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72화 (72/150)

72화 단 두 명만 타는 항공기

“뭔가? 특별히 보고할 사항이란 게.”

“프레지던트, 한국에 있는 정책 특보 이야깁니다.”

“킴?”

“예, 최근에 특보가…….”

“잠깐, 킴의 이야기라면… 비서관, 다음 일정이 뭐지?”

“펠로시 하원 의장과 미팅이 있습니다. 이십 분 후에 시작됩니다.”

“그래? 그거 미안하다 말하고 부통령 보내게.”

“…….”

“뭐 하나? 킴의 이야기라면 조금 자세히 들을 필요가 있지. 이십 분 안에 끝나지 못할 수 있으니, 아예 펠로시 의장에게 양해를 구하라니까!”

비서관도 난감한 표정이고, CIA 국장은 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총애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괜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보고했다간 똥물을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백 프로 그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 이제 차분하게 들어 보자고. 킴이 왜?”

“아… 별건 아닙니다. 최근 뉴스 채널 CMM의 절대 지분을 인수한 모양입니다.”

“모양이다? 언제부터 CIA가 불확실한 가정을 전제로 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나?”

“…저, 그게 아니라 CMM 지분 49%를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그 사람은 원래 투자자였잖아?”

“…예, 문제는 미합중국법에 의하면 미국 국적을 가져야만 공중파 방송사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를 빌미로 민주당 쪽에서 시비를 걸어올까 봐 걱정됩니다.”

“어떤 놈이? 누가 우리 킴을 건드린단 말이야?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의원이 누구야?”

“아직… 확실히 나서는 의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는 게 어떻겠냐는 뜻입니다, 프레지던트.”

“49%면 소유주도 아니네. 51%를 가진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킴이 비록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합중국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 신분일세. 정식으로 임명된 차관급이야.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

“요즘 CIA가 많이 한가한 모양이야. 해외 공작하기도 바쁠 텐데, 킴 차관의 뒤나 캐고 다니고, 응?”

“…죄송합니다. 프레지던트께서 궁금해하실까 봐 보고드린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온 김에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동향은 어떤지 말해 보게.”

“그러잖아도 보고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금 심상찮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동안 이란 견제용으로 사담과 친하게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8년간 이란과 전쟁을 하면서 국방력이 너무 비대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 세계 4위의 군사대국이 되었죠.”

“다 알고 있는 이야기 빼고 핵심만 이야기하게. 킴의 동향도 아닌데 길게 듣고 싶지 않아.”

이 지독한 편애. 킴의 행동은 모두 맞고, 나머지 상황들은 귀찮다는 건가?

“이란과 전쟁이 끝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와 함께 엄청난 양의 석유 증산에 몰두하는 중입니다.”

“또 길어지는군.”

“예, 프레지던트, 짧게 마치겠습니다. 우리도 서서히 이라크와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게 저희 국의 입장입니다.”

“알았네. 국무부 장관에게 일러 놓지. 그만 가 보게.”

허탈하게 백악관을 나서는 국장은 기가 막혔다.

항간에 떠도는 정치판 소문이 맞았던 것이다. 없지만 항상 있는 사람, 마음먹으면 누구의 목이든 날릴 수 있는 사람,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

‘제기랄, 다시는 마이다스 킴이 있는 한국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 아이고, 무서워라.’

[킴, 뭐 하나?]

“안녕하십니까? 프레지던트.”

[응, 다 좋아. 자네가 옆에 없다는 것 하나 빼고.]

잠시 가슴이 먹먹하다. 부시 대통령의 지독한 사랑,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솔직히 불가근불가원이 아니던가?

차라리 이라크 사태를 알려야 할까?

아니다. 그런다고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일어날 일은 어떤 식으로든 터지고 만다.

그리고.

가장 큰 배팅을 해 둔 입장에서 과연 사전에 이라크의 행동을 자제하면… 시혁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종잣돈을 밀어준 현도의 정조영 회장도 같이 망한다. 연대 보증까지 서지 않았나?

K 글로벌 USA의 지분이야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다고 치자. 일본의 손창의 사장의 소프트파워 지분 51%도 넘어간다.

