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80화 (80/150)

80화 죽이느냐 살리느냐

“안녕하십니까? 오사마 선생.”

“반갑습니다. 마이다스 킴 특보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네. 안타깝게 아랍식 커피가 없군요. 그래서 진하게 에스프레소로 내렸습니다. 드시죠.”

“감사합니다. 나중에 아랍에서 만나면 진짜 커피를 대접하겠습니다.”

“이름을 이렇게 줄여 부르는 게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다 기억하기 쉽지 않지만 풀 네임으로 불러야 더 예의에 맞는 건 아닙니까?”

“음… 제 풀 네임이 오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덴입니다. 뜻은 ‘라덴의 손자, 아와드의 아들, 무함마드의 아들 오사마’가 됩니다. 실제 제 이름은 오사마가 맞습니다. 보통 중간의 조상들을 빼고 ‘오사마 빈 라덴’이라 부르는 게 편할 겁니다.”

X발, 맞네. 그 오사마 빈 라덴. 훨씬 젊은 얼굴이지만 그대로… 맞네.

“그럼, 국장님께 여쭙겠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뭡니까?”

“예. 오사마 선생은 지금 아프칸에서 무자헤딘(Mojahedin)을 이끌고 전투 중입니다. 소련군과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고, 반군인 탈레반과도 싸우는 최고의 전사들이죠.”

“그런데요?”

“미합중국과 사우디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계속하시죠.”

“우리는 소련의 반발 때문에 노골적으로 무기를 지원할 입장이 아닙니다. 사우디도 비슷한 입장이고요.”

“예.”

“결국 무기는 중국산을 파키스탄을 경유해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도 소련과 화해를 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던 두 나라가 해빙 모드로 돌아서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거였구나. 그래서 나에게 왔구나. 장쩌민이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CIA도 잘 알고 있으니까.

“국장님, 제가 프레지던트의 특별 보좌관을 맡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공식적인 외교 경로를 무시하고 무자헤딘에게 무기를 제공할 입장도 아니에요. 아시지 않나요?”

“특보님, 자금은 필요없습니다. 여기 오사마 선생의 집안이 사우디 제일의 건설 그룹 오너 일가입니다. 넘치도록 대가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돈 이야기가 아니죠. 소련과 어떤 접점도 없지만, 그들과 척을 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중국의 친구들에게 곤란한 부탁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보님, 여기 오기 전에 코드 원을 뵙고 왔습니다. 코드 원께서는 직접 중국 주석에게 부탁할 사안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프레지던트께서 나한테 보낸 겁니까?”

“아닙니다. 그리 말씀하신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생각할 때 특보님이라면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싶어서 온 겁니다.”

아… 어쩌랴.

이 양반아! 지금 당신이 나한테 핵폭탄을 데리고 온 거야. 당장은 써먹기 좋아서 이용하겠지만 나중에 그 폭탄이 미국을 때린다고.

미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본토 침공을 당한다니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그로 인해 미국이 광기에 날뛰는 사달을 만드는 원흉, 그게 바로 그 사람이야.

미치겠다.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엔드류 국장님, 이 문제는 제가 프레지던트와 상의해 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가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특보님, 상황이 너무 급합니다. 무자헤딘은 우리의 소중한 동지입니다. 이들에게 무기를 보내지 않으면 아프칸에서 소련과 탈레반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허!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 국가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요. 전쟁물자란 것이 여기서 전화 한 통화로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고…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장신의 오사마 빈 라덴. 피식 웃는다.

이 새끼 봐라? 웃음이 나와?

“소문보다 겁이 많으시네. 무데뽀 배팅을 즐기는 겜블러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이오.”

“초면에 말이 거칠군요, 오사마 선생. 여기는 아프간이 아닙니다.”

“사우디에서 호의호식하는 삶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처지라 매일 죽음을 보죠. 수백? 수천? 수만의 생목숨을 보내기도 했고, 죽이기도 했소. 당신 같은 샌님은 모르겠지만.”

도발을? 야무지게 한판 해 보자는 말이네?

