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76화 (76/150)

76화 위스키 마시는 법

세 곳에서 같은 내용으로 각기 다른 논의가 벌어졌다.

이라크 대통령궁과 엑슨 모빌 대회의실 그리고 백악관.

“크크크, 블러핑이야. 진짜라면 그 자리에서 인정하지 않았을 거야.”

“각하, 그는 거물입니다. 얄팍한 속임수를 쓸 친구가 아닙니다.”

“그를 믿나?”

“예, 그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각하, 미국은 우리 공화국에게 총부리를 겨눌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허튼소리 하지 마, 자그마치 100만 대군이다. 공화국 수비대도 15만이야. 8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라크 공화국의 저력을 무시하는 어떤 말도 용인할 수 없어.”

“각하, 쿠웨이트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미국이라는 늑대의 이빨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멈춰 주십시오.”

“허 참… 완전히 세뇌되었군. 이것 봐! 정보부의 보고서야.”

‘툭’ 던져진 몇 장의 파일… 보나 마나다.

대통령의 개로 전락한 정보부가 입맛에 맞춰 작성한 내용일 터, 이런 쓰레기를 믿다니.

이미 대통령은 마음을 굳힌 것이다. 어떤 말로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각하, 왜 저를 보내신 겁니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함 아니었습니까?”

“확신을 위해서였지. 마이다스 킴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려고.”

“그렇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좀 더 면밀히 살피시고 결정을…….”

“그러더라며? 미국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예.”

“떨고 있는 거야. 지금 미국은 소련 연방과 동독 문제로 똥오줌을 가릴 처지가 아냐. 미국의 주적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야. 중동까지 개입할 여력이 없단 말이지.”

“아닙니다. 그건 오판입니다.”

“미국이 중동을 중요시 여기는 건 딱 한 가지, 석유야. 쿠웨이트를 점령해도 엑슨 모빌에게 더 많은 석유를 주면 돼. 오히려 더 잘됐다고 생각할걸? 양키들은 먹이만 많이 주면 헤벌쭉한다.”

“각하!”

“쿠웨이트를 치고, 그다음은 오만… 마지막으로 사우디까지 영토를 넓히면 우리 공화국은 대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나?”

“아아아… 이 일을 어찌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지금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 공화국에 공을 들이고 있어. 거기다 우리를 칠 경우, 우리도 가만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이스라엘로 미사일이 날아가게 될 테고, 그건 미국에게 생각도 하기 싫은 무서운 악몽.”

“……!”

“독종 이스라엘이 즉각 반격을 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럼 바로 전 아랍국이 똘똘 뭉쳐 이스라엘과 전선을 형성하겠지. 미국인들? 방법이 있나? 크크크.”

“각하, 그동안 엄청난 공화국 국민들이 죽어 나갑니다.”

“전쟁이 희생 없이 된다던가?”

“각하, 제발…….”

“고생했어. 즉시 오마르에게 총리를 넘겨. 당분간 좀 쉬게.”

사담 후세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무함마드 총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통령궁을 나섰다.

이미 역사의 수레바퀴는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발버둥친다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나는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던 것이야.

* * *

텍사스주 댈러스 서쪽 어빙에는 미국 제1위를 차지한 기업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텍사스 사람들의 자부심,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상표.

엑슨 모빌이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설적인 사업가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이 나온다. 전성기 때 미국 석유 생산량의 90%를 독점했던 위대한 기업.

록펠러는 본사를 뉴욕으로 이전하고 법인 주소는 법이 말랑말랑한 뉴저지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로 인해 워싱턴의 정치인들에게 박쥐로 찍히면서 상황이 바뀌고 말았다.

1890년에 셔먼 반독점법이 만들어진 이유도 스탠더드 오일 때문이었다. 결국 1911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반독점법 시행으로 인해 34개 회사로 분할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비운의 공룡, 스탠더드 오일.

