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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77화 (77/150)

77화 부시의 속마음

“우선 위스키부터 한잔하고.”

“프레지던트, 며칠 전에 이라크의 무함마드 총리를 만났습니다.”

“흠… 알고 있네.”

“네?”

“이 사람, 놀라기는. 자네는 미합중국의 보물이야. 자네의 신상이 위협받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되지.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일선 경호를 받고 있네. 그다음 상하원 국회의장, 행정부 장관들이 이선 경호를 받고 있지. 자네는 어디에 해당될 것 같나?”

“저도 경호를 받고 있었습니까?”

“당연하지. 자네 역시 일선 경호와 똑같이 받고 있었어. 대신 윌슨이라는 워낙 걸출한 인물이 옆에 있으니 외곽만 맡은 거야. 윌슨은 아마 다 알면서도 못 본 척했을걸?”

“……!”

“윌슨의 파일을 받아 봤네. 거의 탑 티어에 독불장군 같은 스타일이더군. 그런 친구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역시 자네야.”

“그랬습니까?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응, 내가 최대한 당부를 했네. 자네의 담백한 성격을 아니까 절대 눈에 띄지 말고,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말라고.”

“프레지던트… 감사합니다.”

“그래, 만난 건 보고를 받았지만 내용은 몰라. 한번 들어 보세.”

“왜 지금까지 기다리셨습니까?”

“자네니까. 이렇게 필요하면 말을 할 테고, 그럴 가치도 없으면 무시했겠지.”

아아아. 이런 무한한 신뢰를 받아 보다니. 가슴이 빵빵해진다. 터질 것만 같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칠 겁니다.”

“응, 그렇겠지.”

“예?”

“놀라기는… 내가 아무리 아둔해도 세계 최강 미합중국의 대통령일세. 그 정도 정보는 항상 받고 있어.”

“이라크는 그다음 미국의 행보, 프레지던트의 결심에 대해 궁금한 모양입니다.”

“자네, 그거 아나? 자네가 만난 무함마드 오베르 총리… 어제 쫓겨났어.”

“예?”

“음, 그 사람은 이라크 내에서 상당히 신망을 받는 편이야. 대표적인 비둘기파고.”

“그렇게 보였습니다. 총리는 미국이 움직인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담이 허튼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려고 했다 생각합니다.”

“맞아. 그랬을 거야. 자네는 강력히 경고했을 것이고 총리는 귀국한 후에 자네의 경고를 전했겠지. 그래서 쫓겨난 거야. 하하하.”

“…….”

“자네가 세븐시스터즈와 빅딜을 했다는 것도 알았네. 물론 최근에, 자네와 총리의 만남을 헨리가 주선한 것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

“그런데, 왜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조언을 하나? 사담이 만약에 지레 겁을 먹고 쿠웨이트를 치지 않으면 자네는 완전히 거지 되는 판인데.”

“그러게요. 저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제가 돈을 벌려면 사담이 쿠웨이트를 쳐 줘야 하는데, 왜 총리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렸는지… 또 왜 프레지던트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몰랐습니다.”

“지금은?”

“알겠습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네. 말해 줄 수 있나?”

“사람! 그리고 우정에 대한 배신… 내가 더럽다 생각했죠. 내 주위 사람이 다 같이 망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추하게 변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굿 초이스! 킴.”

“예?”

“오늘 여러 번 놀라는 것 같아? 자네는 다 가질 수 있네. 자격 있어. 골든 보이.”

“…….”

“꼴등 없는 일등이 있든가? 미국은 말이야, 적이 필요해. 강력한 적이 있어야 미국도 돋보이는 법이거든.”

“…….”

“솔직히 이라크가 오판하길 바라네. 아니, 반드시 칠거야. 쿠웨이트는 일시적인 고통이 있겠지만 원상 회복될 거야. 결국 자네의 배팅은 성공한 거야.”

“그런…….”

“고맙네, 킴. 오늘 자네가 먼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정말 가슴 아팠을 거야.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줬어. 자네는 진정한 내 친구야.”

이건 뭥미?

말로만 듣던 전화위복이 이런 건가 싶었다.

부시에게 어설픈 블라인드를 쳤다면? 불신의 벽을 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게 더 깊어지면 서로 속을 보여 주지 않게 된다. 결국 인간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의도치 않게 둘 다 건졌다. 주려면 홀랑 벗고 덤벼야 한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나는 국무장관을 이라크에 보낼 거야. 사담을 만나서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조약도 맺고, 나긋나긋하게 해 줘야지.”