“대단합니다. 영웅 같은 삶, 좋죠. 그런데… 누구를 위한 영웅입니까? 나는 영 헷갈려요.”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하는 투쟁이 아니오.”

“오오! 그렇습니까? 그 투쟁 중에 죽는 사람에 대한 건 아무 값어치 없다는 말이군요?”

“이슬람의 율법과 알라의 뜻에 따를 뿐. 거기에 내 하찮은 목숨 따위 언제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소. 킴, 남자는 구차하게 살면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습니다.”

“오사마 선생, 거기는 전장이지만… 여기는 지옥이라는 건 모르시죠?”

“……!”

“꼭 총으로 머리통을 날리고, 대검으로 목을 베고, 폭탄으로 산산조각 내는 전장만 치열하다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오. 여기도… 그 전장 못지않게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

“당신의 사상이 전부라 우기지 마시오. 그건 어린애 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는 미합중국,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

“내 삶의 결정은, 내가 합니다.”

벙찐 표정.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나 보다.

“그리고 엔드류 국장님.”

“예, 특보님.”

“앞으로 이런 방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죠. 일의 성격이 보안을 요한다 해도 개인적으로 대단히 불쾌합니다.”

천하의 CIA 국장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직급은 자신이 높지만, 마이다스 킴이 작정하고 나서면 그날부로 정원의 풀이나 뽑아야 한다.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마이다스 킴의 성향상 쾌히 도와줄 것으로 알고 왔었다. 아직 혈기 넘치는 23살 아니던가? 악의 축, 소련을 물리치는 일에 한 손 보태는 일… 신이 나서 바로 전화기를 돌릴 줄 알았던 것이다.

왜 이토록 냉정하게 거절하는지, 엔드류 국장은 알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시혁은 엔드류가 한심했다.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오사마 빈 라덴에게 역대 최고의 현상금이 걸리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미국 전역이 공포와 슬픔에 잠긴다는 사실을.

조만간 그 사람은 총부리를 돌릴 거요, 미국을 향해서.

* * *

“보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아! 윌슨.”

“아까 엔드류 국장이 데려온 사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응. 굉장히.”

“나름 신념도 강하고 소련을 상대로 싸우는 전사인데, 왜 그리 부정적인 겁니까?”

“윌슨, 그를 제거할 수 있어?”

“……!”

“죽이고 싶다, 그 사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자헤딘은 미합중국의 보호를 받는 조직입니다. 그 사람은 지도자고요. 자칫 프레지던트와 대립할 수 있습니다. CIA는 당연히 반발할 것이 뻔하고요.”

“알카에다, 아나?”

“처음 들어 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는 중동의 조직으로 생각됩니다만.”

“그래, 이제 태동하고 있을 테니까 모르겠구나.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게 분명해. 참 나.”

“조금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알카에다.”

“그래,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도 놓치지 말고… 거기에 우리 사람을 심을 수 있으면 좋겠어. 돈이 얼마가 들던 말이야.”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만들어지는 조직이라면 몇 명 심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마침 적당한 애들이 보스 휘하에 있지 않습니까?”

“……!”

“예, 체첸의 전사 중 적당한 애들을 몇 명 추려서 은밀히 잠입시키겠습니다. 다들 발군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라 핵심 조직원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철저히 보안 유지하고, 만약 침투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면 보상을 넘치게 해 줘.”

“보스, 지금 구르카와 체첸 출신 요원들의 연봉이 얼만지 아십니까?”

“얼만데?”

“평균 만 이천 달러입니다. 팀장들은 더 받고 있고요. 이미 넘치도록 주고 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PMC(민간 군사 기업)도 우리의 절반이 안 돼요. 끓는 기름 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음… 산드라!”

“예, 회장님.”

“보험사에 연락해. 생명보험 최대한도치가 얼마인지 물어보고, 우리 요원들 전원 가입시켜 줘.”

“또 시작이예요?”

“…….”

“무엇이든 정도가 있는 법이에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하는 게 사람인데, 회장님은 그 경계를 항상 무너뜨리는 거, 병이라고요. 알아요?”

맞는 말, 그러나…….