여기서 뉴저지주의 지주회사가 엑슨으로, 뉴욕의 스탠더드 오일은 모빌로 사명을 바꾸고 독자갱생을 모색했었다. 실제 세븐시스터즈의 거의 대부분도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스탠더드 오일에서 파생된 회사들이었다.

쉐브론도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이 이름을 바꾼 것이고, 영국의 BP나 로열 더치 쉘도 스탠더드 오일의 나머지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면서 메이저로 진입했다.

실로 석유업계의 전설이 스텐더드 오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메이저 석유업계가 진동하는 합병이 발생했다. 쥬저지의 엑슨과 뉴욕의 모빌이 한 몸이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공룡급 회사 둘이 합쳤으니, 바로 이 회사는 무조건 미국에서 1등을 먹는 회사로 등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엑슨 모빌의 대회의실. 총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 테이블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회의실에 달랑 일곱 명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더 놀라웠다.

이미 회의실 밖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릴 수 없도록 봉쇄되어 있었다. 한결같이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인물들이 노골적으로 총기를 꺼내 들고 바글거렸다.

괜히 길을 잃고 접근했다간 온전히 시신을 보전하지 못할 만큼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다.

“헨리 회장, 차라리 위스키를 병째 주시오. 입이 써서 더 이상 커피는 못 마시겠어.”

“나도.”

“헤로인은 없나? 도저히 제정신으로 들을 수 없네.”

“제기랄, 그놈의 시가 좀 그만 빨아. 목이 따가워 견딜 수 없다고.”

“시끄러! 당신도 벌써 한 갑은 피웠거든?”

다들 중구난방으로 떠들지만, 정작 회의를 소집한 헨리 제리코 회장은 말이 없었다. 이미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날아 간 것이다.

그런 헨리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건 헨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다 같이 죽는다는 공포가 회의실을 감싸고 있었다.

죽는다, 모두.

이윽고 탁자를 거칠게 내려친 BP의 실질 회장이자 영국 법인장 리처드 레드포드가 크게 외쳤다.

“자! 자! 진정하고 대책을 논의합시다. 우선 각기 가지고 있는 정보를 솔직히 공개하시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침묵에 휩싸인 회의실에서 크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리는 헨리 제리코. 정상은 아니다.

“우리는 눈앞의 돈에 눈이 멀어 악마와 겜블을 벌인 거야. 악마의 삼지창이 내 심장을 찌르고, 나중에는 뇌수까지 파먹을 거야. 큭큭큭.”

“이봐요! 헨리, 당신이 며칠 전 우리 모두에게 사인을 하도록 종용하지 않았소?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X발… 그래서 떳떳해? 그런다고 뭐가 바뀌나? 어차피 우린 모두 죽어, 죽는다고…….”

“헨리 회장의 연락을 받고 나도 이라크 군부에 심어 둔 사람에게 줄을 댔습니다. 이상한 정도가 아닙니다. 거의 실전을 염두에 둔 훈련을 계속하고 있어요.”

“소련에서 엄청난 양의 탄약을 사들였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지금도 컨테이너마다 미사일이 산더미처럼 선적되는 상황입니다.”

“화약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러다가 심지에 불이 붙어 버리면… 그땐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전쟁이라고요.”

“제길, 저기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면 우리야 박수를 치겠지만 중동에서, 그것도 이라크가 쿠웨이트 국경을 넘는 순간 유가가 천정을 뚫을 겁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뇨? 이걸 어떻게 수습하느냐, 이게 관건이란 말이오.”

“대책이 무대책, 사담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유일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시장의 좌판처럼 서로 소리치는 바람에 아무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패닉에 휩싸여 버렸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삽시간에 전염된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줘야 할 넘버 원, 엑슨 모빌의 헨리 제리코가 저 모양이니, 다들 그냥 악만 쓰고 있는 것이다.

“잠깐! 모두 진정하고 한 사람씩 발언합시다.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맞소, 나부터 하겠습니다. 전쟁이 나건, 지구가 멸망하건 우리의 관심사는 유가가 어디까지 폭등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마이다스 킴과 맺은 계약의 후폭풍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 주시오.”