“…….”

“내 친서도 가지고 갈거야. 우리는 동맹, 너희가 없으면 이란을 견제하지 못한다. 고맙다… 대충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한껏 고무되겠죠, 사담 입장에서는.”

“그렇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합병을 해도 미국은 동맹이니까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같은 편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거야. 이걸 정치 마사지라고 한다네.”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이미 충분히 도왔네. 자네가 예언한… 아! 예측이라고 했었지. 동독 장벽 붕괴와 소련 연방 해체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해 봤어. 지금도 CIA와 국무장관은 부정적이야. 하지만, 나는 믿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은 필연적이었네. 그 기나긴 냉전이 종식된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려.”

“네.”

“문제는 말이야. 우리 미합중국만 남는다 이것일세.”

“유일한 초강대국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아까 말했지… 적이 있어야 이익도 있는 법. 묘한 얘기지만 사실이 그래. 악의 축을 대변하는 세력이 있어야 미합중국의 말빨이 먹히는 거야. 안 그러면 마피아로 전락하고 말거든. 명분싸움인 셈일세.”

“이제 알겠습니다. 프레지던트는 소련 연방이 무너진다는 가정하에 미국의 위상을 고민하고 있는 거군요. 적이 없는 강대국의 명분을 세우려면…….”

“그래. 아예 공포를 새겨 주는 거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벌백계, 시범 케이스로 사담 후세인이 제격이라 판단하셨고… 맞습니까?”

“응. 빙고!”

제기랄, 아직 멀었다. 아무리 미래를 훤히 꿰고 있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의 생각은 예상을 벗어난다.

괜히 미국 대통령을 하는 게 아니구나.

“자네, 적이 갈수록 많아지네. 조심하게.”

“네. 그래야겠습니다. 으슬으슬 추워지네요.”

“특히, 루퍼트 마독과 세븐시스터즈는 대단히 위험한 존재야. 마독은 그래도 공개된 싸움을 걸어오겠지만, 석유상들은 달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보십니까?”

“밥그릇이 다르니까. 마독은 자기 것을 빼앗긴 게 아냐. 먹이감을 놓친거지. 그러나 세븐시스터즈는 자기들 것을 몽땅 날리게 되거든. 쪽박이 깨질 판인데 무슨 짓인들 못 하겠나?”

* * *

정신없이 달려왔다.

올림픽 휘장 사업에서 벌어들인 종잣돈으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에 들어가 야무지게 한입 베어 먹었다.

그리고 손창의라는 보물을 손에 넣었다. 손창의 사장은 이를 계기로 각성하고 투자자로 순항 중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블랙 먼데이 때 또 한 번 점핑 할 수 있었다. 월가에서는 영원한 숟가락 메리웨더를 통해 신화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한국의 K 타워는 내부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너무 큰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 있으나, 이 또한 생각한 바가 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분당의 그린벨트는 신도시로 지정 고시되었다. 이건 박하송에게 일임한 상태다. 눈만 뜨면 몇 배씩 뛰는 판에 급할 게 없다.

컬컴을 미리 선점했다. 엔바디아도 장악했다. 이건 당장의 이익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미래를 위한 포석이고,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시혁의 보따리를 꽉꽉 채워 줄 먹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핵폭탄에 타이머를 장착하고 모든 것을 던져 배팅했던 사안.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의 석유를 두 달간 독점했다. 뒤이어 세븐시스터즈와 선물 계약을 체결했다. 살벌한 조항을 덧붙여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무식한 배팅이었다. 적어도 세븐시스터즈 회장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건 무조건 우리가 먹는 판이라고.

결과는?

이미 젓갈을 담았다는 사실이 거의 밝혀졌다. 아마 세븐시스터즈는 프라이팬에 콩을 볶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정점에 있는 것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전쟁이 있었다.

이를 바탕에 둔 배팅에 현도그룹의 보증이 들어갔고, K 글로벌 USA의 지분과 소프트파워 지분 51%가 더해졌다.

시혁으로서도 수많은 갈등을 겪었던 사안. 과연 이를 숨기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전쟁이 터지지 않으면 이들은 한 방에 망한다.

