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81화 (81/150)

81화 전쟁의 포성

“버트, 좀 어때요?”

[네, 회장님. 덕분에 요즘 살맛 납니다.]

“그래요? 새로 마련한 사옥은 마음에 들어요?”

[하하하. 제가 10년을 발버둥치면서 임대만 전전하다가 CMM 로고가 붙은 건물에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기자들 확충은 끝났나요?”

[그럼요. 제일 먼저 경력직으로 싹쓸이했습니다. 지금껏 인기 없던 직종의 종군기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더군요. 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쓰지 못합니다. 피가 끓는 사람들이니까요.]

“별도 기금에 대해서는 설명하신 거죠?”

[예, 다들 믿지 못했습니다. 제가 기금 증명서를 카피해서 나눠 준 뒤에야 눈이 똥그랗게 변하더군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됐다. 다 갖춰졌다.

“버트 사장님, 사주로서 부탁이 있습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최대한 많은 수의 종군기자와 생방송 장비를 이동시켜 주세요.”

[시작된 겁니까?]

“제가 아직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당시 회장님이 끝까지 대답 안 하신 소스, 우리 CMM이 단숨에 전 세계 시청자를 휘어잡을 빅뉴스에 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맘 졸이면서 지금껏 오더만 기다렸습니다.]

누가 기자 출신 아니랄까 봐 눈치 백 단인 버트 라인하트 사장.

“다른 방송사가 달라붙기 전에 서서히… 제3국을 경유해서 보내는 겁니다. 특히 제가 지정하는 지역을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는 사실 각별히 주지시키세요.”

[예. 혹시 이라크로 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서 CMM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거예요. 다만, 이번에는 쿠웨이트도 같이 보내세요. 제가 쿠웨이트의 오만 대사관에 딸린 안전가옥을 수배해 뒀습니다. 거기는 안전할 거예요.”

[언제로 보십니까?]

“디데이는…….”

* * *

점점 상황은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국내 정세가 폭발 일보 직전까지 도달했다. 8년간의 이란 전쟁에서 명목상 승리를 쟁취했다고 하나 100만 명 이상 인명 피해를 입은 이라크.

국가 재정은 파탄 지경이고, 전후에도 경제 재건을 등한시한 채 군수산업에 올인한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 불만이 팽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남부의 시아파 이슬람 세력과 쿠르드 게릴라가 연계하면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누가 살짝만 당기면 바로 불이 붙을 정도로, 사담 후세인의 위치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각하,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날 기세입니다.”

“상관없어. 게임체인저 한 방이면 돼. 준비는?”

“옙, 각하. 문제없습니다.”

“이동시켜!”

사담 후세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라크의 최고 정예 공화국 수비대 2개 사단, 3만 명이 바로 움직였다.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병력이 국경으로 집결하자, 화들짝 놀란 쿠웨이트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령했다.

그러나 쿠웨이트군에서는 ‘또 지랄하는 구나. 거지 새끼들. 이번에도 저러다 말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해이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한두 번이라야 겁을 먹지. 연례행사처럼 칭얼대는 것을 보니 또 뭔가 필요한 게 있는 모양이라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급히 마주앉은 양국 국방장관.

“뭐요? 이번에는?”

“루마일라 유전지대 전체를 본국 영토로 인정할 것.”

“놀고 있네. 땅 밑으로 연결된 석유, 그만 울궈 먹으시오.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떠들 셈이오?”

“그동안 우리 유전을 도둑질한 대가로 24억 달러를 지급할 것.”

“어이구, 갈수록… 더 해 보시오.”

“그동안 귀국에서 제공한 차관 140억 달러를 탕감할 것.”

“이보시오, 장관!”

“그리고 추가 차관 100억 달러를 즉시 제공할 것.”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마지막으로 부비안(Bubiiyan)과 와르바(Warbah), 두 개 섬을 본국에 할양할 것.”

“단 한 가지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을 말하시오. 턱도 없는 억지, 질리지 않아요?”