어쩌면,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핑계일 수도 있다. 시혁 자신의 존재가 이미 역사를 비틀고 있지 않는가? 자신의 회귀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는 게 그 증거일 수 있다. 핑계다.

부시의 한없는 애정에 대한 배신일까? 거짓말로 없는 일을 꾸며 내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알고 있는 미래의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을 뿐 아닐까?

‘아직은 모르겠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킴,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 하나?]

“아! 죄송합니다. 프레지던트, 제 예상에 의하면 올해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응? 동독 서기장 호네커 자식, 장벽이 앞으로도 100년은 굳건하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네만?]

“아닙니다. 독일은 미합중국에게 중요한 거점입니다. 미리 잘 살펴서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쯤으로 판단하나?]

“10월 초로 보고 있습니다.”

[흠… 알겠네. 국무부에 별도의 TF 팀을 만들어야겠군.]

“네. 그리고 소련 연방도 오래가지 못 합니다. 91년에 갑작스럽게 무너질 것으로 보입니다. 바야흐로 냉전이 종식되는 거죠.”

[…그건 진짜 심각한 사안일세. 자네의 예언이 맞다면 세계사가 통째로 뒤집어지는 일이야. 이건 국무부 차원이 아니라 국방과 경제에까지 파급되는 후폭풍이 엄청날 거라고. 1991년이라… 내 임기 중에 이런 사건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프레지던트, 이건 예언이 아닙니다. 필히 벌어질 일, 미리미리 준비하면 오히려 미합중국은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시혁을 깊게 접한 사람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여 왔다. 정조영 회장이 그랬고, 부시 대통령이 그렇다.

말은 하지 않지만, 공사홍 삼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시혁에게 알지 못하는 능력,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적 능력이 있다고. 그렇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 도저히 이성적인 계산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몇 번 겪은 사람들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킴, 잠시 와 줄 수 있나?]

“네, 대충 급한 일들을 마쳤습니다. 무슨 다른 일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 자네를 보고 싶다고 매일 졸라서 말이지.]

“프레지던트를 압박할 수 있는 사람… 도대체 누굽니까?”

[있어, 그런 사람이. 루퍼트 마독, 혹시 들어 봤나?]

“……!”

알죠. 알고 말고요. 어찌 그 기인을, 호주와 영국에 이어 미국의 언론을 장악한 사람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들어 본 모양이군. 내 선거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일세. 원래 공화당 빠였고 우리 부시 가문과는 특별히 깊은 관계야.]

“프레지던트, 가장 빠른 항공편을 타겠습니다. 항상 아껴 주시는데 어찌 부름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 * *

보잉 747-400에는 보통 380명 정도를 태울 수 있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의 배열에 따라 약간 증감이 있기는 하지만 통상 그래 왔었다.

코리아나 항공의 노련한 기장은 연신 부기장에게 조종간을 맡기고 일등석을 들락거렸다.

남자 승무원 한 명과 여자 스튜어디스 15명도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포공항발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 공항행 항공기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승객이 딱 두 명이기 때문이었다. 윌슨과 시혁, 단둘.

“특보님,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네, 편안합니다. 이제 그만 오셔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

“제가 너무 급해서 전세기를 부탁한 것이 기장님과 승무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군요.”

“아, 아, 아닙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근데 저희 두 사람을 케어하는 데 저렇게 많은 승무원이 탑승할 필요가 있나요?”

“그건 워싱턴에서 돌아올 때 탑승할 고객들 때문에 어차피 같이 가야 해서 그렇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제 평생 처음입니다. 두 분의 고객을 태우고 장거리 비행이라니, 꿈만 같습니다.”

“회사에서도 많이 당황한 것 같던데요?”

“그럼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청와대에서 전화 오죠. 미국 대사관에서도 연신 전화가 왔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겁니다.”

“저도 이런 비싼 비행기 처음 타 봅니다. 하하하.”

“네. 죄송스럽습니다. 너무 큰 금액을 부담시켜서.”