“마이다스 킴, 그놈은 미친놈이 아니었어. 처음부터 치밀하게 설계를 하고 접근한 거야. 그런 놈 아가리에 우리 경영권까지 떠다 바친 꼴이라고.”

“변호사들도 방법이 없답니다. 무조건 각 사당 5억 배럴을 주던가, 배상금 10배를 물던가… 이도 저도 안 되면 51% 주권을 넘겨야 합니다.”

“줄 수는 있나요?”

“허허허, 애초에 불가능한 조건들로 승부를 걸어왔어요. 그만한 물량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지금부터라도 비축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더 빨리 망하겠지. 기존 거래처들이 가만있겠소?”

“…….”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올무에 목이 걸렸어. 발이라면 한쪽을 자르고 탈출하련만 완벽히 목에 걸려 버렸어. 발버둥칠수록 더 조여와 목을 자를 거야. 허허허.”

“해결할 길은 딱 하나뿐이야.”

장내의 모든 눈길이 헨리 제리코에게 쏠렸다. 멍하니 넋을 잃고 있던 헨리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래! 이 상황을 주도한 것도 헨리고 마이다스 킴을 만나 이라크의 의도를 파악한 것도 헨리다. 그래서 모두에게 설명하고 회의를 소집한 것 아닌가?

당연히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겠지… 헨리라면.

침만 꼴깍 삼키던 회장들은 헨리 제리코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지금, 그가 유일한 희망이다.

“그가 계약할 때 사용한 K 미르 컴퍼니는 버진 아일랜드에 있는 회사야. 사무실은 뉴욕에 두었지만. 그 회사의 지분 100%가 킴의 소유…….”

“…….”

“탐욕스러운 돼지 같은 놈,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놈, 우리의 모든 것을 삼키려는 악마… 그놈만 없어지면 돼, 연기처럼 사라지면 되는 거야.”

* * *

마지막으로 백악관. 아직까지 조용하기만 하다. 시혁은 오벌 오피스 문을 열기 전까지 고민해야만 했다.

이미 화살은 쏘아졌고, 물도 엎질러 졌다. 남은 건 빨리 커밍아웃하고 속 편하게 망하는 것. 그래도 친구는 남는다.

마음속에 가장 큰 아픔과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은 현도그룹을 통째로 말아먹게 되었다는 점. 이건 어떤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시에 대한 신의는 챙기면서 정조영 회장에 대한 무한 신뢰는 버리게 되는 결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죽어서도 이 빚을 갚지 못한다.

조국 대한민국에도 암울한 미래를 만든 셈이다.

두렵고 떨린다. 부시를 어떻게 설득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과연 부시까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섣부르게 미래 역사에 개입해서 대박을 만들려 했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목적에 충실할 것을… 또 심마를 이겨 내지 못하고 일찍 비밀을 까 버리고 말았다.

아직 완전히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탓이다. 설익은 것이다.

“왜 그래? 안색이 어둡잖아? 건강검진이라도 받아 봐야 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프레지던트. 생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껄껄껄, 무슨 고민인지 들어 볼까? 자네를 난처하게 만들 일이 있단 것이 즐겁구먼.”

“…….”

“어? 진짜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자네의 심각한 표정은 처음 봐.”

“술 한잔 주시겠습니까?”

“그래, 답답할 때는 위스키가 최고지. 그러나 독한 위스키는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보다 토닉워터에 타서 먹는 게 좋아.”

“네. 술을 잘 몰라서.”

“무언가를 잊으려면 스트레이트로, 그러나 지금처럼 복잡한 심정일 때는 머리를 차갑게 식혀 주는 토닉워터에 얼음까지 타서 마시게.”

“……!”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법이야. 머리는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

부시의 말은 묘하게 시혁의 가슴을 건드렸다.

그래,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주저했었다. 일견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서 쉽게 쉽게 성장한 것 같지만, 정작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즉흥적인 부분이 많았었다.

이제 머리는 차갑게, 그리고 심장은 뜨겁게.

“프레지던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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