“나는 이라크 공화국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대리해서 분명히 귀국에 통보했으니, 돌아가서 전하시오, 장관.”

쎄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국방장관도 국왕의 사촌 형제, 전처럼 대충 넘어갈 분위기가 아닌 것을 감지한 장관은 헐레벌떡 돌아가 국왕을 알현했다.

“이번에는 조금 이상합니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왠지 협상을 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통보하는데, 살기가 번들거렸습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우리에겐 미국이 있어. 우리 석유의 거의 전부가 미국으로 팔려 간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새로운 수정 조건이 나오겠지. 최악에는 140억 달러 중 일부를 차감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자. 거지 새끼들.”

“국왕 전하, 그래도 미리 알려 이라크에 강력한 경고부터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벌써 외무장관이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했어. 미국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모양이야. 새해 연휴가 끝날 때까지 좀 지켜보자고. 정 이상하면 내가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마.”

1990년 7월 23일. 이슬람 새해 연휴 중에 이라크는 연일 국경으로 병력을 추가 배치했다. 3만 명이던 것이 잠깐 사이 10만 명을 넘어가더니 이제는 총 병력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사담 후세인은 가족들과 해안가 별장에서 연휴를 보내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안녕하셨습니까?”

[예, 국왕 각하.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벌써 수십만 명으로 늘었답니다. 심상치 않습니다.”

[곧 병력을 물릴 겁니다. 지금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지하 벙커가 아니라 별장에 있다고 보고 받았어요.]

“그래도… 우리 쿠웨이트의 총병력은 3만 명에 불과합니다.”

[국무장관이 그쪽에 강력히 경고를 했습니다. 대충 사절단을 보내서 차관 협의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라크의 목적은 돈 아니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적당한 금액을 차감하는 건 감수할 생각입니다. 하여튼 우리는 영원한 동맹 미합중국과 프레지던트만 믿겠습니다.”

[네, 요즘 유가가 12달러까지 폭락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오펙도 감산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우리도 더 떨어지면 수익성에 좋지 않으니까요. 그럼, 들어가시지요.”

서로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처럼 엮인 더러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동맹? 혈맹? 국제사회에서 그따위 약속, 지켜진 적이 있었던가.

미국은 미국대로 힘을 쏟아부을 적국이 필요한 상황이고,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치지 않으면 경제가 붕괴하고 사담의 정권도 무너질 상황이었다.

결국 쿠웨이트와 이라크는 모두 미국에게 속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하다. 수십만의 목숨이 걸려 있건만 정작 버튼을 누르는 깡패는 따로 있었으니…….

그렇게 운명의 날이 도래하고 말았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국경에 집결시킨 30만 대군은 삽시간에 쿠웨이트 국경선을 짓밟은 채 밀고 내려갔다. 한국의 경상북도 정도의 크기에 정규군 병력이 3만 명뿐인 쿠웨이트는 단숨에 썰려 나갔다.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침공을 개시한 이라크 정예병은 하루 반 만에 쿠웨이트 왕성을 점령하고 깃발을 내려 버렸다.

너무 허망한 결과였다. 또 예정된 결과이기도 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당일, 전 세계의 석유는 거래를 멈췄다. 미리 예약된 물량이 아니고는 단 한 방울도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해저 바닥에 가라앉은 광어처럼 눈치를 보는 것이다.

“시작됐습니다.”

“예, 부회장님.”

“어떡해요? 회장님 예측대로 뻥 터졌어요.”

“산드라, CMM 틀어 봐. 지금은 거기가 가장 정확한 소식통이야.”

-포성이 들리십니까? 여기 쿠웨이트는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시내로 진입한 이라크군은 닥치는 대로 민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제기랄, 약탈은 기본입니다. 방화도 서슴지 않고 군홧발로 집 안에 처들어가 강간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건 군인이 아니라 마적 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미 왕궁은 점령되었습니다. 거리마다 이라크 탱크와 장갑차가 겹겹이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건물 옥상에는 저격수가 배치되어 보이는 사람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5개 팀의 종군기자와 카메라가 생생하게 쿠웨이트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의 앵커가 다급히 물었다.