이를 생각한다면 무함마드 총리에게 거꾸로 이야기를 했어야 옳다. 미국은 절대 이라크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시혁은 강력한 경고를 날리지 않았던가?

그 직후 부시를 만나 커밍아웃을 하려고 했었던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시혁은 자신과 주위 모든 것을 공중으로 날릴 결심을 한 것이다. 부시의 신뢰를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선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돌아왔다. 미국의 입장은 처음부터 이라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예비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 행태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았다. 뻔히 막을 수 있는 이라크를 더 부추겨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니까.

역사와 도덕적인 평가는 후대에 맡기자. 그것까지 시혁이 다 감당할 이유는 없다.

떳떳하게 말하자.

‘나는 망할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좀 궁상맞다. 어디선가 염소소리도 들리고.

* * *

“썅! 이게 무슨 개소리요?”

“인샬라!”

“차관 140억 달러 이자도 안 내다가… 뭐? 아예 없던 일로 하자고?”

“인샬라!”

“그쪽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냐. 그냥 깡패 집단이지. 아니, 마적에 불과하다고, 알아?”

아무리 악을 써도 상대방은 콧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젠 귓밥까지 파고 있다.

“아 참! 추가로 100억 달러를 더 달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깜빡했네.”

“…완전히 돌았소?”

“우리 루마일라 유전이 귀국과 연결되어 있지요. 그렇다고 거기에 빨대를 꽂아 막 퍼내도 되는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거 도둑질 아닌가?”

“땅속에 묻힌 석유가 주인이 따로 있답니까? 우리는 정당하게 우리 영토에서 채굴하는 거요.”

“뭐, 어떻든 앞에 받은 140억 달러는 잘 썼어요. 그거 우리 유전을 도둑질한 대가로 퉁 치고, 이거 이거 100억 달러… 급하니까 빨리 좀 주셨으면 합니다.

“으흐흐, 감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원… 별말씀을. 총리직을 맡고 있지만 쿠웨이트 국왕 전하의 친동생을 어찌 협박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중히 요청하는 거죠, 정중히.”

“천하에 이런 경우는 없다. 국가 간의 신뢰를 헌신짝처럼 망가뜨리는 이라크가 정상적인 나라란 말인가?”

“에이, 참 X같네.”

“뭐어? 아무리 같은 총리직이라고 해도 나는 쿠웨이트의 왕족, 너 따위 임명직이 쌍욕을 해? 전 총리는 그래도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거늘…….”

“전에 무함마드 총리와 친한 건 알겠는데, 그 사람 지금 뭐 하는지 알아요? 목장이던가? 거 있잖아요? 철따라 양 몰고 다니는 거지들… 거기 관리자로 나가 있다고 합디다. 양젖은 많이 먹겠네.”

기가 막힌다. 막무가내다. 외교의 기본도, 예의도 없는 군인 나부랭이가 갑자기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고 방문하더니 시정잡배, 양아치도 안 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나라가 약해서 그렇다.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었으나 자발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페르시아(이란)의 위협과 오스만 제국의 과도한 간섭을 피하려는 자구책이었다.

그 뒤 수시로 이라크는 걸핏하면 손을 내밀었다. 명목은 차관이지만, 이자를 받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떼먹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 거기다 100억 달러를 더 달라고?

안 주면?

또 국경에 군사를 집결시켜 훈련을 빙자한 시위를 할 것이다. 그때마다 쿠웨이트는 굴복하기를 반복하면서 약소국의 설움을 당해 왔었다.

그래도 너무 큰 금액이다. 한꺼번에 100억 달러를 뜯기면 다음에는 150억 달러가 될 것이고 200억 달러가 될 것이다.

절대 수락할 수 없다.

“마음대로 하시오.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고, 우방국들과 같이 이라크의 파렴치한 행동을 성토할 테니.”

“인샬라! 그거 알아요? 지금 미국 국무장관이 사담 대통령과 저녁 만찬 중이라는 거? 뭐라더라? 전략적 동맹인가… 그거 맺는다고 하던데?”

“…….”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그만 가 보겠습니다. 존경하는 왕족 알 쿠사르 총리 각하, 형님되시는 국왕 전하께도 안부 전해 주시구려.”

“…….”

“원래 형님이 힘들면, 부자 동생이 돕고 하는 거지. 그럼! 우리가 남이오?”

칼만 안 들었지. 지독한 강도를 만난 쿠웨이트 총리의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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