“산드라,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진심이야. 하지만, 그냥 해 주면 안 될까? 요원들은 경비원이 아니거든.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사람이야. 세상 어떤 것도 생명을 대신할 수 없어. 나는 그 책임을 겨우 돈으로 대신할 뿐이야.”

“…휴우! 왜 매번 나를 나쁜 여자로 만드는지 모르겠어. 회장님은 역시 악마야.”

“고마워, 산드라.”

“사무직원과 변호사도 포함시켜요?”

“콜이지.”

“그리고 한참 채용 중인 투자부 책임자는 왜 안 정해 주는 거예요?”

“응, 걱정하지 마. 적임자가 있으니까. 곧 여기 불러서 피똥 싸게 만들 거야. 흐흐흐.”

“불쌍하다.”

“누가?”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회장님이 음흉하게 웃는 걸 보니 앞날이 훤해 보여서.”

한국의 박하송은 이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 없는 몸살에 걸린 것이다.

“아, 돌겠네. 왜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추운 거야?”

* * *

다시 열린 비상 대책 회의. 텍사스 어빙에 있는 엑슨 모빌 본사 대회의실이다.

바쁘다, 바빠.

“헨리 회장, 어떻소? 만나 보니.”

“우리가 너무 앞서서 걱정했어요. 안심하세요.”

전에 모였을 때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던 헨리 제리코가 아니었다. 느긋하게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신다.

“좀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뭐라 합디까?”

“흠…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다만, 이번 겜블의 승자는 우리요. 지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헨리. 뭘 알아야 준비를 하든, 자살을 하든 결정할 것 아니겠소?”

“꼭 히든카드를 까 봐야 압니까? 이건 사기 도박과 같아요. 카드를 돌리는 딜러가 우리 편입니다. 딜러는 그 카드의 배열을 다 알고 있어요. 우리가 이깁니다.”

“오 마이 갓! 일어나긴 한다는 말이구려?”

“이건 말할 수 있어요. 이틀이면 상황은 종료됩니다. 그리고 하얀 집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럼 된 거지. 껄껄껄.”

“장담할 수 있소? 백악관이 나서면?”

“참 이상해. 사자를 직접 본 적 없는 사람이 더 잘 알더라고, 나는 고기까지 나눠 먹고 왔는데. 왜 그럴까?”

이상하게 상황이 진실 게임으로 흐르자, 중재자 역할을 맡아 하던 로열 더치 쉘의 법인장이 나섰다.

“헨리 회장님 그리고 BP 리처드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두 분이 신경전을 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의 존망이 걸린 사안인 만큼 명확히 하자는 거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실 의무가 있습니다. 상황을 이렇게 몰고 온 책임, 헨리 회장님에게 상당 부분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나한테 다 미루는 건가?”

“당시 다들 꺼림칙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때 깃발을 들고 앞장서신 분… 헨리 회장님 아니었나요?”

이 새끼들… 감히 나한테!

“형님 나라는 동생을 먹을 거야. 하지만 다 알다시피 동생은 힘이 없어. 이틀이면 끝날 거야. 그게 전부일세.”

“시기는요?”

“원래 내가 여름 휴가를 8월 초에 가려고 계획했지. 그런데 안타깝게 못 갈 것 같군.”

여기서 이 정도도 못 알아들을 병신은 없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드 원이 안 움직인다는 보장은?”

“미합중국은 절반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어, 대부분이 중동에서. 사우디가 20%를 감당하고, 이라크가 8%, 쿠웨이트가 12%, 나머지는 오만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10%야.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20%가 막히면 당장 미국의 경제도 막히게 되겠지.”

“…….”

“결국 이번 사태의 키는 미국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담 후세인에게 있다는 말이야. 아이러니하게 미국은 이라크와 한층 친해지려고 노력할 때라고. 아무리 사담이 발광을 해도 못 막아.”

회의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세계를 떨어 울리는 세븐시스터즈의 회장들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본능이다. 설사 아닐지라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논란은 자신들의 불안한 속내를 드러내는 꼴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신이시여, 제발 미국이 발톱을 드러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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