-현지의 기자들 신상은 괜찮나요? 잔혹한 이라크군에게 총격을 당할 위험은 없습니까?

-걱정 없습니다. 본사에서 어떻게 예측을 했는지 안전가옥의 비트를 마련해 준 덕분에 안전하게 방송하고 있습니다. 데스크에 감사드립니다.

전 세계로 송출된 CMM 생방송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전쟁의 현장에서 이토록 생생한 모습을 취재한 곳은 없었다. 지금도 기자가 비추는 카메라에는 이라크 탱크 포신에서 실제 폭탄이 발사되는 장면이 나왔다. 건너편 건물이 폭삭 내려앉는 장면도.

카메라가 건물을 줌인 하자 피투성이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곧이어 탱크의 기관단총이 발사되고 여인도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여전히 아이를 안은 채.

“대단하네. 언제 이렇게 준비를 했지?”

“저런 잔혹한 장면을 여과 없이 생방송으로 내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어쩌면 방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봐야지. 저들도 목숨을 걸고 하는 거야. 나는 저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보이네.”

“프레지던트,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영차, 움직여 볼까? 당장 뉴욕으로 에어포스 원을 보내게. 국무회의에 킴을 꼭 참석시켜야겠어. 빌어먹을… 뉴욕에서 위싱턴 간 95번 고속도로 정체는 악몽이야. 킴 때문에라도 확장을 해야 할까 봐.”

* * *

미국의 국무회의는 의외로 소박하다. 한국처럼 앞에 마이크를 놓고 차례대로 발언하는 절차 따위 없다. 다닥다닥 붙어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예사였다.

부시는 그런 국무위원들의 시끄러운 언쟁을 즐기는 듯 듣고만 있었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부시의 몫이다. 그 결정을 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하는 것이다. 전원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이다.

“당장 이라크에 경고해야 합니다. 그 구식 탱크를 물리라고.”

“어허, 뭘 알고 하는 소리요? 지금 조그만 쿠웨이트로 30만 대군이 밀고 들어갔어요. 이미 끝났단 말이오. 왕궁에 이라크 깃발이 걸린 걸 못 보셨나?”

“침략자를 용인하면 우리 미국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개같은 사담의 수염을 밀어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오판을 하지 않도록 쳐야죠.”

“그럴 필요 있나요? 솔직히 사담이 있어서 이란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사담이 우리 미국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야 안정적인 석유 수급만 보장받으면 그만이지.”

“동의합니다. 중동의 전쟁에 우리 미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사태가 진정된 후에 사절단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시죠.”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오히려 유럽입니다. 급작스럽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독일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무장관만 반팔 차림이다. 국무회의 드레스 코드는 긴팔 와이셔츠 아닌가? 지금이야 여름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당신, 소련 연방이 무너지는 12월에는 어쩌려고?

팔짱을 끼고 듣고만 있던 부시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장내는 바로 정리가 되었다. 이제 대통령의 시간이다.

“자! 마지막으로 정책 특보의 생각을 듣고 싶어. 킴, 우리가 어떻게 할까?”

말의 온도 차이다. 의견을 물을 수 있다. 특보니까. 하지만 ‘어떻게 할까?’라는 말에 숨은 뜻을 장관들은 알아차렸다.

네 말 대로 하겠다.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모두의 귀가 당나귀처럼 커졌다.

시혁도 잠시 부시를 쳐다보았다. 미소를 띤 변함없는 표정.

공을 넘기는 건가? 아니다. 그렇게 얄팍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안다. 이미 시혁과 어떻게 할 것이라는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시혁도 입꼬리를 올려 부시에게 웃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받들지요.”

“기회를 주시니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겠습니다.”

“…….”

“여러분, 이솝우화 중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잘 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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