을 얹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자! 이젠 지금 당장 발등의 불을 꺼 볼까요?”

“예?”

“돈 말입니다. 당장 바닥 난 취재비와 일반 직원들의 급여와 복리 후생비, 뛰어난 취재 장비와 카메라 구입비 그리고 현장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갈 진짜 기자들을 더 모집하려면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마리 콜빈.”

“한 달에 이백만 달러는 더 있어야 합니다. 물론, 킴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단숨에 광고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게 뻔하니 일 년간 더 버틸 자금만 계산한 겁니다. 결국 이천 오백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오천만 달러를 드리죠.”

“네, 오천만… 예? 컥컥! 뭐라고요?”

“참! 그런 험악한 현장으로 들어가는 기자들이 부상당하거나, 혹여 사망이라도 할 경우를 생각해서 별도의 기금으로 이천만 달러를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킴, 우리는 금융사가 아닙니다. 방송사라고요.”

“예, 알아요. 24시간 뉴스 전문 방송사 CMM.”

“당신… 미쳤군요.”

응, 아냐. 지극히 정상이거든. 지금은 당신들이 존재감도 미약한 방송사지만, 방송업계의 공룡이 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당신들의 뉴스를 인용하는 시대가 곧 온다고.

그런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데, 칠천만 달러는 절대 비싼 게 아냐. 거저 먹는 거지. 10% 지분만 가져도 완전 땡큐야.

“킴,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지분은 한계가 있어요. 49%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

“미안합니다. 우리 창업자들과 경영진이 가진 모든 지분을 다 해 봐야 그게 전부거든요.”

지랄… 나는 10%만해도 되는데, 49%? 이때 중요한 것은 뭐?

표정 관리다.

“험, 험. 아쉽군요. 그래도 적지 않은 지분을 내놓으시는 여러분을 위해 삼천만 달러를 보상 차원에서 더 내놓겠습니다. 이제야 딱 일억 달러가 맞춰지네요.”

“왜? 이렇게 과도한 자금을 주는지, 도통…….”

“여러분은 기잡니다. 버트 사장님도 그렇고 여기 CFO 마리 여사님도 그래요. 저를 컨텍한 러셀은 두 말할 필요가 없죠. 저는 진정한 기자들을 존경합니다. 그냥 부자의 여유라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시혁은 대화를 하던 도중 한 사람에 대한 디테일을 기억해 냈었다.

CFO 마리 콜빈,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눈물 나는 철혈의 기자.

그녀는 먼 훗날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다가 한쪽 눈을 잃게 된다. 검은 안대를 한 채 해적 같지 않느냐고 여유를 보였던 당찬 여성이었다.

-저는 전쟁터를 증오합니다. 하지만 내 눈으로 봐야만 해요.

그녀는 뜻을 꺾지 않았다. 미리 콜빈은 내전이 극심한 시리아 반군 지역으로 또 들어갔다.

CMM 본사의 앵커가 현장 상황이 어떻냐고 묻자 ‘최악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다.’라는 인터뷰를 끝으로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 겨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부군의 로켓포 공격을 받은 것이다.

‘걱정 말아요. 그런 불행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마리 기자. 내가 당신 보스가 됐으니까요.’

49%를 쓸어 담는 것은 덤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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