“아뇨.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건 시장 생리, 당연히 지급해야죠.”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출발하는 항공편은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환승한 후 워싱턴으로 가는 코스밖에 없었다.

시혁이 처음 코리아나 항공으로 전화해 항공기를 통째로 전세내겠다고 하자, 안내원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었다.

-고객님, 이 전화는 녹음되고 있습니다. 장난은 삼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아… 방법을 찾다가 결국 청와대에 도움을 요청하고 미국 대사관에도 협조를 구해야 했다. 임시 편성하는 특별 전세기를 띄우려면.

문제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는 것.

도대체 비용은 얼마를 받아야 할지, 서슬 퍼런 청와대의 요청이니 그냥 줘야 할지 고민하는 항공사에게 시혁은 만석 요금을 다 지불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시간이 더 중요했다.

미친 짓 같지만, 시혁은 이렇게라도 부시 대통령이 보여 준 진심에 보답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등석을 담당하는 스튜어디스들은 얼굴을 뽀얗게 붉힌 채 들락거렸다.

-봤어? 그 사람 맞지?

-응, 틀림없어. 만점 수집가.

-원래 신문에서 고아라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숨겨진 아들이었던 거야?

-아냐, 기장님이 하는 말을 훔쳐 들었는데 미국 대통령 특별 보좌역? 차관에 해당하는 직위에 있다던데?

-멋있다. 뇌색남에 길고 늘씬한 다리, 거기다 저 나이에 미국 차관급? 대통령 특별 보좌역?

-누군지 저 품에 자빠지기만 하면 바로 신데렐라 되는 건데… 나 어때?

-너, 거울 안 보니?

-죽어, 기집애야. 너도 도긴개긴 이거든?

-이제 우리 나이로 22살, 에휴 우린 안 되겠구나. 다 누나다, 폭삭 늙은 누나.

-차라리 저 수행원 남자는 어때?

-오늘 우리 날 잡자, 저 살벌한 표정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벙어린가? 한마디를 안 한다. 진짜 무섭다.

씨… 왜 신체가 활성화되면서 귀까지 이렇게 밝아졌는지, 괴롭네. 저기요, 다 들리거든요.

잠도 오지 않는다. 너무 자주 와서 사소한 것을 챙겨 주려고 하는 누나들 등쌀에.

왜 루퍼트 마독이 보고 싶어 할까? 콕 찍어서 나를?

모를 일이다.

* * *

워싱턴 D.C 덜레스 국제공항도 난리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SS(비밀경호국) 요원들이 공항을 점거하더니, 예정에 없던 코리아나의 전세기가 내릴 테니 그동안 다른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도록 지시를 하는 게 아닌가?

어쩌라고?

백악관의 경호와 보안을 담당하는 SS는 자체적으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까라면 까야지.

그렇게 덜레스 공항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전세기가 내려 앉았다. 단 두 명의 승객을 위해서.

동시간대의 모든 비행기가 이륙도 못 한 채 대기해야 했고, 공중을 선회하는 비행기들의 악쓰는 소리에 관제사들이 시달려야 했었다.

“어서 오십시오, 특보님.”

“잘 있었어요? 웨인 마샬 패트릭 요원.”

“껄껄걸, 그냥 웨인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전에 한국 선발대에게 꼬장 부린 건, 제발 잊어 주세요.”

“내가 워낙 뒤끝이 강해서 말이죠. 다른 건 몰라도 내 애마 롤스로이스를 몇 번이나 빌려줬는데, 밥도 안 사고 말이에요.”

“이젠 감히 그런 부탁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쩝.”

“이제 윌슨이 차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 안 줄걸요?”

그때 들리는 묵직한 소리.

“웨인 하사, 헛소리 지껄이면 모가지를 꺾어 주마.”

“팀장, 저 벌써 꼬리 말았다니까. 무섭게 왜 그래요?”

텍사스 상남자 웨인도 데브그루 시절 윌슨의 팀원이었던 것이다.

“웨인, 프레지던트는 어디 계시죠?”

마음의 부담을 덜고 만나 보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믿자.

‘어차피 빌런이 되기로 작정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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